제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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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녀강사가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야조브는 소리를 내며 크게 웃었다.
《하하… 그후 그들이 어떻게 됐습니까?》
녀강사는 다시금 빙그레 웃었다.
《결혼후에 곡절이 생겼답니다.》
《어떤 곡절입니까?》
…가정을 이룬 후 녀자의 마음속 기둥은 남편이다. 군관학교를 졸업한 남편이 어느 부대에 배치되는가? 이것은 김순희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했다. 누구나 고향을 사랑하며 고향에서 떠나기 싫어한다. 그에게 있어서 평양은 떠나서는 못살것 같은 정든 수도이고 고향이였다. 김순희는 박창걸이 자기가 복무하던 부대에 배치받게 된다는것을 이미전부터 알고있었다.
《동문 평양을 떠나선 안돼.
이것은 언제인가 그의 집(김순희는 결혼후 친정에서 남편과 함께 살았다.)에 왔던 한 일군이 남편에게 한 말이였다.
하지만 너무나도 뜻밖의 일이 김순희의 생활속에 뛰여들었다.
어느날 밤 박창걸은 순희에게 이런 말을 했다.
《순희동무, 난 일당백의 고향이 있는 부대로 갈것을 결심했소. 말하자면 탄원한셈이요.》
《어마나! 아이참…》
《왜 그러오?》
《군관에게야 배치면 배치지 탄원이라는건 또 뭐예요?》
《최전연에다 배치를 안해주니 재간있소? 탄원할수밖에…》
김순희는 어이가 없어 호 하고 웃었다.
《탄원하면 가나요 뭐. 전쟁이 일어난것도 아닌데…》
박창걸은 누군가를 념두에 두고 혼자말로 두덜거렸다.
《이건 너무하단 말이요. 대덕산이 있는 최전연에 배치해달라고 그렇게도 제기했는데… 젠장! 난 오늘 당장 대덕산부대로 떠나겠소.》
이날 저녁, 박창걸을 기다리다 지친 순희네 집에서는 소동이 일어났다. 순희의 어머니는 딸을 위해서라면 호랑이앞에라도 나설 녀자였다. 딸보다도 어머니가 더 끓었다.
《갑자기 웬일이냐? 너와 미리 의논이 있었니?》
《없었어요. 그저 오늘 아침 난 간다 하구 한마디 내비친것밖엔… 엄마, 아버지가 들어오시면 단단히 말 좀 해주세요. 글쎄 탄원이 뭐예요, 배치지로 가야지.》
순희가 기다리는 아버지는 밤이 늦어서야 들어왔다. 어머니의 말을 듣고난 아버지는 점잖게 한마디 했다.
《배치가 이미 결정됐는데 별걱정들을 다하누나. 순희야, 맘놔라.》
《오늘 밤 떠나간것 같아요.》
《허허… 떠났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곧 되돌아오게 될게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때로부터 이틀후, 박창걸이로 하여 해당 부문의 일군들속에서는 혼란이 일어났다. 한편 최전연에 배치되는 군관들과 함께 50사단지휘부에 도착한 그는 당시 사단장을 하던 장대식에게 뜻밖의 보고를 하여 그를 아연케 했다.
《사단장동지! 소위 박창걸 대덕산을 지키기 위해 탄원해왔습니다.》
《엉?》 장대식은 두눈이 커다래졌다.
《동무, 군관학교졸업생이 맞긴 맞소?》
《맞습니다.》
《그런데 보고 하나 규정대로 할줄 모르는가?》
박창걸은 시치미를 뻑따고 대답했다.
《탄원했기때문에 탄원하여왔다고 보고했는데 잘못됐습니까?》
《뭐라구?》
박창걸은 갑자기 자기의 자세를 바꾸었다.
《사단장동지, 제 얼굴을 어디서 본 기억이 나지 않습니까?》
장대식은 또다시 두눈을 부릅떴다.
《내가 동물 언제 봤다는거요?》
《그럼 〈인민군화보〉와 기록영화에서
《그야 여러번 봤지. 그건 왜 묻소?》
《제가 바로 그날의 그 고풍내기병사입니다.》
장대식은 눈을 부릅뜨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럼 동무가 박창걸인가?》
《그렇습니다.》
두팔을 벌리고 다가와서 덥석 그러안았다.
《야! 이 사람! 반갑소, 반가와. 앉소, 앉으라니까.》
순간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장대식과 그사이에 긴말이 오고갔다.
《그러니까 일당백의 고향에 뿌리를 박고싶어서 왔단말이지. 좋소! 좋아!
박창걸은 장대식의 두손을 부둥켜잡았다.
《어디 제 말이 통합니까. 열두번도 더 제기했지만 안된다고 뚝 자르니 별수 있습니까? 사단장동지, 좀 도와주십시오.》
장대식은 그의 어깨를 철썩하고 갈겼다.
《얼마나 좋소, 수도의 남쪽대문을 지켜선 대덕산, 그 문지방을 총으로 지키겠다는 정신적자세가 말이요. 장가는 갔소?》
《갔습니다.》
《어디 녀자요?》
《평양입니다.》
《색시가 전연에 따라나오겠다오?》
《안 오겠다고 하면 떼버리겠습니다.》
장대식은 눈을 부라렸다.
《그럼 되나, 어떻게든 데려와야지. 보나마나 수도를 떠나기 힘들어할거요. 그건 그렇고, 동물 어떻게 도와준다? 좋소, 내 웃단위에 제기해보겠으니 돌아가서 기다리오.》
한편 김순희는 눈물속에 남편을 기다렸다.
어느날 밤, 아버지의 말대로 박창걸이 집에 불쑥 들어섰다. 김순희는 너무나도 기뻐 날아가듯이 문가로 달려가 남편의 가방을 받았다.
《몸이 축갔군요.》
《…》
《이렇게 다시 올걸… 떠나긴 왜 떠났어요?》
이어 남편의 모자를 벗겨 옷걸이에 걸고 신혼살림을 위해 부모님들이 꾸려준 방으로 이끌었다.
《보세요, 저 벽을…》
박창걸은 안해가 가리키는 벽을 바라보았다. 그 벽에는
박창걸이 그 사진액틀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한참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천천히 창가로 돌아섰다. 그리고는 굳어지기라도 한듯 까딱 않고 서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남편을 올려다보던 순희는 그만 소스라치듯이 놀랐다. 무뚝뚝한 남편, 정서적인 감정이라고는 영 없어보이던 남편의 기름한 량볼로 두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지 않는가.
임신한 녀성의 신경은 칼끝같이 예민해지는 법이다. 왜 울가? 무엇이 서러워서… 혹시 내가 싫어져서 그런건 아닐가? 아니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박창걸이 흘리는 눈물의 의미가 리해되지 않았다. 무엇이 모자라고 무엇이 의견이 있어서 눈물까지 흘린단 말인가? 김순희는 벽장문을 열고 세개나 되는 트렁크를 꺼내여 제껴놓았다.
《이걸 보세요. 당신을 위해서 우리 아버지랑 어머니랑 저랑 준비한거예요.》
박창걸은 안해가 펴놓은 트렁크안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그안에는 남편을 위하는 김순희의 사랑이 담긴 생활필수품들, 속옷가지들로 가득차있었다.
《정말 고맙소!》 할줄 알았던 남편은 예상외로 획 일어서며 《난 가겠소. 내 모자!》하는것이 아닌가.
《예?》하며 따라일어서서 놀란 눈길로 쳐다보았다. 박창걸은 언제 기다릴새도 없이 제 손으로 모자를 옷걸이에서 벗겨쓰고 전실로 훌 나갔다. 정말 가랴 했는데 웬걸! 문이 열렸다닫기는 소리가 났다.
이날 밤 김순희는 온밤 울었다. 어머니는 딸을 달래다못해 사위를 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뚝해가지고야 무슨 살 재미가 있겠느냐. 너 평생 속썩이게 됐다. 그러나 이젠 어쩌겠냐. 네 몸에서 그 사람 자식이 커가는데… 참아라, 네가 리해하거라.》
사위는 가시어머니 사위라고 욕으로 시작한것이 인차 칭찬으로 넘어갔다.
《순희야, 난 원래 말이 많은 남자를 질색한다. 말이 많으면 쓸말이 없다고도 하지 않니? 얼마나 무게가 있는 사람이냐. 천성이 그런건 고치지 못한다. 네가 잘 맞추어주면 된다. 이 세상에 녀자말 안듣는 남자는 없단다. 이제야 다시 돌아왔는데 네가 마음을 맞추면서 재미나게 살면 되지 않니?》
그 말을 자장가처럼 들으며 잠에 들었다. 예민해진 신경을 겨우 가드라뜨리며 래일이면 들어올가, 글피면 들어올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이틀, 사흘, 나흘… 날자가 흘러도 들어올줄 모르는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