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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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달리 허우대가 크고 우람진 장대식은 김정일동지의 말씀이 끝났으나 송수화기를 쥔채 그 자리에 조각상처럼 굳어져있었다.

전방지휘소안의 작전탁우에 켜놓은 두대의 초불이 가물거리며 흥분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둥그런 얼굴, 짙은 눈섭, 크고 억실억실한 눈을 어렴풋이 비쳤다. 온몸에 어린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았다. 아직도 장군님의 따뜻한 음성이 슴배여있는 송수화기를 진귀한 보석처럼 소중히 매만지던 그는 한참만에야 제 위치에 놓았다. 생각이 절로 깊어진다.

이 어려운 때 일당백의 고향에 대한 장군님의 믿음과 기대는 얼마나 큰가. 눈덮인 대덕산에 오르시였던 수령님에 대한 생각으로 하여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시던 그이의 절절한 음성이 지금도 귀가에서 계속 울리는것 같았다.

(장군님께서는 대덕산을 놓고 싸움준비각도에서 그리도 깊이 생각하시는데… 나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과연 일당백고향의 주인노릇을 제대로 해왔다고 볼수 있는가.)

얼굴이 뜨거웠다. 진정 뜨거웠다.

력사는 후대가 평가한다고 했다. 자위적군사력을 백방으로 강화해오시는 길에 쌓아올리신 김일성동지의 군령도업적중에서 대덕산지구에 대한 4일간에 걸치는 현지지도는 그 의의가 매우 크다. 이것을 그 누구보다도 깊이 절감한 장대식이기에 삶의 위치를 대덕산에 정하고 젊은 소대장시절부터 오늘까지 그 뜻을 관철하고저 애써오고있는것이다.

장대식에게 있어서 한가지 특이한것은 비록 직무는 여러번 달라졌어도 부대위치가 대덕산을 중심으로 하여 빙빙 돈것이였다. 물론 대덕산과 멀리 떨어져 다른 군단에 가서 복무한 년한이 전혀 없는것도 아니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항상 일당백의 고향이 간직되여있었다. 그 고향을 잊지 못해 애써 노력하여 다시 되돌아오기를 그 몇번… 이 과정에 자기도 시대앞에 뭔가 해놓았다는 어엿한 자부심도 가지고있었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난관이 조성되자 그것을 뚫고나갈 방책을 찾지 못하다나니 우리의 총대를 일당백으로 더욱 강화할수 있는 불길을 대덕산에서부터 지펴올릴 결심을 하고계시는 장군님께 힘을 드릴 말씀 한마디 제대로 올리지 못했다.

대덕산을 가까이 하고있다고 하여 일당백정신이 더 강하거나 싸움준비에서 남보다 앞서는것은 아니다. 그렇다. 제구실을 해야 그 영예도 빛나는 법이다. 정신을 차리자. 이제라도 새로운 자세로 출발하자.

10분후 장대식은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추고 정렬한 참모부장령, 군관들앞에 나섰다.

밤하늘에는 은하수가 흐르고있었다. 장대식은 은하수 비껴간 저 멀리 평양하늘쪽을 잠시 바라보다가 돌아서며 흥분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동무들! 나는 방금전에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걸어오신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이께서는 대덕산중대 병사들의 안부까지 물으시였습니다.》

장령, 군관들속에서 감격으로 설레이는 소리가 났다. 장대식은 이윽토록 그들을 둘러보다가 자책어린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나는 그이의 전화를 받고서야 우리 군단이 오늘의 고난과 역경앞에서 전군의 기발이 되여 날리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있었다는것을 느꼈습니다. 가슴아픈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이렇게 살수 없는 우리들입니다. 장군님께서 치신 번개에 어떤 뢰성으로 화답하겠는가, 그 대답이 일당백고향의 주인들인 우리의 심장에서 울려나와야 합니다.

지금 이 시각부터 래일 아침까지 이 어려운 때 장군님께서 기다리시는 대덕산의 뢰성이 어떤것으로 되여야 하겠는가, 싸움준비를 중심에 놓고 그 불씨를 찾아봅시다. 부군단장동무!》

《옛!》

눈이 어글어글한 류경두소장이 거쿨진 몸을 빳빳이 세우며 기운차게 대답했다.

《아침 6시까지 제기된 의견들을 모두 종합하여가지고 나에게 오시오.》

《알았습니다.》

지휘관들이 헤여지자 장대식은 눈앞에 안겨드는 거뭇거뭇한 산봉우리들을 둘러보며 천천히 걸었다. 이밤따라 생각이 깊어지며 대덕산과 더불어 흘러온 나날들이 파도치듯 흘러왔다.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이때 나의 옛 대대장과 김하규동문 요즘 어떻게 일하고있을가?


…33년전 2월의 그날 련대지휘부에서 돌아온 1대대장 현진국은 대대관하의 군관들을 사무실에 모여놓고 사업수첩을 펼쳤다.

《군관동무들! 오늘 우리는 대덕산과 더불어 〈일당백〉구호가 태여난 력사의 첫기슭에서 전군의 본보기부대가 되여야 할 가장 엄숙한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련대지휘부에서는 진지한 토의끝에 대덕산을 방어에서도 공격에서도 전군의 본보기가 될수 있게 준비시킬데 대하여 결정했습니다.

동시에 〈일당백〉구호를 관철하기 위한 소대별판정을 조직하기로 했습니다. 이 판정에서 가장 우수한 소대에는 순회우승기가 수여되고 백두산답사를 가게 되는 영예를 지니게 됩니다.》

정치, 대렬, 체육, 사격, 전술, 진지의 요새화 등 판정요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난 현진국은 《장대식소대장동무만 남고 다들 돌아가시오.》하고 말했다.

사무실안이 조용해지자 그는 장대식의 둥글넙적한 얼굴을 미덥게 바라보며 자기의 계획을 터놓았다.

《소대장동무! 난 어떻게든 이번 판정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은 소대가 우리 대대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소. 난 그 적임자로 남달리 손탁이 센 동무를 점찍었소. 그 무엇을 해도 동무가 속한 소대가 대대에서 늘 돌격대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소. 이번 판정에서야 어떻게든 포병중대의 김하규소대장을 앞서야지. 전번 중대별축구경기때 진 봉창을 해야 할게 아니요?》

《알았습니다.》

장대식을 돌려보내고난 현진국은 이튿날부터 다른 대대, 특히 련대 직속포병중대에서 그 준비를 어떻게 하는가 하는것을 알아내는데도 은근히 신경을 도사렸다. 정찰병을 파견하고 련대참모부의 판정성원들을 슬슬 구슬려보기도 했다. 이미 예견했던바그대로 포병중대의 2소대장 김하규가 남달리 극성을 부린다는 정보가 현진국의 귀에 날아들었다.

곧 장대식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늘 봐야 동무의 첫번째 경쟁대상자는 잠을 자지 않고있소.》

《대대장동지! 이 장대식인 뭐 잠을 자는줄 압니까. 그가 뛰면 이 장대식이는 날겠습니다.》

여간만 드세지 않은 장대식이 숨을 거칠게 톺아쉬는 소리가 수화기의 진동판을 울렸다.

《어디 믿어보기요.》

그날도 장대식은 무장강행군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소대의 앞장에 서서 대덕산의 험한 구배길을 따라 숨을 헉헉 몰아쉬며 달려올라가고있었다.

《속도 빨리- 속도 빨리!》

소대의 뒤를 돌아보며 연방 강한 요구를 들이대는 장대식의 기상은 자못 위엄스러웠다.

맵짠 하늬바람이 불어오자 길옆 좌우에 촘촘히 자라오른 잡관목들, 듬성듬성 서있는 소나무들 그리고 산봉우리의 정점에 무성히 자란 참나무림이 쏴- 소릴 지르며 설레인다.

《어-시원하군!》

장대식은 군복저고리앞섶을 당겼다놨다 하며 바람을 일쿠었다. 보병들이 늘 긍지롭게 말하는 《11호차》의 《가속답판》을 힘껏 밟으며 내처 달리다나니 《기관》이 몹시 달아올랐던것이다.

대덕산밑에서부터 정점까지는 서른세굽이 급한 곡선길로 이루어져있다. 경사도 매우 급하다. 장대식이 소대와 함께 여섯번째 산굽이를 돌아선 찰나였다. 부리부리한 그의 두눈엔 가벼운 웃음이 실렸다. 련대직속 포병중대의 2소대장 김하규가 소대와 함께 달려가는 뒤모습이 바라보였던것이다. 강한 경쟁의욕이 살아난 장대식은 웅글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포병! 같이 가자구.》

장대식이보다 키는 좀 작아도 몸매다부진 김하규는 뒤를 힐끔 돌아보더니 의미깊은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빨리 따라오라구.》

보병과 포병, 병종은 서로 달라도 이들은 직무가 같고 나이도 동갑이여서인지, 아니면 싸움준비를 위한 남달리 높은 지향의 공통점때문인지 생활에 들어가서는 네것내것이 따로 없고 걸린것이 있으면 제일처럼 서로 도와주는 남달리 자별한 사이였어도 훈련판정이나 중대별체육경기를 할 때에는 두눈을 부릅뜨고 승벽을 다투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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