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이야기의 시작에 앞서…
(3)
1963년 2월 6일.
역에서부터 대덕산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제2차 세계대전후 지구우에 새롭게 형성된 사회주의체계와 붕괴된 제국주의식민지체계… 많은 독립국가들의 출현으로 하여 세계의 정치구조는 크게 달라졌다. 허나 쏘련에서 흐루쑈브가 집권하면서부터 견고했던 사회주의진영내에는 심상치 않은 징조들이 나타났다. 그 대표적인 실례의 하나가 바로 미제의 반꾸바책동과 그로 말미암아 조성된 까리브해지역 정세였다.
미제는 제 나라의 턱밑에 있는 꾸바가 사회주의기치를 들자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던 끝에 고립압살해버릴것을 결심했다. 때마침 미국대통령 케네디에게 좋은 구실이 생겼다. 간첩위성이 꾸바에 은밀히 설치한 쏘련미싸일기지를 포착했던것이다. 그 사진을 손에 쥐게 된 케네디는 한밤중에 TV방송탁앞에 나타나 입에 게거품을 물고 쏘련이 꾸바에 전개하고있는 미싸일기지는 미국에 대한 위협으로 된다고 하면서 일체 공격용군사장비들이 꾸바로 수송되는것을 막기 위하여 까리브해를 통과하는 모든 선박들을 엄격히 검색할것이라는 폭언을 늘어놓았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5개 사단의 미지상군과 183척의 함선, 2천여대의 비행기가 꾸바를 향해 출동태세를 갖추었고 미국방성산하의 전체 부대들이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그런가 하면 유엔의 거수기를 동원하여 꾸바에 있는 일체 공격용무기들을 즉시 해체하고 철수시킬것과 이를 감시하기 위하여 유엔《조사단》을 파견할데 대한 결정까지 강압적으로 통과시켰다. 동시에 까리브해를 봉쇄하고 검색에 응하지 않는 선박들은 《모조리 격침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케네디는 이어 쏘련에 대고 《꾸바에 설치한 미싸일기지를 자발적으로 철수하지 않으면 미국은 그것을 파괴할것》이라는 최후통첩을 들이댔다. 세계는 죽가마끓듯 했다.
꾸바와 쏘련이 과연 어떻게 나올것인가? 예상밖의 반응들이 일어났다. 작은 나라인 꾸바, 친미독재정권을 뒤집어엎고 서반구에서 첫 사회주의국가로 등장한 꾸바혁명지도부는 즉시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자기 나라에 대한 그 어떤 《사찰》도 거부한다는 립장을 표명했다.
《조국이냐 죽음이냐, 우리는 승리할것이다!》
꾸바지도부는 이 구호를 높이 들고 온 나라를 반미결사전에로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사건이 터진 때로부터 6일째되는 날 초대국인 쏘련에서 세상사람들을 아연실색케 하는 일이 벌어졌다. 케네디의 위협공갈에 겁을 잔뜩 먹은 흐루쑈브가 꾸바에서 미싸일기지를 철수할데 대한 결정을 채택하고 그것을 세상에 공포했던것이다. 득의양양해진 케네디는 한걸음 더 들어가서 미싸일을 진짜 철수하는가 하는것을 확인해봐야겠다고 하면서 《국제감시론》을 들고나왔다.
흐루쑈브는 그때에도 대국의 체면을 잃고 미국의 철면피한 그 요구를 비굴하게 받아들였다. 유엔사무총장 우탄드가 꾸바에 들어왔다. 그 뒤를 따라 인차 쏘련에서 미꼬얀이 꾸바로 날아왔고 뉴욕에서는 미국대표 스티븐슨과 쏘련대표 꾸즈네쪼브사이에 회담이 진행되였다. 여기에서는 꾸바에 배비하였던 전략미싸일들을 모두 철수하기로 합의되였다. 3일에 걸쳐 까리브해에서는 미국군함들의 감시하에 쏘련선박들이 꾸바에서 미싸일들을 전부 철수시키는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
나무우에 소복이 쌓여있던 그 눈이 골짜기밑에서부터 불어올라오는 바람에 꽃보라처럼 반짝거리며 흩날렸다. 대덕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아직 눈이 쌓인 그채로 있었다. 고지에서부터 병사들이 눈을 내리치고있었지만 인원이 제한되다보니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할것이다.
한굽이… 또 한굽이…
길은 험했지만
《냅다 밟소, 저쪽 안쪽으로 약간 틀면서… 앞으로-》
마침내 선발차는 제일 힘겨운 굽이길을 돌아섰다. 그다음 굽인돌이까지는 완만한 도로…
《차를 세우시오.》
선발차는 곧 섰다.
《이젠 됐소. 출발!》
마침내 선발차도,
《박우물입니까?》
《그렇습니다.》
《고지에 물이 바른 모양입니다.》
《사실… 대덕산에서 제일 바른것은 물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저 박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밥도 짓고 세면도 하고 병실청소까지 합니다. 여름에는 그런대로 견딜수 있는데 겨울이나 갈수기때는 물이 매우 긴장합니다.》
《예, 저기 아래 산기슭에 큰 우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양수기를 놓자니 자재가 좀…》
《자재때문이라…》
《당중앙위원회 결정을 전달받았소?》
병사는 벌떡 일어서며 활기에 넘쳐 《전달받았습니다.》 하고 대답올렸다.
《그래, 동무생각에는 인민군대를 강화하자면 무엇이 중요한것 같소?》
《전투훈련을 강화하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옳소, 훈련을 강화하는것이 인민군대를 강화하는데서 기본이요. 군대는 훈련을 통해서만 그 위력이 강화될수 있소.》
《고지생활에서 무엇이 제일 곤난하오?》
중대위생지도원인 그는 무엇인가 말씀올릴듯 하다가 용기를 잃고 주밋거렸다.
《물? 물을 어디에서 끌어올데는 없소?》
《저 산기슭에 큰 우물이 하나 있기는 한데 양수기를 비롯한 자재가 걸려서 물을 끌어올리지 못하고있다고 합니다.》
《우리 군인들을 위해서라면 자재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아까울것이 없소. 양수기를 여러단으로 놓아 대덕산마루에 물이 철철 흘러넘치게 합시다. 여기만 아니라 전선동부와 전선중부의 다른 초소들에도 알아보고 대책을 세웁시다.》
이윽고 병실에서 나오신
바람에 위장그물이 흔들리고 위장으로 꽂은 풀잎들이 나붓기는 소리만이 긴장을 더욱 돋구어주고있었다. 쌍안경으로 방어전연전방을 하나하나 눈여겨살피시던
이때
《지금 미제침략군놈들은 남조선에 핵무기까지 끌어들이면서 우리를 먹어보자고 피눈이 되여 날뛰고있소. 저 미제침략군놈들이 남아있는한 우리 조선의 평화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소. 싸움준비를 잘해야 하오. 군대를 강화해야 하오. 어떻게 강화해야 하는가?》
《혁명의 길에 나선 첫날부터 나는 지금껏 수적, 기술적으로 우세한 적들과 맞서 싸워왔소. 그 과정에 터득한것이 하나 있소. 그것이 뭔가하면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으로 무장하면 그 어떤 적과도 싸워이길수 있다는거요. 옛날부터 싸움 잘하는 장수를 가리켜 일당백이라고 했소. 일당백, 이것은 하나가 백을 당한다는 말이요. 당할수 있는가? 있소. 조선혁명 전과정이 그것을 증명해주고있소.
군대가 일당백이 되자면 전투훈련, 진지강화 등 여러가지가 있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것은 사상적준비요. 혁명군대의 위력은 정치사상적위력에 있소. 력사적으로 놓고보아도 우리는 언제나 우세한 무기와 기술을 가진 적들을 사상의 위력으로 싸워이겼소.
사상의 위력에 전쟁승리의 결정적요인이 있소.》
《인민군대의 구호는 〈일당백〉이요.》
《일당백!》
지휘성원들은
눈들이 번쩍거렸다. 가슴들이 가삐 오르내렸다. 환희의 파도가 일어났다. 지휘성원들은 끝없는 격정에 잠겨
(바로 저것이다! 바로 저 사상을 다시한번 확정하기 위해
《오늘은
이런 의미에서 대덕산은 〈일당백〉구호가 제시된 고향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혁명군대의 위력은 정치사상적우월성에 있으며 이것은 핵무기보다도 더 위력합니다. 〈일당백〉구호에는 군인들을 정치사상적으로 튼튼히 무장시킨 기초우에서 군사기술적으로, 육체적으로 준비시켜 인민군대가 방어에서뿐아니라 공격에서도 일당백이 될데 대한 높은 요구가 담겨져있습니다.》
대덕산에 눈보라가 일기 시작했다.
《일당백》구호의 탄생을 만천하에 알리듯 우우- 소리치기도 하고 눈구름을 말아올려 사방으로 흩날리기도 했다. …
잊을수 없는 그날로부터 32년이라는 긴긴세월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