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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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위해주는 마음은 꼭같이 열렬했으나 말투와 인상, 성격은 판판 달랐다. 장대식이 훈련을 집행할 때 보면 눈에서 불꽃이 탁탁 튕겨나오는것 같았다. 그러나 일상생활에 들어가면 매우 익살적이다. 그와 병사들사이에는 몇마디말만 오가도 배를 그러쥐고돌아가는 웃음판이 터진다.

그러나 김하규의 너부죽한 얼굴, 우묵한 두눈가에는 항상 성이 난듯한 기운이 풍겼다. 부하들은 그의 추궁보다도 눈길을 더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의 눈을 자세히 관찰해보느라면 매우 리지적이라는것을 알수 있다. 이날도 두사람은 만나자마자 가슴속 심정을 주고받으며 달렸다.

《그동안 건강했소?》

장대식이 빙그레 웃으며 먼저 말을 건넸다.

《물론, 동문?》

《나 말인가? 코감기란놈이 한번 덤벼들려다가 이 장대식의 36번공격앞에 쫓겨가고말았소.》

《36번공격이라는건 도대체 뭐요?》

《이를테면 코감기를 떼는 치료방법이요. 자, 소대병사들을 잘 돌봐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범동작을 할테니 보라구. 이렇게 코옆 좌우를 서른여섯번, 이렇게 코밑을 서른여섯번 량손가락으로 피부가 벗겨지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비벼주면 막혔던 코구멍이 항- 하고 열리오. 코감기도 쫓겨가고. 병사들이 코감기에 걸리면 약부터 찾지 말고 36번공격을 해보란말이요.》

《고맙소, 방법을 대주어서 …》

《한가지 묻기요. 보병은 〈11호차〉밖에 믿을것이 없지만 포병이야 포견인차가 있는데 무장강행군훈련은 왜 시키면서 그러오?》

장대식은 넌지시 김하규의 속을 중떠보았다.

《모르는 소리. 싸움마당에서 포견인차가 파괴되면 어떻게 하겠소. 내가 업고 뛰겠는가?》

역시 김하규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얼마후에 진행된 훈련판정에서 두 소대의 성적은 신통히도 꼭같아졌다. 련대참모부에서는 판정순위를 결정하기가 참 딱하게 되였다. 결국 판정성적이 꼭같은 소대가 두개 나오는가부다 했는데, 웬걸! 경쟁총화날 뜻밖에도 김하규소속소대의 모든 성과가 무효로 선포되고 장대식이 박수갈채속에 순회우승기를 수여받았다. 일인즉 판정총화를 하루 앞두고 포병중대의 포진지공사장에서 락반사고가 일어났던것이다. 판정요강에는 자그마한 사고라도 내면 모든 성과가 무효로 된다는 특별항목이 있었으니 별수 없었다. 그 내막을 전혀 몰랐던 장대식은 판정총화가 끝나자 어깨가 으쓱해서 운동장 한쪽구석에 서있는 김하규를 찾아갔다.

《미안하게 됐소.》

아무런 반응도 없기에 김하규의 곁에 다가가던 장대식은 그만 눈을 흡떴다. 그의 우묵한 두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주르르 흘러내리고있었던것이다. 이게 뭐야, 사내대장부가 경쟁에서 졌다고 눈물까지 흘리면서 그래. 졸장부로군! 장대식은 그의 어깨우에 가마뚜껑같은 손을 척 얹으며 시까슬렀다.

《다음번 판정에서 앞서면 될걸 가지고 뭘 이러오? 처녀들처럼 찔찔 짜면서…》

별안간 김하규가 눈물을 흘리던 사람같지 않게 우묵한 두눈을 흡떴다.

《동문 내가 판정에서 진것때문에 운다고 생각하는가?》

《그럼 뭐요?》

《그만하오. 실은 우리 소대의 한 병사가 두다리를 자르게 되여서 그러오. 김경국이라고, 아주 훌륭한 병사였는데…》

장대식은 가슴이 덜컥하고 무너져내리는것 같은감을 느끼며 다우쳐 물었다.

《대관절 어떻게 되여 그런 일이 벌어졌소?》

김하규는 온몸이 무너지듯이 땅바닥에 펄썩 주저앉았다. 또다시 솟구쳐오르는 눈물을 팔소매로 쑥 문대며 자초지종을 이어나갔다.

…그날 김하규는 포진지공사장에서 소대병사들과 함께 광차에 버럭을 퍼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광차, 두광차… 젊은 혈기라 뒤잔등이 땀에 푹 젖고 얼굴이 땀범벅이 되였어도 힘든줄을 모르고 병사들보다 곱으로 삽질을 해댔다. 예리한 삽날과 버럭사이에서 불꽃이 튕겼다.

《피하라-》

벼락치듯 울리는 소리가 갑자기 등뒤에서 났다. 이와 동시에 누군가가 몸을 날려 김하규와 그옆에서 삽질을 하던 탄약수를 콱 밀쳤다. 이때 쾅! 소리와 함께 《천리마》호뜨락또르의 큰 바퀴만 한 돌이 천반에서 내려앉으며 먼지가 풀썩 일었다. 뒤로 벌렁 나자빠졌던 그는 《경국이가 깔렸다-》라는 누군가의 소리에 등골이 오싹했다. 몸을 일으키니 자기를 밀어낸 김경국이의 두다리가 그 큰바위밑에 깔린 상태로 있는것이 아닌가. 소대전원이 와 달라붙어 바위돌을 굴려냈을 때 병사의 두다리는 차마 눈을 뜨고 볼수 없을 정도로 되였다. 구급차에 실려 군단병원으로 후송되여간 김경국은 두다리를 자르게 되였다.…

김하규는 한손으로 가슴을 그냥 텅텅 두드렸다.

《김경국병사는 외아들이요. 아버지도 없소. 어머니가 홀로 살며 아들이 잘되기를 바라는데 두다리를 자르면 어떻게 한다는거요. 장차 그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아무 대답도 못한채 무거운 마음을 안고 중대로 돌아온 장대식은 휴식장의자에 앉아 머리를 싸쥐였다. 김하규를 어떻게 위안해주었으면 좋을지 방도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바로 이때 묵직한 배낭을 진 중대사관장 리국철이 장대식이앞에 불쑥 나타났다.

《소대장동지! 사관장 리국철 만날수 있습니까?》

《왜 그러오?》

《대대장동지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소대장동지를 찾아가라고 해서 왔습니다.》

《?》

《대대장동진 포병중대에서 난 사고를 두고 김하규소대장동지와 가까운 사이인 소대장동지 역시 그 누구보다도 가슴아파할거라고 하면서… 병원에 있는 병사를 찾아가 위안해주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중대성의로 뭘 좀 준비했는데 어서 떠납시다.》

장대식은 전우에 대한 의리, 병사들에 대한 사랑이 남달리 깊은 대대장 현진국이 진정 고마왔다. 중대의 살림살이를 부대적으로 제일 알뜰하게 꾸려 군보에도 소개되고 중대에서 이런 일이 제기될 때마다 한몫 맡아주군 하는 중대사관장 리국철이 역시 더할나위없이 고마왔다. 이렇게 되여 세사람은 병원에 찾아갔고 수술이 진행될 때에는 물론 끝난 후에도 병사의 침대곁에 앉아 긴긴밤을 함께 지새우며 괴로움을 함께 나누었다.

얼마후 김하규는 다른 부대로 조동되게 되였다. 새로운 부대로 떠나던 날 김하규는 《일당백》구호바위앞에 오래도록 서있었다.

참나무의 설레임소리가 류다른 정회를 불러일으켰다.

이때 장대식이 숨을 헐떡거리며 곁으로 다가왔다.

《허, 하마트면 떠나는걸 보지 못할번 했군.》

《바쁠텐데 뭘 오기까지 하면서…》

뭇새들의 정다운 지저귐소리, 참나무숲의 다정한 설레임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우린 저 구호바위에 처음으로 〈일당백〉이라고 글을 써놓을 때에도 그리고 우리와 사상이 다른자가 와서 저 구호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시비질을 하며 당장 지우라고 큰소리를 쳤을 때에도 오히려 정대로 글을 쪼아박으며 늘 함께 있었지.》

장대식의 생각깊은 말에 김하규가 큰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뿐인가. 수령님께서 제시해주신 이 구호를 관철하는 길에서도 우린 늘 련대의 쌍차가 되군 하였지. 소중한 그 추억을 다 남겨놓고 막상 떠나자니 섭섭하구만.》

《대덕산에서 정 마음이 떨어지지 않으면 상부에 다시 제기해보는것이 어때? 그냥 있게 해달라고…》

김하규는 도리질을 했다.

《군사복무야 제 마음내키는대로 하는게 아니지. 그러나 맹세하오. 대덕산부대에서 복무하다 떠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관례가 다 그러하듯이 나 역시 몸은 가도 대덕산만은 이 가슴에 고이 안고가겠다는것을 말이요.》

장대식은 김하규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게 중요한거요. 어딜가나 〈일당백〉구호가 탄생한 첫기슭에 우리가 서있었다는것, 때문에 싸움준비를 다그치는데서 그 누구보다도 선봉에 서야 한다는 그 자각을… 그래서 난 군복을 입고있는 전기간 이 대덕산곁을 떠나지 않기로 결심했소. 동무처럼 여길 부득불 떠나가야 할 사람도 있지만 끝까지 남아 수령님과 장군님의 뜻을 관철해야 할것이 아닌가.》

이때 등뒤에서 발자욱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대대장 현진국이 사관장 리국철이와 함께 걸어오고있었다.

《동무들이 여기에 있을줄 알았소. 허허허… 그러고보면 오늘은 대덕산을 떠나가는 사람들이 구호바위앞에 모이는 날 같구만. 리국철동무가 제대명령을 받았소. 그리고 나도 인차 대덕산을 떠나게 되오.》

그러는 현진국의 두눈가에도 김하규처럼 대덕산과 헤여지기 아쉬워하는 감정이 짙게 내비치고있었다.

《김하규동무, 난 동무의 직속상관은 아니지만 상급으로서 그리고 우리 대대의 장대식동무와 쌍차를 이루며 싸움준비를 다그치기 위해 아글타글 노력하던 전우라는 의미에서 헤여지기 전에 한가지만 부탁하고싶소. 나도 그렇고 동무도 그렇고 이 대덕산을 항상 잊지 말고 삽시다.》

《대대장동지의 그 말을 잊지 않겠습니다.》

김하규의 대답에 현진국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자, 그럼 먼저 떠나오. 난 리국철동무와 여기서 좀 할 얘기가 있소.》

현진국은 김하규네를 바래워준 다음 리국철이와 함께 구호바위앞에서 한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후 세월의 흐름은 장대식과 김하규에게 또다시 인생의 사귐점을 주었다.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연구원(당시)에서 만나 공부를 함께 하게 되였던것이다. 상봉의 그날 그밤, 그들은 침실에 앉아 흘러간 옛시절의 추억을 더듬으며 자정이 넘어가는줄도 몰랐다.

《이렇게 만나고보니 우린 서로 멀리 떨어져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속에 살아온셈이구만.》

사람의 기질은 상대적으로 공고하게 굳어져있으며 일생동안 잘 변하지도 않는 법이다. 남의 성과를 야박하게 깎아내리는것이 아니라 자기의 실력과 실적으로 당당히 앞서려는 장대식과 김하규의 경쟁의욕은 연구원에서 함께 공부를 하는 과정에 또다시 눈에 띄울정도로 맹렬해졌다. 싸움준비에서 남보다 앞서나가려는 의욕과 의지가 없다면 어떻게 앞날의 훌륭한 총대의 기둥들로 자랄수 있겠는가.

장대식이 김정일동지께서 밝혀주신 군사로작 《보병은 행군을 잘해야 한다》의 내용을 하루동안에 완전히 통달하는 시각이면 김하규는 《포를 잘 쏘는 지휘관이 진짜싸움군이다》를 뜬금으로 내리외워 교원들을 감동시켰다. 보병과 포병은 륙군을 이루는 쌍기둥이라고도 볼수 있다. 이들은 각기 자기 병종은 물론 다른 병종, 군종들을 포함한 여러 분야의 폭넓은 지식을 소유하기 위한 노력을 끝없이 기울였다. 둘다 최우등의 성적속에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연구원을 졸업하는것으로 교정에서의 이들의 경쟁은 일단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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