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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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배치를 앞둔 어느 휴식일날 장대식이 김하규를 찾아왔다.
《이보라구. 이젠 연구원생활도 끝났겠다, 우리의 앞날도 의논해보는겸 만경봉에 올라가지 않겠소?》
《좋소, 가기요.》
이들은 앞서거니뒤서거니하면서 푸른 솔잎이 사시장철 설레는 만경봉우에 올랐다. 유유히 흘러가는 맑고푸른 대동강이며 두루섬, 키돋움을 하며 우뚝우뚝 솟아오른 저 멀리 수도의 고층살림집들, 풍요한 대지가 한눈에 안겨왔다. 이 나무, 저 나무 아지마다에서 숲의 주인들인 새들이 자기의 독특한 노래소리로 숲의 서정을 돋구었다.
이들은 솔숲 푸른 곳에 어깨를 맞대고 다정히 앉았다.
《나는 장차 대륙간탄도미싸일까지도 주도하는 그런 포병지휘관이 되고싶소. 전략로케트군 말이요, 허허… 그래 동문 어느 전선으로 나가려고 하오?》
김하규의 물음에 장대식은 심호흡을 한껏 하고나서 웅글진 소리로 대답했다.
《난 대덕산과 헤여지고싶지 않소. 병사시절부터 정이 든 산이여서 그런지 어제밤엔 꿈에까지 나타나질 않겠소. 지금도 대덕산이 어서 오라 손저어부르는것만 같소. 꼭 고향집 뒤동산같다니까. 이보라구, 우리 대덕산쪽에 가서 손을 맞잡고 싸움준비에서 한번 통장훈을 불러보지 않겠소?》
김하규의 얼굴에 어딘가 난감해하는 표정이 짙게 어렸다.
《난 어디에서 지휘관을 하는가 하는것이 문제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오.》
《하긴 그 말도 옳소. 어딜 가도 대덕산을 가슴에 안고살면 되는거요. 하지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대덕산에 가면 더 좋지 않겠소.》
《…》
《실은 동무와 헤여지자니 섭섭해서 그러오.》
이 말은 김하규의 가슴속 묵은 상처를 다쳐놓고야말았다. 불원간 옛 소대 대원이였던 김경국병사의 성근하면서도 고박한 표정이 눈앞에서 얼른거렸다. 감정제대된 후 아직도 소식 한장 없는 그에 대한 원망스러운 마음과 죄스러움이 한데 뒤엉키며 가슴밑바닥에서부터 매운 연기가 피여올랐다.
(경국동무, 동문 왜 아직까지도 편지 한장 없소? 내가 원망스러워 그러는건 아니요? 지금 어떻게 지내고있소?)
그후 장대식은 자기의 소원대로 대덕산부대에 배치되였고 여러 직무를 거쳐 오늘은 군단장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김하규는 대덕산과 멀리 떨어진 포병부대에 배치되였다. 지금은 포병지휘관으로,
둘사이의 마음을 더 가깝게 련결시켜준것은 현재 대덕산부대에서 포병대대장을 하는 김하규의 셋째아들 광훈이였다. 인민군적인 지휘관강습때에 만난 김하규는 장대식의 손을 덥석 잡고 이런 부탁을 했다.
《요즘 우리 광훈이의 머리가 웃단위의 어느 연구소로 소환된다, 어쩐다 하면서 좀 복잡해졌소. 나로서도 뜻밖이요. 아무리 제 자식이라고 해도 제 어머니와 짜고들어 시작된 일이라 생나무 꺾듯 할수도 없고… 그래 우리 광훈이 머리를 깨끗이 가셔주자는건데 장동무가 좀 도와주오.》
김광훈의 연구소문제란 나라의 현실에 발을 든든히 붙이고 우리의 실정에 맞게 군사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킬데 대한
바로 이 창안품을 가지고 평양에 올라간 기회에 집에 들렸다.
포병싸움준비에 절실히 필요한것을 기발하게 착상하여 만들었다는 높은 평가를 받고보니 부모님들에게 자랑하고싶었던것이다.
그런데 아들들이 집에 오면 늘 부드러운 웃음속에 반갑게 맞아주군 하던 어머니가 이날만은 웬일인지 그를 만나자마자 두손을 부여잡고 눈물부터 흘리는것이 아닌가. 김광훈의 기름할사한 얼굴에서 빛나던 두 눈동자는 금시에 휘둥그래졌다.
《어머니, 혹시 집에서 무슨 일이 생긴건 아니예요?》
《일이 생겨도 아주 큰일이 생겼다. 아버지가…》
그는 가슴이 덜컥했다.
《아버지가 어떻게 되였다는거예요?》
로은숙은 다섯아들중에서 그중 인정도 많아 늘 마음의 의지가 되는 셋째에게 지금껏 혼자 속태워오던 가정비밀을 터놓기 시작했다.
《내 보기엔 네 아버지가 심상치 않은 병에 걸린것 같아 그런다. 너무 걱정스러워 병원에 빨리 가서 정확한 진단도 받아보고 치료도 받으라고 아무리 말해도 일이 바쁘다면서 어디 내 말을 듣니?》
《어머니, 그것이 확실하다면 빨리 긴급대책을 세워야 할게 아니예요.》
《말도 말아라. 아버진 집안일을 일체 밖에 들고나가지 못하게 하면서 별일 없다고만 하니, 참… 네 말마따나 아무래도 긴급대책을 세워야 할것 같구나. 한데 아버진 밤낮 나가살다싶이 하지 또 마음속을 터놓고 의논할만한 자식 한명 곁에 없으니 속상한 일이 아니냐. 너라도 꽃같은 며느리를 척 데리고들어와 한지붕아래서 함께 살게 되면 집안에 웃음꽃도 피고 아버지의 병도 더 심해지지 않을듯싶기도 한데 아버지가 어데 말을 듣니. 그저 포밖에 모른단다. 집은 숙박소처럼 여기면서… 아버지의 건강상태만 그렇지 않다면 내가 왜 구태여 너의 발목을 잡는 이런 말을 하겠니.》
김광훈은 어머니의 심정이 순간에 리해되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식들에게 언제 한번 아버지문제를 놓고 그런 마음을 내비친적이 없는 어머니였다. 오죽이나 안타까왔으면 그러랴. 어떻게 할가? 그는 잠시 망설이였다. 하지만 오랜 세월 아버지와 다섯자식의 뒤바라지를 해온 어머니가 많은 고심끝에 한 말이라고 생각하니 자기의 주장을 세울수도 없었다. 어머니도 어머니지만
마침내 그는 결심했다. 아버지의 신상에 그런 일이 생겼다는것을 알게 된 이상 내가 주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자식된 도리를 다하여야 한다. 하다면 어떻게 해야 부모님들가까이 와서 아버지, 어머니를 힘껏 도와줄수 있겠는가 방도를 모색하느라니 피끗 뇌리를 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번 과학기술전람회때 착상이 기발하다는 평가를 받은 창안기재, 이것이 자기의 직무조동문제를 해결하는데서 중요한 계기점으로 될수도 있다는 판단이였다. 중학교시절 담임선생님의 아들이고 지금은 아버지와 사업상 밀접한 관계속에 있는 연구소소장을 찾아가 가정의 딱해진 사정을 내놓고 이야기해보자. 그 역시 내가 이번에 내놓은 창안품의 가치에 대하여 심사성원으로 나온 기회에 높이 평가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지금까지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가정문제에 깊숙이 몸을 잠그어보자고 작정하니 왜서인지 마음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만약 일이 그렇게 되는 경우 나는 정든 대덕산과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불쑥 치밀어올랐던것이다. 최전연에 거연히 솟아있는 대덕산의 웅자가 저도 모르게 우렷이 떠오르며 언제인가 중대에 (그때는 중대장이였다.) 훈련지도로 내려온 군단장 장대식이 오락회에 참가하여 병사들앞에서 읊던 즉흥시의 한구절이 가슴을 쳤다.
…
대덕산 너는 크지 않아도
대덕산 너는 높지 않아도
덕으로 크고큰 산
뜻으로 높고높은 산
그것이 옛 모습과 다른 오늘의 대덕산
내 그래서 너를 가슴에 안고사노라
그 덕으로 병사들을 사랑하고
그 뜻으로 조선의 총대를
일당백으로 강화해야 하기에…
김광훈은 이 즉흥시가 마음에 들어서 수첩을 꺼내여 제꺽 써넣었다.
그의 아버지 김하규는 자식들을 오늘의 유격대의 오형제로 키우겠다는 맹세의 편지를
바로 그 전화가 온 날 아버지와 아들사이에는 이런 말이 오갔다.
《아버지, 얼마전에 군단장동지가 훈련지도차로 우리 중대에 내려왔댔습니다. 이날 군단장동진 훈련쉴참에 중대오락회에 참가하여 병사들앞에서 대덕산에 대한 즉흥시까지 읊었어요. 그 시가 내 마음에 들어서 수첩에 적어두기까지 했습니다.》
《어떤 시인지 나도 한번 들어보자꾸나.》
김광훈은 송수화기를 귀가에 댄채 수첩을 펼쳐들고 제법 감정까지 잡아가며 그 즉흥시를 읊었다. 김하규는 천천히 다시 읊어보라고 하면서 자기 수첩에 적어두었다.
그 즉흥시구절이 지금 왜 다시 생각날가? 대덕산과 쉽게 떨어지기 힘들어하는 나의 량심상 가책때문에?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 이제는 생활조건도 보다 좋은 곳에서 군사복무를 하고싶은 생각이 마음속 한구석에 자리잡고있었던것은 아닐가. 그것이 가정문제와 부딪치자 어쩔수 없는것처럼 생각을 돌리게 한것이 아닐가. 어딘가 떳떳치 못한 마음속에 자기로서의 정당한 주장을 세워보며 연구소소장을 찾아가는 그의 마음은 무거웠다. 그러나 연구소소장이 자기를 반갑게 맞아주며 하는 말은 그의 생각을 더 확고하게 해주었다. 그는 일밖에 모르는 아버지에 대하여 말해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