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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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다. 감빛노을이 최고사령부창문유리를 발가우리하게 물들이고있었다.

전선에서 돌아오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래일군들의 문건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몸소 콤퓨터에 마주앉아 세계정치군사정세를 분석종합하기 시작하시였다. 그이의 손은 마우스에서 건반으로, 건반우에서 마우스로 자주 오갔고 예리한 시선은 세계를 내다보는 창문이라고 할수 있는 콤퓨터영상화면에서 번쩍이고있었다.

콤퓨터화면으로는 최근 미제의 군사적움직임과 관련된 자료들이 련이어 흘러갔다. 승리와 패배는 한발자국차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승리의 한발자국이 쉽게 열린 례는 없다.

김정일동지의 사색은 흐르는 화면과 함께 끝없이 깊어지시였다.

조미사이에는 핵문제해결을 위한 기본합의문이 채택되였고 경수로협상도 2003년까지를 기한으로 하여 최종타결되였다. 김정일동지께 클린톤은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으며 핵무기로 조선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담보서한까지 보내왔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미제는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대조선적대시정책을 버리지 않고 정세를 전쟁전야에로 몰아가면서 우리를 심히 자극하고있다. 내외여론은 미군이 남조선에서 철거하기를 바라는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클린톤은 남조선강점 미군의 무력을 더욱 현대화할데 대하여 떠들었고 미국방성은 남조선강점 미군에 첨단직승기, 땅크, 다목적이동차량 등 방대한 군사장비를 공급할것이라고 공개했다. 게다가 미제와 그 주구 남조선괴뢰들은 페르샤만전쟁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 분쟁지역들에서 사용하던 최신무기와 장비들을 남조선에 미친듯이 끌어들이고있다. 최근에만도 미국으로부터 최신형이라고 하는 공중대공중미싸일 《암람》200여기, 공중대지상미싸일 《에이지엠-88비》136기, 해상대해상미싸일 《하푼》32기 그리고 《패트리오트》미싸일 192기와 그에 따르는 발사대, 《스팅거》미싸일 84기를 끌어들여 배비하였다. 한마디로 남조선은 미싸일구입에서 《세계선수권》을 보유했다. 오죽했으면 《세계무기수입국》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겠는가.

남조선괴뢰들은 이것도 성차지 않아 다른 한쪽으로는 《원자로개발》이라는 이름을 내걸며 핵무기개발을 비밀리에 계속 다그치고있다. 최근 중수로의 개발은 그 일환이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제의 수중에는 《토마호크》를 비롯한 100여종에 달하는 현대적인 무기들이 개발되여 새로운 전쟁마당을 기다리고있다.

지금 가장 큰 위험은 뭔가? 미제가 1996년을 《3. 3. 3붕괴설》의 마지막해로, 특히 다가오는 올해 5월을 이 행성우에서 사회주의조선을 완전질식시킬수 있는 마지막달로 그 날자까지 정해놓은 다음 《5월위기설》을 떠들어대며 년초부터 《독수리》, 《을지》, 《호국96》 등 모험적인 전쟁연습의 꼬리를 연방 물고 넘어오다 북침공격으로 불시에 넘어갈 기회만을 호시탐탐 엿보는것이였다.

지금은 3월, 과연 두달후의 조선이 어떻게 될것인가?

뗑뗑… 인민대학습당에서 울려오는 종소리를 들으시고서야 불원간 온몸이 뻐근하고 등이 약간 시린감을 느끼시며 콤퓨터앞에서 몸을 일으키시였다. 그이께서는 무거운 마음으로 집무실안을 거니시다가 천천히 창가로 다가가시였다.

피로가 몰린 시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창문밖 키높이 자란 황철나무우듬지에 튼 까치둥우리로 향하고있었다. 삭정이 몇가치를 나무가지사이에 어겨놓은것을 보신것이 엊그제같은데 벌써 둥지의 모양새를 한절반 갖추었다. 까만 털저고리에 흰털조끼를 받쳐입은 한쌍의 까치가 둥지옆 잔가지에 마주앉아 초록색윤기가 도는 꽁지를 달싹거리며 서로 애무해주고있다.

별안간 흉물스럽게 생긴 까마귀가 무슨 목적에서인지 까치들의 보금자리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든다. 위험을 느낀 두마리의 까치가 털을 곤두세우고 까마귀를 향해 육박한다. 한마리는 정면, 다른 한마리는 측면으로… 세마리가 한데 맞붙었다. 서로 부리질을 하며 맹렬히 싸운다. 사생결단으로 맞서는 까치들에게 물어뜯기운 까마귀의 몸에서 깃털이 빠져 바람에 날려간다. 마침내 까마귀는 까치들의 드센 공격앞에 더 견디지 못하고 달아뺐다. 했어도 그냥 자지러지게 울어대며 까마귀의 뒤를 추격하는 두마리의 까치…

그이의 눈가에 가벼운 미소가 어렸다. 새들의 싸움이 까치들의 승리로 끝났던것이다.

잠간 피로를 푸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창가에서 돌아서시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문득 집무실 한쪽에 놓여있는 지구의가 그이의 눈길을 끌었다. 콤퓨터에서 보신 자료들이 생생히 떠오른다. 지구의는 조용히 놓여있지만 실지 이 행성은 지금 얼마나 소란스러운가 하는 생각이 드시였다. 다른 지역은 말고도 우리 나라를 둘러싸고 조미간에 얼마나 복잡한 정세가 흐르고있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두팔을 엇결으시고 창턱에 기대서서 지구의를 이윽히 바라보시였다.

세계의 시선은 지금 조선의 5월에 초점을 맞추고있었다.

불은 불로 다스려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호전적이면서도 위선적인 미제가 안팎이 다르게 책동하는것을 꿰뚫어보신 김정일동지께서는조선인민군 총참모부에 이미 미제의 《5월위기설》을 저지파탄시키기 위한 군사적대응책을 세울데 대하여 지시하시였다. 이제 30분만 있으면 최고사령부작전지휘성원인 현진국대장이 총참모부에서 세운 그 대응책을 가지고 최고사령부로 들어설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탁상시계를 얼핏 보시고는 집무탁과 마주하시였다. 현진국이 도착하기 전까지 매듭지어야 할 문서들을 하나하나 처리해나가시였다. 간단한 문건은 단 몇초동안에, 그런가 하면 어떤 대책보고는 한번 읽어보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여 다시 한줄한줄 신중히 따져보신 다음에야 자신의의견을 써넣으시였다.

그러시던중 정무원에서 나라의 전반적인 경제실태를 장악하여 올린 자료를 보시자 마음은 천근만근으로 무거워지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안경을 벗어 한쪽옆에 놓고 의자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깊은 사색에 잠겨드셨다. 마음같아서는 경제부문에 투자를 아끼고싶지 않았지만 국가의 전반적자금사정이 긴장하니 가슴이 미여지는것만 같으시였다. 미제를 이 땅에서 완전히 몰아내지 않고서는 어느 하루도 마음편안한 날이 있을수 없다. 군사적공세는 그만두고라도 경제제재의 죄악에 찬 력사는 미제국주의의 본성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다. 조선침략전쟁을 일으킨 3일후인 1950년 6월 28일 《수출관리법》에 의한 수출금지로 조선에 대한 경제제재의 첫막을 열어놓은 미제는 그후부터 별의별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우리 나라가 대외시장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옭아맸고 서방나라들에 압력을 가하여 무역거래까지 막아나섰다.

미제는 이것도 성차지 않아 조미사이의 기본합의문채택시 북조선에 대한 경제봉쇄정책을 완화하겠다는 침발린 약속을 하고도 완화는커녕 뒤로 돌아서기가 바쁘게 고립압살의 도수를 몇갑절 더 높였다. 엎친데 덮친다고 여기에 폭우, 왕가물, 태풍, 해일, 랭해 등 련이어 겹쳐드는 자연재해로 나라의 형편은 매우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새해공동사설에서 고난의 행군정신으로 오늘의 준엄한 난국을 헤쳐나가자고 호소한 올해 1996년은 우리 당력사에서 가장 힘겨운 시련의 해라고도 볼수 있다. 이 어려운 속에서도 우리는 래일의 경제를 일떠세울 준비를 하고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1995년 4월 29일 련하기계에 활력을 부어주기 위해 찾아가시던 그 봄날을 문득 상기하시였다. 그렇다. 일당백의 고향이 대덕산이고 천리마의 고향이 강선이라면 CNC의 고향은 자강도로 보아야 할것이다. 극소형콤퓨터의 출현, 그뒤를 인차 따른 CNC공작기계의 새로운 시대 …세계적으로 CNC에 대하여 머리가 돌아가고 초점이 쏠리기 시작한것은 1980년대말 1990년대초사이였다. 아직은 우리 나라의 그 어느 과학자도 세계의 이 흐름을 감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수령님과 함께 우리 나라 공작기계의 밝은 래일을 이미 내다보신 김정일동지께서는 1992년도에 벌써 김책공업종합대학 연구사들을 축으로 하는 련하기계개발집단을 무어주시였다. 그 집단이 만들어낸 공작기계를 누구의 설명도 없이 대뜸 알아보시고 《이것이 CNC가 아닌가?》고 물으신 그날 동행한 일군들은 대답을 올리지 못했다. CNC라는 말자체를 처음으로 들었던것이다.

1982년도에 벌써 수자식공작기계를 만든 우리의 로동계급이 발전된 몇개 나라들에서만 만들어내던 첨단수준의 CNC기계설비를 만들어낸것은 기적이였다. 그날에 보아주신 두대의 어미기계가 빨리 새끼를 치게 하는데서 걸린것은 자금이였다.

빨리 경제를 활성화해야만 하였다. 이 역경을 뚫고나가려는 경제부문 일군들의 의지는 과연 어떠한가? 문건에는 뚜렷한 대책안이 없다.

왜 그런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의자등받이에서 몸을 떼며 송수화기를 드시였다. 때를 같이하여 문기척소리가 났다.

서기가 들어섰다. 그이께서 송수화기를 손에 잡으신것을 띄여본 서기의 몸은 주춤 굳어졌다.

《현진국대장이 도착했소?》

그이께서는 송수화기를 드신채 서기에게 물으시였다.

《방금 도착했습니다.》

《어서 들어오라고 하시오.》

《알았습니다.》

서기가 돌아서나가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송수화기를 귀가에 가져가시였다. 교환수에게 얼마전에 김책제철련합기업소에 내려갔다온 정무원의 리국철을 찾으라고 이르시였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중키에 몸이 보기 좋게 난 현진국대장이 집무실에 들어서면서 그이께 절도있게 도착보고를 드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오른손에 쥐였던 송수화기를 왼손에 바꾸어잡고 따뜻한 답례를 보내시며 미소하셨다.

《잠간만 앉아서 기다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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