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 회
9
(1)
야조브는 정원등이 푸릿한 빛을 뿌리는 숙소뒤의 솔숲길로 뒤짐을 지고 스적스적 걷고있었다. 계절에 관계없이 아침과 저녁시간에 산보를 하는것은 중년시절부터 굳어진 그의 일과였다. 숙소는 사철 잎새푸른 로송들이 운치있게 서있는 풍치수려한 산골짜기 한가운데 자리잡고있었다.
그는 산새 우짖는 숲을 사랑했다. 날씨는 좀 차도 진한 솔향기가 풍기고 나무숲 설레임소리 유정한 곳에서 시원한 아침공기를 한껏 호흡하며 오솔길을 따라 걷느라니 태를 묻고자란 옴스크주의 호수가마을이 절로 생각났다. 그러나 지금 그의 고향에는 혈육이 단 한명도 없다. 일가친척 34명이 제2차세계대전시기 파쑈도이췰란드놈들에게 학살되거나 전사했던것이다. 그래서 그는 더더욱 사회주의를 지켜 싸웠다.
사회주의는 그의 둘도 없는 생명이였고 제국주의는 첫째가는 원쑤였다. 쏘련이 붕괴되자 그에게는 번민과 타락이 뒤따랐다. 그는 로멩 롤랑이 한 말을 자주 생각하군 했다. 사람의 생활에는 두가지, 불타는것과 썩는것이 있다. 그랬다. 제도자체가 달라지니 인생도 리념도 락후해질수밖에 없었다.
조선에 와서부터 새로운 활력이 부활되기 시작했다. 밤하늘에서 빛나는 새별과도 같은 조선의 사회주의가 영생하기를 그는 진심으로 바랐다.
뒤짐을 지고 몇걸음 나무사이로 옮기던 그의 눈가에 일순 불안의 빛이 얼핏 스쳤다. 미중앙정보국의 극비문건이라고 하는 자료에서 본 글줄들이 다시금 눈에 밟혔던것이다. 물론 그는
산보를 끝내고 들어와 아침식사를 하고난 그는 책상과 마주앉았다. 하루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어느 시간에 해제끼는가 하는것은 사람마다 각이하다. 밤시간, 새벽, 오전, 오후 이중에서 야조브에게는 오전이 일능률이 높아지는 시간이였다. 대체로 오전에 독서와 자료를 연구하고 글을 썼다. 그의 책상 한옆에는 쑤워로브의 저서 《승리달성의 과학》, 니꼴로마끼야 벨리의 《군사예술에 대하여》, 리텔 하트의 《전략론》, 군사에 박식한 고전가로 알려진 엥겔스도 읽어보고 배운것이 많다고 평한 클라우제위츠의 《전쟁론》, 로머니의 《전쟁예술》 그리고 《세계영웅호걸전》, 그외 군사물주제의 장편소설이 여러권 놓여있었다. 장차 조선에서의 사회주의는 어떻게 될것인가? 그는 원주필을 들고 생각을 몰아가다가 불쑥 테헤란에서 있은 쏘, 미, 영수뇌자회담때를 시대적배경으로 한 장편소설을 뒤적거렸다. 자기가 찾는 대목이 인차 나지지 않자 벌컥벌컥 신경질적으로 책장을 번졌다. 그는 기분이 맞갖지 않는 경우 그 감정을 터치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성미였다. 야조브가까이에서 일한 국방성공보부의 한사람은 어느 한 책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야조브를
90년대초에 들어서며 쏘련 붉은군대 총참모부와 국방성은 군대를 무자비하게 두드려패고 군대의 껍질을 벗기려고 덤벼든 《민주주의적경향을 가진》출판물들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국방성과 총참모부의 절대다수 장령들은 군대를 때리는 비판기사들이 나올 때마다 격분을 금치 못하였다. 공개성을 운운하며 진실과 허위, 선입견과 객관성의 혼탕속에 주장을 세운것을 보면 군대에 대한 존중, 군사에 대한 중시의 기풍은 고사하고 군대강화가 뭣에 필요한가 하는 론조까지도 로골적으로 암시되였다. 고르바쵸브의 손발노릇을 하는 어용나팔수들을 어떻게든 제지시켜야 했다. 군부에서는 이에 대해 생각은 하면서도 정면에 나서서 뛰는 사람은 없었다.
야조브만은 그렇지 않았다. 군대를 우습게 아는 어느 한 신문에서 국방성을 더할나위없이 헐뜯은 내용을 읽어본 야조브는 고르바쵸브를 만났을 때 정식으로 들이댔다.
《나라의 언론이 군대를 헐뜯는데 앞장서서야 되겠습니까? 이 신문을 좀 보십시오. 지금 이 기사가 나오자 군부의 장령들이 윽윽합니다.》
야조브는 준비해가지고 간 신문을 고르바쵸브앞에 내놓았다.
고르바쵸브는 그 신문을 스쳐보았다. 벗어진 이마우로 약간 흘러내린 머리를 괜히 비다듬어넘기며 《너그럽게》 웃었다.
《비판은 쓰지만 없어서는 안될 약이요.》
대통령이고
야조브는 이에 대해서도 고르바쵸브에게 여러차례 보고했으나 대통령은 좀처럼 시간을 내려고 하지 않았다. 이러던 찰나에 고르바쵸브가 국방성청사에 꼭 와야만 하는 일이 생겼다.
더이상 몸빼기를 할수 없게 된 고르바쵸브는 군관구사령관들과 국방성, 총참모부장령들의 모임장소에 끌려나오다싶이 했다. 그는 회의실
《아무 질문도 좋으니 주저말고 하시오.》
한 고위장령이 일어섰다.
《오늘의 국제군사정치정세를 어떻게 평합니까?》
《국방성과 총참모부에서는 내가 이미전에 내놓은 새로운 사고방식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보니 대세를 바로보지 못하고있소.》
그는 서두에 이렇게 그루를 박고나서 계속 열을 올렸다.
《세계에는 핵무기를 둘러싸고 그 차이점, 의견상이들이 계속 남아있소. 그로 인한 전쟁, 그래 그것때문에 계속 싸워야겠는가? 이제는 전인류의 리익, 지구의 생존을 위해 새롭게 생각할 때가 되였소. 그래서 나는 대통령이 되자 우선 맑스주의에 제시된 프로레타리아의 계급적리익과 전인류적인 공동의 리익의 호상관계에 관한 사상을 보다 깊이 파악하려고 노력하였소. 이것은 나로 하여금 어떤 결론에 이르게 하였는가? 현시대에서는 전인류적인 가치를 첫자리에 놓아야 한다는것이였소.》
전략로케트군 참모부의 한 장령이 고르바쵸브의 역설을 듣다못해 벌떡 일어섰다.
《상용 및 핵무기축감에 대한 견해를 정확히 듣고싶습니다.》
고르바쵸브는 옆에 앉아있는 야조브에게 약간 성이 난 시선을 던졌다.
《국방상! 군부에서 정치의 촉각을 너무 예리하게 세우는게 아니요? 군대야 나라방비만 잘하면 그만인데…》
야조브는 조용한 어조로 점잖게 요구했다.
《모처럼 마련된 기회인데 대답을 주어야 할것 같습니다. 모두들 상용 및 핵무기축감에 대한 문제를 놓고 생각들이 많습니다.》
《대통령은 생각이 없는줄 아오?》 고르바쵸브는 회의실의 여기저기를 바라보았다. 주먹같이 큰 별을 단 장령들의 눈에서 총알같은것이 자기를 향해 날아오는것 같았다. 심장이 쿵쿵 뛴다. 자기의 속계획을 그대로 말했다가는 금방 무슨 변이 날것 같았다. 이 궁리, 저 궁리하던 그는 늘 하던 수법대로 질문과는 관계없이 초점을 딴데로 이끌어갔다.
《왜 세계의 대립과 모순만을 보는가? 왜 전일성과 호상의존성을 감각 못하고 대립투쟁만 생각하면서 통일을 못보는 일면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말이요. 인류공동의 리익을 계급의 리익보다 우위에 놓아야 하며 그것을 선차적인것으로 보아야 하오.》
야조브는 점점 실망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자는건가? 군대가 필요없다는 소린가? 쏘련을 어디로 끌고가자고 하는가? 총참모장 미하일 모이쎄브가까이에서 일하는 장령이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당신에게는 미싸일이 필요없습니까? 군대가 필요없는가 말입니다.》
이것은 고르바쵸브가 군부로 하여금 더 많은 미싸일들을 축감하며 미국에 양보할것을 총참모부에 계속 요구한데 대하여 지금껏 의견을 가지고있다가 마침내 기회가 조성되자 정면으로 들이댄 질문이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총참모부에서 고르바쵸브가 미국과의 미싸일축감조약을 체결했을 때 대통령을 총살하여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울려나왔겠는가. 정통을 찔리운 고르바쵸브는 넓은 이마살을 찡그리며 당황해했다. 인차 대통령체면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뜨직뜨직 그 대답을 했다.
《난 아직까지 군대가 필요없다는 말을 한적이 없소.》
《그런데 왜 계속 축감문제를 들고나오는지 리해가 되지 않습니다.》
《스웨리예에 가보오. 우리가 미국과 군비경쟁을 하는 사이에 리상적인 나라로 줄달음쳤소. 그 나라에서는 군대가 아예 없는 모나꼬와 같이 땅크소리도 군용기소리도 들을수 없고 군대의 모습조차 찾아볼수 없었소. 우리가 잘살수 있는 력사적인 돌파의 주되는 목표가 뭔가? 이건 당신들이 잘 알리라고 보오.》
《미국은 그걸 몰라서 계속 군비지출을 늘입니까?》
고르바쵸브는 미처 대답을 찾지 못하고 두눈을 허둥거렸다. 절대다수의 장령들로부터 자기의 말이 먹어들지 않고 강한 반발을 일으킨다는것을 느낀 그는 얼른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바쁜 흉내를 냈다. 아닐세라 그는 《시간이 없소. 후에 다시 만나 진지하게 리해를 두터이하기요.》하며 자리를 모면할수 있는 말을 던지고
야조브가 뒤쫓아나갔다. 국방성과 총참모부의 장령들은 대통령과 국방상사이에 어떤 말이 오고가리라는것을 듣지 않고도 짐작할수 있었다. 어쩌다 국방성청사에 나타난 대통령을 불손하게 대하였으니 고르바쵸브인들 가만있을리 만무했다. 사람들앞에서 못한 밸풀이를 국방상에게 해댔을것이다. 그럼 대통령에게 욕을 먹은 야조브인들 가만있겠는가. 성이 독같이 나서 해댈것이다. 기분이 맞갖지 않으면 조폭해지는 국방상의 성격에 너무도 습관된 장령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