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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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씨야에서 사회주의10월혁명을 할 때에는 로동계급의 힘이 기본이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군대와 로동계급을 대비해볼 때 혁명성, 조직성, 희생성, 규률성, 전투적기질과 단결력에서 누가 더 강합니까?》
《물론 군대입니다. 그러나 군대는 물질적기초인 경제를 발전시키는 주되는 힘은 가지고있지 못하지 않습니까.》
《물론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그렇습니다.》
야조브는 무엇인가 약간 주저하는 기색이더니 모처럼 기다려온 기회라 다시 진지한 자세를 취했다.
《저의 의문으로부터 생긴 견해를 먼저 피력해볼가 하는데…》
《사회주의가 무너진 이전 쏘련과 동유럽실태를 대비해놓고 저의 론리를 세운다기보다 실패에서 교훈을 찾는다는 의미에서도 그렇고 조선이 새로운 시작점에 서있다는 의미에서도 그렇고…》
야조브는 주름깊은 얼굴의 미간에 긴장을 모으며 앞에 앉아계시는
《야조브동지는 지금 속으로 뭔가 자꾸 주저하는것 같은데 여기야 사상이 다른 외교관들이 론적이 되여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석상도 아니지 않습니까. 호상리해와 납득이 되면 도움이 되는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배제해도 되는, 말그대로 그 어떤 구속도 강요도 없는 리해와 도모의 자리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제 생각을 순서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1980년대 전반기 쏘련의 경제장성률은 1960년대말 이후시기의 5프로로부터 1. 8프로로 하강선을 그었습니다. 미국과의 군비경쟁에 말려들다나니 해마다 국민총생산액의 약 25프로를 국방비로 돌리고 나라의 많은 자원을 국방건설에 충당했기때문입니다. 결국에 가서 쏘련은 서방보다 경제발전에서 심한 우렬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인민들속에서 서방을 부럽게 바라보는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서방언론계는 쏘련이 군사분야에서는 초대국의 지위를 보장하였으나 그대신 경제는 파산되여 심각한 위기를 겪고있다, 자칫 잘못하면 제3부류의 나라로 떨어질 위험에 처하였다고 귀가 아플 정도로 비방했습니다. 바로 이런 때에 고르바쵸브가
실은 한 나라의 정치로선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것을 실지 체험을 놓고 전개해보고싶었는데 말이 길어졌는가 봅니다. 선택의 기로에 놓인 조선에서 군사를 중시하는것은 적극 찬양합니다. 그러나 어려운 고비에 이른 경제문제를 눈앞에 보며 주력군문제까지 달리한것은 어떻게 리해해야 할지… 그리고 경제문제는 어떻게 풀자고 하십니까? 경제이자 곧 정치라고도 합니다. 경제가 풀려야 사회주의도 지킬수 있지 않겠습니까?》
야조브의 관심사와 우려가 무엇인가 하는것을 충분히 납득하신
《어떠한 사상이건 충분한 근거로 론증하였을 때에만 진리로 인정하여야 한다는 견지에서 말한다면 우리가 택한 길을 놓고 서뿔리 이건 어떤 정치다, 어떤 로선이다 하고 요란한 말을 붙이고싶지 않습니다. 혁명은 민족국가단위로 진행됩니다. 매 나라, 매 민족마다 다 자기 고유의 력사와 특성이 있습니다. 남은 설사 동쪽을 간다 해도 자기 나라 혁명이 서쪽으로 갈것을 요구하면 우리 식대로 서쪽으로 가야 한다는것이 선행리론에 기초한 나의 정치적립장입니다.》
야조브는 덤덤히 앉아있었다. 뭔가 석연치 않은지 머리를 기웃했다.
《리해상 편리를 위하여 우리 나라의 력사가 남긴 자랑과 피의 교훈을 잠간 더듬어볼가 합니다.》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진 조선민족은 예로부터 슬기롭고 문명하며 강의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되는 금속활자, 우아하고 조화로운 모양에 맑고도 아름다운 색갈과 섬세하고 정교한 무늬를 새겨 세계에 널리 알려진 고려자기, 세계최초의 측우기, 비행기의 조상인 비차, 현대군함의 선조부류에 당당히 속한다고 볼수 있는 거북선 등 찬란한 문화와 슬기를 떨쳐온 우리 민족은 고구려와 고려시기까지도 군사에 힘을 넣었기때문에 동방에서 국력이 매우 강한 나라에 속해있었다. 아시아에 이어 유럽의 많은 나라들까지 말발굽으로 짓뭉개버린 칭기스한침략군의 침공도 6차례나 물리치고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한 동방의 강대한 나라였다. 그 기개가 근대에 이르러 완전히 꺾이우고 나라와 민족이 왜적의 침략에 짓밟히우기 시작한것은 그후 국정이 부패된데도 있었지만 군력이 쇠약해진탓이였다. 지리적으로 대국들사이에 있는 우리 나라의 봉건통치배들은 사대와 매국을 일삼고 당파싸움에 빠져 군력을 강화하는데 전혀 낯을 돌리지 않았다. 국정이 어찌나 썩고 군력이 얼마나 약해졌으면 다른 나라 군대가 와서 왕궁의 파수를 서주다 못해 명성황후가 왜적의 칼에 맞아 불에 타죽고 왕이 다른 나라 공사관에 끌려가 갇혀있는것과 같은 비극이 빚어졌겠는가. 임진조국전쟁이 일어나기 10년전에 학자 리이가 10만양병설을 내놓았지만 음풍영월에 세월이 언제 가는줄도 모르는 봉건통치배들은 눈만 뜨면 권력싸움에 몰두하면서 나라방비에 무관심하다나니 임진조국전쟁에서 수많은 인민이 죽고 귀중한 문화재들까지 강탈당했다. 그때라도 정신을 차리고 군력강화에 힘을 넣었더라면 5천여년의 자랑찬 력사국인 우리 나라가 근대에 이르러 대국들의 각축전장이 되다 못해 일제에게 국권을 강탈 당하고 망국노의 신세에까지 빠지지는 않았을것이다.…
《우리는 이런 력사적교훈과
왜서인가? 당도 국가도 인민도 총대의 힘에 의하여 나오고 그 운명도 총대의 힘에 의해 지켜지기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군대이자 곧 당이고 국가이며 인민이라고 봅니다. 우린 이 군대의 힘으로 조국수호전도 사회주의건설전도 다같이 밀고나가는 공격작전을 이미 펼쳤습니다. 이것은 로동계급을 약화시키는것이 아니라 군대와 한모양새로 더 강화해나가는 길입니다.》
야조브는 눈앞을 흐리마리하게 하던 그 어떤 허상이 가셔지고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모든것이 점차 선명하게 보일 때와 같은 환희에 휩싸였다.
그렇다면 군대와 분리된 당, 군대와 분리된 정권, 군대와 분리된 인민의 운명은 망한다는 결론에 떨어진다. 그래서 미제가 《개혁》과 《개편》을 부르짖으며 《정치적다원주의》를 도입한 고르바쵸브를 통해 붉은군대를 당과 분리시키기 위하여 그리도 집요하게 날뛴것이 아니겠는가.
오던 길에 들은 가요 《당신만 있으면 우리는 이긴다》의 의미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결국
야조브는 비로소
지금껏 사회주의운동을 추동해온 공인된 선행리론이 아니라 새 정치리론의 선택으로 이 난국을 헤쳐나간다는것은 어쩐지 새로운 형식의 배를 타고 풍파사나운 날바다에 처음으로 나선것처럼 불안스럽기만 했다. 그렇다. 세월의 흐름을 거쳐 확증된 진리만이 심장에 접수되는 법이다.
초미의 문제는 조국보위와 사회주의건설까지도 다 맡아안은 주력군이 력사의 준엄한 도전속에서 어떻게 그 두가지를 다 감당해낼수 있겠는가 하는것이다.
맑스는 온갖 시작은 힘들다고 했다. 조선에서의
야조브는 군사가였다. 때문에 그는
사회주의운명을 두고 자라나는 후대와 력사가 똑똑히 알아야 할 그런 글을 쓰고싶었다. 이 글은 쏘련과 동유럽사회주의가 어떻게 붕괴되였는가를 직접 체험하였고 조선이 어떻게 사회주의를 지키는가 하는것을 직접 목격하고있는 자기만이 쓸수 있는것이다. 그것은 력사앞에 지닌 사명으로 된다. 이것은 오늘의 준엄한 현실의 목격자, 체험자의 권리이며 의무이기도 하다.
예브게니예브나가 지금 모스크바에서 자기를 기다리고있다는 생각이였다. 야조브는 그만 맥이 탁 풀렸다. 만약 여기에서 그냥 지체하다가 안해의 병이 더 악화된다면 일생 한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안해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고싶지 않았다. 사실 그래서
아, 안해의 병만 아니라면… 한두달만이라도 조선에 더 있고싶구나.… 야조브는 아쉬움을 금치 못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야조브의 부리부리한 눈동자가 떡 굳어졌다.
《그걸 어떻게?…》
《허허… 나도
공동의 위업을 위한 길에서 서로 돕는것은 국제주의적인 의무이기 전에
부인이 가까운 시일안에 우리 비행기로 평양에 도착합니다. 부인의 치료문제는 우리가 힘껏 돕겠으니 더 걱정하지 않아도 될것 같습니다.》
야조브의 주글주글한 볼편과 눈두덩이 부르르 떨렸다. 가슴속에서 세찬 충격의 파도가 일어난것이다.
야조브는 눈을 슴벅이며 젖은 음성으로 말씀드렸다.
《
《어서 하십시오.》
《
《좋습니다. 나도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러되 야조브동지의 계획에 따라 조선에 있고싶을 때까지 있으십시오. 자, 그럼 후에 다시 만납시다. 나는 인차 병사들을 찾아 떠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