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 1 장

3


유진철이 돌아간 다음 박두성은 인차 자신을 후회하였다. 그는 늘 집을 떠나 관하부대들에 내려가있다. 전선서부 열점지역려단에서 돌아온지가 며칠 되지 않는다. 그런 유진철에게 영예군인인 안해의 안부도 묻고 추격기비행사로 복무하는 그의 동생소식이랑 알아보며 따뜻한 말마디라도 할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박두성과 유진철은 나이와 직급상의 차이는 많지만 지금까지 군사복무기간 여러차례나 만났다 헤여지고 헤여졌다 다시 만나면서 인생행로를 함께 걷고있었다.

박두성이 련대장을 할 때 유진철은 갓 입대한 병사였다.

어느날 대대전술훈련지도를 내려왔던 박두성은 행군과정에 뜻밖에 대오에서 분대장과 《아웅다웅》하는 한 병사를 보게 되였다.

그해따라 눈이 자주 많이 내렸다. 무릎을 치는 생눈길을 헤치며 소소리높은 고지에로 치달아오르는 행군은 헐치 않았다. 군사복무를 오래한 사람들에게 보람찼던 자기의 병사시절을 추억할 때 어느 훈련이 제일 힘들었는가고 묻는다면 아마 태반은 행군훈련이라고 대답할것이다. 군대의 모든 전투행동은 행군으로부터 시작되고 행군으로 끝난다 해도 틀리는 말이 아니다.

목에서 나는 겨불내, 어깨를 파고들며 지지누르는 배낭과 장구류들, 천근무게로 느껴져 옮겨놓기가 여간 뻐근하지 않은 두다리, 아직도 로정은 멀고 험한데 앞뒤에서 울리는 다급한 구령소리 《속도 빨리!》, 《후미 늘어지지 말고 빨리 따라설것!》, 《속도 빨리!》, 《속도 빨리!》 웬간한 정신육체적강자가 아니고서는 지탱하기조차 힘든 강행군길, 그래도 지적된 시간까지 기어이 가야 하는 행군, 군대에서 행군은 더없이 중요하고 힘든 훈련이였다.

머리가 픽픽 돌고 영민한 지휘관들은 무릎을 치는 생눈을 헤치며 해야 하는 행군때는 우격다짐으로 그저 욱욱 내밀거나 속도를 높이라는 구령만 치지 않는다.

선두에 힘꼴이 센 대원들을 척후로 세우고 교대를 시켜가면서 먼저 길을 낸다. 그뒤를 기본대오가 따라나가면 한결 쉽고 속도가 빠르다.

대오의 후미에도 역시 《행군명수》들을 세워 락오자가 없도록 한다.

박두성이 훈련지도를 내려와 함께 행군해가는 중대의 중대장이 바로 그런 능력있는 지휘관이다.

그런데 지금껏 련대에서 행군을 잘한다고 소문난 중대의 대오에서 이 무슨 옥신각신인가.

《동무, 정말 듣지 않겠소?》

《분대장동지, 정말입니다. 힘들어두 내 힘으로 가겠습니다.》

《됐소. 됐소! 중대가 이제 행군속도를 더 높이겠는데 동문 견뎌내지 못해.… 동무때문에 분대가 꼴찌하는걸 보자구 그래?》

《그래두 끝까지 내 힘으로 걷겠습니다.》

《중대에 지금 련대장동지두 내려왔는데 누굴 망신시키자구 그래.… 이리 내오. 동문 오늘 행군에서 빈몸으로 따라만 와도 돼. 자, 총을 넘기라구!》

《안됩니다.》

《안된다? 챠, 이런 고집불통은 보다 또 처음 본다.》

분대장이 병사의 어깨에서 총이든 배낭이든 벗기려다 퉁을 맞자 눈을 부라렸다. 그러다 어디에 걸려 허궁 넘어지면서 머리를 눈속에 박았다.

황황히 일어난 분대장이 세차게 머리를 흔들어 눈을 털고 한손으로 얼굴을 뻑 훔치더니 소리를 질렀다.

《이 동무 이거 좋게 말해선 안되겠군, 분대장권한 좀 써야겠군.…

병사 유진철!》

그렇지만 병사는 앙증스레 이발을 사려물고 후둘쩍 뛰여 앞선 동무의 뒤에 바투 따라섰다. 발이 부르텄는지 한쪽다리를 좀 살룩거리고 배낭을 자주 추슬렀다. 코와 입으로 흰김같은것이 확확 내뿜겼다.

아직 단련이 부족한 신입병사에게 너무 과중한 훈련이 아닐가.

련민의 정이 없지 않았다.

그런 《옥신각신》은 그후에도 몇번 계속되였다.

련대장 박두성은 먼발치에서 따르면서 그때마다 대견함과 호기심을 가지고 눈여겨보았다.

훈련에서 지나친 사랑과 인정에 사로잡힌 분대장을 충고해주고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다.

아마 그때 이마가 도두룩하고 하얀 이발이 가쯘한 병사가 분대장이 요구하고 벗기는대로 허랑하게 총이며 배낭이며 장구류들을 다 벗어내주었더라면 박두성은 이마살을 찌프리고 락심천만해했을것이다.

분대장더러 그냥 제힘으로 걷게 하라고 일렀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병사는 행군훈련의 그 힘든 고비를 용케 이겨내고있지 않는가.

그 《옹고집쟁이》병사로 하여 마음이 흥그러워졌다. 그를 와락 들어올려 빙빙 돌아가고싶었다. 어디서 저런 이악쟁이가 또 한명 늘었는가.

장한 생각이 들며 저 분대장이 련대장이 중대에 내려와 행군대오를 따라 걸으며 먼발치에서 바라본다는것을 이미 알고 제 대원을 자랑하고싶어 일부러 저런 능청을 부린것은 아닌가 하는 전혀 얼토당토않은 억측까지 하였다.

그날 박두성은 행군도중 차례진 점심식사시간에 모른척 하고 《옹고집쟁이》병사가 있는 분대를 찾아가 그의 옆에 끼여앉았다

훈련정황이 불을 피우지 못하게 되여있었다. 식사는 병영에서 준비하여 매 군인들에게 휴대시킨 주먹밥과 물통에 담아준 물이 전부였다.

불쑥 나타난 련대장으로 하여 군인들은 처음 좀 서먹서먹해하고 어려워하는 눈치였다. 대원들은 배낭에서 주먹밥을 꺼내다말고 박두성과 분대장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밥을 같이 먹자는데 난 왜 쳐다보오? 뺏아먹을가봐 겁이 나오?》

《아닙니다.》

분대장이 당황해했다.

《그럼 시간이 없는데 빨리 식사를 하기요. 나도 밥이 있소.》

박두성은 등에 지고있던 배낭을 벗어 아구리를 끌렀다. 그래도 대원들은 선뜻 손을 놀리지 못하고 이번에는 자기들끼리 눈을 크게 뜨고 마주보았다.

그러거나말거나 련대장은 배낭안에 손을 넣어 더듬었다. 한 대원이 옆에 앉은 동무에게 팔굽으로 건드린 다음 눈짓으로 그런 행동을 보라고 했다.

대원들은 련대장도 자기들과 같이 배낭속에서 주먹밥을 꺼내는것을 보고서야 히죽히죽 웃으며 밥먹을 차비를 했다.

그런데 그들이 꺼내는 주먹밥이 서로 차이가 났다. 겨울철행군에 여러번 참가해본 구대원들은 같은 주먹밥이지만 배낭에 넣을 때 비닐이나 천같은것으로 여러겹 단단히 싸서 별일 없었지만 신입병사인 경우 그런 경험이 없다보니 주는것을 받아 배낭에 그냥 덜렁 넣은탓에 꽁꽁 얼어버렸다. 물통도 경험자들은 품안에 넣든가 하다못해 솜옷안에 메고 다녀 얼지 않았지만 그냥 메고 걸은 병사들의것은 얼음덩이가 되고 말았다.

《옹고집쟁이》병사는 자기 배낭에서 주먹밥을 꺼내여 펼치는 순간 새하얗게 얼어버린것을 보자 아연해하였다. 그는 그것을 손에 든채 조심스레 다른 동무들을 살펴보았다.

바로 그때 가까이에 앉은 박두성이 그의 손에 있는 주먹밥을 닁큼 빼앗고 자기것을 제꺽 들려주었다.

《아니, 아니, 이건?…》

신입병사는 황급히 팔을 잡으며 엉거주춤 일어서려고까지 했다.

《앉소. 아무 소리 말고 어서 먹기요.》

박두성은 한손으로 그의 어깨를 꾹 눌러 도로 앉혔다. 그와 동시에 바꾼 주먹밥덩이를 어석하고 깨물었다. 둘러앉았던 분대원들이 알아차리고 당황해하였다.

분대장은 어찌나 급해맞았는지 입안에 밥을 한가득 문채 두눈을 뜨부럭거렸다. 울대뼈를 꿈틀꿈틀하며 밥을 넘긴 그는 련대장앞으로 엉기엉기 무릎걸음을 해가지고와서 언 주먹밥덩이를 자기에게 내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이건 왜 이러오? 난 속에서 번열이 나 이런 얼음과자를 찾던 참인데…》

그리고는 또 한번 어석― 하고 언 밥덩이를 깨물어 입에 넣고 아무렇지도 않은듯 와작와작 씹었다.

《련대장동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습니다.》

분대장은 밥을 먹다말고 정식으로 일어서서 차렷자세를 취하며 머리를 숙였다.

《허… 앉으라구. 남이 밥도 못 먹게. 잘못했다는건 뭐구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는건 또 뭐요?》

《정말입니다.》

《진짜 잘못한게 있긴 있소?》

《있습니다.》

분대장이 자책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잘 모르겠는데… 좌우간 잘못한게 있다니까 그건 고치면 되는거구 어서 먹기요. 배고프지?…》

박두성은 손짓해서 분대장을 도로 앉게 하고 신입병사의 옆구리를 슬쩍 찌르며 말을 붙였다.

《장해. 오늘 보니 보통내기가 아니야.…》

손가락으로 좀 빨갛게 언 코등까지 꼭 눌러주었다.

손에 주먹밥을 든 신입병사는 좋은지 히죽이 웃었다. 련대장이 어서 먹자고 다시 권하자 옆으로 얼굴을 돌리며 한입 베여 맛스레 씹었다.

한참후에야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알고 중대장과 중대정치지도원이 달려오고 사관장이 바빠난듯 눈을 박차고 여기저기를 드달려 다녔다. 그렇지만 이미 식사를 끝내고 물통을 기울여 목까지 추긴 다음 재미나는 이야기판을 펴놓은 뒤여서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들은 련대장이 꽁꽁 언 병사의 주먹밥을 들었다는것을 알고는 송구해서 얼굴을 붉혔다.

그렇지만 한덩이의 주먹밥이 련대장과 군인들을 한치의 간격도 없이 친밀하게 만들어놓았다.

《자, 한대씩 태우자구.》

박두성이 담배갑을 터쳐 내밀었다.

그렇지만 서로 눈치만 보며 머뭇거렸다.

《받으라는데…》

《우리들에게도 〈백승〉이 있습니다.》

《이것도 〈백승〉이야. 권하는거야 받아야지.》

《하― 이거…》

분대장이 먼저 뒤더수기를 쓸다가 넙적 받았다. 그러자 다른 대원들도 벌씬벌씬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방금전 자기의 언 밥덩이를 빼앗긴 신입병사에게도 주었다. 그의 이름은 유진철이였다.

《전…》

유진철은 군복바지에다 손을 썩썩 문다지다가 뒤로 가무렸다.

《왜?》

《피울줄 모릅니다.》

《정말?》

《예.》

《모르겠다, 입대하자마자 담배부터 배운다구 구대원들이 몰아줄가봐 사양하는게 아니요?》

《아닙니다. 정말 피울줄 모릅니다.》

《그렇다면 배우지 않는것두 좋지.…》

분대장은 눈치가 무딘 사관이 아니였다.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여 철컥하고 켜더니 조심스레 련대장앞으로 내밀었다. 박두성은 그를 흘끔 한번 쳐다보고는 사양하지 않고 불을 붙였다. 그렇지만 이야기는 여전히 신입병사하고 했다.

《이름이 뭐라구?》

《옛, 병사 유진철.》

《앉소. 앉아도 돼. 고향은 어디요?》

《함주군 련포립니다.》

《련포리? 멀지 않은데 바다가 있구 곁에 자연호수인 광포까지 가지고있는 고장 말이요?》

《우리 고향을 아십니까?》

유진철이 고향소리가 나오자 까만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좀 알지. 좋은 곳이요. 유명한 광포오리공장이 있지?》

《예.》

《호수바닥에 지금도 가막조개가 많소? 가물치잡이는 해봤는가?》

《가막조개가 지금도 많습니다. 가물치잡이도 해보았습니다. 줄낚시에 산 먹이감을 잡아꿴 다음 밤에 호수에다 늘여놓으면 아침에는 이런 가물치들이 매달려 푸들쩍거립니다. 그러는걸 줄을 슬슬 끄잡아당겨 한마리씩 따냅니다.》

신입병사는 손세까지 써가며 제법 성수가 나서 말했다.

《음― 알긴 아는군. 그런 좋은 고장에서 태여나선가. 오늘 보니 진철이 꽤 이악쟁이던데?…》

《예?》

《분대장이 총이며 배낭을 벗으라구 그렇게 야단하는데 지지 않는걸 보니…》

《아니? 그럼 아까 행군때 있은 일을 다 보셨습니까?》

담배를 빨 때마다 련대장 못 보게 뒤로 머리를 돌리군 하던 분대장이 귀동냥해 다 듣는지 눈이 둥그래졌다.

련대장은 그에게 눈을 끔뻑하고나서 계속했다.

《하루빨리 펄펄 나는 일당백의 싸움군이 되자면 병사는 그렇게 의지가 강하고 난관을 제힘으로 이겨낼줄 알아야 하오. 오늘 행군훈련에서 성적을 매긴다면 병사 유진철은 〈우〉고 분대장은 〈급〉이요.》

련대장은 이렇게 말해놓고 소리내여 웃었다.

《내가 왜 〈급〉입니까?》

분대장이 섭섭하다는듯 두눈을 크게 떴다.

《병사인 유진철은 기어이 제힘으로 걷겠다고 하고 실천했는데 분대장은 〈눈먼사랑〉을 했으니까. 허허허…》

《아, 거야 뭐…》

분대장은 무슨 말인가 더 할것처럼 했지만 인차 얼굴을 붉히며 수그러들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사람은 의지가 강하고 제힘을 믿어야 해. 손에 총을 잡은 우리 병사들의 경우야 더하지.…》

《집에 있을 때 우리 아버지도 자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군대에 나가거들랑 힘든것을 제힘으로 이겨낼줄 알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훈련때 한번 구대원들의 등에 업혀 령을 넘어 버릇하면 두번 세번 업히게 되고 나중에는 싸움마당에서 제구실을 못한다구 했습니다.》

《음― 참 훌륭한 아버지를 두었소. 지금 무슨 일을 하고계시오?》

《농장관리위원회 부위원장을 하다가 년세도 많고 건강이 좋지 못해서…》

《어데 다친데라도 있는가?》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할아버지와 함께 반동놈들에게 끌려가 생매장당했다가 겨우 살아났답니다. 그때 몹시 다쳤는지 젊어서는 몰랐는데 나이드시면서…》

유진철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음- 그렇군. 그래 어머님은 계시오?》

《…》

대답이 없었다. 얼굴이 더 컴컴해지고 고개마저 푹 숙였다.

《어머니도 앓소?》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울대뼈가 몇번 오르내리고 나직이 하는 말을 더듬기까지 하였다·

《…》

련대장은 더 다른것을 묻지 못하였다. 분대원들도 병사의 집안형편은 처음 듣는듯 방금전에 지었던 웃음을 거두고 그를 놀라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박두성도 전쟁시기 미국놈들의 폭격에 어머니를 잃었다. 그때 그의 나이는 8살밖에 안되였다. 어린시절 어머니를 잃은 슬픔과 생활이 자기의 가슴에 얼마나 깊은 상처와 이름할수 없는 아픔을 남겼는가를 너무도 잘 알고있는 그였다.

공연히 병사의 가장 아픈 곳을 다쳐놓았다는 후회와 함께 밀물처럼 차오르는 련민의 정을 어쩔수 없었다.

그래서 아마 그날의 첫 상봉이 그들의 인연을 더 깊게 해주고 군사복무의 나날에 나이와 군사관등급은 서로 달랐지만 잊지 못하는 관계로 되게 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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