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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우가 큰리에 내려왔다 간 다음 주민들속에서는 별난 소문이 나돌았다. 새로 온 산림감독원이 큰리의 산들을 모두 벌거숭이로 만들 작정을 하는데 명분은 소나무들을 찍어버리고 이깔나무로 수종을 교체하는것이라지만 허공에 집을 짓겠다는것만큼이나 허황한 일이라는것이였다.

림상개조를 위해 2 000정보나 되는 산판에 나무를 심자면 온 군이 달라붙는다 해도 일손이 모자라 부대로력들도 동원바람에 허리펼새 없게 될것인데 리명산이 제 이름을 내보려고 그런 일을 벌려놓으려 하는거라는 소문도 돌아갔다. 리명산이 이름을 내보려 한다는 말은 탑골탄광의 후방부지배인처가 국수를 누르러 갔다가 그곳에 모인 아낙네들한테 내돌린것이였다. 입이 헤픈 녀자들이 그 말을 듣고 가서 소문을 퍼뜨린것이였다. 생각이 짧은 일부 사람들이 그 소문을 듣고 도대체 새로 온 산림감독원이란게 어떤 사람이냐? 나라의 재부를 녹여서 제 이름이나 내자고 그런다니 정신이 있는 사람인가고 수군거리였다.

그 소문은 국수를 누르러 갔다온 이웃집의 수다스러운 녀인을 통해 장미화의 귀에도 들어갔다.

장미화는 분해서 어떤 인간이 그따위 소문을 내돌려 일하겠다는 사람을 헐뜯는지 알아야겠다며 앙앙불락하다못해 퇴근해온 리명산에게 원성을 터뜨렸다.

《당신은 최영우아저씨까지 안된다고 하는것을 기어코 고집하면서 남들한테서 그런 소리를 들을게 뭐가 있어요?》

리명산이 그런 소리까지 듣고도 아직 리해 못하는 사람들은 그럴수 있는거라고 생각하고 뜬뜬해있을 때 한 늙은이가 그를 찾아왔다. 한때 중학교 교장까지 한적이 있다는 학식도 있고 퍽 고정해보이는 로인이였다.

《이보우 산림감독원동무, 지금 동리에 떠도는 소문을 들었소?》

《나를 두고 나라재산 녹여내는 사람이라고 하는 소리말입니까?》

로인은 태연스레 웃으며 말하는 리명산을 놀라서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로인님.》

리명산은 여전히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로인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음―》하고 이상한 소리를 질렀다. 말보다도 생각을 더 많이 하는데 습관된 모양 가래끓는 소리를 한번 더 질렀을뿐 한동안 침묵에 잠기였다. 이윽해서야 상대방을 존중하는 대단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난 이 큰리에서 태여나 한생을 살아오는 령감이요. 내 선친의 묘도 이 큰리의 산에 있소. 말하자면 큰리의 숲이 주는 맑은 물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이날이때까지 살아왔다 그거요. 큰리의 숲과 관련해서 무슨 일인들 없었겠소. 어렸을적에 어른들한테서 들은 이야기인데 왜놈산림간수라는 족제비상을 한 그놈을 끼고 왜놈목재상이 이 큰리의 나무들을 찍어 돈을 벌어보려다가 산에서 범을 만나 뼈다귀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는 소리도 있소. 그게 실은 호환을 입어 그렇게 된것이 아니였소. 후에 알려진 일인데 큰리의 숲을 해치려는 왜놈들을 그냥둘수 없어 한 의인이 행한것이였다오. 최학세라고… 임자야 그 령감을 알탁시없지.》

《〈산신령〉말이지요? 저도 압니다.》

로인은 대번에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외지에서 온 젊은이가 어떻게 오래전에 사라진 이 고장의 토배기령감을 아느냐는듯 항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리명산이 다름아닌 지난 전쟁때 큰리의 숲에 들어와 있으면서 마을에 내려와 밥을 훔쳐가던 그 꾀죄죄한 방랑아들의 《대장》이였으며 늙은 《산신령》의 집에서 두해를 살다가 함북도로 올라간 아이였다는것을 알자 로인은 참, 세상엔 기가 막힌 일도 다 있다며 탄식같은 소리를 했다.

《그렇다면 임자가 한때 독골에 와서 살은적이 있는 그 이름이 뭐드라… 그래… 그 리순녀라는 내인의 조카가 되겠네그려! 그러니 전쟁이 끝난 다음다음해인가 저 상리에서 반동놈들이 지른 산불을 끄다가 잘못된 그 다리 하나 못쓰는 사람이 임자한텐 고모부가 되겠군!》

로인은 큰리의 력사를 손금보듯 알고있었다. 산불을 끄다가 잘못된 리명산의 고모부에 대하여 말할 때 로인의 눈가에 얽힌 잔주름이 물기에 젖어있었다.

로인은 또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 고장의 늙은 《산신령》도 알고있으며 다리 하나 없는 그 의로운 인간의 조카벌된다는 임자가 큰리의 숲을 벗겨낼 생각을 하다니 어디 될 일인가 하는듯 했다.

리명산의 얼굴에 조금전까지만 하여도 조금 남아있던 밝은 기운은 가뭇없이 사라져버리였다. 세상떠난 고모부에 대한 영영 속죄할수 없게 된 죄책감에 가슴이 쓰려오고 거기에 늙은 최학세에 대한 애잡짤한 추억이 겹쳐드는것이였다. 로인은 이제는 년로하여 감각이 어느 정도 무디여버린 모양이였다. 리명산의 눈에 어리는 물기를 보고 자기 말에 감동된줄 알았던지 한결 동정이 어린 목소리로 위안하듯 말했다.

《젊은 사람, 이 고장 사람들은 큰리의 숲의 덕을 입으며 살아왔구 그 숲을 떠나선 못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 저 산의 소나무들이 늙고 퇴화되여 볼꼴없이 돼가는것을 보면서도 가슴이 아릿해지구 괴로워하는 사람들이란 말이네. 젊은 임자가 와서 그 숲마저 다 벗겨버리려 한다고 뒤에서 말들을 하는걸 나쁘다고만 생각할게 아니라구. 젊은사람이 그때문에 고민을 할건 없는거구. 그저 생각은 잘해보라구.》

로인은 생각을 많이 해보고 온것이 분명한데 젊은 감독원을 더 괴롭게 해주고싶지 않은듯 부드러운 낯색을 지어보이며 인차 일어났다.

리명산은 로인이 가버린 다음 머리가 뗑하여 한동안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난 숲을 지켜야겠어.》하던 최영우의 말이 다시금 귀전을 울리는듯 했다. 최영우는 큰리의 산들의 비옥도가 낮다고 림상개조에 손대기를 두려워하지만 로인의 말은 또 다른것이였다. 로인이 말하던 《이 고장 숲을 떠나 못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란 누구들인가? 나와 함께 손잡고 여기 큰리의 산판들에 이깔나무를 심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 사람들자신이 림상개조를 달가와하지 않는다면 누구와 함께 그 일을 한단 말인가?

로인이 왔다간 다음 하루가 지났을 때 이번에는 나이 40살쯤 들어보이는 키가 훤칠하고 외모가 수더분한데 비하면 퍼그나 사색이 깃들어 보이는 사나이가 찾아왔다. 《과학의 세계》라는 나온지 오래되여 보풀이 이는 잡지 하나를 말아쥐였는데 자기를 탑골탄광 로동자라고 했다.

알고보니 대학공부를 하고 어디서 생산부원을 하다가 무슨 일로 해서 갱에 들어가 석탄을 캐는 사람이였다. 그 《무슨 일》에 대해 짐작은 가지만 본인은 말하지 않았다.

초면의 사나이는 새로 온 산림감독원과 낯도 익히고 이야기도 나누어보려고 온 사람처럼 별치 않은 말들을 하다가 듣자니 큰리의 소나무들을 다 베여내고 이깔숲을 조성한다는데 잘 생각해보고 결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림상개조 그 자체를 달가와하지 않는 부류에 속하는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가 하는 말이 큰리의 산들은 대체로 석탄을 캐먹은 페갱들이 많아서 속이 궁글었는데 비가 오면 그리로 물이 인차 빠져버리여 땅이 건조하다는것이였다. 듣고보니 그냥 스쳐지날게 아니였다. 이 고장에 태를 묻었다는 최영우조차도 생각 못한 문제였다.

리명산은 거의 고민에 빠져버리였다. 눈앞에는 오래전에 최학세로인이 명덕산에 심어놓았다는 나무들이 떠올랐다. 뿌리를 내려보지도 못한채 삭정이처럼 강말라버렸다는 그 나무들이.

리명산은 한순간 방황하던 자신의 마음에 채찍을 얹었다. 세상에 노력을 기울여 되지 않을 일이란 없다. 씨를 뿌리면 수확을 하기마련이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리명산은 갑자기 가슴에 지그시 실려오는 아픔을 느끼였다. 오래전부터 가슴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아픔이다. 창성의 달아오른 고개길이 떠오른다. 송충이떼들이 휩쓸고 지나간 산판, 가증스런 산림의《원쑤》들이 잎들을 죄다 갉아먹어 줄기만 앙상하게 남은 소나무들이 눈뿌리를 지진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너무도 가슴이 아프시여 불볕아래 차를 세우신채 한참이나 그 쓸쓸한 광경을 바라보시였다고 피를 쏟듯 토하던 학자의 목소리! 그 김세명선생이 숲을 찾아떠나는 나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조국의 숲을 더 푸르고 무성하게 만드는것은 우리 수령님의 뜻이고 우리 당의 요구라고. 내가 무엇때문에 주저한단 말인가! 여보게 영우, 임잔 잘못 생각하구 있어. 퇴화되여 쓸모없이 되여버린 나무들을 지키는게 진짜 숲을 지키는게 아니야. 당정책을 진심으로 받들고 옳게 관철하자면 큰리와 같이 척박한 산들에서 먼저 림상개조를 하여 청신한 숲을 펼쳐놓아야 해! 리명산은 또다시 부식토를 지고 명덕산으로 올라갔다. 그는 그 산에 먼저 창성이깔나무를 심을 작정이였다. 내 기어이 저 돌산에 이깔나무가 뿌리를 내리게 하리라. 큰리의 숲과 자기들의 운명을 하나로 련결시켜 생각해오는데 습관된 이 고장 사람들의 가슴속에도 신심이 생겨날게 아닌가, 큰리의 산에도 이깔숲이 자랄수 있다는 신심이.

그는 질통에 부식토를 가득 채워지고 명덕산으로 톺아오르며 화려한 공상을 했다. 림시로 살림을 차려놓은 집앞의 공지를 뚜져 문수봉의 사연깊은 나무에서 가져온 이깔씨앗을 심었으니 이제 봄비가 내리고 따스해지면 연푸른 새싹들이 돋아날것이다. 그것들이 1년 지나면 한뽐 크기로 자랄것이고 두해만 키우면 명덕산에 옮겨심게 될것이다. 양묘장을 만들어야겠구나. 2 000정보의 산에 이깔나무를 모두 심자면 몇정보면 될가? 공부도 해야지 모르고서야 어떻게 숲을 일떠세울수 있으랴. 그는 숲이 설레이는 소리를 들었다. 가슴속에서 울리는 소리를, 희망의 숲이 밤바다의 소음처럼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리명산은 경사진 돌판우를 톺아오르다가 미끄러져 넘어졌다. 척추의 심한 아픔을 느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는 오래도록 꼼짝하지 못했다. 속옷이 온통 식은땀에 젖어버렸다.

설음이 북받쳐올랐다. 아, 어떻게 되여 내 몸이 이 지경으로 되였단말인가! 그는 일어설수 없었다. 미상불 수술을 받은 척추가 또 잘못되였는가보다. 분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자기가 인생에서 가장 가혹하고 절망적인 형편에 처한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의 리치가 불공정하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푸른 보화의 땅을 꿈꾸고있다가 이런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았는가.

그는 거의 한나절을 꼼짝 못하고 쓰러져있었다. 정신만은 온전했으니 그 시간에 무슨 생각인들 못했으랴. 장미화가 임신한 몸으로 찾아올라 왔다. 그는 안해의 련락을 받고 달려올라온 사람들의 등에 업혀 산에서 내려왔다. 구진료소에서 시내의 병원으로 후송되여갔다.

수년전에 처음으로 리명산을 치료해준적 있는 의사가 그를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리명산이 감정제대된 후 자진하여 숲을 찾아갔다는것을 알고 엄하게 질책했다.

《여보시오. 생명을 가지고 모험을 하는게 아니요!》

의학박사에게 있어서 제일 참을수 없는것은 생명을 중히 여기지 않고 아무렇게나 내대는것인듯 했다.

박사는 남편을 따라 올라온 보매 그 자신도 과도한 운동을 삼가해야 하는 몸이 분명한 장미화를 따로 만나 한동안 뭐라고 말했다.

박사를 만나고 나온 장미화는 심란해서 말이 없었다.

《여보, 그 박사령감이 뭐라고 합데?》

《욕을 하시더군요. 당신이 거름짐을 지다가 그렇게 되였다는것을 알더니 안해라는게 있어가지고 곰처럼 우둔한 남편을 말리지 못했다구요.》

늙은 의사는 그보다 더 험한 말을 할수도 있었겠지만 장미화가 놀라서는 안되는 몸이여서 약간한 충고와 꼭 말해야 할 주의만을 주었을것이였다.

밤, 리명산은 잠들지 못했다. 의사는 그의 침대에 푹신한 솜깔개가 아니라 얇은 포단 하나만을 깔아주라고 지시했지만 리명산에게는 그 포단마저 불편했다. 눈을 붙이지 못하고 침대맡에 앉아 아픔과 싸우는 남편을 측은한 눈으로 내려다보던 장미화가 느닷없이 물었다.

《여보, 당신 정말 만리성을 쌓을 결심을 했어요?》

《만리성이라니?》

안해의 말뜻을 뒤미처 깨달은 명산은 동통때문에 생겨난 주름살을 펴며 애처로운 미소를 지었다.

《만리성이라…여보, 사람이 한생을 바칠 결심을 하면 못해낼 일이 뭐가 있겠소. 난 우리 큰리의 산판들을 이깔숲으로 채워놓겠소. 그런데 당신한테는 정말 미안하오. 당신을 촌에 끌어다놓고 한생 고생을 시키게 되였으니 말이요.》

리명산은 《고집불통》이지만 마음은 실상 여린 사나이였다.

장미화는 남편의 그 마지막말에서 사랑을 느끼였다. 얼굴에는 흡사 장난꾸러기소년과 같은 미소가 피여올랐다.

《당신은 큰리의 새 〈산신령〉이 될 꿈을 꾸고있군요.》

남편이 소시적일들을 추억하며 들려주던 늙은 《산신령》에 대한 이야기, 그가 세상을 떠나 돌밖에 없는 명덕산에 묻혀있다는 이야기가 이마적에 와서는 장미화의 머리속에서 아득히 지나가버린, 이미 속세와는 상관이 없어진 옛말처럼 퇴색되여버린지가 오래되였다.

《〈산신령〉이라…》

리명산은 메아리처럼 조용히 되받아외워보았다. 그는 성근 이를 드러내며 싱긋 웃었다.

《그래… 난 정말 〈산신령〉이 될테요. 산판마다 골안마다 무성한 숲을 가꾸어놓고 그속에서 사는 〈산신령〉이 되겠단 말이요!》

《그러니 이 장미화는 한생토록 〈산신령〉을 사랑할 운명을 타고났군요!》

리명산의 눈앞에는 불현듯 두고온 시내의 아담한 단층살림집이 떠올랐다. 시내의 유측 나지막한 푸른 산기슭에 자리잡은 그 집이, 해마다 붉은 장미꽃이 만첩으로 피여나 탐스러운 꽃송이들이 바람결따라 흐느적거리던 집이! 행복이 무르녹던 그때처럼 안해는 리명산을 사랑하는것이였다. 사람이 진정한 사랑을 느낄 때보다 더 큰 행복감을 맛볼수 있을가?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리명산의 손등에 뜨거운 눈물 한방울이 떨어지는것이다. 그렇다, 눈물이였다. 안해가 소리없이 울고있는것이였다.

리명산은 가슴이 선뜩해왔다.

《여보, 당신 웬일이요?》

장미화는 이윽토록 대답이 없었다. 불을… 불을 켰으면! 안해의 얼굴을 보고싶었다. 그런데 방안은 어두웠다. 눈물에 젖어있으리라. 까칠하고 부석부석해진 그 얼굴이! 어인 일인가?

리명산은 갑자기 가슴이 저려왔다. 낮에 의사가 안해를 따로 만나던 일이 문득 떠올랐다. 오래전 그 늙은 박사가 척추를 찍은 필림을 보여주며 하던 그 말이, 자기의 앞길에 붉은 신호등을 켜주던 그 말이 생각났다. 일하지 말라! 멀리 걸어가지도 말라! 잘못하면 종신불구가 되여 한생 무거운 고통을 안고살아야 한다던 그 말이! 안해는 그것을 생각하고 소리없이 울고있는게 아닌가? 세상은 좋은 세상인데 이 리명산은 어쩌면 자기 명을 다 살지 못할수도 있다고 생각하는게 아닌가?

리명산은 가슴이 아리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녀자들이란 그런게지. 별치 않은 일을 가지고서도 스스로 자신을 괴롭히며 속박하기도 하는 연약한 존재이지. 리명산에게는 녀자들이란 남자라는 지붕이 있어야만 살수 있는 존재로 보는 악습이 조금 있었다.

명산은 안해의 가슴속에서 불안을 가셔주고싶었다.

《여보, 걱정하지 마오. 이 리명산은 쓰러지지 않소. 지팽이신세를 지는 인간은 안될테니 마음을 놓소. 당신은 울면 안돼! 지금은 마음을 밝게 해야 할 때가 아니요. 이번에는 꼭 딸을 낳아야겠는데.》

《아들일거예요, 이번에도.》

장미화는 한순간 시름을 잊고 살그머니 속삭이였다. 리명산은 눈이 둥그래졌다.

《그건 무슨 소리요?》

《아이가 배안에서 세차게 놀아요. 장난 세찬 사내애가 태여날것 같아요.》

리명산은 가볍게 소리내여 웃었다.

《사내처럼 벌찬 계집애일수도 있지.》

왜서인지 세번째 아이만은 꼭 딸을 낳았으면 했다. 안해탁을 한 고운 딸을, 까짓거 사내처럼 장난꾸러기라면 뭐라랴. 벌찬 계집애라도 고운 딸만 낳으면 그만이였다.

리명산은 스무날만에 퇴원하였다. 다행히 수술은 하지 않아도 되였다.

1차수술을 받은 부위가 압박을 받으면서 약간한 변형이 갔던것이다. 리명산은 림상개조문제를 제기해놓고 스무날을 누워있었다고 생각하니 속에서 불이 일었다.

퇴원하는 길로 관리국에 전화를 걸어보니 최영우는 지방에 출장을 가서 보름째나 돌아오지 않고있다는것이였다. 최영우가 큰리에 내려왔다가면서 림상개조가 불가능하다고 좋지 않은 말을 하고간것이 속에 걸려 내려가지 않고있었다. 그가 정말로 림상개조안을 우에 올려보내지조차 않고 기각해버리지나 않았을가? 아니, 최영우가 그렇게까지 매정하게 친구를 배반하랴.

리명산이 초조한 마음을 안은채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와 이깔씨앗을 뿌려놓은 집앞의 자그마한 터밭에 들려보니 이게 웬일인가! 그지없이 커다란 기쁨이 터밭 가득 뾰족뾰족 돋아나지 않았는가. 철지난 모자처럼 씨앗껍질을 하나씩 쓰고 솟아오른 연푸른 새싹!

리명산은 자기도 모르게 방안에 대고 소리쳤다.

《여보, 좀 나오라구!》

부엌에서 점심준비를 하던 장미화가 무슨 일이라도 생겼는가 해서 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왜 그러세요? 현웅이 아버지.》

《빨리 나오오!》

거의 화를 내다싶이 하며 소리쳤다. 그 순간엔 안해가 몸이 무거운 녀자라는것을 가뭇 잊고있었다. 그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달려나온 안해에게 기쁨의 신기한 맹아들을 장한듯이 가리켰다.

《이걸 보라니까!》

《예? 아유! 난 또 무슨 일이나 난줄로 알았어요. 요것들이 당신이 뿌려놓은 씨앗에서 움터난 이깔싹이 맞아요?》

《맞지 않구. 우리 큰리에서 싹트고 뿌리내린 첫 이깔이지. 2년후엔 이것들을 산판에 내다 심을수 있게 되는거요. 그러면 자라서 아름드리거목이 되지!》

리명산의 눈은 《아름드리거목》을 상상하며 환희로 번뜩이는데 장미화는 놀라기만 한다.

《아이구머니나! 당신은 그럼 요것들이 자라서 아름드리거목이 될 때까지 이 큰리에서 산지기노릇을 할 생각을 하는건 아니예요?》

《그렇지 않구.》

《기차기두 해라!》

《이제 두고보라니까. 이 큰리에 희한한 이깔숲을 펼쳐놓지 않나. 당신도 이 리명산이 어떤 사내라는걸 알지 않소. 이 리명산은 한다고 일단 마음먹으면 해내고야마는 사내란 말이요.》

장미화로 하여금 자기들의 사랑이 시작되던 인생의 지나간 봄계절을 언뜻 추억케 하는 말이였다.

《이 리명산은 키가 별로 크지도 못하고 잘 생기지도 못했소. 대학공부도 못했구. 하지만 한다고 결심하면 하는 사람이요. 난 내 친구들앞에서 공개했소. 누구도 못 꺾는 장미꽃을 내가 꺾겠다고 말이요. 동무와 결혼하겠소.》

《어마나! 결혼이란 사람의 일생과 관련되는 대사예요. 동문 어떻게 한 처녀의 마음을 두드려보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해요? 경솔하지 않아요?》

《내가 이자 말하지 않았소. 난 결심하면 그대로 하는 사내라고 말이요!》

녀자의 미모 하나에만 반해서 따라다니는 어리석고 실속없는 사내들의 고백을 적지 않게 들어온 장미화인지라 웬만한 상대쯤은 너그러운 아량과 웃음으로 사절해치울 자신이 있는데 그 순간엔 두렵기만 했다. 본인이 말한대로 사내싸게 생기지는 못했지만 번뜩이는 눈빛이 장미화를 꼼짝 못하게 했다. 장미화는 강철오리처럼 질기고 자신심에 넘쳐있는 도깨비같은 사내가 장차 자기를 예측할수 없는 운명의 회오리속에 몰아넣을것만 같아 두려웠다.

지금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연약한 새싹들을 놓고 그리도 기뻐하는 남편을 보니 이상하게도 그때의 그 감정이 되살아나는것이였다. 자기라는 운명의 새가 거대한 발톱에 채여 어디론가 알수 없는 미지의 곳으로 날아가는 광경이 상상되였다.


리명산은 며칠후 안해 모르게 질통을 찾아지고 산으로 올라갔다. 안해가 알면 금방 치료를 받고 나온 사람이 제정신인가고 덴겁을 할것이였다.

그는 명덕산으로 올라갔다.

반나절동안 개울가의 누기찬 바닥에서 썩은 나무잎을 곽지로 긁어모아놓고 산으로 져올리기 시작했다. 그는 앞으로 림상개조를 하면 골안막바지의 산꼭대기에서부터 아래로 나무를 심어 내려올 생각이였다. 우선 지금 마당가에서 싹터오른 이깔은 최학세의 묘가 있는 명덕산마루에 심으리라 작정했다. 그가 두번째로 부식토를 듬뿍 담은 질통을 지고 돌산우로 올라가려는데 안해가 나타났다. 집모퉁이의 처마아래 놓아두었던 질통이 없어진것을 보고 곧장 명덕산으로 올라온것이였다.

《뭐예요? 정신이 나가지 않았어요?》

장미화는 결혼해서 처음으로 남편앞에서 자기를 깡그리 잊고 발작적인 소리를 질렀다. 발톱을 곤두세운 고양이처럼 얼굴에 잔뜩 독기를 띠우고 달려들어서는 남편에게서 질통을 벗겨냈다. 리명산은 얼뜬한 상태에서 질통을 떼웠다.

장미화는 질통을 망가져라고 마구 내동댕이치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소리내여 울었다.

《어쩌면… 어쩌면… 이럴수 있어요!… 어쩌면… 내 운명은 이렇담!… 어쩌면… 사람의 속을 이다지도 썩인담!…》

푸념같은 사설을 늘어놓으며 울었다.

리명산은 바빠맞았다. 해산날이 박두해오는 안해가 아닌가! 그 몸으로 왜 올라왔는가고 꾸중해야겠는데 오히려 안해쪽에서 야단복장을 하니 어떻게 한단 말인가!

《여보, 그만하라구. 당신은 공연히 그러누만. 내 몸은 내가 알아. 몸을 봐가며 적당히 일하는데 당신은 참! 무슨 큰일이나 난것처럼 그러오.》

리명산은 자기로서도 구차한 변명을 하는것같이 생각되여 더 말하지 않았다. 안해는 고집불통 남편이 하루동안에 다 져올리기로 계획했던 부식토운반을 도중에서 그만두지 않으리라는것을 알자 앙심을 먹었다. 그는 남편의 질통을 자기가 지려고 했다. 봐요! 내가 어떤 녀자인지 말이예요! 하는듯. 원, 이런 일이라구야! 여보, 현웅이 엄마, 내려가라구. 당신은 지금 일을 하면 안되는 녀자가 아닌가! 배안에 있는 귀염둥이 딸애가 놀라면 어쩔려구. 을러도 보고 달래여도 보았다. 장미화는 질통 대신에 삽을 잡았다. 남편의 질통에 부식토를 담아주는 일을 했다. 리명산은 그 일마저 시키고싶지 않았지만 삽까지 빼앗을수는 없었다. 하긴 그게 육체적으로 별로 부담이 되는 일은 아니였다.

《미욱쟁이 같은것!》

얼굴이 발그레하니 물든 안해를 질통을 진 리명산이 돌아보며 악의없이 힐난했다. 그리고는 자, 보라구, 내가 힘들지 않게 산으로 오르지 않나 하는듯 씽씽 걸어갔다.

방아확처럼 우묵하니 들어간 골안막바지라 오후 반나절도 못되여 해가 산너머로 사라지고 어둑시근해진다. 리명산은 해가 설핏해지자 일을 끝냈다. 더 하고싶은데 암만해도 안해때문에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 장미화가 갑자기 배를 그러안으며 땅우에 주저앉았다.

《여보, 당신 왜 그래?》

리명산이 급해맞아 부르짖었다.

《여보!…》 장미화의 입에서 한마디의 애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겁에 질린 눈길이, 다급한 무언의 호소가 담긴 눈길이 리명산의 눈에 닿아 떨어지지 않았다. 진통이 시작된것이였다. 얼굴은 삽시에 창백해지고 땀이 질펀해졌다.

리명산은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는것을 깨닫자 당황했다.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소리쳐야 아무도 없는 산에서 진통이 시작되다니! 나때문이다! 모든건 나때문이야! 자칫 잘못하면 안해가 산에서 해산을 할수 있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리명산은 눈앞이 아뜩해왔다. 안해를 마을까지 데리고 내려가고 봐야 했다. 그런 다음에 집에서 몸을 풀게 하든가 일이 잘되면 자동차편을 만나 군병원으로 후송할수 있을것이였다.

리명산은 진통이 올 때마다 허덕이는 안해를 부축하기도 하고 안기도 하면서 정신없이 골안을 내리였다. 나때문이다! 못난 나때문이야! 안해가 고집을 부린다고 삽을 쥐여주다니! 해산날이 박두한줄 알면서도 경계심을 늦추다니! 넨장! 일이 이렇게 되다니! 제발 무사해야 할텐데! 맹추! 맹추같은것! 그 몸을 해가지고 산에는 왜 올라온단 말인가! 리명산은 다른 때는 몰라도 지금은 안해를 위로하고 안심시켜주어야 한다는것을 까맣게 잊고 속으로 끝없이 부르짖었다.

그날 밤 장미화는 군병원입원실에서 딸을 낳았다. 마침 지나가는 인민군대자동차가 있어 장미화를 병원에까지 무사히 실어다준것이였다.

그것은 리명산의 운명인가? 그는 소시적에 큰리의 산과 인연을 맺았고 큰리의 산을 다시 찾아와 운명전환을 했는데 그가 기다린 딸 또한 그 산과 인연을 맺고 태여난것이였다.

해볕이 따스하게 비쳐드는 입원실에서 리명산은 처음으로 자기의 딸애를 볼수 있었다. 깨끗한 강보에 싸인 자그마한 인간이 자기도 세상에 태여났노라고 꼼지락거리고있었다. 안해를 길우에서 죽이는것만 같아 눈앞이 캄캄하던 그때의 일은 악몽처럼 느껴졌다.

《여보, 당신 수고했소!》

리명산은 침대우에 누워 편안히 미소를 짓고있는 안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리고는 자기의 말이 멋적게 생각되여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장미화는 꿈만 같이 생각되는 고통은 말짱 잊고 행복에 찬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난듯 말했다.

《여보, 어제 당신한테 알려준다는것이 미처 말을 못했어요. 관리국에서 전화가 왔는데 당신이 제기한 림상개조문제를 놓고 무슨 협의회를 한다나봐요. 당신이 없는 사이에 전화가 와서 제가 받았어요.》

리명산은 왜서인지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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