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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명산이 집에서 점심을 먹고 감독초소사무실로 나와 국토부에서 오는 전화를 한창 받고있는데 밖에서 퉁탕거리는 소리가 났다. 전화를 끝내고 나가보니 오토바이 한대가 와서 서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쾌활한 목소리로 인사말을 건네며 안전모의 눈가리개를 들어올리는 사람은 류석철이였다. 한동안 보이지 않더니 그사이에 신수가 더 멀끔해진게 알리였다.

《어이구, 누구의 행차가 이렇게 요란한가 했더니 거기로구만. 오래간만이우다.》

《하긴 이 건물을 새로 지은 후에는 처음 들려보게 되는구만요. 여기 오면서 보니까 큰길옆의 산들에 심은 이깔나무들도 이젠 사람키를 넘게 컸더구만요. 감독원동지가 큰 일을 했지요. 꼬부랑소나무들만 있던 산들이였는데.》

류석철이 감개무량한듯 말했다.

새바람이 일면서 마당안으로 먼지가 쓸어들어왔다. 요즘 며칠째 바람질을 하면서 날씨가 싸늘해졌다. 식수철이여서 비라도 한번 푸지게 내렸으면 하는데 건조하기만 했다.

류석철이 좀 만날 일이 있다고 해서 리명산이 그를 데리고 사무실로 다시 들어갔다. 류석철은 벽가에 놓여있는 포의자에 앉아 너렁청한 방안을 둘러보았다.

《방이 더운걸 보니 탄불을 살렸군요. 석탄이 많은 고장이니 좋기는 좋습니다.》

리명산은 그의 방문이 별로 반갑지 않았다. 며칠전에 홍숙희가 큰리에 내려왔다가 하던 말이 생각나고 그보다 앞서 최영우가 전화로 탄갱소리를 하며 명덕산 남쪽면의 이깔나무에 대하여 말하던것이 새삼스럽게 상기되는것이였다. 방학때 집에 내려왔던 딸애가 《그 사람이 아버지 한번 만나러 오겠대요.》하던 말이며 그 소리를 듣고 곱지 않은 소리를 하던 안해의 얼굴도 떠올랐다.

《무슨 일로 왔소?》

리명산은 까닭모르게 자리를 뜨고싶은 생각을 하며 물었다.

《허, 살아가느라니 제가 감독원동지 신세를 져야 하는 때도 있구만요.》

류석철은 서류봉투에 넣어가지고온 무슨 양식을 그려넣은 종이 한장을 꺼내놓으며 빙그레 웃었다. 신세를 져야겠다기에 무슨 소린가 했더니 수표를 요구하는 광권신청서였다.

리명산은 신청내용을 다 훑어보고나서 감독원수표란에 눈길을 못박은채 한동안 생각이 복잡했다. 이러나저러나간에 이 사람이야 내 고모의 말년생에 많은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이 아닌가. 나는 조카로서 고모를 위해 해준것이 별로 없는데 이 사람이 친자식처럼 돌봐주었다. 혈육관계도 아닌 남남사이에 장례식까지 도맡아나선다는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제 광권신청서에 수표를 해주지 않으면 이 리명산은 량심도 의리도 없는 놈이 되지 않을가? 은혜도 모르는 놈이라고 사람들의 비난을 받지 않을가? 그렇지만 이 사람이야 지금 나라에 손해되는 일을 벌려놓으려고 하지 않는가. 종업원이 불과 100명도 안되는 기관에서 자체탄광은 무슨 자체탄광인가. 석탄을 연료로 하여 생산활동을 하는 기관도 아니지 않는가. 《그 사람이 석탄을 가지고 뭘하자고 그러겠어요.》하던 홍숙희의 목소리가 다시금 귀전을 울리는것만 같았다.

리명산은 개인관계를 놓고 은혜요 의리요 하고 생각하며 한순간이나마 동요한 자신을 속으로 책망했다. 그게 개인적의리를 위해서라면 나라의 백만금이 녹아난대도 무방하다고 여기는 얼빠진 생각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나라의 귀중한 재부를 지키는 파수병이 되라고 산림감독원한테도 이런 수표권한이 주어진게 아닌가. 그는 속에서 무엇인가 부질부질 끓어오르는것을 의식했다. 사람이 그래도 량심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리명산은 언젠가 나무심기를 하느라고 채 녹지 않은 땅을 힘들게 파면서 누군가 우스개소리로 하던 말이 생각났다. 《아득히 먼 옛날에 엄혹한 랭한기가 도래했었지. 그 랭한기가 인간을 탄생시켰다네. 약자들은 자연에 순응하는 방향으로 나가려다가 굶어죽고 얼어죽었거나 원숭이로 남아있었지만 인간의 조상들은 로동과 투쟁으로 가혹한 시련도 이겨냈단 말이지. 말하자면 그 과정에 의식을 가진 인간으로 진화했다는거야. 그러니 우리가 더 고급한 인간으로 발전하자면 더 좋은 미래를 내다보며 일을 해야 한다는거야.》

쭈룩쭈룩 내리는 궂은비속에서도 주접이 들어버리기는커녕 유쾌하게 떠들며 걸싸게 삽질을 하던 익살쟁이의 그 말이 어째서 새삼스럽게 떠오르는것일가? 지금 내앞에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앉아있는 이 사람은 뭔가? 미제를 비롯한 원쑤들이 우리의 사회주의가 우뚝 솟아오르는것이 두려워 미쳐날뛰는 속에서도 사람들이 강성부흥의 령마루에 치달아올라 세상이 부러워하도록 더 잘살게 될 미래를 내다보며 신심에 넘쳐 일하고있는데, 온 나라가 사회주의수호전의 진두에 서시여 선군령도의 자욱을 이어가시는 우리 장군님의 애국헌신의 걸음걸음을 따라서고 있는데 이 사람은 정말 뭔가? 시대감각이 무디여버린 락오자인가?

리명산의 분노는 류석철이 석탄을 캐려고 하는 곳이 다른데가 아닌 명덕산 남쪽면이라는것을 알았을 때 극한점에 이르렀다. 그 분노는 점차 최영우지배인에게로 향해졌다. 그전에 명덕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에 탄갱소리를 하며 그곳의 이깔나무들이 어쩌고저쩌고 하던 말이 뇌리를 치는것이였다. 그때엔 그저 후에 토론해보자는 식으로 더 말하지 않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을 쓰지 않았는데 이제 보니 그래서였구나. 홍숙희동무가 류석철과 남편사이에 있었던 일을 두고 속상해서 말할 때에도 새겨듣지 못하지 않았는가. 그때 최영우의 본심을 알아채기만 했더라도 이따위 종이장을 쥐여보낼 생각을 못하게 하는것인데!

땅속에 묻혀있는 석탄은 그대로 놔둔다고 해도 갈데없는 나라의 재부이다. 우리 대가 아니라도 먼 후날에 가서 후대들이 캐내여 조국번영의 귀중한 연료로 쓸수 있다. 그런데 최영우는 류석철이 요구한다고 해서 이자 겨우 10년 자란 이깔밭에 손을 댈 생각을 한단 말인가. 류석철이 하려는 일이 투기를 목적으로 한것이든 제 낯내기를 위해서이든 그것이 종당에는 나라의 리익에 저촉되는 행위라는것을 최영우가 모른단 말인가?

리명산은 자기가 광권신청서를 찢어서 줌안에 넣어 구겨버리고있다는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그는 눈앞에 시시펀펀해서 앉아있는 류석철이란 존재는 잊어버리였다. 최영우에 대한 노여움으로 심신이 편안치 않았다. 그는 고개를 숙인채 자신을 다잡느라고 한동안 화석처럼 굳어져있었다. 진정할수 없었다. 홍숙희가 찾아와 남편에 대한 불만을 터쳐놓으며 좋은 말 해달라고 눈물이 글썽해서 호소할 때까지만 해도 최영우에 대한 믿음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있던 리명산이였다.

그 마지막믿음의 돌담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귀전에 들리는것만 같았다.

《미안합니다!》

또박또박 점을 찍듯이 음절이 분명한 그 소리에 리명산은 비로소 자기앞에 앉아있는 인간의 실체를 느끼였다. 고개를 들었다. 류석철이 책상우에 놓여있던 전자수산기를 들고 마치 그 무슨 알수 없는 운명의 수자나 산출해내려는듯 달각달각하며 조작단추들을 눌렀다. 사무실안으로 따라들어오던 조금전의 밝은 인상은 가뭇없이 사라져버리고 너부죽한 얼굴에는 유감스럽다는것인지 비난인지 모를 그리고 기꺼운 표정은 더욱 아닌 애매몽롱한것이 어려있었다.

리명산은 방금전에 그의 입에서 《미안합니다.》하는 말이 흘러나왔다는것을 상기했다. 이 자리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말을 왜 했을가? 무엇이 미안하다는 소리인가? 생활의 갈래많은 길에서 자기가 빠져나갈 곬을 알며 상대방의 심리를 들여다보는데서도 감각이 둔하지 않은 이 인간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인것을 보면 결코 생각없이 뱉아놓은 말은 아닐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두번째로 묘한 말마디가 류석철의 입에서 흘러나왔다.《운명의 수자》를 치던 전자수산기를 제자리에 정히 가져다놓고 단정한 자세의 극치를 보여주려는듯 천천히 일어나 밖으로 나가던 류석철이 돌아서더니《리해합니다!》라고 한마디의 말을 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리명산은 밖에서 퉁탕거리던 오토바이소리가 멀리로 사라져버린 뒤에도 한동안 굳어져서 움직이지 않았다. 눈길은 그가 놓고간 전자수산기에 미치였다. 무슨 운명을 점쳤을가 하는 당치 않은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리명산은 조금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천천히 고민속에 빠져들어갔다.

내가 또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구나! 또 못된 성미가 살아났으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더구나 그 사람이야 홀로 살아온 고모를 친자식처럼 도와준 사람이 아닌가!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한담! 이건 원칙에 관한 문제가 아닌가!

다음날 저녁이였다. 리명산이 우에 올려보낼 문서를 정리해야 하는 일이 있어 제시간에 퇴근을 못하고 사무실에 늦도록 앉아있는데 전화종소리가 울리였다.

송수화기를 드니 최영우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류석철의 광권신청서를 찢어버렸소?》

우울한 심사가 비낀 목소리였다.

《그렇네.》

《공문서인데. 참, 자네두!》

《왜? 나를 걱정해서 하는 소린가? 공문서까지도 찢어버리는 안하무인격의 인간이라구 처벌을 받을가봐?》

《…》

리명산은 분별을 잃어버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점점 격해지는 자신을 어쩔수가 없었다.

《이보우 지배인동무, 누가 뭐라고 하든 난 숲을 지켜야겠소. 내 손으로 심은 나무라고 해서 그러는게 아니란 말이요! 그런줄 알고 다시는 그따위 종이장을 쥐여보내지 마우!》

《동무가 원칙대로 하는데야 누가 뭐라고 하겠나. 하지만 문서장을 찢어버릴거야 어디 있소. 수표를 안해주면 그만이겠는데. 그 성미때문에 또 비난을 받겠어. 두렵지 않나?》

《아무렇게 생각해도 좋네. 똑바로 알아두라구. 그런 종이장이라면 백개를 쥐여보낸대도 난 거들떠보지도 않겠소. 내 동무한테 말 좀 하자구. 만약 나라가 필요해서 거기에 탄갱을 앉혀야 한다면 이깔나무 몇대가 무슨 문제겠소. 필요하다면 산판 하나를 다 베여낼수도 있는거요. 그런데 류석철인 뭐요? 지배인동문 그 사람이 석탄을 캐서 나라의 긴장한 전기문제를 푸는데 보탬이라도 주자고 그러는게 아니라는것을 알고있겠지?

똑바로 살게! 동문 최학세의 손자가 아닌가.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자기를 왜 명덕산에 묻어달라고 그랬는지 모른단 말인가? 아니면 잊었소?》

최영우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내가 너무했는가? 리명산은 애써 자기를 진정시키며 조용히 말했다.

《동문 더구나 일군이 아닌가? 퇴화된 꼬부랑소나무처럼 필요없는 존재가 아니라 당정책을 받드는 기둥이 되고 뿌리가 돼야 해!》

한참후에 수화구로 괴로운 한숨소리가 흘러나왔다. 고뇌에 잠긴 친구의 시르죽은 컴컴한 얼굴이 눈앞에 보이는것만 같았다. 리명산이 또 가슴이 답답해지고 쓰려나기 시작할 때 최영우의 풀죽은 목소리가 수화기로 울려나왔다.

《너무 그러지 말게!》

《?…》

《명산인 내 오랜 친구지? 그러니 이 친구의 립장도 좀 생각해주어야지.》

다시금 긴 한숨소리. 아, 차라리 떵떵 큰소리라도 쳤으면! 이 리명산의 가슴을 송곳처럼 찌르는 모난 말이라도 했으면! 하다못해 뻔한 게정이라도 부렸으면!

송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가 들리였다.

리명산은 굳어진채 천정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동안이 지난 다음에야 최영우의 한숨섞인 말뜻이 리해되였다. 류석철이 큰리에 와서 면박을 받고 돌아가서 가만있지 않고 최영우를 피곤하게 들쑤셔놓기라도 한 모양이였다. 도대체 류석철이라는 인간과 무슨 관계가 있기에 최영우가 그렇게 내놓고 애달픈 하소연을 하는것인지 알수 없었다. 리명산은《내 립장도 좀 봐줘야 하지 않겠나.》하던 말이 어쩐지 자꾸만 귀전을 자극했다. 그때문에 안골로 올라갔댔자 일이 손에 잡힐것 같지 않았다.

리명산은 오후에 계획했던 일을 미루고 읍으로 들어갔다. 마침 그쪽으로 가는 자동차가 있어 운전칸에 올라탔다. 최영우지배인에게 아픈 소리를 한것이 가슴에 걸리여 내려가지 않았다. 그래도 오랜 친구가 아닌가.

한시간후에 두사람은 산림경영소에서 운영하는 군양묘장어구에서 만났다. 리명산이 차를 타고 들어가 수정천다리목에서 내리는데 마침 최영우가 양묘장쪽에서 걸어오는것이였다.

최영우는 온다는 소리도 없이 불쑥 나타난 리명산을 덤덤해서 바라보더니 우울한 낯색을 한채 《가자구.》하며 산림경영소쪽으로 이끌었다.

《뭣때문에 거기까지 가겠나. 난 시간이 많아서 들어온게 아니네. 여기서 말 좀 하자구.》

리명산이 시퍼래서 말하는 바람에 최영우는 더 어쩌지 못했다. 두사람은 다리아래로 내려가 수정천가의 반들거리는 하얀 돌들을 하나씩 차지하고 앉았다.

《그래 말 좀 하라구, 영우.》

《무슨 말을 해?》

《젠장!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말이요?》 리명산은 얼굴이 뻘개서 부르짖었다.

최영우는 주절대며 흐르는 수정천의 맑은 물을 바라보며 아무런 사고도 없는 사람처럼 멍해있다가 한참만에야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바로 그날 아침에 있은 일이였다. 산림국의 서정근국장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서정근이 나이로 보면 최영우보다 아래인데다가 대학후배이고 또 그의 후임으로 시국토환경보호관리국산하 처장으로 되였던적이 있어 무관계한 사이도 아니지만 산림국 국장으로 승급되여 올라간 다음에는 사업상 거리가 멀어져 먼저 전화를 걸어온적이 없었다. 하여 최영우가 뜻밖의 전화에 무슨 일인가 해서 다소 긴장해지는데 서정근이 후배답게 례의를 지키는 겸손한 어조로 말했다.

《류석철이야 영우동지도 잘 아는 류성림동지의 조카가 아닙니까. 의리적으로 봐서도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사람이 광권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우리한테까지 올라왔더군요.》

최영우는 그 전화를 받으며 류성림에 대하여 생각했다. 시당일군으로 있을 때 류성림은 큰리의 숲을 개조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사람들을 동원시키고 시적인 관심사로 되게 한데는 그의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그 류성림이 퇴직후 시내의 좋은 집에서 공로보장혜택을 받으면서 말년을 편안히 보낼수도 있겠지만 늙은 안해와 함께 하동으로 내려와 양묘장일을 도와주고있다. 전쟁때 조국의 숲과 류다른 인연을 맺었던탓에 산림조성에 늘 누구보다도 관심이 큰 류성림이였다. 사람들은 그를 진심으로 존경했다.

그런데 류석철이 바로 자기 큰아버지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과 오랜 의리관계를 리용하여 큰리지구의 《노란자위》를 타고앉으려고 산림국에까지 올라간것이였다. 서정근국장의 말을 들어보면 류석철이 그를 만나 광권문제에 대해 말하면서 자기가 류성림의 조카라는것을 주패장처럼 내비친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석탄을 캐려고 하는곳이 지금 한창 생장중에 있는 10년생이깔밭이라는 말은 하지 않은것 같았다. 류석철이 고급식료품이 들어있는 구럭을 들고 집에까지 찾아왔을 때를 보면 사람들의 마음을 후덥게 해주고도 남을 소탈한 미소를 짓고 말을 얼마나 잘했는가! 서정근국장한테 올라가서도 그 좋은 언변술로 그럴듯하게 넘겼을것이다.…

리명산은 듣고보니 더욱 속이 좋지 않았다.

《그러니 동문 그 모든걸 다 알면서도 류석철에게 광권신청서를 쥐여 큰리로 보냈단 말인가?》

《어찌겠나. 내가 전화로 말하지 않았나. 내 립장을 좀 생각해달라고 말이지. 난 지금 리명산과 서정근국장사이에 끼여서 처지가 딱해졌어.

자넨 온 나라에 이름난 사람이구 숲을 일떠세운 모범감독원이지. 그러니 광권신청서를 찢어버리든 이 최영우의 뺨을 치든 원칙을 위하는것이니 별로 루가 미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 내 립장이 어떻게 되리라는것은 아랑곳없이 말이지.》

《이보라구,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뼈대없는 인간이 되여버렸나? 이젠 최영우란 인간을 알겠어. 우아래 할것없이 인간관계를 무난히 유지나 하면서 풍파없이 살자는것이겠지. 그래서 나라의 리익을 뒤전에 미루어놓게 된것이지. 서정근국장한테 잘못 보이는것이 그렇게도 두렵나? 자네야 그를 자기의 후임으로 추천했던 사람이구 대학선배가 아닌가. 언제부터 그런 사람이 돼버렸어?》

《동무야 그런 말을 쉽게 할수 있겠지. 일도 많이 했구, 원칙이 있으니까.》

《거 제발 이질거리지 말라구!》

리명산은 화가 꼭두까지 치밀어올라 소리치며 최영우를 쏘아보았다.

이 몇해사이에 살이 빠지고 퍽 늙어보이는 최영우의 길쑴한 얼굴에 야릇한 조소와 함께 우수가 비끼였다. 그는 일어났다.

《이 최영우는 자네같은 인간은 못돼!》

그는 매끄러운 돌들이 널려있는 울퉁불퉁한 강변을 불편스럽게 걸어가며 리명산이 들으라는 소리인지 자기 혼자소리인지 알수 없는 소리를 쓰겁게 내뱉았다. 《생활이야 말처럼 그렇게 명백하고 단순한게 아니지, 아니야.》


그날 밤, 리명산은 몸도 말째고 속도 편안치 않아 자리에 누워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류석철의 일로 최영우와 기분 언짢은 전화를 하고난 뒤에 읍에까지 들어갔다 나오면서 리명산은 큰리골안에 널려있는 산불감시초소들을 돌아보고 명덕산 남쪽비탈면에도 들려보았다. 10년생이깔밭이 류석철때문에 욕을 보게 됐다고 생각하니 자연히 그리로 발길이 향해진것이였다. 확실히 그곳 나무들은 같은 해에 심은 다른 골안의 나무들만큼은 자라지 못했다. 김세명후보원사나 서정근이 우려한것이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속이 편안치 않아진 리명산은 방아골막바지 산불감시초소에 맡겨놓은 질통을 찾아다가 개울가의 부식토를 몇짐 져올리고 나서야 집으로 내려왔다. 그러느라니 몸도 지칠대로 지치였다.

리명산이 끙끙 앓음소리를 지르며 낮에 최영우와 만났던 일이 속에서 내려가지 않아 뒤척이고있을 때 옆에서 잠 못들고있던 장미화가 별로 신중해서 말했다.

《여보, 소학교에 새로 온 처녀선생 있잖수.》

《있지. 우리 현웅이와 좋아하는 처녀 말이지?》

장미화가 놀라서 내려다보았다.

《아니, 당신 이미 다 알고있었수?》

《제 며느리감을 곁에 두고서도 모를가.》 리명산은 태연스레 말하며 빙그레 웃었다. 해맑은 얼굴에 깨끗한 웃음이 어려있는 처녀의 모습이 눈앞에 방불히 그려졌다. 《한번 산에 올라온걸 만나봤는데 사진을 볼 때보다두 더 괜찮은 처녀같더군. 당신은 그 처녀가 우리 큰리소학교에 배치받아왔다는걸 어떻게 아오?》

《어제 기계칸에 올라가 두부콩을 갈아가지고 내려오는데 웬 처녀선생이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가는걸 나두 한번 봤어요. 류석철이란 사람의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큰리소학교 선생으로 배치받아왔다고 하기에 그저 그런거다 하고 생각했는데 원 세상에! 그 처녀가 우리 애와 함께 사진을 찍은 처녀인줄이야 누가 알았겠수.》 기가 막혀서 하는 말이였다.

리명산은 한동안 어리치운 사람처럼 뗑해서 천정만 쳐다보았다.

사고가 온통 뒤죽박죽이 되여버린것 같았다. 한참만에야 간신히 입을 열었다.

《당신 그게 확실한 소리요?》

《확실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없는 소리 하겠수.》

운명의 장난인가? 세상에 이런 우연도 있단 말인가! 리명산은 바로 몇시간전에 류석철의 비량심적인 행위를 타매했고 그때문에 자기의 둘도없는 오랜 친구의 가슴에 못을 박는 소리를 해주었는데 자기가 그렇게도 깨끗한 처녀라고 생각했으며 아들의 애인일수도 있는 류정혜가 다름아닌 바로 류석철의 딸인것이였다.

리명산은 갑자기 심장이 쿡쿡 쑤시였다. 젊은이들의 일이 걱정되였다.

아버지들의 좋지 않은 관계때문에 때묻지 않은 젊은이들의 사랑이, 행복한 미래만을 꿈꾸며 사는 그 애들의 사랑에 풍파가 일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장담하랴. 눈앞에는 또다시 류정혜가 떠올랐다. 깨끗함과 순진함이 어려있던 처녀의 눈동자가 떠오르고 산촌의 정기를 더해주던 처녀의 맑은 목소리가 귀전에 다시금 울려오는듯 했다. 이제 정혜의 그 눈에 슬픔이 어리게 되지 않을가? 아니, 그 눈에는 행복과 기쁨만이 비껴있어야 해! 좋은 세월에 태여난 정혜가 아닌가.

《아버지는 아버지이고 딸은 딸이지. 당신은…》

리명산은 미안한 생각이 들어 말끝을 채 잇지 못했다. 류석철에 대한 안해의 응어리진 감정을 알고있는 그였다.

《여보!》 무슨 말을 더 할듯 하던 장미화의 입에서 흑― 하고 흐느낌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는 갑자기 새된 소리로 부르짖었다.

《안돼요!》

《!…》

《그 사람이 당신 가슴에 얼마나 아픈 못을 박았어요! 한때 당신이 엄한 당책벌을 받았다고 당치 않은 소문을 꾸며내여 퍼뜨린 사람이 누군가 말이예요. 그러던 사람이 요즘은 큰리일판에 나타나 리명산이 큰리의 숲을 위해 큰일을 했다느니, 아마 영웅이 될거라느니, 사람이 좋다느니 하는 낯간지러운 말을 하며 돌아간대요. 당신 귀에 들어가라는 소리예요. 그 말을 들으니 난 불안하기만 해요. 그 사람이 뭘 노리고 갑자기 좋은 사람으로 둔갑했는지 누가 안담!》

리명산은 바짝 약이 오른 안해의 장광설을 듣다 말고 《허허.》하고 속이 빈 웃음을 웃었다.

《당신두 참! 여보, 사람이 좋은 소리 하면 좋게 들어야지 그건 뭐요?》

《글쎄 당신은 그 사람에 대해서 아무렇게나 생각하겠으면 하세요. 난 그 집과 사돈을 맺을수 없어요. 현웅이가 정신이 빠졌지. 처녀가 하두 많은데 그런 집 처녀와 친할건 뭐람.》

리명산은 또 《허허.》하고 웃었다. 웃을수밖에 없었다. 안해의 말에 더 할 소리가 없었다.

생각은 다시금 최영우한테 가닿았다. 류석철이도 류석철이지만 최영우때문에 더욱 가슴이 아프고 괴로운것이였다. 이보우, 영우! 동문 그래선 안돼! 최학세의 피를 받은 동무가… 하동에 내려올 때까지만 해도 동문 어떤 인간이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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