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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 회

9

(2)


한참후에 야조브가 주석단으로 다시 나왔다. 모두들 국방상의 시선과 마주칠세라 슬슬 눈길을 피했다. 영 반대되는 일이 벌어졌다. 서슬이 퍼래졌을줄로 알았던 국방상의 어글어글한 두눈에서 어딘가 시원해하는듯 한 느낌이 풍겼던것이다. 회의실 앞좌석의 장령들은 야조브와 주석단에 앉아있던 부상사이에 이런 말이 오고가는것을 들을수 있었다.

《대통령이 대단히 노했더군. 내 인사도 받지 않더란 말이요.》

《뭐라고 합니까?》

《대통령을 대하는 자세들이 틀렸다고 노발대발했소. 응당한 대접을 받은셈이요.》

이어 야조브는 매우 만족해하며 회의실객석을 향해 한손을 재치있게 흔들어보였다. 바싹 긴장되였던 회의실안에 박수소리가 터졌다. 다만 개인별장을 운운하며 제살궁냥에 눈이 어두워진 장령들만이 저들끼리 이렇게 수군거렸다.

《국방상이 저런 식으로 크레믈리와 엇서다가는 오래 못 갈거요.》

《그러지 않아도 교체를 준비하는것 같소.》

이들로 말하면 이미 고르바쵸브가 뿌린 독소에 마약처럼 중독된자들이였다. 국방성과 총참모부에는 쏘련의 운명을 놓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군인들과 그렇지 못한 군인들로 갈라져있었다. 제 운명, 제 리속을 먼저 타산하는 국방성 웃머리의 영향을 받은 군관구의 약삭바른 장령들속에서 두툼한 봉투가 올라오고 뒤따라 직급이 높아진다, 그들속에서 별장들이 생겨난다, 외국은행들에 개인구좌를 둔다, 자가용차들이 생긴다 하는 비행들이 련이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국방성의 응접실, 정치총국 당위원회, 인민검열위원회로 총기류를 팔아먹고 돈벌이를 하는 행위, 장사행위, 뢰물을 받아먹고 훈련평가성적을 올려준 행위를 바로 잡아달라는 신소들이 련이어 날아들었다. 하나 그것을 바로잡을 기능이 이미 마비된 국방성청사에서는 한숨소리만이 높아갈뿐이였다. 그들자신부터가 그런 일을 하고있었으니 웃물이 흐렸는데 어떻게 아래물이 맑아질수 있겠는가. 야조브는 1990년 10월 군대안의 정치기관들을 마비시키다 못해 민심존중의 허울밑에 종교까지 되살릴데 대한 나라의 법령을 발포한 고르바쵸브의 행위에 더더욱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여기에다 량심의 자유법이라는것까지 련이어 채택되여 나라는 물론 군기를 세워야 할 쏘련군대안에서 종교가 판을 치게 되였으니 정말 기가 막히지 않을수 없었다. 결국 병사들이 보초를 서는 시간을 내놓고는 종교행사에 참가하고 십자가를 비롯한 여러가지 종교상징물들까지 제맘대로 휴대했으며 군관학교졸업때 교회당에서 종교의식을 하는것이 관례로 되였다. 전체 군대의 95프로가 신자가 되여 기도시간에는 그 누구도 어쩌지 못했다. 고르바쵸브는 이쯤되자 군대내의 공산당과 공청조직들의 활동을 금지시키고 정치기관까지 해체해버리다싶이 했다.

모든 군사적지표에서 미국을 압도하여 세계 제1위의 군사대국으로 상승하였던 쏘련의 군사력이 완전히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야조브는 이것을 막아보자고 무진애를 썼지만 고르바쵸브는 웬간해서는 국방상을 만나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마쟈르에서의 쏘련군대 철수문제가 절정에 올랐을 때 야조브는 크레믈리에 다섯번이나 찾아가서야 고르바쵸브를 겨우 만났다.

《난 국방상을 못해먹겠습니다. 군부의 의견을 그렇게 묵살해서야… 만나기는 왜 이렇게 힘이 듭니까. 혼자 다 해먹으시오.》

야조브의 공격앞에 급해맞은 고르바쵸브는 헛웃음을 지으며 갑자기 비굴해졌다.

《국방상! 너무 흥분하지 마오.》

《대통령도 필요할 때 만나지 못하는 국방상이 당신에게 뭣에 필요합니까?》

만약 이 시기 야조브의 눈이 좀더 밝았더라면 고르바쵸브가 이딸리아에 휴양간 기회를 리용하여 미중앙정보국의 낚시를 받아물고 시정배로 전락된 내막을 밝혀냈을것이다.…

이윽하여 야조브는 장편소설의 어느 한페지에서 시선을 멈추고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그가 찾던 대목이였다.


…최종적인 결론은 늘 그가 내려야 했다. 그러나 쓰딸린은 미리 자기의 조용한 서재에서 정치개괄, 력사참고서, 각종 계획안들을 비롯한 숱한 문건들과 결정서들을 연구하지 않고서는 그런 결심을 내리지 않았다.

…나라는 황페화되였다. 상처에서는 아직 피가 흐르고있었다. 수십개의 광산들이 페갱되였거나 침수되였다. 5개년계획의 첫 산아들인 수십개의 공장들이 재더미로 되였고 발전소가 파괴되였다.

전쟁전생활수준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서는 수백만사람들의 막대한 로력과 거액의 자금이 필요하였다. 지금은 군사적위훈이 아니라 로력적위훈을 이룩하기 위한 힘의 원천을 자신에게서 찾아내야 했다.…


야조브는 소설을 보며 조선의 실지현실이 바로 이때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미제의 집요한 경제봉쇄와 《제재》의 후과로 멎다싶이 한 공장들, 식량위기, 조선과 잇닿은 경제통로들의 전면차단, 통상 및 금융관계단절, 조선의 구좌에 대한 동결, 사회주의시장의 파괴로부터 급속히 제기되는 대외시장에로의 진출방해책동, 서방나라들과의 무역거래를 막기 위한 압력소동, 각종 자연재해로 농경지파괴, 살림집파괴, 탄광막장침수…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제2차세계대전이 끝났을 때와 비슷한 위기에 직면하지 않았는가.

미제는 지금 세계의 량극이 해소되고 다극화된 현실에 대처하여 《지역방위전략》으로 나오고있다. 이 전략은 미제가 《세계지배권》을 유지공고화하려는데로부터 지역분쟁이나 지역적인 국부전쟁에 신속히 대처하기 위해 미군부층의 두뇌진이 고안해낸 새로운 전략이다. 오랜 전쟁력사의 페지를 번져오면서 전쟁을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적은 손실로, 성과는 최상으로 얻으려면 상대측의 전쟁수행능력부터 최우선 파괴해버려야 한다는 착상은 결국 제2차세계대전이후에 전략무력을 건설하도록 하였으며 그 전략무력으로 독립적인 전략작전을 완성할수 있게 하였다. 이렇게 되여 상대측의 군사적잠재력을 없애버리는것을 기본목적으로 하는 독립적인 전략작전이 인류전쟁력사에 출현하게 되였다. 그것이 바로 1991년 페르샤만전쟁에서 미제가 주도하는 다국적군이 38일간이나 이라크의 작전전략중심에 배치된 잠재적대상물에 대한 공중타격을 진행한것이였다. 조선땅우에 미제의 이런 전략적화살이 집중되지 않는다는 군사적담보가 있는가? 참고 이겨나가는데도 정도가 있다. 나라의 생명력은 어디까지나 물질적기초인 경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미구하여 들이닥칠수도 있는 미제의 새 전략은 물론 눈앞에 당장 박두한 《기아전략》의 변종인 봉쇄, 《말리우기》작전을 타파할수 있는 전략전술을 어떻게 세우시였을가?

그는 이런 의문속에서 태평양전쟁을 취급한 전쟁소설을 련이어 펴놓고 련합군과 일본군사이에 진행된 과달카날쟁탈전을 묘사한 장면을 흥미있게 읽어내려갔다.


…히로히도와 대본영의 직업적인 전쟁업자들은 현대전쟁에서 매개 병사들의 뒤에 총과 탄약, 피복과 식량을 비롯하여 적어도 1톤이상의 물자가 쌓여있어야 한다는것을 모르고있었다. 그뿐이 아니라 그것을 수송할수 있는 확고한 통로가 보장되여야 한다.… 백만명의 사병들이 보총을 메고 보무당당히 전선으로 나가기는 하지만 그들에게 보급물자를 제때에 보장해주지 못하면 그들은 곧 묘지로 행진해가는것과 같다.…

1943년 1월 한달동안 즉 련합군이 과달카날에 전면적인 상륙을 개시하기 직전의 한달동안만 해도 5만명의 일본장병들속에서 2만명이나 굶어죽었다.

야마다 가즈오다라는 한 일본군사병은 자기들이 죽은 후에 분묘앞에 내놓을 유물을 남기기 위해 죽은 사람들의 뼈와 살로 엮어진 일기 한편을 썼다.

《소화18년, 날자는 명백치 않다.…

우리 제국륙군의 육체적참을성은 극한점에 이르렀다. 굶주림은 전쟁과 학살과 폭격보다도 더 무시무시하다.

요즘에 와서는 주로 곤충이나 파충류, 들쥐와 같은것을 먹고산다.…

우리는 매일 밤 시체와 함께 자군 하는데 자고깨면 죽은 사람과 산사람을 분간하기 어렵다.

참기 어려운 굶주림과 식욕으로 하여 그들은 완전히 리성을 잃고 꺼리낌없이 동료의… 몇달전만 하여도 한전호속에서 싸웠고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굶주렸으나 지금은 그런것을 따질 겨를이 없다.…》


야조브는 식량이 고갈된 섬에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인간으로서의 리성까지 완전히 잃은 일본군의 모습을 제2차세계대전시기 도이췰란드군에게 900일이나 봉쇄되였던 레닌그라드와 련관시켜 생각했다. 한마디로 평시나 전쟁시기나 인간은 먹지 못하고서는 그 존재자체를 유지할수 없다. 그런데 조선의 식량형편은 레닌그라드봉쇄때보다도 더 어려운 형편에 놓이지 않았는가.

문두드리는 소리가 야조브의 사색을 깨웠다. 늘 함께 동행하던 로씨야담당국장이 방에 들어섰다.

《무엇을 하는중입니까?》

인상좋은 국장의 출현은 야조브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었다.

《자료연구를 하던중입니다.》

《원수동지! 집필준비는 좀 미루고…》

국장의 얼굴에 비껴있는 초조감을 포착한 야조브는 그 어떤 예감이 들었다. 이렇게 빨리? 두사람은 곧 승용차에 올랐다. 기분좋게 달리던 승용차는 네거리 교통안전원(당시)처녀의 호각소리와 함께 멎었다. 인민군대를 태운 수십대의 군용자동차들이 연방 지나가고있었다.

야조브는 머리를 기웃하며 두눈을 크게 떴다. 무슨 군대들이 저렇게 많이 수도에 들어왔을가? 가슴이 후두둑 뛴다. 군용차마다에서 나붓기는 기발, 씩씩한 군가소리, 오가는 인민들에게 흔드는 손길…

《웬 군대들이 기동합니까?》

《최전연부대군인들이 평양견학을 왔답니다.》

《평양견학? 이 어려운 때에 말입니까?》

《왜 놀랍니까? 작년도에는 인민군대에서 큰 정치일군대회를 했는데 그때도 지금처럼 많은 군인들이 수도에 왔다가 인민들로부터 저런 환영을 받았습니다.

우리 장군님께서는 대회참가자들과 기념사진촬영도 하시고 인민군협주단배우들이 출연하는 공연도 함께 보아주셨습니다. 대회를 하는 기간에 생일을 맞는 정치일군들에게 그이께서는 생일상도 일일이 차려주셨답니다.》

(희한한 일이로군! 한 나라 최고사령관이 보통정치일군들의 생일상까지 차려주시다니.…)

지나가던 인민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군용차에 타고가는 군인들에게 손을 흔든다. 군인들이 답례한다. 군용차우에서 부르는 노래소리, 인민들의 만세소리… 해말쑥하게 생긴 처녀가 손에 들고가던 꽃송이를 속도가 늦추어진 군용차우에 올리던진다. 누군가 그 꽃송이를 날쌔게 손에 받아쥔다. 마주 흔든다. 군용차들이 점차 멎어선다. 제대행군을 하던 앞머리의 차에 어떤 정황이 생긴 모양이다. 그러자 인민들이 와-하고 멎어선 군용차주위에 다가붙는다. 마주잡는 손과 손들… 웬 할머니가 손에 들고가던 빨간 사과구럭을 통채로 군용차우로 올려보낸다. 안받겠다고 손을 내젓는 군인들, 뭐라고 성이 나서 말하는 할머니… 옥신각신하던 끝에 사과구럭을 받아든 군인이 할머니를 비롯한 인민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한다. 자동차우에서 군인들이 씩씩하게 노래를 부른다. 인민들이 따라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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