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0 회
제 2 편
22
맵짠 추위가 대기를 옥죄고있었다. 칠성산너머로 흘러가던 구름쪼각들이 얼어붙은듯 움직이지 못했다. 처마끝에 길게 드리운 고드름은 서리찬 창끝처럼 날카로왔고 언땅을 굴으는 달구지바퀴소리는 아츠럽게 들려왔다.
오후였다. 길가에서 송아지가 음메- 하고 울었다. 어느 농가에서 솔가리를 태우는 냄새가 풍겨왔다.
얼마전 최현이 와서 손을 대고 짚어보던 림성골의 이 집-
리성조는 몹시 흥분하고있었다. 어찌보면 추위를 타는것 같기도 했다. 자기가 손수 그린 지도에서 북부의 여러 강하천들과 예견하는 발전소위치를 짚을 때마다 손끝을 바르르 떨군 했다. 어깨를 옹송그리고 벅차게 숨을 내긋는가 하면 말이 막혀 한참씩 갑자르기도 했다. 그때마다 김책은 난감해하고 낮게 기침소리를 내거나 손가락으로 책상모서리를 가볍게 두드리면서 주의를 주었다. 이렇게 그들은 애써 준비한 전후수력발전계획이
이런 사람들- 재능이 있고 아름다운 꿈이 있고 깨끗한 량심이 있는 이런 사람들을 아껴야 한다. 이들이 가지고있는 재능을 귀하게 여기고 이들의 량심을 믿으며 꿈을 꽃펴주어야 한다.
요즘 리성조는 일에 몰두하는것으로써 마음속 괴로움을 잊으려 애쓴다고 한다.
그는 사랑을 잃었고 가정은 깨여졌다. 남은것은 적후에서 싸우고있는 딸 리숙이뿐이다. 그 리숙이 최현과 같이 오면… 그래, 꼭 그렇게 함께 오도록 하여 부녀간의 상봉을 마련해주자. 나아가서 헐겁게 물려진 그의 가정을 새로 튼튼히, 굳건히 맺어주고…
고요했다. 리성조는 손을 내리고있었다. 단조롭게 울리던 말소리도 없다. 하지만
《좋소!》
마침내
《수고했소. 성조동무, 난 방금… 승리한 조국의 래일을 보았소. 정말 고맙소!…》
그의 눈가엔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핑- 어리고있었다.
《성조동무, 오늘 모처럼 기회가 생긴김에 내 한가지 부탁을 할가 하는데…》
리성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놀란 눈빛이였다.
《부탁이요. 그저 한가지만…》
리성조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별안간 쓰라린 아픔을 상기한 모양이였다. 그는 두손을 꽉 마주잡으며 괴롭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니요. 이건 중대한 문제요.》
리성조는 눈물에 젖고 흥분으로 하여 상기된 얼굴을 이즈러뜨리며 입을 실룩거리고있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북받쳐오르는 울음을 겨우 참고있었다. 그러한 그를 지켜보면서
《지금 우린 어려운 전쟁을 겪고있소. 사람마다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그런 고통과 아픔을 지니고있소. 이런 때일수록 우린 사람들을 아끼고 돌봐야 하오. 우선 가까운 사람들부터 진정으로 아껴주어야 하오. 우리가 피흘려 싸우는 목적이 인민을 위함인데 인민이란 뭐겠소. 인민이란 우리의 부모처자들로부터 시작되는것이요.
성조동무, 나는 오랜 혁명투쟁과정에 부모와 동생, 많은 귀중한 동지들을 잃었소. 그들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못다한 지성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마음다지군 했소. 너무도 일찌기 내곁을 떠나간 아버지, 어머니, 동생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우리 인민을 더 잘살게 하자. 아무도 우리 인민을 욕되게 하거나 괴롭히지 못하게 하자. 더는 우리 인민이 눈물을 모르게 하자. 더 억세고 더
그 순간 리성조는 더는 참지 못하고
김책도 자리에서 일어나있었다. 볕에 탄 그의 얼굴에도 눈물이 즐펀했다.
《그러리라고 믿었소. 성조동무, 이제 리숙이 싸움을 이기고 돌아오면… 모두 둘러앉아 즐거운 한때를 보내기요. 나도 참가하겠소. 정말이요!…》
리성조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거침없이 떨어져내린 눈물이 그가 온갖 정성을 다해 그린 지도를 적시고있었다. 그리하여 오불꼬불한 강하천들에 새긴 붉은 별들이 빛을 뿌리며 푸른 물결처럼 흔들어댔다. 승리한 래일의 발전소 불빛들이 금시 살아나는듯 했다.
저녁 8시,
《오늘밤 향산방향으로 나갑니다.》
《거기 나가보겠소. 남일동무도 준비하시오.》
오영혜가 얼굴을 붉히며 벽에 붙인 지도를 가리켰다.
《음-》
《그런데 제2전선의 전투지점들은 왜 없나?》
《저…
《너무 복잡하다?》
《예, 오늘은 해방했다가 래일은 또 내주고… 한곳에서만도 몇번씩 전투가 벌어져서 어떻게 그려야 할지…》
《음- 그것도 연구해봐야겠군.》하고
《아이 정말!?》
《여기 금천, 장풍, 련천, 철원, 이천, 화천!… 이 넓은 지역을 우리 제2전선부대들이 장악통제하고있소. 청천강류역의 승리도 제2전선의 활동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지… 영혜도 소식을 들어 알겠지만 얼마전엔 여기 곡산에 있는 놈들의 비행장을 들이쳐서 수십대의 적기를 파괴하고 불바다로 만들었소. 공중우세를 자랑하는 놈들을 땅우에서 요정냈거든!…》
《그런데… 영혜!》하고
《이런 지도를 내 방에도 하나 그려붙이지 않겠나?!》
《어야나!》 오영혜가 놀란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내겐 이 지도가 꼭 마음에 드는걸!…》
《아이,
지금
밖에서 승용차 멎는 소리가 났다. 남일이 도착한것이다.
…이날밤
얼어붙은 길을 가득 메우며 총을 멘 병사들의 대오가 흘러가고있었다. 땅크들이 굴러가고 포차들은 불도 켜지 않고 꼬리를 물고 전선으로 나가고있었다.
(얼마나 고대해온 이 시각인가!)하고 가슴후덥게 생각하시였다.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바쳐 앞당겨온 이 시각인가!… 하지만 아직도 최후의 승리를 위하여 많은 피와 땀을 바쳐야 한다…)
총멘 전사들의 대오는 끝이 없는듯 했다. 한결같이 새 군복차림에 새 기관단총을 메였다. 반땅크총을 앞뒤에서 같이 메고 가는 사수와 부사수, 중기관총 총차를 걸머진채 가까스로 고개를 돌려보는 전사도 있었다. 박격포병들이 길마를 진 포마들과 같이 지나갔다. 그들의 등뒤에서는 하얀 눈가루들이 바람에 날리며 차디찬 별빛에 반짝이였다.
드디여 그날이 왔다. 11월 25일, 바로 적들이 《크리스마스총공세》를 시작한 다음날 주타격방향인 전선서부에서는 오래동안 애써 준비한 반공격이 시작되였다.
바야흐로 엄혹한 조선의 겨울이 한창이였다. 울부짖는 포성과 더불어 청천강에서는 얼음장이 쩡-쩡 터져갈리는 소리에 맹수들조차 치를 떨었다. 《크리스마스총공세》의 장엄한 포성에 발맞춰 산병선을 폈던 침략자들의 대다수는 이미 눈보라속에 묻혀버렸다. 18만여명에 달하던 미제8군의 주력이 붕괴되고있었다. 살아남은자들은 상부의 명령도 없이 제가끔 살구멍을 찾아 도망치기에 정신이 없었다.
바빠맞은 맥아더는 11월 28일밤, 워커와 알몬드 등을 도꾜에 불러 《도교회의》를 열었다. 회외에서 맥아더는 참패를 인정하고 평양-원산계선으로 퇴각할것을 지시하였다. 한편 본국에 7만 4 000명의 병력보충을 긴급요구하였다. 그러나 합동참모본부는 현재 미국본토에는 82공수사단밖에 없고 유럽에서도 이동시킬수 있는 병력이 겨우 l~2개사단병력밖에 없으므로 그 요구를 들어줄수 없다고 했다. 미제8군은 막다른 궁지에 빠지게 되였다. 맥아더는 미제1군단, 9군단을 빨리 퇴각시켜 평양일대에서 방어를 조직하려고 시도하였다. 이러한 사태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