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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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혜산행급행렬차가 울긋불긋 단풍이 타는 산촌을 꿰지르며 경쾌하게 달리고있었다.

나라의 긴장한 전력사정으로 하여 이따금 정전되기는 하였지만 렬차에 타고있는 혁명전적지답사생들의 떠들썩한 웃음소리와 유쾌한 노래를 실어서인지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전속을 놓군 했다.

중대정치지도원 김연금은 차창가에 바투 나앉아 별빛같이 반짝이는 두눈으로 흘러가는 산천을 내다보며 시종 가슴을 들먹이고있었다.

(내가 제대를 앞두고 백두산으로 가게 되다니…)

처녀의 갸름한 얼굴, 세련된 몸매, 남달리 정기있는 두눈에는 이름할수 없는 흥분과 심회가 엇갈리였다.

…이번에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에서는 《일당백》의 구호를 높이 들고 싸움준비완성과 군기확립을 위한 사업에서 남다른 모범을 보인 구분대지휘관, 정치일군들을 선발하여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에 대한 답사를 조직하였다.

중대에서 답사를 보낼 인원을 한명 선발할데 대한 웃단위의 지시를 받자 김연금은 어떻게 해서든지 중대장을 보내려고 했다.

《이러지 마십시오. 혁명전적지답사에는 군기확립과 싸움준비완성을 위해 수고를 많이 한 정치지도원동지가 꼭 가야 합니다. 더더구나 이제는 제대를 눈앞에 두었는데…》

중대장의 고집에 연금은 그윽한 두눈을 곱게 흘겼다.

《중대장동진 내가 빨리 제대되기를 바라는건 아니겠지요?》

《그럼요. 일생 같이 있고싶어요. 그러나… 됐어요. 혁명전적지답사에는 꼭 정치지도원동지가 가야 합니다.》

중대장은 어느새 상급에 제기하여 연금이가 더 다른 말을 못하게 꾹 눌러놓았다. 이렇게 되여 떠나온 길이다.

그런데 포병련대 1대대장 김광훈이와 마주앉아 뜻깊은 답사길을 함께 가게 될줄이야… 연금은 자기의 얼굴에 가끔 멎어있는 어글어글한 소좌의 눈길을 느낄수록 어쩐지 얼굴이 화끈거리고 눈이 부셔 더욱 차창밖경치에 홀린듯 흘러가는 산과 들만 내다보고있는것이다. 물론 연금은 김광훈이와 아직 한번도 마주서서 이야기를 나눈적은 없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일종의 호감을 가지고있었다.

얼마전 싸움준비는 물론 군사규정학습과 군기확립에서 부대적인 본보기를 창조한 중대를 돌아보고난 군단장 장대식은 매우 흡족해하면서 연금이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정치지도원동무! 그동안 중대를 일당백으로 준비시키기 위해 많은 수고를 했소. 이젠 제대될 나이가 되였지? 동물 내놓기 아쉽지만 어쩌겠소, 나이야 어쩔수 없으니… 내가 도와줄게 뭐 없겠소?》

연금은 이때라고 생각하고 류달리 반짝이는 두눈을 살며시 올리떴다.

《군단장동지! 군사복무를 1년만 더하게 해주십시오.》

장대식은 약간 굽혔던 허리를 펴며 껄껄 소리를 내여 웃었다.

《정치지도원, 봄도 한철, 꽃도 한철이야. 내가 동무를 도와줄것이 있다면 해당 단위에 잘 말해서 평양에 있는 좋은곳에 가도록 해주든가 아니면 훌륭한 대상자를 소개해주는것이라고 생각하오. 어떻소?》

《어마나!》

연금은 입을 싸쥐며 호호 웃고말았다.

《군단장동지도 참… 무슨 롱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장대식은 우정 신중해지며 눈을 디룩거렸다.

《이건 롱이 아니요. 그래 대상자가 있소, 없소?》

장대식은 허리를 굽히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

《어서 대답해보오.》

장대식의 거듭되는 독촉에 급해맞은 연금은 두눈을 살풋이 내려깔며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없습니다. 언제 그런데까지 마음을…》

장대식은 허리를 펴며 빙그레 웃었다.

《그럴테지, 그럼 어떤 총각을 생각해봤소?》

《솔직히 말하면 동무같은 보배덩이를 우리 군단에서 내놓고싶지 않아서 그래. 군관의 안해가 되겠다고 생각해본적은 없소?》

《됐습니다.》

《되다니? 그러지 말고 어서 대답해보시오, 중대정치지도원 김연금동무!》

장대식의 익살적인 말에 처녀는 정말 대담해졌다.

《군단장동지, 그럼 솔직히 대답하겠습니다.》

《그래야지.》

《사실 제가 생각해본것이 있다면… 그 누구보다도 대덕산을 사랑하는 그런…》

처녀는 말꼭지는 뗐어도 그끝을 맺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장대식이 어깨를 들썩이며 껄껄거렸다.

《하하하… 좋소. 그런 총각군관이 있소, 있구말구.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오늘의 유격대의 오형제로 자라난 다섯형제의 셋째 김광훈대대장! 그가 지금 어디서 복무하는지 아오? 동무가 소속되여있는 사단 포병련대에서 대대장을 하고있소. 어떻소, 내 소개해줄가?》

《아이, 싫습니다.》

《싫긴… 동무도 물론 알테지만 포사격때마다 매번 우를 맞아 소문을 낸 대대장이겠다, 포병싸움준비에서 큰 의의를 가지는 창안품까지 내놓아 연구기관에서도 탐을 내는 대대장이요. 가장 중요한것은 동무가 이자 말한 그대로 대덕산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대대장이라는거요. 제대되기전이라든가 제대되면 꼭 시간을 내여 만나보오. 아차, 처녀가 총각을 먼저 찾아갈수야 없지. 내가 그 대대장이 동무앞에 척 나타나게 해주겠소.》

연금은 얼굴을 붉힌채 어쩔바를 몰라했다. 난생처음 대상자총각에 대한 말을 들으니 그저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활랑거리기만 할뿐이였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정말 군단장동지가 그 동무에게 내 말을 할가, 그가 정말 날 찾아오면 창피해서 어떻게 만날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연금은 은근히 김광훈대대장을 기다리게 되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하나 그는 일이 바쁜지 연금이를 찾아오지 않았다. 처녀는 그제야 자신을 다잡았다.

(하긴 나같은게 뭐라고… 아니면 그 동지에게 다른 처녀가 있을지도 몰라.…)

연금은 김광훈이에 대하여 더이상 마음을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혜산에로의 출발을 앞두고 사, 려단들에서 온 답사성원들이 군인숙박소앞마당에 정렬할 때였다. 배낭을 등에 지고 량손에 트렁크를 각각 하나씩 든 젊은 군관이 뚱기적거리며 군인숙박소 홀에서 걸어나왔다. 그가 바로 김광훈이라는것을 알아본 순간 연금은 심장이 콩당콩당 방망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광훈은 트렁크가 어찌나 무거웠던지 《좀 받아달라구, 철만동무!》하며 군사칭호가 같은 소좌를 향해 소릴 쳤다.

《트렁크안에 뭘 넣었기에 이리도 무겁소?》

소좌가 트렁크 하나를 받아주며 묻자 생김새가 점잖은 김광훈은 빙긋이 웃으며 아래배를 툭툭 쳤다.

《어디 떠날 때야…》

《허허허… 이게 다 도중식사로 준비한것이라면 너무 요란하지 않은가?》

《많아서 나쁠거야 없지.》

군단정치부에서 나온 담당지도원이 정렬한 대오앞에서 주의사항, 행동질서 등을 알려준 다음 이렇게 말을 이었다.

《아름다운 소행자료를 하나 알려주겠습니다. 60사단 녀성기관총중대의 중대정치지도원 김연금동무는 혁명전적지를 더 잘 유지관리하기를 바라는 충정의 마음으로 정성비품을 한배낭 가득히 준비해가지고왔습니다.》

담당지도원은 이어 필요한 조직사업을 했다.

연금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서 머리를 떨구었다. 그런 속에서도 김광훈의 눈길이 자기 얼굴에 이따금 쏠리군한다는것을 느꼈고 (언젠가는 내앞에 나타날거야.)하고 예감했다.

아닐세라 연금이가 렬차칸에 올라 마주앉게 된 사람은 바로 남달리 무거운 트렁크를 두개씩이나 준비해가지고 오른 김광훈대대장이였다. 자기를 시야속에 넣고 따라다니다가 자리를 잡은것이 분명했다. 김연금의 옆에는 녀성군관, 광훈의 옆에는 트렁크를 받아주던 젊은 소좌… 렬차칸에서 목적지가 같은 네사람의 마음은 인차 가까와지고 다정해지는 법이다.

《담당지도원동지가 칭찬하던 김연금동무가 아닙니까?》

김광훈이 빙긋이 웃으며 연금이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아닙니다.》

당황해난 연금은 엉겁결에 고개를 가로 흔들며 얼굴을 붉혔다.

《아니라니요? 얼굴에 그렇게 씌여져있는데… 허허허…》

렬차는 인차 떠났다. 뒤이어 오락회가 시작되고… 그래서 연금은 그 따분하고도 숨가쁜 순간을 겨우 모면할수 있었던것이다. 하지만 김광훈의 눈길은 지궂게도 자기의 일거일동을 낱낱이 살피는듯싶었다. 그도 분명 군단장동지에게서 무슨 말을 들은것 같았다. 연금은 이제 자기에게 운명적인 그 어떤 일이 생기리라는것을 예감하며 한껏 긴장되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점심식사가 끝나자 식곤증이 왔는지 옆에 앉은 소좌가 끄떡끄떡 졸기 시작했다. 연금이옆에 앉은 처녀도 마침 의자 한쪽모서리에 머리를 기대고 두눈을 살풋이 내리감았다. 연금은 배낭에서 장편소설책을 꺼내여 펼쳤다.

《제목이 뭡니까?》

연금이 한창 책을 읽고있는데 바람을 쏘이려는듯 승강대쪽에 나갔다오던 광훈이가 자기 자리에 들어와앉으며 넌지시 물었다.

《〈시대의 탄생〉입니다.》

《보패랑 나오는 장편소설이군요. 재미있습니까?》

《네.》

《연금동무의 아버지는 어떤 직무에서 일을 보십니까?》

(드디여 시작됐구나.)

처녀의 가슴은 갑자기 높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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