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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현웅은 자기의 연구결과를 도입중에 있는 기계공장에 한달동안 다시 나가있어야 할 일이 생기였다.

그는 현지로 떠나기에 앞서 교원대학을 졸업하고 배치를 기다리고있는 류정혜를 만나야 했다. 그것은 처녀쪽에서 꼭 토론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서 요구한것이였다. 현웅은 기꺼이 응했다.

둘이 알게 된것은 올해 정초부터였다.

그날 현웅은 지하철도에서 내리여 하동행 뻐스를 타기 위해 정류소로 가고있었다. 그의 앞에서는 키가 쭉 빠진 처녀가 혼자 걸어가고있었다.

처녀는 한쪽어깨에 가방을 멘데다가 다른쪽손에는 노끈으로 든든히 포장한 지함을 들고있었다. 그 지함때문에 몹시 힘들게 걸어가는 처녀를 보니 현웅은 도와주고싶은 마음이 동했다. 하여 걸음을 재우치는데 처녀가 한쪽다리를 절룩하며 주저앉았다.

아마도 발목을 욱질린 모양이였다. 바삐 다가가서 보니 굽높은 구두의 뒤축 하나가 떨어져나갔다.

처녀는 난처해서 울상이 되여가지고서도 초면의 남자가 관심을 돌리자 부끄러워했다.

《무거운 지함때문에 뒤축이 떨어졌구만요. 자동차가 적재량을 초과해서 바퀴가 터진셈이지요.》

처녀의 창피함을 해소시켜주고싶은 아량을 베풀어 현웅은 싱글싱글거리며 우스개소리를 했다. 뒤축 하나가 떨어진것이 구두가 나쁘거나 주인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무거운 지함탓이라고 한 기지있는 익살이 처녀의 얼굴에 웃음을 피워놓았다. 처녀는 안심하고 롱말을 받아넘겼다.

《내 차는 경량급인데 정말 짐을 형편없이 초과해서 실었지요 뭐. 아버지때문이예요.》

처녀는 아버지가 방학이 되여 집으로 내려가는 딸에게 량심없이 남자들이나 들고갈수 있는 이런 쇠덩이를 가져오라고 과업을 주지 않겠어요 하고 묻지도 않는 말을 졸졸 외워댔다. 그러고나서 초면의 사내앞에서 아버지를 비난하는 어리석은 변명을 했다고 생각했던지 얼굴이 빨개지며 생글생글 웃었다.

《어디 봅시다. 그놈의 쇠덩이 죄가 크군요. 하긴 쇠덩이란 워낙 량심이 없지요. 이렇게 값비싼 고급구두의 뒤축까지 다 떨어져나가게 했으니 말입니다.》

실은 신발의 임자가 돌부리를 잘못 디디는 바람에 일으킨 《재해》가 분명한것이지만 일부러 처녀의 궁상스러운 변명을 부채질해서 뒤축떨어진 신발 한짝을 벗어놓게 했다.

현웅은 맞춤한 돌우에 구두를 올려놓고 떨어진 뒤축을 가져다 맞춘 다음 돌로 몇번 두드렸다. 처녀는 신기한 재주를 부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탄성을 지르다가 구두를 신고나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이제부터 그 쇠덩이는 내가 들고갑시다.그런건 남자들이 들고가야 할 짐이니까요.》 현웅은 지함을 들다가 놀랐다. 《에크,이건 정말 경량차에 실을 짐이 못되는군요. 도대체 무슨 쇠덩이인가요?》

《양수기예요.》

《처녀동문 롱말도 곧잘 하는구만요.》

처녀는 걸어가며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총각을 올려다보았다. 균형잡힌 작은 얼굴에 비하여 커보이는 시원스런 눈에 친절의 빛이 반짝이였다.

《롱말이 아니예요. 이건 정말 양수기예요. 먹는물을 퍼올리는데 쓰는 가정용양수기 말이예요.》

《아― 그렇군요. 동무도 고향이 하동인게지요?》

《하동읍에서 살아요. 거기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일하다가 대학에 올라왔어요.》 처녀는 인차 교원대학을 졸업하게 된다고 했다.

《난 큰리에 집이 있습니다. 동문 오늘 운수가 좋군요.》

《무얼 보구 제 운수가 좋다는건가요?》

《나같은 중량차를 만났으니까요.》

《호호…》

처녀는 그제서야 리해하고 재미나서 웃었다.

둘은 산기슭으로 난 길을 따라걸어가다가 아이를 데리고 가던 한 젊은 녀인을 만났다. 녀인은 칭얼대며 걷지 않는 서너살짜리 아들애를 달래이던 끝에 화를 내고있었다.

《얘, 고장나서 굴러가지 않는것을 엄만들 어찌겠니. 집에 가서 아빠한테 고쳐달래자꾸나.》

엄마는 애가 타서 그러는데 애녀석은 《싫어, 싫어!》 하면서 딱 버티고서서 떼를 썼다. 귀엽게 생긴 총각애인데 여간 고집쟁이가 아니였다.

그 애의 손에는 장난감자동차가 쥐여져있었다. 그게 고장이 나서 제 엄마한테 당장 고쳐달라고 애를 먹이는중이였다.

《어디 내가 좀 봐줄가?》

현웅이 싱글싱글 웃으며 아이의 손에서 완구자동차를 가져갔다.

《에크, 정말 고장이 나서 바퀴가 돌아가지 않는구나. 이런건 엄마가 고치는게 아니란다. 남자가 고쳐야 해.》 현웅은 완구자동차를 이리저리 들여다보다가 요진통을 찾아내서 간단히 손질을 했다.

《자, 이젠 잘 굴러갈게다. 봐라, 빵빵―》

총각애가 자동차에 매여있는 끈을 당기니 정말로 살랑살랑 잘도 굴러갔다. 총각애는 언제 떼질을 했던가싶게 귀염상스럽게 해죽거리고 젊은 어머니는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동진 자동차분야를 뗐군요.》

《옳습니다, 처녀동문… 아니, 류정혜라고 했지요. 정혜동문 앞으로 훌륭한 선생님이 될겁니다.》

《어마, 제가 그렇게 되리라는걸 어떻게 알아요? 천리혜안인가요?》

《아니지요, 내가 자동차물계에 밝다는것을 정혜동무가 쉽게 알아맞추었으니 하는 말입니다. 교원은 학생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볼줄 알아야 하니까요. 사실 난 군대때 자동차운전사를 했습니다. 체험도 많이 했구 별난 일도 다 있었지요. 그 별난 일을 하나 말할가요?》

《재미있는 이야기겠지요?》

처녀의 고운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이였다.

《한번은 이 리현웅이 장거리운행을 나갔다가 부대로 돌아오고있었지요. 강원도 법동이라면 아주 산골이지요. 인가도 별로 없는 길우에서 말이지요. 어슴어슴해오는 저녁인데 길을 가는 한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보니 애기를 낳으러 친정집으로 가는 녀인 같더구만요. 배가 나온걸 보니.》

《어마!》

처녀는 새된 소리를 지르며 대번에 얼굴이 빨개졌다.

현웅은 느슨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태연스레 말을 이었다.

《차를 세우고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어봤지요. 난 부대로 가는 길인데 아주머니도 목적지가 그 근방이더군요. 내 추측이 맞았지요. 해산하러 친정집에 가는 길이더란 말입니다. 녀인을 운전칸에 태웠지요. 동문 고리끼라는 작가가 쓴 〈생의 노래〉라는 소설을 봤는가요? 그건 인간의 위대함을 례찬한 작품인데 주인공사나이가 길을 가다가 생면부지의 녀인한테서 아이를 받아내는 이야기이지요. 녀인의 몸에서 금시 태여난 피덩이같은 아이를 받아들고 환희에 싸이는 주인공의 심리세계를 극적으로 펼쳐놓았지요. 이 리현웅이 역시 꼭 그런 정황에 맞다들렸거던요.

글쎄 자동차의 진동탓이겠지만 임신부아주머니가 차안에서 갑자기 진통을 일으켰단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생활은 그대로 소설은 아니지요. 인간의 탄생에 대한 례찬이요, 환희가 다 뭡니까.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여 배를 안고 비명을 지르는 녀인을 보면서 난 정신이 나갈 지경이 되였지요. 녀인이 아이를 낳으려고 그러는건 분명한데 해산과 관련한 지식이란 내가 해산을 거쳐 이 세상에 나왔다는것을 아는게 전부였지요. 그밖에 더 들은것이 있다면 배꼽이 떨어진다는 말을 들은것인데 도대체 그 배꼽이 어떻게 떨어지는지도 제가 알게 뭡니까. 그러니 제가 그때 얼마나 혼쭐이 났겠습니까. 난 자동차안에서 사람을 하나 죽이는구나! 하는 생각에 눈앞이 다 새까매졌지요. 다행히 녀인이 그래도 해산에 대한 지식이 있어 나한테 무엇을 어떻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더군요. 난 녀인이 시키는대로 했지요. 그러는 가운데 녀인이 해산을 했지요》

《어떻게요?》

《어떻게 하긴요, 낳았지요. 사내애를, 미래의 장령감을 말입니다. 나는 산모와 갓난애기를 싣고 병원으로 달렸지요. 새벽에야 군병원에 이르러 녀인을 입원시켰지요. 그날 밤은 눈 한번 붙여 못 보고 말았지요. 녀인을 입원시키고나서 난 또 부대로 차를 몰아가야 했으니까요. 내 이야기가 재미있지요?》

그것은 처녀의 무료감을 덜어주려고 펼쳐놓은 체험담이였다.

두사람이 다시 만난것은 반년도 더 지나서였다.

그때 류정혜는 이미 대학졸업시험을 치르고난 뒤였다. 처녀는 졸업배치를 기다리는 동안 시간을 공허하게 보내지 말자고 인민대학습당에 들어가 필요한 책들을 읽고있었다.

마침 연구사업때문에 참고서들을 찾아보려고 인민대학습당에 갔던 리현웅은 뜻밖에 류정혜를 다시 만나게 되여 기뻤다. 처녀도 무척 반가와했다. 두사람은 그후에도 드문히 만나군 했는데 처녀는 그를 오빠처럼 따르면서 일신상의 무슨 문제이든 털어놓고 조언을 받고싶어했다.

그것이 리현웅에게는 즐거운 일이였다. 어째서인지 처녀는 리현웅이라면 무엇에나 막히는것이 없으며 그의 방조와 조언은 자그마한 티도 끼여있지 않는 무한히 깨끗한것이라고 믿는것이였다.

현웅은 그러한 류정혜에게 많은 말을 해주면서도 자기 아버지가 온 나라에 소문난 큰리의 산림감독원 리명산이란 말만은 해주지 않았다.

어쩐지 그런 말을 하는것이 처녀앞에서 제집안자랑이나 하는것만 같이 생각되였고 또 처녀가 그것을 알면 자기라는 인간을 아버지의 명예를 미끼로 처녀를 어째보려고 하는 어리석은 사내로 생각할것 같아서였다. 당원이며 군사복무를 한 제대군인이며 대학을 졸업한 연구사로 나이도 적지 않지만 그에게도 인생의 초년생들에게나 있을법 한 유치한 사고가 아직 조금은 남아있는것이였다.…

실실이 늘어진 버드나무가지들마다에서 검푸른 잎새들이 해빛에 반짝이는 활력의 계절, 청춘이란 얼마나 좋은것인가! 분수가 피워놓은 물보라가 안개처럼 내리며 강우에 령롱한 무지개를 피워올린 그아래에서 청춘남녀들이 뽀트놀이가 한창이다. 오늘은 더우기 일요일이여서 강물우에는 청춘들의 웃음과 랑만이 한껏 어우러졌다.

모두들 웃고 떠들며 좋아하는데 류별나게도 한 뽀트우에는 한쌍의 청춘남녀가 심란해서 앉아있었다. 강반의 풍치를 즐거운 음악에 비긴다면 누가 봐도 그들 두사람의 존재는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하나의 불협화음이였다.

그들은 리현웅과 류정혜였다. 두사람은 조금전에 대동강유보도에서 만나 뽀트우에 올랐다. 리현웅이 어디 뽀트놀이나 하게 되였느냐고 하는 류정혜를 애써 잡아끌었던것이였다.

《정혜, 너무 심각해서 그러지 말라니까. 정혜는 웃는 모습이 더 고와. 웃으라구.》

현웅이 웃어보이며 마치 어린애 달래듯이 말했다. 처녀의 얼굴에는 좀처럼 웃음이 피여나지 않았다. 처녀의 복잡한 심리세계를 그려놓은듯 물결의 반사광이 그의 얼굴에서 어룽거리였다.

류정혜가 대동강변에서 리현웅을 만나자고 한것은 자기의 난처해진 처지에 대하여 말하고 무슨 뾰죽한 수라도 방조를 받을가 해서였다.

어제 류정혜는 아버지를 만났다. 딸의 졸업배치문제도 알아보고 또 다른 일도 볼겸해서 시내에 들어왔다면서 아버지는 《넌 시내에 떨어져야 해. 그리고 꼭 교원을 해야 한다는 법도 없는거야. 내가 적중한 자리를 하나 골라놓았으니 다른 생각은 하지 말아!》하고 오금을 박았다.

아버지가 딸에게 《다른 생각은 하지 말아!》하고 특별히 못을 박을만 한 일이 있었다. 류정혜는 시내에 들어와 대학공부를 하는 전기간 자기를 친부모이상으로 사랑해주는 류성림작은할아버지를 무척 따르면서 중성동에 있는 그의 집도 아무때나 제집처럼 찾군 했다. 작은할아버지는 나리꽃처럼 곱게만 피여나는 정혜를 보면서 《대학을 졸업하면 교원이 되겠지? 허허, 우리 류씨집안에도 선생님이 생기겠구나!》 하고 흐뭇해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졸업림박에 불쑥 나타나서는 딸의 마음을 휘저어놓은것이였다. 아버지가 다른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한것은 너의 일생문제와 관련된것이니 작은할아버지의 말에 개의치 말라는 소리였다. 아버지는 딸의 졸업후 배치에 대한 작은할아버지의 의향을 알고있는것 같았다.

류정혜가 가만 보니 아버지가 정말로 딸을 교원이 아닌 다른 직종으로 뽑아내기 위해 더러 사람들을 찾아다니는것 같았다. 지금까지 그러루한 일때문에 류정혜가 동무들 보기 딱하고 면구스러웠던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이번에도 아버지의 요구가 정혜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류정혜는 아버지를 만난 후 저녁때가 되여 작은할아버지네 집으로 갔다.

아버지도 시내에서 볼일을 다 보았는지 거기에 와있었다.

일은 참으로 공교롭게는 되였다. 여느때처럼 정혜를 반갑게 맞아들인 작은할아버지가 정혜 아버지까지 있는 자리에서 《너의 졸업배치는 어떻게 되였느냐?》하고 물어보는것이였다.

정혜는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을 못했다. 아버지가 작은할아버지의 말에 개의치 말라고 암시를 했지만 물어보는 당자앞에서 《아무래도 교원은 안되겠어요.》하고 말할수는 없는것이였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의향을 무작정 따르기도 저어되였다. 교원대학졸업증을 받아들고 유원지관리소에나 간다는게 동무들 보기에도 얼마나 멋적은 일인가! 정혜에게는 아버지의 의사를 내놓고 뿌리칠만 한 용기도 없었다.

류정혜가 점도록 대답을 못하자 작은할아버지는 무엇인가 낌새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으음―》 하고 편치 않은 소리를 냈다. 그것은 분명 폭풍의 전조였다. 작은할아버지는 매우 언짢은 기색을 하고 정혜의 아버지쪽으로 눈길을 돌리였다.

《이봐, 정혜 애비, 어찌된 일인가?》

이자 겨우 자라오르기 시작한 어린 나무순을 돌려놓으려는 장본인이 누군지를 어렵지 않게 간파하고 묻는것이였다. 작은할아버지의 그 한마디말에서 위엄이 풍기였다.

침묵이 흘렀다.

한참만에야 조카가 입을 열었다. 딸애가 어디에 배치를 받건 뭐 그자체는 큰일이 아니라는듯 한 흔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삼촌, 아무래도 교원자리는 저 애한테 적합치 않을것 같습니다. 제가 두루 알아보니 다른데 자리 하나가…》

《닥쳐라!》

로인의 입에서 부지불식간에 터져나온 노성이 류석철의 말을 중둥무이했다. 작은할아버지는 얼굴이 꺼매지면서 턱을 덜덜 떨었다.

《나라의 덕을 입어 귀한 딸 대학공부까지 시켰으면 나라가 필요로 하는 자리에 보낼 생각을 해야지 그런 배은망덕이 어디 있느냐! 내가 이미 말했지. 딸의 배치문제를 아버지가 들고다니는게 아니라고 말이다.》

《삼촌, 이거야 제 자식의 운명문제가 아닙니까.》

《운명문제라고? 운명문제? 그렇다, 운명문제이기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거다. 내가 당일군을 했다고 해서 그렇게 말하는것도 아니다.

난 세상을 일찍 떠난 네 아버지를 대신해서 말하는거다. 나라의 부강번영을 위해 필요한 존재가 되여야지.》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작은할아버지는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다는듯 속이 빈 웃음을 터치였다.

《얘, 정혜야. 너도 명심해라. 대학졸업증이란 깨끗한 일자리나 차지하고 시집이나 잘 가기 위한 지참품이 아니다. 그렇게 하라고 나라가 숱한 돈을 들여 너희들을 공부시킨게 아니란 말이다. 딴생각 말구 당에서 배치해주는데 가거라. 아이들은 나라의 미래가 아니냐. 그 미래를 키우는 교원이 얼마나 좋으냐.》

아버지의 침묵으로 다행히 폭풍은 인차 가라앉았다.

그런데 사실은 그쯤한 일로 해서 물러설 아버지가 아니였다. 아버지는 이튿날 아침 하동으로 내려가려고 딸과 함께 그 집을 나섰는데 거리에서 정혜와 헤여질 때 다시한번 그루를 박아 말하는것을 잊지 않았다.

《야, 아무렴 작은할아버지야 작은할아버지이지 친아버지만큼이야 네 운명을 놓고 마음쓰겠니? 절대루 다른 생각 말구 이 아버지의 말대로만 해라. 이담에 후회할 일은 하지 말아야 해.》

류정혜는 아버지의 그 말까지 들으니 자기가 여직껏 모르고있던 인간세상의 오묘한 리치를 하나 알게 되는것 같아 두려운 생각조차 들었다.

그는 한순간이나마 그렇게 생각한 자신을 후회했다. 요 못된것! 대학에서 무엇을 배웠어? 작은할아버지의 말이 옳지 뭐야! 하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의 요구를 덮어놓고 일축해버릴수도 없어 고민을 했다.

류정혜는 작은할아버지네 집 침대우에 누워 번민에 싸여있다가 마침 일요일이라 리현웅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한것이였다.

리현웅은 처녀한테서 사연을 듣고 대뜸 싱글거리며 《그 일때문에 날 만나자고 했어?》라고 했다.

류정혜는 자기의 말을 그가 별로 신중하게 받아들이지 않는것만 같아 약이 올랐다.

《현웅오빤 뭐예요? 남은 운명적인 문제를 말하는데 싱겁게 웃기만 해요.》

《글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건 없다니까. 정혜, 저기를 좀 보라구. 좋지? 우리도 구경만 할수 없지. 내가 노를 젓는 솜씨를 보여줄테니 가자구.》

처녀의 심란해진 마음을 풀어주고싶어하는 말이였다. 처녀는 뽀트우에 올랐어도 얼굴색이 밝아질줄 몰랐다. 현웅이 속이 좋지 않았다. 처녀의 기분에 감염되였는가? 아니, 단지 그래서가 아니였다. 그저 생각이 깊어진것이였다.

그래도 처녀의 마음을 어떻게나 풀어주려고 슬슬 노를 저어가던 현웅은 갑작스레 달려드는 여러척의 뽀트에 포위되였다. 아뿔싸! 현웅은 자기들이 심술궂고 장난기 세찬 청년들의 유희의 대상이 되였다는것을 알고 황급히 노를 저어 빠지려고 했으나 목적을 이룰수가 없었다. 여러척의 뽀트들이 이미 물샐틈없이 포위진을 쳐놓은것이였다.

뽀트우에 앉아있는 청년들이 유쾌하게 웃어대며 말을 걸어왔다.

《처녀동무, 노래를 하라구. 한마디만 부르면 놓아주겠소.》

즐거운 유희의 착안자가 분명한 곱슬머리청년의 제의에 여럿의 동료들이 왁작 떠들며 호응해나섰다. 박수소리, 웃음소리가 반짝이는 물우로 퍼져갔다.

그바람에 심란해있던 류정혜가 당황해하며 얼굴이 온통 익은 꽈리빛으로 되였다.

현웅이 바빠맞아 사정했다.

《여 동무들, 이러지들 말라구. 이 처녀는 내 누이동생인데 지금 노래를 부를 경황이 못된다구. 편도수술을 한지 이틀밖에 안돼.》

《편도수술이라니? 하하… 거 둘러치기명수로구만. 하지만 우리 눈은 못 속인단 말이야.》

《누이동생이라구? 맙시사! 비슷하게 생기지두 않았구만 뭐.》

《아마 한사람은 친탁을 하고 한사람은 외탁을 한게지?》

《하하하…》

《여, 안되겠어. 오누이2중창을 시키자구.》

《오누이는 무슨 오누이, 애인2중창이지.》

《하하하…》

《찬성이다! 하하하…》

현웅이 지꿎게 달라붙는 장난군들한테서 처녀를 구원해주려고 한마디 한것이 오히려 더 큰 함정을 스스로 파놓은격이 되였다.

류정혜는 바늘구멍이라도 있었으면 들어가고싶을 정도로 옹색한 처지에 빠졌다. 현웅에게는 익살군들의 유희를 웃음으로 대치해버릴 기지와 담이 있는데 처녀에게는 그런게 전혀 없는것이였다. 마음이 깨끗한것만큼 고지식한 처녀였다. 얼굴은 성냥불을 갖다대기만 하여도 활 타버릴듯 빨갛게 달아올랐는데 그것이 익살군들을 더욱 부추겨놓았다. 류정혜는 얼굴을 감싸쥐고 울상이 되였다가 끈질긴 청년들의 청에 못이겨 일어났다.

현웅은 그러는 처녀를 보자 마음이 사뭇 즐거워졌다. 얼굴에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발이 피여올랐다. 익살군청년들에 대한 따뜻한 감정이 생겨났다.

《정혜, 먼저 부르라구. 내가 함께 부르지.》

현웅이 따뜻이 부추겼다.

좋은 날이였다. 푸른 하늘로 솟구쳐오른 분수가 하얀 보라를 날리며 내리였다. 분수비에 옷이 젖은들 어떠랴. 청춘은 청춘이여서 아름답고 환희에만 차있는데야!

현웅은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 마음에 꼭 드는 아름다운 처녀와 2중창을 했다.

와!― 터져오르는 찬사의 목소리들이 하늘로 풍겨오른다. 다리우로 지나가던 손님들까지도 이채로운 광경을 즐겁게 내려다보며 미소를 보낸다.

부웅― 물우로 떠가는 하얀 유람선이 고동을 울려준다.

희망찬 미래에로 삶의 닻을 올린 청춘들을 축복하는 고동이 아닌가!

《정혜, 이젠 마음이 풀어졌어?》

뽀트에서 내려 버드나무그늘이 드리운 유보도의 나무의자에 가앉으며 현웅이 말했다.

처녀는 아직도 뭇사내들의 눈길에 포위되여 2중창을 부르던 때의 숫저움과 당황해지기만 하던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듯 붉은 색조로 물들어있는 얼굴을 살짝 들어 현웅을 밉지 않게 흘겨보았다.

《현웅오빤 미워요. 남은 속상해서 죽겠는데 좋은 말 해줄 생각은 하지 않고 뭐예요. 뽀트에는 왜 태워가지구서.》

《정혜, 내가 말하지 않았어. 그것때문에 너무 고민할건 없다구 말이야. 이제 일이 다 잘 될거야. 문제는 정혜한테 달려있는거지. 작은할아버지의 말대로 해야 해. 나라에서 교원이 되라고 정혜를 공부시켰다는 작은할아버지의 말이 다 옳은거지 뭐야. 사람은 좋은 사람이 돼야 하지않겠어.》

《그럼 아버지의 의향은 어떻게 해요?》

《리해시켜야지. 난 정혜동무의 아버지도 종당에는 리해할거라구 생각해. 가만, 저기서 사진을 찍는구만. 우리도 찍자구, 함께 말이야.》

《어마, 어쩔려구?》

《챠, 별나게 생각하는게 아니야? 정혜동무가 대학을 졸업하고 새로운 생활의 길에 들어서는것을 축하해서 찍자는거야.》

그제서야 처녀의 얼굴에 미소가 피여올랐다.

《꼭 교원이 돼야 해!》 리현웅이 나직이 속삭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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