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회

이야기의 시작에 앞서…

(1)


1963년 2월 5일, 이날의 눈보라는 류달리도 사나왔다.

절기로 보면 봄이 시작된다는 립춘이지만 진짜겨울맛이 어떤가 한번 보라는듯 사방에서 우-우- 기승을 부리며 달려들었다. 뽀얀 눈갈기를 날리며 전선서부방향으로 뻗어간 철길옆의 나무숲에 덮쳐들어 한바탕 휘젓는다. 그 바람에 우지끈 뚝딱! 하고 해묵은 강대나무통이 나자빠진다. 그러자 눈보라는 더더욱 기세를 돋구며 이번에는 들판의 눈무지까지 휘몰아가지고 최전연을 향해 달리는 렬차를 막아나섰다.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는 렬차승강대에 나와서시여 하늘땅을 통채로 삼킬듯이 광란하는 눈보라를 이윽토록 바라보고계시였다.

휘유우-휘유우- 아츠러운 휘파람소리를 내며 이 땅의 모든 생명체들을 다 요정낼듯 길길이 날뛰는 눈보라를 보시느라니 또다시 위대한 수령님 건강이 걱정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나직이 짧은 숨을 내그으시며 수령님께서 계시는 렬차간 문을 조용히 여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소박한 집무탁에 마주앉으시여 문건을 보고계시였다. 갑자기 눈굽이 시큰해오시였다. 떠나오시기 전에 있은 일이 문득 상기되시였던것이다.


…이른아침부터 공군(당시)의 싸움준비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일때문에 어느 한 비행장에 나갔다 돌아오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정형을 보고드리기 위하여 수령님께서 계시는 집무실에 들어가시였다.

《아! 추운 때 먼곳에 갔다오느라 수고많았소.》 그이께서는 보시던 문건에서 눈길을 떼시며 《그래 갔던 일은 어떻게 됐소?》하고 친절히 물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정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보고드리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시며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됐구만, 그럼 이젠 나와 함께 최전연으로 떠나야겠소.》

순간 김정일동지의 안광에는 근심의 빛이 짙어지시였다.

《수령님, 오늘은 좀 쉬셨으면 합니다. 의사선생들이… 걱정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집무탁우에 펴놓고보시던 문건들을 한데 모아 그루를 박으시며 빙그레 웃으시였다.

《열이 좀 난다고 의사들이 야단법석인데… 일없소.》

《수령님, 날씨가 몹시 찹니다. 눈보라도 세차고… 이런 날씨에 그런 불편하신 몸으로 최전연에 어떻게 나가시겠습니까?》

수령님께서는 도리머리를 하며 헌헌히 웃으시였다.

《난 원래 추위를 잘 타지 않소. 이것저것 다 가리다나면 언제 혁명을 하겠소.》

《수령님!》

김정일동지께서는 안타까이 수령님을 우러르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그 절절한 눈빛을 잠간 마주보시다가 더 어쩌지 못하시겠는지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뒤짐을 지고 천천히 창가로 다가가시여 밖을 내다보시였다. 창밖에서 태질하던 눈보라가 몸부림치는 정원수의 사슴뿔모양의 삭정이를 뚝 꺾어가지고 우- 사나운 소리를 지르며 어디론가 몰려간다. 뽀얀 눈갈기를 일으키며 이리저리 휘몰려다니는 눈보라를 이윽히 바라보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흔연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저 눈보라를 보니 어쩐지… 1차북만원정때가 생각나오.》

《?!》

《그때 나는 원정길에서 만난 촉한의 후과로 요영구에서 몸져누웠는데 고열이 좀처럼 떨어질줄 몰랐소. 하지만 그대로 누워있을수 없었소. 모두들 앞을 막아나섰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침상에서 일어나 다홍왜로 갔댔소. 만일 그때 내가 다홍왜로 가지 않았더라면 조선혁명은 보다 큰 진통을 겪었을거요. 그곳은 나에게 있어서 의지의 시험장이기도 했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잠시 말씀을 끊으시였다가 돌아서시며 근엄한 어조로 계속하시였다.

《지금 나라안팎에 조성된 정세는 그때의 정세에 못지 않게 매우 긴장하오. 남조선을 강점한 미제국주의자들이 전쟁준비를 다그치면서 얼마나 오만스레 날뛰고있소. 그런가 하면 현대수정주의자들은 또 제국주의자들과 타협의 길로 나가고있소. 매우 위험한 징조요. 지금 부르죠아군사전문가들은 〈무기만능론〉을 제창하고있지만 우리는 변함없이 군인대중이 전쟁수행의 주인이라는 원리에 발을 붙이고 철두철미 사람중심, 사람위주의 리론과 전법으로 나가야 하오. 그래서 더더욱 최전연의 병사대중속으로 들어가자는거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이 순간 수령님께서 얼마나 큰 짐을 지고계시는가 하는것을 다시금 절감하시였다. 지금 조성된 정세를 타개하실분은수령님뿐이시였다. 하여 그이의 전선길을 더이상 막지 못하신것이다. …


렬차는 기적소리를 길게 울리며 전속으로 최전연을 향해 달렸다.

그이께서는 천천히 차창가로 다가가시였다. 눈보라가 아우성치는 밖을 내다보시며 지금 우리 혁명이 처하고있는 국제적환경을 잠시 더듬어보시였다. 매해 수백억딸라를 군사비로 돌린 미제는 지난해 년말까지 태평양의 여러 섬에서 대기권핵시험을 수십차례나 진행하였다. 이와 동시에 무력을 대폭 늘였다. 세계도처에 늘어난 미군군사기지수는 2천이라는 막대한 수자의 계선을 훨씬 넘어섰다. 미국방장관 맥나마라는 지난해에 미군의 상용무력이 45프로나 확대되였다고 공공연히 줴쳤다. 미군의 정규사단들은 또 어떤가. 미국력사상 최대의 중무장을 갖추었고 높은 기동성을 가진 군대로 재편성되였다. 그리고는 남부윁남에 대한 침략전쟁을 본격화하면서 라오스의 내정에까지 끼여들어 감놔라, 배놔라 삿대질을 하고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에는 사회주의꾸바가 자기의 무력을 강화하는것이 그 무슨 《미국에 대한 위협》으로 된다고 터무니없이 걸고들면서 근 20만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꾸바의 해상을 봉쇄했다.

렬차가 허허벌판을 가로질러 어느 한 산굽이를 돌아설 때였다. 그이의 뒤에서 수령님의 약간 갈린듯 한 음성이 들려왔다.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있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창가에서 돌아서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이미 보신 문건들을 두손으로 모두어쥐고 집무탁에 그루박고계시였다. 그러시는 그이의 안색에서는 겹쌓인 피로가 은연중 내비치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이 쩌릿해옴을 느끼시며 나직한 어조로 말씀드리였다.

《세계정세에 대하여 분석해보던중입니다.》

김일성동지의 안색은 심중해지시였다.

《현대수정주의자들이 문제요. 지난해 까리브해위기때 보오. 령도자나 지도부의 사상과 신념, 의지가 약해가지고서는 아무리 나라의 덩지가 크고 군대수와 무장장비가 많아도 미제와의 대결에서 이길수 없소.》

참으로 깊은 의미가 담긴 가르치심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손에 모아쥐신 문건들을 집무탁 한쪽끝에 밀어놓고 눈보라가 이리저리 휘몰려다니는 무연한 들판쪽으로 얼핏 눈길을 주셨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지금 미제는 남조선전역을 원자 및 로케트기지로 뒤덮다싶이하고 있소. 얼마나 많은 대량살륙무기들을 남조선에 끌어들였소. 그뿐이 아니요. 1961년에만도 미제는 남조선강점 미군수를 1만5천명이나 더 늘였고 지난해에는 30만명의 남조선청년들을 괴뢰군에 더 끌어들일 계획을 짜놓고 미친듯이 추진시키고있소.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사령관 멜로이는 두해전부터 전쟁이 언제 시작될지 모르니 빨리 작전계획을 재검토하라고 했소. 정세가 이렇기때문에 우리는 인민생활이 아직 펴이지 못했어도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로선을 내놓은거요. 그렇다고 하여 지금상태에서 군대수는 더이상 늘일수 없소. 그러지 않아도 7개년계획때문에 로력이 긴장한데 적들이 군대수를 계속 늘인다고 하여 우리도 그 방향으로 나갈수는 없소. 그럼 어떻게 해야 군대수를 늘이지 않으면서도 나라앞에 조성된 전쟁위험도 막고 인민들을 더 잘살게 하겠는가? 떠나기 전에도 말했지만 이런 문제는 책상머리에서 잘 풀리지 않소.》

김정일동지의 가슴은 세찬 충격으로 하여 쿵쿵 높뛰기 시작하였다. 바로 그 해결책을 찾으시려고 이 추운 겨울날 불편하신 몸임에도 최전연의 병사들속으로 들어가시는 수령님이시였다.

그이를 몸가까이 모시고 혁명을 해오시는 나날에 보고 듣고 체험한 일들이 하나의 정연한 체계를 이루며 떠오른다. 새로운 사회주의적경제관리체계를 세우실 때는 대안전기공장에, 새로운 농업지도체계를 확립하실 때는 숙천군에 나가시여 로동자, 농민들과 무릎을 마주하시고 나라일을 의논하신 수령님… 오늘은 나라의 방위력을 일층 강화하여 전쟁을 방지하고 인민생활을 더 높이기 위한 방도를 찾기 위해 최전연의 병사들을 찾아가고계신다. 그러니 얼마나 의의가 큰 길인가.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럴수록 더더욱 수령님의 건강이 걱정되시였다. 어떻게 하나 수령님의 건강을 더 잘 돌봐드려야겠다는 결심을 굳히시였다.

《수령님, 이젠 좀 쉬셨으면 합니다. 점심시간이 다되였습니다. 》

김일성동지께서는 놀라신듯 탁상시계를 내려다보시였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는가? 알겠소. 문건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인차 끝냅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러시며 새 문건들을 앞으로 끄당겨놓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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