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회)
제 1 장
1
우수, 경칩이 지나고 날씨가 제법 봄맛을 내던 어느날이였다.
유진철은 외무성일군의 면담요청을 받았다. 직일관으로부터 외무성일군이 면회대기실에 와서 기다리고있다는 련락을 받은 진철은 한쪽벽에 걸려있는 달력을 살펴보았다. 파란색으로 동그라미를 쳐놓은 날자가 눈에 인차 알렸다.
(내가 저렇게 표식해놓고도…)
진철은 이마를 철썩 쳤다.
그 일군은 이미 며칠전에 만나자는것을 의뢰해왔었다. 누구라는것을 알려주면서 면담을 위해서 해당한 절차를 밟았고 진철이 속한 기관의 승인까지 받았다는것을 알려주었던것이다. 면담날자만은 자기가 요구하는것이 실례된다고 생각했는지 진철이더러 편리한 날을 택해달라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은근한 목소리로 빠를수록 좋다는 말을 덧붙여서 용건이 긴급한것이라는것을 암시하였다.
진철은 그의 의향을 참작하여 자기가 오늘로 정하였던것이다.
마지막에는 《그럼 기다리겠습니다.》라는 말까지 하였었다.
그래놓고 까맣게 잊고있었으니 이마를 칠만도 하였다.
진철은 부서의 상급참모에게 자리를 잠간 뜬다는것과 자기 위치를 알려준 다음 서둘러 방을 나섰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진철은 면회대기실 한쪽 의자에 앉아 그 시간에도 가방에서 무슨 문건 같은것을 꺼내서 주의깊이 보고있는 일군에게 량해인사를 하였다.
《외무성의 최성훈입니다. 바쁜 시간에 찾아와서 제가 오히려 미안합니다.》
그는 침착하게 보던 서류를 간종그려 가방에 넣고 일어나서 마주나왔다.
전화로 목소리만 들었을 때는 나이가 지숙하고 몸이 거방지겠다고 짐작했는데 정작 만나보니 40살을 갓 넘겼을가말가한 젊고 말쑥한 일군이였다. 키가 훤칠하고 차림새가 점잖아보였다. 인상이 퍽 밝았다. 숱이 많은 새까만 머리칼에 기름을 발라넘겨 한오리도 흐트러진것이 없었다.
《저쪽 방으로 갑시다.》
진철은 그를 면회실의 어느 한 방으로 안내하였다.
차탁을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앉았다.
외무성일군 최성훈은 주머니에서 담배갑과 라이터를 꺼내서 탁우에 올려놓았다.
《한대 태우십시오.》
《감사합니다. 내가 권해야 할텐데 담배를 즐기지 않다보니…》
《그렇습니까? 저도…》
그러고보니 최성훈은 자기가 담배를 피우려고 그런것이 아니라 인사나 교제를 위해서 준비해가지고 온것 같았다.
그는 진철이 담배를 사양하자 인차 본론으로 넘어가려는지 들고온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타자친 하얀 모조지 한장을 꺼내여 앞에 내놓았다.
《그럼 찾아온 용건을 말하겠습니다.》
《어서…》
진철은 머리와 몸을 약간 수그리고 한손을 펴보이기까지 하면서 기꺼이 응한다는것을 표시하였다.
《얼마전에 유엔주재 우리 나라 상임대표부에서 한통의 전문을 보내왔습니다.
미국 CNN텔레비죤방송소속 녀기자 한명이 평양을 방문할 의향을 표시하고 국무성에 려권발급을 신청했다고 합니다. 미국무성에서는 유엔주재 우리 나라 상임대표부에 의뢰해왔습니다.
미제와 괴뢰들이 정초부터 벌린 합동군사연습과 서방언론들이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 대변인이 담화를 발표하여 우리 나라에서 국가우주개발전망계획에 따라 경제발전에 필수적인 통신, 자원탐사, 기상예보 등을 위한 실용위성들을 쏴올리고 그 운영을 정상화하며 당면하여 시험통신위성 〈광명성―2〉호를 운반로케트 〈운하―2〉호로 쏘아올릴 준비를 진행하고있다는것을 명백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우리의 그 무슨 〈대륙간탄도미싸일발사〉설로 오도하여 류포시켜 정세가 매우 긴장한 때에 적대국의 기자가 우리 나라를 방문하겠다는것이 좀 미심쩍은데는 있지만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이름은 변사향, 나이는 40∼50대정도, 미국국적을 가진 조선족녀성으로서 해외동포 3세대에 속한다고 합니다.
방문목적은 취재를 기본으로 하면서 부모와 선친들이 해외로 이주하기 전까지 살았다는 고향마을을 찾고싶다는 의향을 갖고있다고 합니다.》
최성훈은 담담한 어조로 말하면서 가방에서 꺼내여 탁자우에 놓았던 하얀 종이를 진철이쪽으로 약간 밀어놓았다.
그때까지 마주보며 그 일군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던 진철은 눈길을 그 종이장에 떨구었다. 호기심이 동하여 집어들었다.
상대방은 그러기를 바랐던듯 미소를 지으며 하던 말을 잠간 멈추기까지 하였다.
그 종이장에는 방금 한 최성훈의 발언내용이 거의 그대로 적혀있었다. 진철은 그것을 손에 들고 읽어보았다. 면회실안에는 정숙이 깃들었다.
진철은 미국에서 살고있다는 녀기자의 이름이며 나이며 방문목적을 보는 순간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찾아온 일군이 말하는것을 듣던 때와는 좀 또 다른 느낌이였던것이다.
(외무성일군이 사람을 잘못 알고 찾아온것이 아닐가? 군복을 입고있는 나와 그 녀기자의 우리 나라 방문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것일가? 혹시 이름이 그가 찾고있는 사람과 같아서 대상을 삭갈린것이 아닐가.
좌우간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으니 마저 들어보자.)
진철은 종이장을 집어들 때의 호기심과는 달리 별로 흥미가 없어 그것을 탁자우에 놓았다. 그러면서도 찾아온 상대방이 불쾌감이나 섭섭한 감정을 가지지 않도록 얼굴표정과 행동에 각별히 주의하였다.
다행스럽게도 그 일군은 그런데는 별로 신경을 쓰는것 같지 않았다.
그는 례의 그 단정한 몸가짐과 침착성을 흐트리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녀기자 부모들의 고향이 함흥가까운 함주군 어느 바다가 농촌마을이라고 했습니다.》
《나의 고향도 거긴데요.》
《그렇지요!》
최성훈은 반가와하는 기색이 확연하였다. 그는 마치 그래서 당신을 찾아왔다는것, 당신을 찾기까지 얼마나 남모르는 품을 들였는지 아는가 하는 속대사까지도 그 반가움에 담고있는것 같았다.
《그렇다면 실례지만 여기 적혀있는 〈변사향〉이라는 이름을 알고있거나 들어본적은 없습니까?》
《내가 말입니까?》
《예.》
《없는데요. 오늘 처음 듣고 이 종이장에서 처음 보는데요.》
진철은 싱그레 웃으며 대답하였다. 자기로서는 이미 생각할것도 더듬어볼것도 없다고 단정하고있었던것이다.
최성훈은 방금전 반가와하던 때와는 같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실망하거나 낯색을 달리하지는 않았다.
《아버님이 생존해계신다고 하던데 아버지는 모르실가요?》
《아버님은 지난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요?》
최성훈은 약간 당황해하며 퍽 미안스러워했다.
진철은 그의 심정을 리해하고 흔연하게 말을 이었다.
《글쎄 아버지가 살아계신다면 아실는지… 아니, 모르실겁니다. 입대전에 집에서 그런 이름을 외우시는걸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그 녀기자의 나이가 40대나 50대라면 분명 해외에서 태여났을텐데 우리 아버지가 살아계신다 해도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긴 그렇지요, 허허…》
외무성일군은 자기가 물어놓고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진철의 대답에 긍정하면서 허거프게 웃었다.
《혹시 녀기자 부모의 고향이 우리 고향과 같다면 그 녀기자의 이름보다는 그의 부모의 성함이나 별명같은것으로 찾는것이 낫지 않을가요?》
진철은 자기와는 관계가 없지만 (그는 꼭 그렇게 생각하고있었다.) 모처럼 찾아온 외무성일군의 일이 참으로 맹랑하게 되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유감스럽게도 아직 그 녀기자 부모의 이름까지는 료해하지 못하였습니다. 대표부에서도 모르고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당 기관을 통하여 그 지방에서 변가성을 가진 나이많은이들을 알아보았는데 딱히 짚어서 말하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이젠 세월이 반세기하고도 또 10년이나 되여오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나라의 국력이 강해지고 민족의
유엔주재 우리 나라 상임대표부에서는 이번에 평양방문을 신청한 녀기자에 대하여 비록 교포 3세인 미국국적을 가진 언론인이기는 하지만 부모의 고국과 고향을 찾고싶어하고 조선의 현실을 자기 눈으로 보고 파악하려는 동향을 고려하여 편의를 잘 보장해주며 요구하는 문제들도 풀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첨부해왔습니다.
그래서 여러 기관들에 의뢰하여 알아보는데 아직 어데서건 그와의 연고자는 찾지 못하고있습니다.》
그러는데 면회실문을 조심히 두드리고 직일관이 나타났다. 그는 거수경례를 하고나서 진철을 일별한 다음 알려주었다.
《부서에서 대좌동지를 찾고있습니다. 박두성중장동지가 부른답니다.》
《알겠소.》
직일관은 들어서던 때처럼 조용히 나갔다.
《미안합니다. 바쁜 시간을 뺏아서…》
《별말씀을… 좋은 소식을 드려야 할텐데…》
《괜찮습니다.》
최성훈은 일어나서 헤여지려다가 다시 조심스레 말을 붙였다.
《대좌동지, 혹시 아버님은 계시지 않지만 고향과 련계를 가지면 연고관계가 있었던분들을 찾을수 있지 않을가요?》
《고향 린근리에 나이가 많은 제 가시아버지가 계시기는 한데…》
《그렇다면 가시아버지되는분한테라도 문의하여 알아봐줄수 없을가요?》
최성훈은 면담을 끝내면서 거두어 가방에 넣으려던 종이장을 진철이에게 아예 넘겨주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야 뭐 어렵겠습니까. 설사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결과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성훈은 무척 좋아하며 넘겨주는 종이장뒤에 자기와 련계를 가질수있는 방법까지 큼직큼직한 글씨로 적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