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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 리명산은 뜻밖에도 하나의 슬픈 소식에 접하였다. 감독초소사무실에 출근하여 책상우에 쌓여있는 신문을 우연히 들여다보니 김세명후보원사의 사망에 대한 부고가 실린것이였다.

리명산은 한동안 신문을 손에 든채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있었다. 날자를 보니 신문은 닷새전에 온것이였다. 땅이 얼기 전에 아름찬 식수과제를 수행하자면 많은 기관들을 찾아다니면서 동원로력을 보장받아야 하는데다가 보름째 비가 한꼬치도 떨어지지 않아 산판마다 건조해질대로 건조해져서 산불감시초소들도 부지런히 순회해야 했다. 일이 그렇게 쌓여서 이 며칠째 바삐 돌아치느라 사무실에 앉아볼 짬이 없다나니 이런 신문이 온것도 모르고있은것이였다.

리명산은 가슴이 저려들었다. 아, 인젠 장례식도 끝나고 조객들도 없겠구나! 선생님의 령전에 술 한잔도 붓지 못했으니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어쩌다가 선생님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단 말인가!

리명산은 한동안 회의감에 빠져버리였다. 삶에 대한 욕망조차 희미해지는것 같았다. 눈앞에는 따뜻한 가을날이 떠올랐다.

문수봉의 가을날이. 파아란 하늘을 찌를듯이 자라오른 이깔나무들! 금비라도 내린듯 노란 바늘잎들이 내려쌓이여 눈이 부시던 숲속의 황홀한 정취! 그 사연깊은 이깔나무들아래에 서서 이 나라의 숲의 개화기에 대해서 열정적인 말을 하던 로학자의 모습이 눈앞에 어리여왔다. 리명산을 숲의 세계에로 안내하였으며 떠밀어준 고마운 로인! 큰리의 숲을 두고서도 누구보다 마음을 많이 써준 그였다. 리명산은 나서 처음으로 무정한 세월을 원망했다. 이제 그가 없으니 누가 이 리명산을 위해 또 그런 좋은 말들을 해줄것인가.

리명산은 자기가 언제 사무실을 나섰으며 어떻게 방아골로 올라올 생각을 했는지 의식하지 못했다. 그는 허청허청 정신없이 걸어갔다. 새떼들의 부산스러운 날음도, 그것들의 지저귐소리도 그리고 숲속으로 흘러가는 개울물소리도 오늘은 아무런 감정도 자아내지 못했다. 스무해가까운 세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걸은 골짜기의 오솔길! 어느 굽이에 어떤 돌이 있고 어느 길가에 무슨 나무가 있으며 지난해 새끼를 낸 새의 묵은 둥지가 어느 덤불속에 있다는것까지도 손금처럼 눈에 익고 발에 익은 산속의 오솔길! 그런데 리명산은 몇번이나 돌부리에 걸채여 넘어질번 했다. 그는 명덕산으로 올라갔다.

거기 산마루에 이르러서야 그는 비로소 자기가 오래전에 저세상사람이 된 늙은 《산신령》을 찾아왔다는것을 알았다. 왜서인지 로학자의 사망소식을 알면 누구보다도 최학세할아버지가 제일 슬퍼할것 같았다.

(로인님, 가슴이 쓰리여 참을수가 없군요. 어찌하여 좋은 사람의 심장이 그리도 빨리 식어버릴수 있단 말입니까? 이 숲을 위해 그렇게도 마음써온 김세명선생님이 세상을 떠났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리명산은 마음의 문을 열고 괴로움을 털어놓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서는 가슴이 답답하여 도저히 자기를 지탱해낼것 같지 않았다.

로인의 목소리가 왕왕 귀를 울리였다.

《나라의 숲을 위해 애써온 사람은 좋은 사람이지! 좋은 사람의 생은 그가 세상을 떠났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는 법이네. 힘을 내라구. 그러면 길이 열리네! 숲을 보라구! 우리 큰리에 생겨난 저 울창한 숲에 좋은 사람의 넋이 살아있는거라네! 좋은 사람의 넋이…》

그것은 환각의 세계에서 울려오는 소리가 아니였다. 리명산의 심장에서 울려나오는 소리였다.

그는 돌아섰다. 실한 가지들을 펼치고 솟아오른 열일곱그루의 이깔나무가 눈앞에 안겨왔다. 큰리의 숲에 갱신의 첫 씨앗으로 떨어져 싹트고 자라난 사연깊은 이깔나무들이였다. 돌밖에 없는 불모의 산에도 인간의 땀과 정이 슴배인다면 숲이 자랄수 있다고 사람들에게 말없이 새겨주고있는 나무들이였다.

청춘림이 바다처럼 펼쳐진 맞은편 산등성이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가지들이 흐느적이면서 노란 바늘잎들이 무수히 떨어져 날리였다. 이번에는 또 다른 목소리가 명산을 눈뜨게 했다. 《자넨 강한 인간이지?》!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로학자의 목소리였다. 인생의 먼먼 길을 지칠줄 모르고 걸어오던 리명산에게는 은사와도 같은 김세명의 목소리였다. 그가 강하게 살라고, 큰리의 땅에 억척같이 뿌리를 내린 열일곱그루의 이깔나무들처럼 쓰러지지 말라고 당부하는 말이였다. 불시에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그것이 언제였던가? 백두산장군들의 고귀한 애국의 뜻이 어려있는 문수봉의 사연깊은 이깔나무에서 떨어진 씨앗송이들을 품속에 간직하고 떠나오던 그날 이 리명산의 성공을 바라며 로학자가 힘을 보태주는 그 말을 해주었다.

리명산은 산마루에 한식경이나 홀로 앉아 이깔숲이 우거진 금빛의 산들과 흰구름송이들이 뭉게뭉게 피여오르는 먼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산을 내리였다. 시내에 들어가야겠다. 오늘이 바로 선생님의 3일제를 지내야 할 날이 아닌가. 선생님의 령전에 술 한잔 붓지 못했으니 묘소에라도 찾아가봐야겠다. 차만 잘 만나면 오늘중으로 들어가지못할가.

리명산은 들어가지 못했다. 그날 일이 있었다.

리명산이 울적한 심사에 싸여 허청허청 걸어내려오니 산림경영소의 《태백산》호 화물자동차가 감독초소마당에 와있었다. 무슨 일로인지 사람들을 한차판 태우고왔는데 절반인원은 차우에 그냥 앉아있고 나머지는 차에서 내리여 마당에 널려있었다. 자동차가 방금 온것 같지는 않았다. 산림경영소산하에 있으면서 대체로 리명산과 면식이 있는 사람들이였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차에 타고 온 사람들이 작업복차림을 한것은 물론 도끼며 톱을 가지고 온것이였다. 큰리에서 나무를 찍어야 할 일은 없는데 어찌된 일인가? 혹시 산림경영소에서 다른데 채벌을 가다가 자동차가 말썽을 부리였든가 다른 일이 있어 들린것이 아닐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편안치 않았다.

리명산이 자동차가 서있는 곳으로 다가가는데 마침 산림경영소적으로 수완이 좋고 장기군으로 소문난 계획부원이 대머리를 번들거리며 갑삭갑삭 마주왔다.

《무슨 일이요? 계획부원.》

《산에 갔댔습니까? 명산동지, 난 또 사무실에 안계시기에 집으로 사람을 띄웠지요.》 묻는 말에 대한 대답은 바쁘지 않다는듯 계획부원이 반색의 미소를 담뿍 띄워올리며 말했다.

《출근시간이 지난게 언제인데 내가 집에는 왜 있겠소?》 리명산은 자기도 모르게 짜증기가 배인 목소리로 말하다가 공연히 그런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다는 말을 인차 덧붙였다.

리명산의 기분상태를 알리 없는 계획부원은 여전히 살가운 목소리로 요즘 나무심는 실적이 어떤가 하는거며 부전소나무사름률이 정말 국가기준대로 보장되겠는가 하는 등 두서없이 늘어놓다가 리명산의 편안치 않아하는 심기를 느낀듯 말가지를 더 치지 않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접은 종이 한장을 꺼내주었다. 채벌허가증이였다.

리명산은 대뜸 성이 났다. 사람이 어떻게 이럴수 있단 말인가! 며칠전에 최영우가 내려온다는 전화도 없이 큰리에 불쑥 나타나서는 명덕산을 돌아보고나서 군문화회관개건이라는 바쁜목에다 걸고 채벌기한이 되지 않은 이깔림에 손을 댈 어정쩡한 소리를 하기에 친구지간에 얼굴 붉히게 될가보아 알아들을만치나 말해주었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잘못했다. 그때 그의 가슴에 콱 박히게 모난 말을 해주어야 할걸 그랬다. 하지만 최영우가 정말로 이렇게 《도끼부대》를 내려보낼줄이야 알았으랴.

누가 말해주지 않는다고 해도 최영우야 누구보다도 채벌주기를 어기는것이 나라에 손해를 주는 행위라는것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닌가. 다른 사람도 아닌 최영우가 이러다니!

《동문 산림과 관계없는 사람이요?》

리명산은 비당적인 인간의 어지러운 심장이 그려놓은 증빙문서와도 같이 생각되는 채벌허가증을 찢어발기고싶은 충동을 애써 누르면서 계획부원에게 언짢은 소리로 물었다.

감각이 그닥 무디여보이지도 않는 계획부원이 해말쑥한 얼굴에 어정쩡한 미소를 그려보이며 변명하듯 말했다.

《아, 뭐 그렇게까지 말할거야 있습니까. 사실 큰리의 나무들에 도끼를 대기는 좀 안된 일이지요. 국가적리익의 견지에서 봐도 그런거지요. 하지만…》 계획부원은 량심상 가책을 느끼면서도 딱한 사정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찌겠는가. 군당위원회결정이 있어 건설은 당장 시작해야겠는데 석화산의 과숙림을 베여서 날라오자면 걸리는게 한두가지가 아니니 기일을 어떻게 보장하겠는가. 자동차도 문제이지만 휘발유사정도 긴장하다. 로력문제도 걸렸다. 산림경영소인원이라는게 온 군에 널려있는데 분소들에서 사람을 내라면 저저마다 몸을 사린다. 사실 아닌게아니라 분소들에서도 인원이 긴장한것은 사실이다. 더우기 지금은 식수철이 아닌가. 사정이 그렇다는것을 알기에 지배인도 많은 고려끝에 큰리의 이깔나무를 찍어야겠다고 결심한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산판 하나쯤 다 벗기자고 하는것도 아니지 않는가.…

《여, 동무!》 묵묵히 듣고있던 리명산이 그의 말을 중둥무이했다.

《동무입으로 국가적리익에 대해 말하면서 그러오? 산판 하나를 다 벗기는가마는가 하는게 문제가 아니요. 이제 한창 자라는 나무들에 한번 손을 대보오. 그것으로 그치겠소? 모두들 동무처럼 사고하면 어느 세월에 가서 우리 나라 산들에 숲이 울창해지겠소?》

리명산은 언젠가 김한길군당책임비서가 큰리의 산판들을 돌아보며 하던 말이 생각났다. 《지금 어디서나 위대한 장군님을 자기 단위에 모시겠다는 열의가 대단하오. 그 열의가 기적을 낳아 온 나라 도처에 사회주의선경이 펼쳐지고있지. 우리도 일을 많이 해서 장군님을 꼭 모시기요. 그 마음으로 일하면 이 큰리의 숲이 더 화려해질수 있지!》하고 김한길은 곡진하게 말했었다. 리명산은 갑자기 가슴이 확 달아올랐다. 언제면! 언제면 그날이 올가? 우리 인민을 더 잘살게 해주시려고 순간의 휴식도 없이 선군령도의 길을 이어가시는 장군님께서 큰리의 푸른 숲에 들리시여 기쁨속에 잠시나마 피로를 잊으시게 될 그날이.

《감독원동지.》

계획부원의 목소리에 리명산은 생각에서 벗어났다. 미련을 버리지 않은 그가 지꿎게 리명산을 바라보고있었다.

《지각이 있어야지. 아니.》 리명산은 의아해하는 그의 눈길과 마주치자 고개를 저었다. 《동무보고 그러는게 아니요. 그냥 돌아가오. 가서 지배인동무한테 큰리의 나무를 찍어서는 안된다고 하오.》

《아까운 휘발유를 쓰면서 숱한 로력까지 끌고왔는데…》

계획부원이 케가 틀렸다는것을 알고 맹랑해서 혼자 중얼거리였다.

리명산은 채벌허가증을 계획부원의 손에 되돌려주고나서 사무실안으로 들어갔다. 책상우에는 아침에 펼쳐본 신문이 그대로 놓여있었다.

김세명후보원사에 대한 부고가 눈에 띠우자 리명산은 자기가 무엇때문에 사무실로 들어왔는가를 잊고 멍청히 서있었다. 갑자기 목이 꽉 메였다. 억울한 그 무엇이 불끈 치솟았다. 백두산위인들의 뜻을 꽃피우는 길에 한생을 바친 한 참된 인간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는가! 그런데 최영우란 인간은 뭔가? 그가 나라의 숲을 위해 자기를 바쳐 일하던 어제날의 그 최영우가 맞기는 맞는가? 숲을 버렸구나! 최학세의 아들이, 숲에서 나온 최영우가 숲을 떠나가버렸어! 리명산은 지금껏 애써 다독여놓은 급한 성미가 급기야 되살아났다.

그는 전화기에 손을 뻗치였다.

군산림경영소 번호를 돌리였다.

마침 최영우가 전화를 받았다.

《명산동무요? 왜 그러오?》

《〈도끼부대〉를 보냈더구만!》 어쩔수없이 비양조가 다분한 목소리가 거침없이 날아나왔다.

《…》

《왜 말이 없나?》

《큰리의 〈두령님〉이 벼락이라도 칠려나? 허허, 목소리가 곱지 않구만.》

속이 빈것 같은 웃음소리며 마치 특별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듯 태연한 그 말에는 자기의 켕기는 속을 숨기려 하는 어리석음과 함께 상대의 기분에 아부하려는것 같은 비렬한 그 무엇이 있었다. 최영우에게서 그전에는 느낄수 없었던것이였다.

《더 말하지 않겠네. 사람들을 되돌려보냈으니 그리 알게.》

수화기로는 《여보시오! 여보시오!》하는 최영우의 무척 바빠하는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리명산은 무슨 말인가를 더 하려다가 송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떠나간줄로 알았던 자동차가 그제서야 발동을 거는지 부르릉거리였다. 한번 더 타협해볼 심산이였던지 계획부원이 출입문을 열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리명산은 얼핏 띠여보고나서 외면하며 그가 말을 걸기도 전에 손을 홱 내저었다.

《안돼!》 그는 매몰차게 소리쳤다.

출입문이 닫기였다. 《넨장!》 화가 동한 계획부원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리명산은 자동차의 부르릉소리가 마당을 벗어나 사라져버리자 그에게 좀 부드럽게 말할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나이가 아래이지만 그래도 부원이 아닌가. 더구나 《도끼부대》를 끌고온것이 그의 잘못은 아니다. 최영우지배인을 리해해달라는 의미에서 그가 방금전에 말한것은 순전히 아래사람으로서 도덕적인 관점에서 그랬을것이다.

책상우의 전화기가 야단스럽게 찌릉거리였다.

최영우일것이다. 리명산은 자기가 송수화기를 들면 또 자기를 다잡지 못하고 거친 말이 나가리라는 생각을 했다. 실컷 찾으라지. 그러다가 말겠지. 후에… 그래 후에 우리 두사람이 다 진정되였을 때 좋게 말할수도 있지 않는가.

리명산은 사람들을 돌려보내고나서 한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아무렴 최영우가 이 명산이를 리해못할라구. 최영우는 나의 오랜 친구가 아닌가! 최영우도 나를 잘 알고 나도 최영우를 잘 알아. 그러니 우린 서로 리해할수 있어! 아니, 내가 왜 이러고있담. 시내에 들어가자고 하지 않았는가. 그는 시계를 보았다. 어느새 점심때가 다 되였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차편을 알아봐야 하지 않을가? 김세명선생님은 내가 늦어간다고 해도 욕하지 않을거야. 그런데 정작 떠나자고 하니 어째서 마음이 무거울가? 왜 그럴가?

그것은 최영우때문이였다. 지금 한창 이 못난 친구를 원망하고있을게 아닌가. 이대로 훌 자리를 뜨면 지금 감정의 극한점에 이르렀을 그가 그사이 마음고생을 더하지 않을가. 이 리명산이 친구를 욕되게 하고는 아무런 량심의 가책도 느낄줄 모르는 무정한 놈이라고 욕하지 않을가? 여보게 영우, 자넨 정말 나쁜 사람이야. 이 친구를 이렇게 괴롭힐텐가? 그런데 이제라도 전화를 걸어 그를 위안해주어야 하지 않을가? 아니, 후에… 그래, 시간이 지나 우리 두사람이 진정되였을 때… 그래… 그때 만나야 해!

리명산이 마음의 안정을 잃고 번민에 싸여있을 때 뜻밖에도 기척도 없이 문이 열리며 최영우가 들어왔다.

리명산은 입을 벌린채 그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보매 최영우는 노기가 충천했다.

그는 당장 화풀이라도 하지 않고서는 견딜수가 없어 40리나 되는 길을 벼락같이 달려왔을듯 한데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자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두사람사이에는 한동안 괴로운 침묵이 흘렀다.

최영우의 입이 먼저 열리였다.

《자넨 너무하구만!》

리명산은 책상우로 눈길을 떨군채 지꿎게 입을 다물고있었다. 그의 묵묵부답이 최영우의 부아통을 더욱 건드려놓은듯 했으나 그는 다행히 자기를 억제하며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리명산을 두고 2 000정보의 숲을 일떠세우는데 성공하여 신문에도 나고 훈장도 타더니 교만해져서 가까운 사람들도 몰라보는 인간이 되여버렸다는 말들을 할 때에도 이 최영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네. 그건 자네가 그 숲을 위해 어떻게 자기를 바쳐왔는가를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기때문이지.》

《…》

《자넨 왜 아무말도 없나?》

《말하게!》

《그래 말하지, 말하자구. 난 행정적으로 주어진 지배인으로서의 권한이 무시되였다고 해서 남의 자동차에 올라 40리길을 허위허위 달려온게 아니네. 이 최영우가 이 근래에 와서 잘못하는거야 많지. 우리 홍숙희도 그리고 친구인 자네 리명산이도 그때문에 마음쓴다는것을 내 모르지 않네. 하지만 오늘은 정말 섭섭하구만! 그래 말해보게, 이 최영우가 설사 지배인이 아니라고 해도 오랜 친구인 동무한테 나무 몇대 내라고 손을 내밀 처지도 못되는가?》

리명산은 오랜 친구라는 소리에 가슴이 저리였다. 저 최영우와 나는 여태껏 큰리의 숲과 인연을 맺고 한식솔이나 다름없이 지내온 정말이지 둘도 없는 가까운 친구가 아닌가! 최영우가 사람이 달라져서 말은 좀 듣는것이 있지만 그래도 이 리명산에게는 고마운 사람이다.

리명산은 문득 오래전의 일이 생각났다. 리명산네 내외가 큰리에 내려와 구사무소의 방 한칸을 내고 거기에서 살림을 시작한지 한해 가까이 되였을 때 갓 산림경영소 지배인사업을 시작한 최영우가 찾아왔다.

그때로 말하면 최영우는 산림처장자리를 내놓고 촌에 내려온것으로 하여(어떻게 되여 아래로 내려왔던지간에) 생각이 많았을 때였다. 최영우는 낡은 창고를 대충 손질하고 들어앉은 단칸방에서 해산을 하고 아이를 키워야 할 장미화의 일을 걱정했다.

《집을 하나 지어야겠어. 이보라구 명산이, 이런 집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면 그 아이가 이담에 다 커서 옛말하겠어. 이제 태여날 아이한테야 이 집이 고향집으로 되지 않겠나.》

리명산은 태여날 아이의 고향집이라는 소리에 가슴이 짜릿해왔다.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허허 하고 웃었다.

《일없네, 이런대로 살다가 차차로 집이 생기면 옮겨앉지.》

그런데 며칠후에 최영우가 집을 짓는데 필요한 자재를 한차 가득 싣고 건설로력까지 데리고 큰리에 나타났다. 안해는 지금도 터밭까지 푼푼한 지금의 독집을 가끔 새삼스럽게 둘러보며 그때 최영우가 고맙던 소리를 하군 한다. 그럴 때면 눈물이 글썽해지는 안해이다.

리명산은 그 일을 생각하자 더욱 괴로왔다.

《이보라구, 회관 하나를 중축하는데 들어가는 나무가 많은 량은 아니지. 하지만 자기의 당적량심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리명산이 물러설 잡도리가 아니라는걸 내 모르지 않아. 그렇지만…》

최영우는 말끝을 마무리지 않았다. 리명산이 아연해서 그를 건너다보았다.

《리해하지 못하겠나?》

《너무 그러지 말게!》 최영우는 《허―》하고 탄식같은 웃음을 내뱉았다. 《리해하라구?… 리해를 하라구?》

《…》 리명산은 고개를 숙이고있었다.

《그래, 이 최영우가 이제와서 동무한테 나무 몇대를 내라구 사정사정을 해야겠나? 그래, 사정을 하는것이지. 이 최영우가 뭐겠나? 동무야 온 나라가 다 알도록 우뚝 솟은 사람이지만 이 최영우야 리명산이 밑에 있는 한갖 지배인이지. 그러니 나무가 필요하면 동무한테 손을 내밀면서 사정하는수밖에…》

리명산은 다시 고개를 들어 최영우의 강마르고 꺼칠해진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사람이란 결코 좋게만 변하는것이 아니다. 이 최영우만 봐도 그렇다. 아, 왜 갑자기 심장이 아플가? 왜 무엇에 짓눌린것처럼 답답하고 불안할가?

《이보라구, 자네 신문을 봤나?》

최영우는 무슨 소리냐는듯 눈이 머룽해서 리명산을 건너다보았다.

《김세명선생님의 소식을 아는가 말이네.》

《선생님이 어쨌다는건가?》

《동무도 신문을 못 봤구만. 그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셨네.》

리명산이 책상우의 신문을 그의 앞으로 밀어놓았다. 최영우는 신문우에 눈길을 보내며 한참이나 꼼짝않고있다가 자책과 고뇌가 뒤엉킨 비통한 목소리로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였다.

《영우, 동무나 숙희동문 선생님의 제자들이지. 그 선생님이 세상을 떠난건 참 애석한 일이야. 나보다도 동무들이 더 가슴이 아플거야. 참 좋은분이였지. 동무도 잊지 않았겠지? 우리들이 어렸을 때 이 큰리에 왔던 김세명선생님이 조국의 숲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던 일을 말이네. 내 눈엔 지금도 선하네. 우리 조국의 숲의 력사에 대하여 말할 때 애정과 열정으로 불타던 선생님의 눈동자를 말이네. 선생님은 그 애정과 열정을 한생 변함없이 간직하고 살아오신것이 아니겠나. 난 선생님의 꿈이 무엇이였던지 잘 아네. 그건 백두산3대장군의 애국의 뜻을 꽃피워 조국의 산들에 화려한 숲을 펼쳐놓는것이였네. 조국의 지도를 온통 푸른색으로 뒤덮이게 하는것이였어. 선생님은 저세상에 가서도 그걸 바랄거야. 말해보게. 그런데 최영우는 도대체 뭔가 말이야?》

리명산의 목소리는 갑자기 울분으로 하여 높아졌다. 《어디 말해보란 말이네. 동문 〈도끼부대〉의 두목인가? 지금도 저 명덕산마루에 누워있는 최학세할아버지나 김세명선생님이 동무의 그 꿰진옷같은 정상을 본다면 뭐라고 하겠어? 내 언젠가도 말했지? 사람이란 자기를 낳아주고 키워주고 내세워준 제 나라를 위해 필요한 인간이 되여야 한다고 말이네. 동문 숲을 버리면 안되는 사람이야.》

살폭이 없는 최영우의 꺼뭇한 얼굴에 우울이 깃들었다. 리명산은 갑자기 동정이 가기 시작했다.

《이보라구, 동문 정말 조국의 숲을 위해 스스로 결심하고 하동으로 내려온 사람이 아닌가. 난 그때 큰리의 숲의 밑거름이 되기 위해 헐치 않은 용단을 내린 최영우를 보면서 머리가 숙어졌어. 동무가 그런 결심을 한 거기에 숲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있었던게 아니겠나. 난 그때 생각했어. 아, 사람이란 자기 조국앞에 저런 자세로 나서야 하는구나 하고 말이지. 그랬던 최영우가 지금은 어떤 사람이 됐나? 류석철이란 인간의 풍에 놀아났구 탑골탄광 후방부지배인이 의무식수과제를 면제해달라는데 대해서도 면박을 줄 대신에 응하고말았지. 어디 그뿐인가? 동문 정말이지 사람이 좋지 않게 변했어. 다시 말하네만 숲으로 돌아오게! 숲으로!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으라는거야!》

《말 다했나?》

《다했네.》

최영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상우에 벗어놓았던 모자를 가져다쓰며 중얼거리였다.

《사람을 그만 괴롭히게!》

리명산은 아연해서 굳어졌다.

최영우는 돌아서서 나가려다말고 바람질을 하기 시작하는 창문밖을 추연히 내다보면서 다시 말했다.

《동문 그렇게 쉽게 말할수 있지. 그렇게 말할만 한 권리가 있으니까. 하지만 내 자리에 한번 앉아보라구.》

그는 색이 바랜 모자를 눌러쓰며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리명산은 그때까지도 꼼짝하지 않고있다가 갑자기 불안해졌다.

《가나?》

《…》

최영우는 가버렸다.

리명산은 한참동안 그가 사라진 문쪽을 멍청히 바라보았다. 밖에서는 바람이 태질하고있었다. 문짝이 불안스레 덜컹거리였다.

리명산은 가슴이 답답해왔다. 《내 자리에 한번 앉아보라구.》하던 최영우의 말이 귀전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고충이 리해되였다. 최영우는 군안의 산림을 책임진 사람이다. 군에서 필요되는 나무는 그의 손을 거쳐서 나가게 된다. 지금은 나무 한대가 얼마나 귀중한 때인가. 어느 단위에서나 나무가 필요한것이고 그때문에 그한테 손을 내밀것이다.

나무를 해결받은 사람은 좋아할것이고 해결받지 못한 사람은 그를 좋지 않게 대할것이다. 직권으로 내리먹이려는 사람은 없을것인가? 별의별 시비군들이 다 있을것이다. 그것은 리명산이 당하는 고충이기도 하다. 내가 너무 그의 가슴을 허벼놓은것이나 아닌가? 아니야! 하고 리명산은 생각했다. 최영우는 일군이고 나라의 푸른 재부를 지켜야 할 사람이 아닌가. 그가 어떻게 국가의 리익은 뒤전에 밀어놓고 이런저런 사람들의 눈치나 보아가며 살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사는것이야말로 자기를 피곤하게 만들며 나아가서 함정에 몰아넣는 자살행위가 아니면 뭐겠는가. 그가 일군이든 평범한 로동자나 농민이든 공민이라면 누구에게나 조금도 드티지 말아야 할 명분이 있는것이다. 지어 소학교학생에게도 조국의 미래를 떠메고나가기 위해 공부에 전념해야 할 학생으로서의 의무가 있는것이다. 아니, 이 리명산이 결코 친구에게 안할 말을 해준게 아니다. 일군으로서의 약점으로 하여 사람들의 말밥에 오르는 최영우를 보기가 가슴아픈데 어떻게 기분좋은 말만을 해줄수 있단 말인가! 사람두! 남은 가슴이 쓰린데 그렇게 이지러진 말 한마디만을 남겨놓고 그냥 가버린단 말인가! 《내 자리에 한번 앉아보라구!》하던 최영우의 말이 다시금 귀전을 울리였다. 최영우가 무슨 말인가 속에 옹쳐있는것을 시원스레 터쳐놓지 않은채 그냥 가버렸다고 생각하니 리명산은 속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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