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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회

1

(2)


렬차는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강물을 옆에 끼고 질주했다.

강수면우에 검푸릿한 산그림자가 내리비꼈다.

김연금은 인차 대답하지 않고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차창밖으로 시선을 보냈다. 어두운 방을 밝히는 초불마냥 타오르던 처녀의 정기어린 두눈가에 아버지에 대한 말이 나오자 왜서인지 한가닥의 그늘이 비끼는듯 했다.

《?》

《우리 아버지는 영예군인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처녀의 감정상태와는 달리 영예군인이라는 말을 들은 김광훈의 얼굴에 희색이 비끼더니 관심이 배로 높아졌다.

《아버지가 어떻게 영예군인이 됐습니까? 말하자면 어떤 위훈을 세우고…》

《그야…》

연금은 아직 그런 내막사까지 구체적으로 알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속감정을 눈가에 밉지 않게 떠올렸다. 그러거나말거나 김광훈의 자세는 더더욱 진지해졌다.

《난 영예군인을 그 누구보다도 존경합니다. 왜냐면 우리 아버지가 일생 한 영예군인에 대한 고마움속에 살기때문입니다.》

김연금은 남자들과의 관계에서 필요이상의 말을 하거나 정도이상의 호기심을 나타내본적이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자기 아버지와 같은 영예군인을 남달리 존경한다는 김광훈이나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의혹의 감정이 일어났지만 입을 꼭 다문채 그윽한 눈가에 의문만을 담았다.

광훈은 그 느낌을 인차 포착했다.

《우리 아버진 생명이 위험한 순간에 한 병사의 희생적인 행동에 의해 살아났답니다. 아버지와 탄약수를 구원하고 영예군인이 된 그 고마운 병사는 오늘까지도 자기의 행처를 알리지 않고있답니다. 아버지가 늘 잊지 못해하는 생명의 은인인데 우리 자식들도 힘을 모아 꼭 찾으려고 합니다.》

김연금은 잠자코 앉아 자기의 아버지를 생각했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남다른 존경심과 긍지속에 자라났다. 소학교와 중학교에 다닐 때 그의 아버지 김경국은 외동딸인 연금이의 정신적수양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아직은 철이 덜 들었던 그 시절 가정의 온갖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란 연금이는 영예군인인 아버지를 사회적으로 우대해주고 내세워주자 저도 모르게 우쭐해지다나니 어느날 식료상점에 갔다가 뜻밖의 일을 저질렀다.

《어머니, 우리 아버지가 제일이야. 난 오늘 아버지가 조국을 위해 세운 위훈의 가치가 얼마나 큰가 하는것을 더 잘 알았어요.》

《뭐, 위훈의 가치? 그건 웬말이냐?》

김경국은 뭔가 미심스러운 예감이 들어서 딸에게 자초지종을 캐물었다.

《아버지! 제가 원양어로선단에서 잡아온 물고기를 세대별로 팔아준다는 인민반장의 련락을 받고 식료상점앞에 도착했을 때였어요.》 하고난 연금이는 방금전에 있은 일을 그대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연금이가 식료상점에 이르니 물고기를 사러 온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아버지가 영예군인인것으로 하여 늘 우선봉사, 특별봉사를 받아오는데 습관된 연금이는 이날도 자기 어머니나 지어 외할머니나이벌녀인들이 줄을 서있는데도 구럭을 들고 맨앞으로 서슴없이 걸어나갔다.

이것을 띄여본 한 할머니가 연금이를 가볍게 나무랐다.

《처녀애야, 줄을 서라. 순서를 지켜야지.》

연금이는 어딘가 시뜻해하는 표정으로 할머니를 향해 돌아섰다.

《할머니, 우리 아버지는 영예군인이예요.》

어딘가 당돌하게 울리는 연금이의 목소리에 할머니는 흠칫 놀라더니 철없는 손녀를 보듯 인차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아니, 그럼 네가 우리 동에 새로 이사왔다는 그 영예군인집 딸이냐?》

《네.》

《그런걸 몰라봤구나. 그러지 않아도 너희집에 한번 찾아가보자고 하던 참인데… 자, 우리 집 물고기도 함께 사가지고 가서 아버지에게 대접하거라.》

뜻밖의 일을 당한 연금은 어지간히 당황했다.

《그렇게야 어떻게…》

《조국을 위한 길에서 위훈을 세운 영예군인은 응당 우대를 받아야 한다. 가는 곳마다 영예군인좌석이 따로 있고 또 영예군인들을 우선봉사하는것이 사회적기풍인데… 식료상점에서 물고기 몇키로 먼저 사는것이 무슨 큰거라고… 됐다.》

이렇게 되여 남보다 뒤늦어갔지만 우선봉사를 받는것은 물론 할머니를 비롯한 다른 녀인들도 자기네 집 몫으로 공급된것을 몇마리씩 더 얹어주는바람에 많은 물고기를 사가지고 어깨가 으쓱해서 돌아온 연금이였다.…

딸의 말을 다 듣고난 김경국은 억이 막혔다. 영예군인이라는 그 신성한 부름을 온당치 못하게도 저 하나의 리기를 위한데 도용하다니…

《연금아! 네가 감히 이 아버지를 턱대고 그런 수양이 부족한 행동을 하다니… 어디 될번한 일이냐?》

김경국의 흥분된 목소리가 방안을 찌렁찌렁 울렸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

난생처음으로 아버지한테 이런 욕을 먹은 연금이는 자기를 자책할 대신 오히려 속이 삐뚤어져서 엇서려고 했다.

(내가 연금이를 곱다고만 하면서 잘 키우지 못했구나!)

뼈아픈 자책속에 자기를 돌이켜본 김경국은 가까스로 흥분을 자제하며 딸을 그자리에 눌러앉혔다.

《연금아, 넌 이 아버지가 특출한 위훈을 세워서 영예군인이 되고 사회적으로 우대해준다고 생각하니?》

《그럼 아버진 어떻게 영예군인이 되였나요?》

김경국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연금아, 난 남들이 감탄할만 한 그 어떤 위훈을 세워서가 아니라 군사과업수행도중에 몸을 상하여 영예군인이 되였다. 그런데도 어머니당에서는 큰 위훈도 없는 나를 시대앞에 높이 내세워주고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그래서 나는 늘 송구스러운 마음만을 안고 살아가는데 넌 오히려 이 아버지를 턱대고 그런 못난 행동을 했다니 얼굴 뜨겁기 그지없구나. 넌 영예군인집 딸 재세를 할것이 아니라 나라앞에 별로 한 일도 없는 이 아버지를 보살펴주고 내세워주는 당의 은덕에 대하여 항상 먼저 생각하고 그 보답의 위치에 서야 한다.》

아버지의 이 말은 연금이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날밤 침대에 누운 연금은 자정이 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후부터 연금이의 생활자세는 완전히 달라져갔다.

말수더구도 점점 적어지고 행동거지도 무거워졌으며 어디에 가서 아버지에 대한 말도 함부로 하지 않았다.

대신 무슨 일을 하건 늘 앞장에 서기 위해 이악을 부렸다. 그 과정에 학업성적도 점점 높아져 학급적으로 제일 앞자리를 차지하게 되였고 중학교배구소조에서도 첫손가락에 꼽히는 타격명수로 자랐다. 연금은 중학교를 졸업하면 평양에 있는 조선체육대학에 가리라 결심했었다.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영예군인의 딸인 너는 총대와 인연을 맺어야 한다고 했지만 연금은 꼭 배구선수로 이름을 날리고싶었던것이다. 졸업식을 앞두고 속생각을 어머니에게 내비쳤더니 허영심에 들뜨지 말고 아버지의 뜻을 따르라고 하는것이였다. 할수없이 아버지옆에 다가앉아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 중학교를 졸업하고 어디에 갔으면 좋을가요?》

연금이의 속내를 잘 아는 아버지는 어여쁘게 피여나는 딸의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었다.

《물론 이름있는 배구선수가 되여 조국의 명예를 빛내이는것도 중요하지. 그러나 그 명예우에 먼저 놓아야 하는것은 조국의 운명이다. 난 네가 군복을 입었으면 한다. 아버지가 복무하던 대덕산부대에 뿌리를 내리고 아버지가 못다한 조국수호의 임무를 네가 마저 수행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조국보위는 전대, 당대, 후대가 혈통처럼 이어가며 수행해야 할 애국중의 애국이다.》

연금은 머리를 다소곳이 떨구고 아버지의 다음말을 기다렸다.

아버지는 잠시 그 무엇인가를 더듬는듯 생각에 잠겼다가 감회깊은 어조로 군사복무때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1963년 2월초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덕산지구를 현지지도하실 때 우리 포병중대에도 들리셨단다. 이날 그이께서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나에게 물으시였다.

〈병사동무, 왜 총을 잡았소?〉

나는 가슴을 쭉 펴며 힘있게 대답올렸지.

〈옛! 나서자란 고향이 소중해서 총을 잡았습니다.〉

〈옳소. 병사의 고향이자 곧 조국이요. 이 조국을 잘 지켜야 하오. 그러자면 뭐니뭐니해도 훈련을 잘해야 하오. 그래야 일당백으로 준비될수 있소.〉

이날 수령님을 모시고 함께 오셨던 장군님께서는 나에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는 오늘 수령님을 만나뵈온 영광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훌륭한 병사가 되여야 합니다.〉

나는 그이의 말씀을 심장에 새기며 훈련을 잘하여 조국보위의 영예로운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리라 맹세했단다. 그런데 몸이 이렇게 되여 대오에서 떨어지게 된것이 평생이 가슴에 맺혀 내려가지 않는구나.

난 이렇게 생각한다. 네가 아버지가 섰던 대덕산부대에 가서 아버지가 못다한 시대의 임무를 대를 이어 떳떳이 수행해야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하여 부대에 김정일동지께서 찾아오시면 그이께 〈장군님, 제가 바로 어버이수령님께서 훌륭한 병사가 되라고 하신 김경국의 딸 김연금입니다.〉 하고 보고드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아버지!》

아버지이기 전에 한 영예군인의 깨끗한 량심의 목소리가 김연금의 가슴을 세차게 울리며 흘러들었다.

(내 이런 아버지를 욕되게 하다니… 그렇다. 아버지의 소원대로 꼭 대덕산부대에 가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는 참된 병사가 될테야.)


《연금동무, 아버진 어떤 임무를 수행하다가 몸이 그렇게 됐습니까?》

다시금 묻는 김광훈의 물음에 연금은 생각에서 깨여났다.

《전 그것까진…》

처녀의 얼굴은 활딱 붉어졌다. 광훈은 의아해서 연금을 마주보았다.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였다.

《저… 우리 아버진 자신에 대해 자랑할줄 모르는 성미랍니다.》

《그래요?》

김광훈은 연금의 옹색한 처지가 리해되였는지 더 말을 안했다.

렬차가 혜산청년역에 도착하였을 때였다. 김연금은 광훈을 도와 트렁크 하나를 날라주었다. 트렁크는 몹시도 무거웠다.

무엇이 들어있길래 이렇게 무거울가 하는 의문이 들었으나 물어보지 않았다. 남의 사품에 대한 지나친 호기심은 실례로 되기때문이였다. 그 트렁크안의 비밀은 정일봉이 바라보이는 소백수골안에 들어선 그날에야 밝혀졌다. 그안에서 백두산고향집을 더 잘 꾸리기 위해 준비해온 옥돌이 나왔던것이다.

답사의 나날은 의의있으면서도 다채로운 생활속에 흘러갔다. 혜산에서부터 삼지연으로 옮겨간 후 답사숙영소에서는 휴식일을 리용하여 부대별체육경기 및 예술소품경연을 조직하였다. 담당지도원이 답사자들을 모여놓고 체육경기 및 예술소품경연요강을 알려주었다.

《체육경기에도 예술소품경연에도 여기에 온 백프로성원이 다 참가해야 합니다. 녀성군관동무들도 례외가 없습니다. 그러니 자기의 특기를 다 발휘하여 대덕산부대의 일당백기상을 보여주는데 적극 나서야겠습니다.》

담당지도원은 한명한명 불러가며 무엇을 할수 있는가고 물었다.

김광훈의 차례가 되였다.

《나는 배구경기에 나가겠습니다.》

《좋소. 예술소품경연에는?》

《독창은 자신없는데 혼성2중창은 자신있습니다.》

《아주 좋단말이요. 누구나 다 김광훈대대장처럼만 적극성을 발휘하면 1등은 문제없소.》

담당지도원은 사기가 났다.

김연금이차례가 되였다.

《동문 뭘하겠소?》

긴장된 시선들이 김연금이의 해맑은 얼굴로 집중되였다.

《배구경기에 나가겠습니다.》

《뭐, 배구? 남자들보다 더 잘할수 있겠소?》

《길고 짧은거야…》

연금은 말끝을 맺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좋소, 좋아. 우선 선발경기에 나가보시오. 예술소품경연에는?》

《…》

《혼성2중창에 나가시오. 김광훈대대장동무하고 짝을 무어서…》

《못합니다.》

몹시 급해하면서 한발을 구르는 김연금이를 보고 와 웃음판이 터졌다.

《군대가 하면 하는거지 못한다는게 무슨 말이요. 미끈한 대대장옆에 몸매 고운 연금동무가 서서 화음을 맞추면 장내를 들었다놓을수 있소.》

운동장에서는 인차 배구선수선발경기가 진행되였다. 김연금은 중학교배구소조원시절의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상한것은 상대편에 있는 김광훈이 뽈을 치기만 하면 그 뽈이 어김없이 연금이쪽으로 날아오는것이였다. 그때마다 연금이는 재치있게 받아넘기거나 강타를 했다. 결국 이들은 다 군단을 대표하는 선수들로 뽑혔다. 배구경기에서는 대덕산부대가 단연 1등을 하였는데 김연금과 김광훈이 팀의 승리를 이루는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혼성2중창만은 평가가 그닥 시원치 못했다. 큰소리를 친 김광훈이 사람들이 짐작했던것보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했던것이다.

《대대장동진 꽝포쟁이입니다.》

경연이 끝나자 김연금은 어느 사이엔가 마음속으로 퍼그나 가까와진 광훈이에게 가볍게 퉁을 놓았다.

《그러나 백두산을 지척에 둔 혁명의 성지에서 우리가 서툰 노래나마 함께 불렀다는데 큰 의의가 있지 않습니까.》

김연금은 이 말을 듣는 순간 그 어떤 야릇한 감정을 느꼈으나 인차 도리질을 하며 얼굴을 붉혔다.

(내가 왜 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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