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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회

2


《늦었군요.》

로은숙은 자정이 퍼그나 지나서야 집에 들어서는 포병지휘관 김하규의 손에서 가방을 받으며 갸름한 얼굴에 살뜰한 웃음을 담았다. 50대중엽에 이른 로은숙은 아들 다섯을 낳아키웠지만 아직도 처녀시절의 미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김하규는 늘 그러하듯 안해의 부드러운 웃음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것으로 응대를 하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군복을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나들문쪽을 흘끔 살피며 얼른 안해가 놓고 나간 가방에서 약봉투를 꺼냈다. 알약 서너알을 제꺽 입안에 넣고 보온병의 물을 고뿌에 따라마시던 그는 문득 이상한 예감을 받고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는 몸을 흠칫했다.

언제 문을 열었는지 안해가 문가에 서서 자기 행동을 지켜보고있었던것이다.

로은숙의 올롱해진 눈엔 놀라움이 가득 어려있었다.

김하규는 모르는척 머리를 뒤로 젖히며 고뿌의 물을 다 넘겼다. 그리고는 고뿌를 제 위치에 놓으며 퉁명스레 물었다.

《뭘 그렇게 보우?》

《방금 뭘 잡수셨어요?》

《물을 마셨소, 왜?》

김하규의 태연한 대답…

《아니예요. 물을 마시기 전에 뭔가 하얀것을 잡수셨어요. 제 눈으로 똑똑히 본걸요.》

김하규의 너부죽한 얼굴에 당황해하는 빛이 약간 어렸다.

《눈두 밝다. 콩사탕을 먹었소.》

《콩사탕? 인민군장령이 제 안해도 모르게 콩사탕을 잡숫는다는게 말이 돼요. 약이지요?》

《콩사탕이라는데…》

김하규가 짜증까지 내자 로은숙의 얼굴에는 섭섭해하는 감정이 짙게 내비치였다.

지금까지 수십년세월 함께 생활해오면서 남편이 가정에 들어와 자기 모르는 약을 쓴적은 한번도 없었던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럼 나도 콩사탕을 좀 먹자요.》

로은숙은 씽하니 들어와 책상서랍을 열었다.

아무리 뒤져도 약봉투들이 보이지 않는다. 로은숙이 어디에 약을 감추었을가 하는듯 여기저기 살피다가 걸상옆에 놓은 가방을 들려는데 김하규가 먼저 손으로 막았다.

《이거 왜 자꾸 이러는거요?》

《무슨 약을 저 몰래 잡수셨어요?》

안해의 불의적인 역습에 그는 할수 없는듯 내뱉았다.

《감기약이요.》

《감기약이라니요? 집에 좋은 감기약이 있는데 그걸 잡수실것이지 하필이면… 어디서 생긴 약이예요?》

《병원에서 탄거요. 몸살이 나드라니…》

《몸살이요? 당신이 몸살이 나는것때문에 병원에 간다는게 믿어지지 않아요. 몇시에 갔댔어요?》

로은숙은 점점 앞뒤가 맞지 않게 말을 하는 남편이 이상스러워서 계속 캐물었다.

김하규는 그만 버럭 성을 냈다.

《왜 자꾸 꼬치꼬치 따지면서 그러는거요? 시끄럽게…》

《당신의 말에 진실성이 없으니까 그러지요.》

《진실성이구 뭐구 그런데 신경을 쓰지 말고 어서 저녁밥이나 들여오우. 새벽에 먼길을 떠나자면 빨리 먹고 한잠 자야 할게 아니요. 새벽 4시에 나를 꼭 깨워야 하오.》

로은숙은 민망스러운듯 이윽히 남편을 쳐다보았다. 그러는 그의 맑은 두눈에 물기가 핑그르 고여올랐다.

김하규는 그 눈길을 마주볼수가 없어 얼른 고개를 돌리며 그저 《으험! 으험!》하고 마른기침만 톺았다.

로은숙은 할수가 없다는듯 부엌으로 나갔다.

저녁식사를 하고난 김하규의 자세가 갑자기 부드러워졌다.

《여보, 광훈이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연금이라는 그 처녀가 있지 않소. 영예군인의 딸이라더구만. 우리 광훈이의 눈이 그만하면 바로 배긴셈이지?》

《아유, 그 말을 벌써 몇번째나 하세요. 장대식군단장동지가 처녀를 소개해주었다는 이야기랑… 또 뭐가 필요해서 그러는것 같은데 그거나 말하세요.》

김하규는 자기도 모르게 혀아래소리를 했다.

《역시 당신은 내 마음을 척척 알아준다니까… 래일아침 내가 떠날 때 뭘 좀 잘 준비해서 차에 실어주오. 그동안 연구사, 기술자들이 많은 수고를 했는데 고무해주어야 할게 아니요.》

로은숙은 남편이 그답지 않게 삽삽해지자 젊은 시절처럼 눈을 곱게 흘겼다.

《당신은 집에서 내가는데 너무 습관되였어요. 전번일도 그렇지요. 고추장단지 하나가 뭐이 큰거라고 아래사람들이 당신식성을 존중해서 실어보냈는데 되돌려보내기까지 하면서…》

《받는 재미보다 주는 재미에 사는게 더 좋아!》

《그래서 오래간만에 집에 들린 제 자식을 역으로 쫓아보냈어요?》

《또또… 에미들이란건 그저 제 자식 엄지닭 병아리 품듯 해야 속이 시원해한다니까.》

김하규는 군관인 아들들이 집에 필요없이 오는것을 질색했다. 얼마전에 넷째아들 광천이가 출장도중 집에 들렸을 때였다. 병사들을 역기다림칸에 두고 저 혼자 집에 왔다는것을 안 김하규는 두눈을 무섭게 부릅뜨며 노발대발했다.

《너 병사들의 맏형이 옳긴 옳니? 중대장이란게 병사들을 역기다림칸에 두고 부모가 있는 집에 와서 잘수 있는가 말이다. 나가라, 당장!》

《아이참, 누가 자구 가겠다나요. 시간이 좀 있길래 잠간 들려가려구 왔대요.》

안해가 황황히 편역을 드는 말…

《그래도 그렇지. 중대장이라는게 시간이 있다고 집에 찾아다니면 병사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니? 이왕 온바엔 할수 없다. 빨리 더운밥을 해가지고나가 병사들을 먹여라.》

김하규는 안해를 들볶아대며 음식을 준비하게 한 다음 직무차까지 동원시켜 한차 가득 싣고 역으로 나가게 했다.

안해는 그때일을 생각하며 지금도 가슴이 알알하여 이렇게 외우는것이다.…

침대에 누웠다. 약을 썼는데도 미열이 계속 나면서 몸이 오슬오슬 떨린다. 안타까왔다. 할일이 많은데 몸은 왜 자꾸 아픈지…

두달전부터 그는 몸에서 심상치 않은 이상증세를 느끼고있었다. 자기 몸은 자기가 의사보다 더 잘 안다고 자체로 병진단을 내려가며 열이 떨어지는데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지만 전혀 감도가 없는것이 속상했다. 혹시 불치의 병에 걸린것은 아닌가 하는 가슴섬찍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병원에 가기가 두려웠다. 무서웠다. 정말 불치의 병에 걸렸다면… 그것이 일으키는 파문은 간단치 않을것이다. 당장 병원에 입원하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 할일이 많은데 설마 내가 그런 병에야 걸렸겠는가. 그래도 실지 그런 병이라면?

어쨌든 생을 재촉하며 살자. 이미 시작한 일들을 될수록 빨리 그리고 깨끗이 마무리짓자. 중요한것은 내가 앓는다는것을 누구도 모르게 하면서 일을 계속하는것이다.

그는 어느날 부대병원 원장에게 병상태를 대략적으로 말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원장동무, 내 가까운 친척이 그렇게 앓소. 그게 도대체 무슨 병이요? 본인은 불치의 병이라는데 설마 그런건 아니겠지?》 원장은 그 말을 듣자 약간 난감해하였다.

《글쎄 증상을 보면 불치의 병이 분명한것 같은데… 하지만 검진을 해봐야 정확히 알수 있습니다.》

《음… 그 사람은 검진받기를 죽기보다 더 싫어한단 말이요. 어쩌면 좋소. 날보구 자꾸 그 병을 치료하는데 좋은 약을 구해달라고 부탁하는데 좀… 해결해주지 않겠소?》

《대장동지가 직접 쓴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약은 아무리 가까운 친척이라고 해도…》

《그럼 문건에 내가 썼다고 적어넣으면 될게 아니요. 그러되 내가 그런 약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절대비밀에 붙여주시오. 누가 알면 리기주의자라고 욕할게 아니요.》

이렇게 가져온 약을 가방에 넣고다니며 아무도 모르게 쓰다가 그만 각성이 무디여져 안해의 눈에 들키고만것이다.

김하규가 아무리 자기의 병을 숨기려고 애썼어도 남편의 건강을 두고 누구보다도 마음을 쓰는 로은숙의 시선에서만은 벗어날수가 없었다. 이미 이상한 느낌을 주었던것이다.

새벽 4시에 남편을 깨운 로은숙은 아침밥을 들기를 기다리다가 물먹은 소리로 안타까이 말했다.

《밤새 이따금씩 신음소리를 내군 하는데 징조가 이상하게 느껴져요. 병원에 가봐야 하지 않겠어요?》

김하규는 태연스럽게 말했다.

《일이 긴장해서 헛소리를 치는거요. 감기를 앓으며 몸살이 좀 와서 그러니 걱정말라지 않소.》

《아니예요. 저도 보는 눈이 있고 느끼는것이 있어요. 가방안에 있는 약은 뭐예요? 담배를 너무 피우더니 끝내 일을 치는가봐요. 제앞에 솔직히 말하지 않으면 정치부장동지한테 전화를 걸겠어요.》

로은숙은 물러설 잡도리가 아니였다.

《제발 소란을 피우지 마오. 지금 장군님의 어깨우에 얼마나 무거운 짐이 실려있는줄 알기나 하고 그러오?》

《여보! 건강해야 장군님의 뜻도 더 잘 받들게 아니예요. 전 당신이 밤에 자다 내는 신음소릴 들을 때마다 가슴이 막 떨려서 잠을 못자겠어요.》

김하규는 안해의 손을 다정히 감싸쥐였다.

《여보, 장군님가까이에서 일하는 지휘성원이 아니고서는 지금 그이께서 얼마나 강의한 의지로 오늘의 이 어려운 난관을 헤쳐나가시는지 다는 모르오. 나는 그이를 뵈을 때마다 가슴이 아파서 견딜수 없소. 한번은 생각다못해 이렇게 말씀드렸소.

〈장군님, 몸이 퍽 축갔습니다. 너무 무리하지 말아주십시오.〉

그이께서는 말씀하셨소.

〈동무의 그 마음은 고맙지만 어쩌겠소. 일이야 해야 할게 아니요. 매일 새벽 3시, 4시까지 일을 해도 늘 시간이 딸리는구만.

나는 일찍부터 일을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써왔소. 그 과정에 굳어진 습성이랄가, 그러니 어찌겠소. 조국의 운명이 우리의 어깨우에 지워져있지 않소.〉

그이의 말씀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소. 나부터 시작하여 모든 일군들이 장군님과 같은 의지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감당해낸다면 우리 조국의 걸음이 얼마나 빨라지겠는가.

나도 일을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장군님처럼 일을 하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했소.

너무 걱정마오. 이따위 고뿔이 날 넘어뜨리지는 못해. 허허허… 자, 그럼 잘있소.》

김하규는 대범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움쭉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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