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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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깊은 혁명전적지답사의 나날은 강물처럼 흘러가고 중대로 돌아온 김연금은 병사들의 싸움준비를 완성하는데 온넋을 기울였다. 하루는 사단포병참모부의 참모가 중대에 내려오더니 싱글벙글 웃으며 연금이에게 물었다.
《포병련대 1대대장을 잘 아오?》
《혁명전적지답사를 함께 갔다왔습니다.》
연금의 얼굴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연금동문 날쌔거던!》
《뭘 말입니까.》
참모는 씽긋이 웃었다.
《김광훈대대장은 나와 군관학교동창생이요. 남자요. 동무가 안겨볼만 한 사내대장부라니까.》
김연금은 참모의 잔등을 죽어라 하고 내리팼다.
《정말 실없는 말을 하겠습니까. 그런 말 할려면 가십시오.》
참모는 그냥 놀려댔다.
《하긴 연금동무야 안팎으로 절색이니까. 자, 받소. 편지요.》
김연금은 깜짝 놀라며 두손을 뒤로 가져갔다.
《편지라니요?》
《그럼 안받겠소? 도로 가져가겠소.》
《가져가십시오.》
《에라, 도로 가져갈가 하려다 준다.》
참모는 부끄러워서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하는 김연금의 손을 잡아끌어 편지봉투를 쥐여주었다.
《이틀후에 다시 올테니 그때까지 회답편지를 써놓고 기다리시오.》
김연금은 편지를 손에 쥐자마자 공연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못할짓이라도 한 사람처럼 가슴을 조였다. 성급한 마음을 누르며 조용한 곳으로 달려가서 봉인을 뜯었다.
《…나는 동무를 사랑합니다. 가장 뜨겁게 그리고 열렬히!…
회답을 기다리겠습니다.》
노래에도 있듯이 《총각이 써보낸 살뜰한 편지》를 받은 연금의 얼굴은 앵두처럼 빨갛게 익었고 부풀어오른 가슴은 세차게 들먹거렸다.
(회답을 기다리겠다고? 어쩌나. 뭐라고 써야 할가?)
온밤 모대기였으나 종시 한줄도 쓰지 못했다.
행복한 걱정이였다.
이틀후에 기관총진지설비와 관련되는 사업때문에 중대에 다시 내려온 사단참모가 싱긋이 웃으며 연금이에게 슬며시 물었다.
《그래 회답을 썼소?》
《못 썼습니다.》
《왜 못 썼소?》
《난 그런걸 몰라요.》
연금은 우정 새침해서 이 말을 해놓고는 (아이, 망측해라.) 하며 활딱 붉어진 얼굴을 얼른 돌리고말았다.
《동문 좌우간… 그럼 내가 불러주는대로 쓰오.》
《됐습니다.》
《하여간 동무네 중대 전투준비 강화되게 됐소. 나의 닥달질을 일주일이 멀다하게 받게 될테니까. 그러나 동무! 똑똑히 명심하오, 내가 뭐 동무네 편지나 날라다주는 통신원은 아니라는걸! 난 오늘도 전투준비때문에 중대에 내려왔단 말이요.》
그후에도 김광훈은 일주일이 멀다하게 연금이 앞으로 편지를 계속 써보냈다. 그 편지를 받을 때마다 처녀는 행복에 겨웠다. 솔직한 말로 김연금이로서는 광훈이를 마다할 아무런 조건부도 없었던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연금은 출장도중 집에 들릴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방에 들어선 순간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아버지를 띄여본 김연금은 가슴이 덜컥하여 웃방에 있는 어머니에게 다가가 성급히 물었다.
《아버지가 왜 이렇게 심하게 앓아요?》
《아버지의 성미를 잘 알면서도 그러느냐? 네가 군대에 나간 다음 아버진 영예군인으로서뿐아니라 후방가족답게 제구실을 더 잘해야 한다고 하면서 불편한 그 몸으로 어느 하루도 공장에 출근하지 않은 날이 없었단다. 그뿐인줄 아니. 시간만 있으면 인민군대에 보낼 원호품을 장만하느라 너무 무리하던끝에… 의사가 왔다갔는데 며칠쯤 안정하면 다른 일은 없겠다누나.
아버진 네 나이가 차가니 시집보낼 걱정두 매일처럼 한단다. 네 소리만 나오면 대덕산부대에 똑똑한 총각군관들이 많을텐데… 하면서 늘 일생문제를 입에 올리군했지. 그래, 널 좋아하는 총각이 아직 없느냐? 있겠지?》
어머니는 행여나 하여 딸의 기색을 살폈다. 얼굴색은 마음의 내비침이라 어머니는 인차 딸의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속을 넘겨짚었다.
《있긴 있는 모양이구나.》
《어머니, 사실은… 그 동지가 먼저 나한테 편질 했어요.》
김연금의 얼굴은 사과알처럼 활딱 붉어졌다.
《어떤 총각이냐?》
어머니의 얼굴은 대뜸 밝아졌다.
《아주 훌륭한 가정이로구나. 아버지가 알게 되면 무척 좋아하실거다. 그 사람이 네 마음에 들더냐?》
연금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됐다. 그 총각의 사진을 가지고있겠지?》
김연금은 트렁크를 열었다. 혁명전적지답사때 진행한 배구경기에서 이기고 운동복을 입은채 기념으로 찍은 사진을 꺼냈다.
《아니, 체네가 옷은 왜 벗고 사진을 찍었느냐?》
어머니는 사진을 보자마자 제 딸의 모습부터 찾아보고 낯을 찡그렸다.
《어머니두 참, 배구경기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운동복을 입고 찍은거예요. 난 그 동지하고 배구경기에 함께 나갔댔거던요.》
김연금은 어머니앞이라 으시대듯이 자랑했다.
《네가 배구를 잘해서 그 총각의 마음에 든 모양이구나.》
어머니는 더더욱 기분이 좋아져서 김광훈의 인정어린 얼굴모색을 한참 뜯어보더니 무릎을 탁 쳤다.
《총각이 너보다 더 잘생겼구나. 아버지에게 빨리 보여주자. 그럼 너무 좋아서 자리를 차고일어날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김광훈의 가정에 대하여 연금이가 말해주는대로 대충 듣고나서 사진을 들고 김경국이 누워있는 방으로 달려들어갔다. 부부간에 무슨 의논을 그리도 오래 하는지 한참만에야 어머니가 아버지방에서 나왔다.
《아버진 아들 다섯형제를 최전연에 세운 가정이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그 총각한테서 편지받은건 없느냐?》
《있어요.》
《그걸 주렴.》
연금은 어머니의 뒤를 따라 아버지방으로 들어가 두무릎을 모아눕히며 조심히 앉았다.
초조한 심정으로 편지를 읽는 아버지의 안색을 살폈다. 글줄을 타고내려가던 아버지의 눈가에 어딘가 장해하는듯 한 느낌이 어린것을 일별하자 어느 정도 마음은 놓였어도 혹시? 하는 속근심이 시종 가셔지진 않았다.
마침내 아버지의 눈이 편지에서 떨어졌다.
《음… 총각의 아버지가 뭘한다고?》
아버지가 광훈이를 마음에 들어한다는것을 느낀 연금은 긴장했던 마음이 저절로 풀어졌다.
《그 동지의 아버지도 군인이래요.》
《군인? 무슨 병종이라더냐?》
《포병…》
《이름은?》
《김하규라고…》
《뭐? 김하규?…》
김경국의 표정은 갑자기 굳어졌다. 순간 연금이도 눈이 올롱해졌다.
《아시는분이예요?》
김경국이 눈길을 내리깔며 왜서인지 어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저 좀… 듣던 이름이여서 그런다. 참, 세상은 넓으면서도 좁다더니…
아버지는 무슨 말인가 더 할듯싶더니 인차 표정이 심각해졌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연금은 저으기 마음이 뜨아해졌다. 분명 무슨 사연이 있는것 같다는 느낌이 번개같이 뇌리를 스쳤던것이다.
그런데 왜 말을 하지 않을가? 아버지가 군사과업수행도중에 부상을 입었다더니… 혹시 무슨 련관이 있는것은 아닐가?
의문어린 딸의 눈길을 피하며 아버지가 계속했다.
《연금아! 이 세상에서 가장 순결해야 하는것이 있다면 그것은 곧 사랑이라고 볼수 있다. 사랑은 정과 뜻이 통하여
이 아버지의 육체적조건은 걸음걸음 힘겨운 올리막이라고 볼수 있지만 내곁에 헌신적인 네 어머니가 있어 우리 가정이 이렇게 행복한거다.
가지려는 마음보다 주려는 마음, 바치려는 마음속에 너희들의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게 진짜사랑이고 바닥을 모르는 행복이다.》
김연금의 눈언저리는 가볍게 떨렸다.
생활에서도 혁명에서도 타산하는 법보다 헌신하는 법을 먼저 배워준 나의 아버지, 오늘은 사랑도 그렇게 할것을 바라고있는것이다.
김경국은 딸이 집을 떠나는 날에는 이런 당부를 또 했다.
《그 대대장을 사랑하되 이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기 전에는 군복을 쉽게 벗지 말기를 바란다.》
《그러니 아버지, 정말 속상해죽겠어요. 이젠 제대가 정말 눈앞에 이르렀는데…》
《그래도… 그건 네가 마음먹기탓이다. 네가
《아버지, 꼭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어요.》
아버지의 마음을 안고 중대로 돌아온 김연금은 즐거운 기분속에 광훈이에게 첫 회답편지를 썼다.
《광훈동지! 부모님들이 승인하셨습니다.
장차 광훈동지가 기대하는 그런 녀성이 되겠는지 몹시 걱정스럽습니다. 앞으로 많이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되여 광훈은 올해 1996년 새해를 맞으며 아버지 김하규에게 연금이에 대하여 전화로 알렸다.
그러나 생활은 연금이가 바라는대로만 흐르지 않았다. 김연금이 올해 3월초에 제대명령을 받았던것이다. 이 제대문제를 계기로 하여 광훈이와 연금이사이에는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