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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꺼매지더니 비가 추석추석 내리였다. 광풍이 일면서 비발이 얼굴을 때리였다. 리명산은 룡오골에 들어갔다가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내려오고있었다. 나무심기에 동원된 사람들을 먼저 집으로 돌려보낸 후 산판을 한번 돌아보고나서 송로인네 집에까지 들려보다나니 탁없이 늦어진것이였다. 그가 송로인네 집에 들린것은 병문안을 위해서였다. 송로인은 며칠전에 리명산과 함께 석화산에 가느라고 비를 맞아 감기에 걸린것이였다. 그래도 로인은 리명산을 만나자 석화산에 가다가 도중에 돌아온것을 아쉬워했다. 《고뿔이 나으면 다시 가보세.》하고 말했다.

리명산은 그 집에서 나올 때 늙은이가 우산을 가지고 가라는것을 부득부득 마다하고 떠난것을 후회하였다. 신발에 진흙이 무겁게 달라붙어 성가시기 짝이 없는데다가 마가을의 찬비가 속옷으로 스며들어 으쓸했다.

그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석화산에까지 갔다가 길을 찾지 못한것이 가슴에 걸려 내려가지 않았다. 헛걸음을 하면서 송로인만 앓아눕게 했다는 생각에 미안하기만 했다. 그런데다가 룡오골에 식수하러 나온 자기네 양묘직장장을 만나야 할 일이 있다면서 나타난 홍숙희를 만나 최영우가 아침에 군당에 불리워갔다는 소리를 들은것이였다.

《사람들속에서 좋지 않은 소문이 돌아가요. 산림경영소 지배인이 일부 좋지 않은 사람들의 풍에 놀아나면서 사업의욕은 다 잃어버리고 군의 산림을 적지 않게 녹여낸것때문에 자리를 내놓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리들이 말이예요.》 홍숙희가 걱정스러워서 하던 말이였다. 그러지 않아도 그 비슷한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 귀가 솔가왔더랬는데 홍숙희의 말까지 듣고보니 리명산은 불안했다. 그가 지금쯤은 군당에서 나와 자기 사무실에 있겠는데 리명산은 온종일 산판에만 올라가 붙어있다나니 일이 어떻게 되였는지 알수 없었다.

리명산이 진흙길때문에 기운이 말짱 빠져가지고 감독초소사무실까지 내려오니 다리목에 웬 녀자가 서있는것이 보이였다. 비바람에 젖은 머리칼이며 치마자락이 마구 날리였다.

《거 정혜선생이 아닌가?》 리명산은 오도카니 서있는 처녀의 자태를 알아보고 마음이 급해서 소리쳤다. 처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리명산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한테로 다가갔다.

《왜 여기 나와 서있나?》

《…》

《말하라구. 우리 현웅이를 만나봤나?》

《낮에… 찾아왔댔습니다.》

《그래…》 리명산은 비에 홈빡 젖은 처녀의 처량해진 모습을 보며 불안한 생각이 들어 황황히 물었다. 《뭐라고 했나? 우리 현심이 오빠가.》

《…》

《빨리 말하라니까. 일없어. 덜퉁한 소리를 해서 정혜선생을 울린게 아닌가?》

《아니예요! 그런게… 현심이 오빤 저를…》

리명산은 말끝을 잇지 못하는 처녀를 보면서 마음껏 소리내여 웃었다.

《사랑한다고 했단 말이지. 그럼 잘됐구만! 그런데 왜 비를 맞으며 여기 서있나?》

《아버지가…》 처녀는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며 감독초소사무실쪽으로 얼굴을 돌려보이였다.

《?…》

리명산은 그쪽으로 눈길을 돌리다가 굳어지며 자기도 모를 소리를 입안으로 웅얼거리였다. 거기 비바람이 몰아치는 어둠속에 한 사나이가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가슴이 싸늘해지는것을 의식하며 리명산은 그쪽으로 다가갔다. 만족감과 자신심에 넘쳐 벙글거리던 평소의 류석철의 모습은 간곳없고 비에 젖어 초췌해진 인간이 다가가는 리명산의 기척소리를 들었겠으나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있었다. 비바람이 고개를 푹 떨군 그를 후려쳤다.

《일어나오.》

류석철이 일어났다. 다시금 몰아치는 광풍에 그는 휘친했다.

《오늘 당조직에 찾아가 자기비판을 했습니다.》

《…》

《감독원동지를 찾아가 용서를 빌라는 권고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용서를 빌지는 않겠습니다. 저는 용서받을수 없는 놈이지요. 저를 욕하십시오. 타매하고… 때리십시오! 마음껏…》 그는 말끝을 잇지 못한채 헉― 하고 흐느꼈다. 모진 회오가 그의 온몸을 휩쓸고있었다.

《그만하시오!》 리명산은 싸늘한 눈길로 그를 보며 쓰겁게 내뱉았다.

용서하고싶지 않았다. 그렇다. 심장이 관용을 허용하지 않았다. 눈앞에는 눈물에 젖은 안해의 모습이 떠올랐다.

《큰리의 산판에 나무 한그루 심지 않고 숲을 버리였던 사람이… 제 살구멍수를 찾아갔던 사람이 당신을 잡지 못해 안달이 났단 말이예요?!》

하던 안해의 목소리가 다시금 귀전을 울리였다. 침상에 누워있던 류성림로인의 모습이 어려와서 또 가슴이 못견디게 아파났다. 류로인이 심장발작을 일으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리명산은 그때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었다. 그때의 그 피기가 없던 로인의 창백한 얼굴! 그렇다. 한생 당의 위업을 받들어 성실하게 일해왔으며 오늘도 변치 않은 자세로 살아가는 로인을 불행에 빠뜨려놓은 이 인간을 어떻게 용서한단 말인가! 한데 이 인간도 지금은 자기를 뉘우치고있지 않는가! 리명산은 갑자기 가슴이 찌르는듯 아파났다. 정혜가 가까이에서 지켜보고있다는데 생각이 미친것이였다.

《동무한테 할 소리야 많지. 하지만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한테야 무슨 말을 더하겠소. 자기를 다잡소. 정혜가 있지 않소. 정혜선생, 아버지를 모시고 숙소로 올라가라구. 비를 더 맞지 말구.》

류정혜가 다가왔다.

《아버지는 읍으로 들어가겠다. 래일 아침 직장에 나가야지. 나를 바래주지 않아도 된다.》

류석철은 간다는 말도 없이 어둠속으로 휘청휘청 걸어갔다.

《가겠소?》 리명산은 인사불성이 되여버린 그한테 대고 덧붙여 소리쳤다. 《시간이 있으면 한번 우리 집에 내려오우.》 그리고는 아버지를 따라가야 할지 어째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류정혜에게로 다가갔다.

《정혜선생, 더 마음을 쓰지 말라구. 내 언젠가도 말했지. 일이 다 잘될거라구. 빨리 아버지를 따라가 바래주라구.》

처녀는 흑― 흐느끼며 얼굴을 감싸쥐더니 아버지가 사라진 쪽으로 바람같이 달려갔다.

리명산은 처녀가 어둠속으로 사라진 다음에도 한동안 가슴이 알알해서 서있다가 사무실로 들어갔다. 산림경영소에 전화를 거니 마침 최영우가 받았다. 이상하다. 왜 이렇게 반가울가? 마치 몇해동안 떨어져있다가 만나는 지기들처럼 반갑지 않는가. 그는 군당에는 왜 들어갔댔느냐고 묻지 않았다. 사실은 그것을 물어보려고 전화를 건 리명산이였다. 군당에 들어갔던 결과를 알고싶었던것이였다.

최영우가 물어서야 리명산은 자기가 알고싶었던것을 묻지 않고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황황히 입을 열었다.

《지배인 목소리를 듣고싶어서 그래!》

리명산은 자기도 모르게 불쑥 다른 말이 나간것이였다.

《사람두!》 최영우가 웅얼거리였다. 그리고는 한동안 잠잠했다. 한참후에야 축축히 젖은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알겠어, 알겠다니까. 내 인차 집에 들리겠어.》

집에 내려오겠다는 소리에 리명산은 이상하게도 목이 꽉 잠기였다. 전화가 끊어진 다음에도 그는 한동안 꼼짝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어찌된 일인가? 갑자기 그는 집에 들어가고싶어졌다. 확실히 그것은 전에 없었던 일이였다. 오늘따라 안해를 빨리 보고싶고 집안의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에 몸을 잠그고싶었다. 현웅이와 현심이는 시내에 들어가고 없을것이다. 그 애들까지도 있었으면 좋았을걸!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이것은 전에 없었던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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