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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명산동무 아니요?》

지나가던 승용차가 멈춰서며 차문이 열리더니 김한길책임비서가 내렸다.

승용차가 뒤에서 오는 바람에 한옆으로 비켜섰던 리명산이 그제서야 군당책임비서를 알아보고 다가가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책임비서동지.》

《어디로 가는 길이요?》 리명산의 해볕에 탄 거뭇한 얼굴을 별로 유심히 바라보며 군당책임비서가 물었다.

《읍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국토부에 볼일이 있어서…》

《타오.》

리명산이 차에 오르는 모습을 보며 김한길책임비서는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듯 싱글싱글 웃었다.

《자전거라도 타고갈게지 40리나 넘는 길을 걸어서 떠날건 뭐요?》

《읍으로 들어가는 길에 독골에 들려볼 작정을 하다나니… 그대신 이렇게 책임비서동지의 차를 타고가게 되지 않았습니까.》

《산길을 탔댔구만. 님도 볼겸 뽕도 딸겸이라더니.… 그런줄은 모르고 감독초소에 들려 동무를 찾았지. 주인이 없기에 승인없이 방아골까지 올라가봤소. 그새 나무들이 많이 자랐더구만.》

김한길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허허 하고 웃었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책임비서동지.》

《리명산인 역시 리명산이요.》

《?》

무슨 영문인지 알수 없어 벙벙해진 리명산을 돌아보며 김한길이 말했다.

《탑골탄광사람들을 단단히 비판했다면서? 양묘장에 강냉이 심어먹을 생각만 한다고 말이요.》

그제서야 리명산이 책임비서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고 얼굴이 뻘개졌다.

《책임비서동지가 그 일을 어떻게?》

《책임비서니까 알지.》

《제가 성격이 못돼먹다나니 또 결함을 범한것 같습니다.》

김한길이 고개를 돌리며 리명산을 피끗 쳐다보았다.

《사람이 왜 그렇소?》

《…》

《사실 내 전번날 동무를 비판하고 내려보내고나서 걱정도 없지 않았소. 일 잘하는 동무가 비판받고 주눅이 들어버리지 않았나 해서 말이요. 그런데 그런것 같지 않더구만. 잘못하는것을 보면 그렇게 욕도 해야지. 내 리명산인 리명산이라고 한건 그래서 한 소리요.》

《책임비서동지.》

김한길은 차창너머로 흘러가는 산판의 이깔숲을 바라보며 갑자기 젖어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동무도 봤겠지? 오늘신문에 선군장정의 길을 이어가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인민군부대를 현지지도하시면서 우리 군인들이 주변산들에 나무를 많이 심어 숲이 울창해진것을 보시고 못내 기뻐하시였다는 소식을 말이요.… 장군님께서 최근에만 하여도 온 나라를 수림화, 원림화할데 대하여 얼마나 귀중한 가르치심들을 주시였소. 난 신문을 보면서 이 큰리를 생각했소. 그리고 우리 하동을… 장군님께서 현지지도의 길에 숲이 무성한 우리 군의 산들을 보시면 얼마나 기뻐하시랴 하고 말이요.》

(그래서 책임비서동지가 내려오셨구나! 정말 그날이 언제면 올가?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 큰리의 숲을 두고 기뻐하실 그날이…)

리명산은 가슴이 뜨거워났다.

중학교시절의 담임선생님생일을 축하해주러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현심을 오토바이를 타고 마주오던 사람이 멈춰서며 불렀다. 현심은 석탄먼지가 내려쌓인 길옆에 비켜선채 상대방을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현심을 불러세운 사람은 퉁퉁거리는 오토바이우에 앉아 우주비행모같은 번쩍거리는 안전모의 눈가리개를 올렸는데 아무리 봐야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를 불렀나요?》

《너 리명산감독원의 딸이지?》

벌깃한 얼굴에 푸접좋아보이는 웃음이 가득 떠올랐다. 현심이 지꿎게 올려다보며 물었다.

《거긴 누구나요?》

《난 류석철이란 사람이다. 사람들이 〈작은 감독원〉이라고 하는 너를 처음 본게 어제같은데 허, 인젠 시집을 가도 되겠구나. 대학생이라지? 너의 아버지는 잘계시니?》

현심은 새물새물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별 싱거운 사람도 다 있다고 앙큼한 생각을 했다.

《예, 아버진 그저 그렇게 지내요, 늘 바삐.》

《너의 아버지 리명산이야 그렇게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지. 큰리에 2 000정보 산림을 일떠세웠는데 영웅이 뭐 별다른 사람이겠냐. 이제 봐라, 진짜영웅이 될게다. 좌우간 류석철이란 사람이 한번 찾아보겠다고 아버지한테 일러라.》

그 사람은 눈가리개를 내리며 몇번 부르릉거리더니 오토바이를 몰고 가버렸다.

현심은 먼지를 일으키며 질풍같이 달려가는 오토바이를 갸웃이 바라보며 어떤 사람일가? 하고 생각했다. 리명산의 딸이라는것을 알아보는것을 보면 아버지와 아는 사이인것 같은데 현심은 아무리 생각해봐야 그를 본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쨌든 재미나는 사람같았다.

집에 오니 어머니가 터밭 한쪽 귀에서 부루를 뜯고있었다.

《어머니, 류석철이란 사람이 누구야요?》

《너 그 사람에 대해선 왜 묻니?》

왜서인지 어머니는 언짢아했다.

《이자 오다가 길에서 만났어요. 우리 아버지에 대해서 좋은 말만 하던데요. 이제 영웅이 될거라고 말이예요. 이제 우리 아버지를 한번 찾아오겠다고도 해요. 대체 어떤 사람이예요?》

장미화는 기가 막히는 일도 다 있다는듯 코김을 내불었다.

《그 사람이 읍에 살면서 오래전에 세상떠난 너의 고모할머니를 많이 도와주었다더라. 고모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땐 장례식도 도맡아해주구.》

《어마! 그럼 고마운 사람이군요 뭐. 한데 어머니는 왜 그 사람소리하면 기분나빠해요? 사람에 대해선 좋은 생각부터 가져야 할게 아니야요. 그런데 어머닌 왜 그래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야, 넌 뭘 자꾸 꼬치꼬치 따지니? 그리고 이제부터는 집에 꾹 박혀서 공부나 해라. 바람난 계집애처럼 나다니지만 말구, 대학생이라는게.》

《음―》 현심은 입을 비쭉하며 눈을 흘기였다.

《내가 뭐 어쨌다구 그래요. 선생님생일을 축하해주러 갔댔는데. 그건 의리이구 도덕이예요.》

장미화는 딸이 뭐라고 하든 더 상관치 않고 수도가로 가서 부루를 씻기 시작했다. 분명 화가 난 나머지 마음의 평온을 죄다 잃어버린듯 한 거동이다. 현심은 어리둥절했다. 왜 갑자기 저럴가? 류석철이란 사람과 우리 집 사이에 무슨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도 있었을가? 눈앞에는 미소가 철철 흐르던 류석철의 벌깃한 얼굴이 떠올랐다.

산에 올라갔던 리명산은 점심식사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집으로 내려왔다. 장미화가 부루쌈을 싸서 점심밥을 달게 드는 남편을 빤히 쳐다보며 별로 신중해서 물었다.

《여보, 류석철이란 사람이 우리 큰리에 내려와서 돌아간다는 소리 들었어요?》

리명산은 심상해서 듣고있다가 안해의 말투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쳐들었다.

《당신 낯색이 왜 그렇소?》

《글쎄 현심이 아버지, 그 사람에 대해서 돌아가는 소문 못 들었어요?》

리명산은 짜증이 났다.

《아니, 당신 대관절 무슨 말을 하자는거요? 무슨 소문이 돌아간다는거요? 그 사람이 그전에 여기 큰리에서 살던 사람이니 아는 사람들도 있을거구 올 일이 있는거겠지 뭘.》

《당신은 늘 산밖에 모르는 사람이니 주위에서 떠도는 소문도 못 듣지요. 그 사람이 큰리에 다시 와서 탄맥을 붙잡을 생각을 한대요.》

《당신 가내반 아낙네들속에서 묻혀살면서 귀가 꽤 커졌구만. 병원 경리과장이나 하는 사람이 탄은 많이 캐서 무얼 한단 말이요? 헛소문이야.》

장미화는 말이 없었다. 분명 언짢은 표정이였다.

리명산은 상에서 물러나며 조용히 말했다.

《여보, 그래도 그 사람이 하동읍에서 말년을 외롭게 산 고모를 많이 도와준 사람이 아니요. 친자식인들 게서 더하겠소. 사람이 젊어서 한때 잘못한건 있지만 우리 집안을 위해선 고마운 사람이요.》

《에구― 그 사람이 고맙기두 하겠어요!》

어쩐지 심상치 않은것이 안해의 말에서 느껴졌다.

《당신 정말 무슨 소릴 하자는거요?》

《그 잘난 〈은인〉이 읍에서 무슨 소문을 퍼뜨렸는지 아세요? 현심이 아버지가 군당책임비서동지한테 불리워가서 작풍상 문제때문에 충고를 받고 나온것을 가지고 어떻게 보태서 소문을 돌렸는지 아는가 말이예요. 당신이 신문에 몇번 나더니 교만해져서 의리도 도덕도 모르는 거칠고 까다로운 인간으로 되였다구, 그때문에 엄한 책벌까지 받았다는거예요.》

리명산은 어안이 벙벙해서 안해를 바라보다가 허― 하고 객적은 웃음을 터뜨렸다. 속이 빈것 같은 그 웃음뒤끝에 방안에는 정적이 깃들었다.

《여보, 현심이 엄마.》

이윽하여 리명산이 자기를 다잡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 현심이 있는데서 무슨 그런 소릴 다 하오? 그러지 마오. 아무려믄 그 사람 무슨 억하심정에 그런 허망창한 소문을 꾸며서 내돌린단말이요.》

현심이 조용히 웃방으로 올라가 사이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아래방의 동정에 귀를 기울이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리명산은 생각이 복잡했다. 안해한테는 류석철에 대한 좋지 않은 생각을 버리라고 눌러놓았지만 그 역시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 그 말을 듣지 않은것만 못했다. 류석철이 큰리에 와서 탄맥을 잡겠다고 한다는게 근거없이 돌아가는 소문같지는 않았다. 그 사람이 무슨 악감이 있어 이 리명산이에 대한 터무니없이 날조된 소문을 내돌린단 말인가? 혹시 그때 일이 내려가지 않아 앙갚음하자고 그랬는가? 그 사람이 속통이 좁은 인간같지 않는데 아무렴 그런 치졸한 행동이야 했을가?

그것은 지난봄 나무심기가 한창 벌어지고있을 때 있었던 일이였다. 리명산은 그날 아침 나무심기에 동원되여 올라온 매 기관들에 면적을 할당해주고나서 반나절을 묘목밭에 가있었다. 인민군부대에서 나무모를 가져가기로 전화약속이 되여있어 정보옥이네 산리용반원들을 시켜 전날에 필요한 량의 나무모를 떠놓았댔는데 다른 기관들에서 나온 식수인원들이 먼저 떼를 써서 다 가져간것이였다. 리명산은 군부대에서 오기 전에 나무모를 뜨느라고 떠들썩 말하기 좋아하는 산리용반아낙네들을 되게 몰아댔다. 겨우 그 일을 끝내고 나무심기전투를 벌려놓은 방아골로 올라가보니 다른 단위들은 대체로 맡은 구간을 다 끝냈거나 일을 결속하느라 기세들을 올리고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군병원에서 맡은 구간은 거의 그대로 남아있었다. 거기서는 다른 기관사람들이 나무모를 심느라고 법석이였다. 군병원사람들은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리명산은 기분이 대단히 좋지 않았다. 선뜻 짚히는데가 있었다. 류석철이에 대한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불쾌했던 일이 생각났다. 다른 기관들에서는 일찍부터 식수인원들을 모두 데리고나와 작업분담들을 하느라고 웃고 떠들며 흥성거리고있을 때 군병원에서는 류석철이 혼자 깨끗한 차림으로 소형뻐스에 올라앉아 나무심는 작업현장에 나타나서는 구간을 맡겨달라고 하는것이였다. 리명산은 기관책임자가 왔으니 기본로력이야 뒤따라 오는거겠지 하고 좋게 생각하며 구간을 떼주었다. 그런데 이제보니 류석철이 좋지 않은 일을 벌린게 분명했다.

아닌게아니라 조금 있다가 류석철이 소형뻐스에 당과류며 맥주상자며 하는것들을 싣고 나타났다.

리명산은 참을수 없었다. 그는 앞뒤를 더 생각해볼것도 없이 사람들의 작업을 중지시켰다.

산아래에서 리명산과 단위책임자가 만나는것을 알아본 류석철이 무슨 일인지를 알아차린듯 날래게 올라왔다. 그는 싱글벙글 웃는 낯을 해가 지고 리명산이 앞에 나타났다.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품위를 돋구어주는 고상한 색갈의 깨끗한 옷을 입었는데 그우에는 역시 깨끗한 새 작업복상의를 걸치였다.

리명산은 무엇보다도 그의 얼굴에 실려있는 비위살좋은 웃음을 보자 까닭없이 화가 치밀어올랐다. 하여 온곱지 않게 말을 내던졌다.

《여보시오. 류동무, 어쩌자는거요?》

《아니, 왜 그럽니까? 감독원동무.》

《왜 그러는가가 뭐요? 차에 싣고온것들을 당장 도로 가져가우! 보기도 싫소. 그리고 병원에 차례진 구간의 나무심기는 동무네 손으로 끝내야겠소. 오늘중으로 말이요. 인원들을 데리고와서 심든 동무 혼자서 심든 그건 상관치 않겠소!》

목소리에는 차거운 기운이 풍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류석철은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 물러설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천연덕스러운 웃음을 얼굴에서 걷어내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감독원동무, 솔직히 말합시다. 이렇게 하는게 사실말이지 좋은 방법이야 아니지요. 감독원동무가 비판을 하는것도 응당한거지요. 하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병원인원이란게 쉰명 되나마나한데다가 그나마도 모두 나가있어 그러지 않습니까. 병원앞에 차례진 나무심기과제야 수행해야지요. 그래서 이곳 가까운 기관에 가서 사람들을 좀 동원시켜달라고 사정을 한것입니다. 저런 물건들을 싣고 다닌다는게 낯간지러운 일인줄 알면서도 인사차림은 해야겠기에 그런것인데 좀 리해를 해주십시오.》

류석철은 멋적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가책의 빛과 동정이 가지 않을수 없는 호소에 리명산은 어느 정도 화를 삭이였다.

《사정이 그렇다니 더 말하지 않겠소. 사람들이 이왕 나무를 심으러 올라왔으니 그냥 심게 합시다. 그러나 차에 싣고온것은 도루 가져가오.》

류석철은 헌헌히 자기가 잘못했노라고 했다. 리명산은 그때 그의 진심을 믿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서 유쾌하지 못한 소문이 우연히 리명산의 귀에 날아들어왔다. 큰리의 산림감독원이란 사람이 의리도 없고 대중앞에서 자기를 자제할줄도 모르는 차거운 사람이라는 소리를 류석철이 돌아다니며 한다는것이였다. 리명산은 그때 처음으로 류석철에 대하여 이상야릇한 인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랬던것인데 오늘 또 안해한테서 별난 소리를 듣는것이였다. 류석철이 과연 어떤 인간인가?

허리쉼을 하려고 맨 장판우에 잠간 누워있으려니 눈앞에는 어쩌다 그를 볼 때마다 얼굴에 노상 어려있는 사람좋은 미소가 떠올랐다. 정말이지 속이 좋지 않았다.

《어머니.》 점심시간후 잠간 누워있던 아버지가 산으로 올라가자 현심이 책상을 마주하고 앉아 공부를 하다가 지루감을 느끼며 물었다.

《아버지와 결혼한것을 후회한적은 없나요?》

이불거죽을 빨아 말리운것을 손질하던 장미화가 어이없어하며 눈이 휘둥그래졌다.

《야, 넌 이번방학엔 시내에 남아있겠다고 하다가 내려와선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졌니? 계집애가 원,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현심은 역시 아버지의 편역을 더 많이 들군 하는 아버지의 딸이다. 아버지가 작풍상 결함때문에 당조직의 충고를 받은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현심의 마음속에는 무작정 아버지를 비호하려는 감정이 작용했다. 현심은 자기 아버지가 일밖에 모르며 결백하고 정의감이 강한 훌륭한 아버지라는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그는 자기만이 아버지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아니, 확신했다. 아버지의 과오란것이 사실인가를 알아보자고 하는것도 실은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것이 밝혀지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만약 그것이 확실해지는 날에는 누구한테서도 축잡혀본적이 없는 자기의 자존심이 모욕당한데 대한 앙갚음이라도 할 판이였다. 그 앙갚음이란 인민대학습당 접수홀에서 아버지를 비난하는 말을 하던 그 류정혜란 처녀를 어떻게 해서든지 찾아내여 《동문 왜 알지도 못하면서 사람에 대한 험담을 퍼뜨리는거예요? 나의 아버지이며 큰리의 산림감독원인 리명산은 훌륭한 사람이예요!》하고 앙큼하게 쏘아주는것이였다.

그런데 집에 내려와있는 며칠사이에 현심은 당혹감에 빠져버리였다.

의혹이 생긴것이였다.

현심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신중하지 못한것으로 해서 튀여나가는것이 많은 아버지의 일때문에 마음을 쓰는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는 말했다.

《엄만 큰리에 와서 살며 별난 마음고생을 다하는구나.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이 맞지. 무엇때문에 나무 한대 찍는것을 보고서도 참지 못하고 험한 말만 골라서 욕을 한단 말이냐!》

현심이 짜증이 날 정도로 어머니는 애달픈 한숨과 함께 푸념을 늘어놓았다. 최영우지배인을 봐라, 인젠 그 지배인까지도 우리 집을 멀리하려는 눈치다, 큰리에 내려오면 의례히 우리 집에 들려 점심식사랑 하던 최영우지배인이 요즘 왜 발길이 떠지는가 했더니 다른 사람네 집에 들리군 하는 모양이더라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현심은 차츰차츰 자기의 가슴속에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자라는것을 의식했다. 어머니가 측은했다. 시내에서 살다가 아버지한테 시집온덕에 촌에 내려와 살며 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고생까지 하는 어머니! 현심의 귀에는 조금전에 어머니가 《최영우지배인이 하동에 다시 내려온것도 당신때문이 아니예요!》하고 아버지에게 불만을 터놓던 목소리가 다시 울리였다. 현심이 애써 부정하려고 해도 가슴속 한구석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한가닥 의혹이 가셔지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렇게 말하는것을 보면 그 류정혜란 처녀가 하던 말이 사실이라는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자기는 류정혜를 만난다 해도 앙갚음은커녕 아무런 할 소리도 없게 되는것이였다.

《어때요? 동무 아버지 리명산이 좋은 사람이 못되지요? 맞지요?》

얄밉도록 고운 얼굴에 조소의 빛을 띄우고 깨고소해서 골려대는 류정혜의 역시 얄밉도록 랑랑한 목소리가 울려오는것만 같았다. 그게 사실인가? 아버지의 생애에 그런 흑점이 있다는게 사실일가? 행복하던 한 인간의 운명에 좌절이라는 그늘을 지어준 그것보다 더 큰 죄가 또 있겠는가. 만약 그 모든것이 사실이라면 아버지야말로 최영우라는 한 인간앞에 일생을 두고도 보상할수 없는 빚을 지고있다는것이 아닌가! 아니, 그럴수 없어! 아버진 그렇게 비렬한 인간이 아니야! 아버지가 그런 과거를 안고있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뻐젓이 비판도 할수 있으며 열성분자의 행세도 할수 있단 말이야.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있담! 현심은 그 엄청난 일도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며 기어코 캐보리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내놓고 물어볼수는 없는것이였다.

딸이 마치도 아버지의 떳떳치 못한 과거나 알고싶어 뒤캐기를 하는것으로 보인다면 일이 얼마나 우습게 될것인가!

현심에게는 그게 자기를 위해서 유리한것인지 아니면 불리한것인지 알수 없는 하나의 기질이 있었다. 그것은 량부모중 누구한테서도 유전받은것이 아니였다. 현심은 무슨 기분나쁜 일이 있거나 우울이나 고민에 빠질 때면 남들이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꾸며낸 경박과 천연의 보자기로 살짝 가리워버리는것이였다.

현심은 이제 어머니앞에서 그 《무기》를 쓰기로 했다.

그는 경박한 웃음을 태연스레 꾸며냈다.

《어머니, 딸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를 닮는다고 했어요. 그건 바로 용모나 성격만 아니라 어떤 한생을 사는가 하는데서도 어머니의 전철을 밟게 된다는 의미가 포함될거예요. 그러니 저도 제 앞날의 운명이 어떤 색채로 채색되겠는지 알아야겠단 말이예요.》

현심의 계교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것 같았다. 당장 반응이 일어났다. 그것은 현심이로서도 깜짝 놀랄만 한 반응이였다. 현심의 작은 심장이 금시 튀여나올듯 불안스럽게 뛰였다. 어머니의 얼굴이 거의 백지장처럼 하얘지는것이였다.

《난 네가 이 어머니의 생을 되풀이할걸 바라지 않는다!》

《?!》

현심은 가까이에서 벼락이라도 친듯 깜짝 놀랐다. 어머니는 일손을 놓은채 다시 잡을 생각을 못했다. 현심은 한껏 두려움에 질려 어머니를 초연히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어머닌 아버지와 결혼한것을 후회하고계신다는거예요?》

목소리는 자기도 모르게 모기소리처럼 가늘어졌다. 현심은 그러면서도 자기가 던진 돌멩이가 일으키는 파문의 세기를 알려고 어머니의 얼굴표정을 조심스럽게 주시했다.

어머니는 지나온 자기의 한생의 먼길을 바라보듯 허공의 한점에 눈길을 준채 한동안 꼼짝하지 않고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후회는 무슨 후회를 하겠니. 난 내 불행이 어디서 오는것인지를 안다. 그것을 굳이 불행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그건 내가 너의 아버지를 다 리해하지 못하는데서 오는거란다. 그런데 이 어머닌 일생을 두고 너의 아버지에 대해서 다 리해하지 못할것 같다. 나야 그저 제집 살림 하나밖에 모르는 범박한 촌내인이 아니냐. 일생 너의 아버지를 원망하고 너의 아버지때문에 속을 썩여야 하는건 이 어머니에게 차례진 운명일거다.》

현심은 인생의 아리숭한 수수께끼같은 소리에 어리둥절했다. 혹시 우리 어머니는 인생이란 그것에 대하여 별로 복잡하게 생각하는게 아닐가?

인생을 복잡하게 생각하는것보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사는것이 더 편리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아. 오묘하게 얽힌 인생의 실꾸리를 현심은 아무리 모지름을 써도 풀어낼것 같지 않았다. 현심은 나직이 한숨을 쉬였다.

《그래도 어머닌 의사가 될 꿈이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공부도 했었지요.》

《어찌겠니. 이 어머닌 〈산지기〉를 따라왔으니 죽어도 이 큰리의 산에 묻혀야지.》

딸의 얼굴에 어려있는 심란한 기색을 띠여본 장미화가 웃으며 말했다.

장미화의 그 말속에는 남편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과 함께 애수가 비껴있었다. 이제는 어차피 이 산골에서 한생을 살아야 한다는것을 알면서도, 오래전에 두고온 좋은 생활을 다시는 바랄수 없다는것을 알면서도 미련의 불을 끌수 없어하는 애수였다.

현심은 지금껏 어머니에 대하여 많은것을 모르고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자의 한생이란 그런것인가? 산림감독원남편을 둔탓에 기막히는 일들은 얼마나 많았는가! 생활의 만족감이란 모르고 지금에 와서는 별난 마음고생까지 하는 어머니! 그러면서도 아버지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녀자의 숙명으로 받아들이는것이 아닌가. 그런 모순이 또 어디 있을가? 정말이지 녀자의 한생이란 그런것인가?

오래전 일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어느해엔가 리명산은 산판에 갔다가 돌아와서 점심을 달게 먹다가 《얘들아, 오는 명절날엔 온 가족이 방아골에 들어가 야유회를 하자.》하고 말했다.

산판일밖에 모르는 그가 야유회소리를 했다는것은 놀라운 일이였다.

아이들은 좋아서 손벽을 짝짝 치는데 장미화는 쓸쓸한 미소를 지을뿐 말이 없었다.

《어머닌 가족야유회를 가자는데 좋지 않아요?》

딸이 의아해서 하는 말에 장미화는 《가자꾸나. 너의 아버지가 어찌된 일이냐, 야유회소리를 다 하시니.》하면서 한숨을 내쉬였다. 현심은 그 한숨의 까닭을 리해할수 없어 두눈이 올롱해졌다.

리명산이 껄껄 웃었다. 그러다가 인차 정색해서 말했다.

《여보, 당신의 마음을 리해하오. 이 무정한 사내를 따라 이 산골에 와서 몸에 붙지 않은 생활에 습관되느라 고생도 많았고 또 마음고생도 많았지. 그러는 사이에 젊음은 속절없이 지나가고말았지. 내 오늘 산으로 들어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오? 시내의 아담한 단층집에 심어놓았던 붉은 장미가 이 산골에 옮겨와서 다 시들어버렸구나 하는 생각을 했소. 당신이 여기 내려와서 언제 한번 새옷을 입어볼 기회가 있었소? 도시에서 생활할 때처럼 얼굴에 화장을 한번 해볼 일도 없었지. 내 그래서 올해에는 산후탈로 집에 붙어살며 고생도 많은 당신에게 산경치도 구경시켜줄겸 해서 가족야유회를 가자는거요!》

눈물이, 장미화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해졌다. 녀자의 행복이란 그리 요란한데서 오는것이 아니였다. 따뜻한 리해를 받는다면 그리고 남편의 사랑이 진심이라는것을 느낀다면 그것이 바라는 행복의 전부라고도 할수 있는것이였다.

그해 가을따라 유난히 청명하고 따뜻한 날이 계속되였다. 야유회를 가기에는 기막히게 좋은 계절이였다. 노는 날이면 음식들을 해들고 록음기소리를 울리며 산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방아골 막바지에 들어가면 가족들이 둘러앉아 놀기에 좋은 펑퍼짐한 바위들과 풀판들이 많았다.

리명산은 야유회를 가기로 약속한 명절을 앞두고 장진으로 떠났다. 그가 장진으로 가는것은 해마다 이맘때면 어길수 없는 일로 되고있었다.

2 000정보의 림상개조를 하면서부터 리명산은 기차를 타고 며칠을 가고 또 자동차를 갈아타야 하는 그 먼 장진에 가서 이깔나무종자를 날라오군 했다. 그렇게 해서 양묘장에 심어 키워낸 애기모들을 산판에 심었는데 첫해에 심은것들은 벌써 13년생이 되였다. 그러니 리명산은 벌써 10년이 넘는 오랜 세월 장진행기차를 타는것이였다. 그렇게 날라온 씨앗을 다 합치면 한톤은 될것이였다.

《아버지, 명절까지는 꼭 돌아와야 해요.》

길떠나는 아버지를 바래우며 현심이 다짐을 받았다.

《꼭 오지 않구. 기다려라.》

헌헌히 대답하고 리명산이 장진으로 갔다.

리명산은 약속된 날자안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약속을 굳게 하고 떠났으니 명절날 아침에라도 나타날수 있다며 어머니를 도와 떡을 빚어놓고 새옷도 꺼내놓으면서 부산을 피우다가 잠들었던 아이들은 당일 아침 해가 뜨도록 기다리다가 끝내는 지쳐버리였다. 아버지가 명절날 아침에라도 들이닥치기는 케가 틀리였다. 장진쪽에서 오는 기차가 평양으로 들어간지도 오랜것이였다.

《에이, 아버진 뭐야! 약속하구선!》

약이 올라 토달거리는 딸에게 장미화가 말했다.

《그만해라. 무슨 일이 있어서 못 오겠지. 천리밖에 간 아버지가 아니냐. 아무렴 일부러 늦어지기야 하겠니.》

《야 현심아, 넌 공부나 하렴. 남들이 모두 야유회에 가서 놀 때 공부를 해서 이담에 대학 가면 좀 좋아서.》 오빠 현웅이 히물거리며 동생의 약을 바짝 올려주었다.

약속한 날자보다 한주일이나 지났을 때 장미화는 속이 탈대로 탔다.

틀림없이 무슨 사고가 난거라고 생각했다.

어느날 새벽이 가까와오는 깊은 밤, 장미화는 불안속에 잠들지 못하고있다가 평양으로 들어가는 기적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장미화는 꼭 악몽에서 깨여난 사람처럼 느닷없이 가슴이 두근거리였다. 어째서인지 남편이 밤중에 불쑥 들어설것만 같은것이였다.

예감이란 참, 신비하기도 하다!

밖에서 인기척소리가 나더니 문이 벌컥 열리였다.

아, 현심은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쓰려온다. 아버지는 부피가 이불짐만 한 짐을 힘들게 지고 문밖에 서있었는데 얼굴을 절반도 넘게 가리운 마스크를 끼고있었다.

《여보, 당신 웬일이세요?》

《아버지!》

장미화가 부르짖으며 황황히 달려나가 이깔씨앗짐을 받아내리우고 아이들이 깜짝 놀라 웨쳤다.

방안으로 들어온 리명산은 마스크를 벗었다. 입술은 터지고 퉁퉁 부어오르고 피가 엉켜붙었다.

눈물을, 장미화는 어인 일인가고 캐물을 생각도 잊고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이발이 왜 다 없어졌나?》

현심이 슬픔에 잠겨 물었다.

리명산은 쓸쓸하고 서글픈 미소를 지어보이며 《미안하구나! 이 아버지때문에 야유회를 못 갔구나!》하고 말했다. 아, 그때 그 쓰린 눈물!

그렇다, 현심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였다.

리명산은 병원에 가서 스무날이나 치료를 받고 이발도 새로 해넣었다.

그는 병원에 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발을 해넣고 돌아와서야 별치 않은 일인듯이 시뭇이 웃으며 사연을 말했다. 장진에서 이깔씨앗을 조금이라도 더 가져오려고 욕심을 부리여 힘에 부치는 짐을 꾸려가지고 역으로 나오다가 경사지에서 굴러내리였다. 장진에 다니면서 알게 된 정순희라는 녀인이 지름길을 타고 산을 내리다가 굴러떨어져 정신을 잃은 그를 발견하고 사람들에게 알려 집으로 데려갔다. 그 집에서 꼼짝 못하고 닷새를 누워있다가 다시 이깔씨앗짐을 지고 길을 떠났다.

장진의 그 정순희한테서 얼마후에 편지가 왔다. 리명산이 아니라 그의 안해앞으로 보낸것이였다.

《아주머니는 행복한 녀자예요. 큰리의 참빗장사라면 우리 장진에서는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답니다. 이깔씨앗 한키로그람이라도 더 가져가겠다고 온 산골마을을 참빗으로 훑듯이 하는 명산아저씨를 보면서 감동되지 않은 사람이 없답니다. 사람이 그렇게 해서 성공 못할 일이 어디 있겠나요.》

《어머니, 행복이란게 뭐야요? 어머닌 정말 행복하나?》

편지를 읽어보던 현심의 말이였다. 장미화는 쓸쓸한 미소를 띠였다.

《어머닌 모르겠구나, 그게 행복인지.》

이듬해 가을에는 리명산이 장진에 씨앗을 가지러 갔다가 명절전에 돌아왔다. 그래서 전해에 못 간 가족야유회를 가게 되였다.

리명산부부는 산으로 올라가기 전에 약간한 싱갱이가 있었다. 리명산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안해에게 결혼식때 입었던 새옷을 입으라고 했다.

《에그머니나, 사람들이 보면 웃겠어요. 당신은 아직도 이 장미화가 새색시인가 하셔요? 다 시들어버렸는데 새옷은 무슨 새옷이예요.》

장미화가 기겁을 했다.

현심이가 나서서 아버지의 편역을 드는 바람에 장미화는 끝내 장농안에 넣어두었던 뉴똥치마저고리를 꺼내입었다. 젊음이 다 지나가다니! 새옷을 입은 장미화는 대번에 환해졌다. 하긴 세월이 흘렀다고 처녀때의 미가 말짱 사라졌을가.

《우리 어머니가 참 멋있는데! 이제부터 명절날이면 어머니는 그 옷을 꺼내입으라요.》 아들 현웅이까지 좋아서 싱글거리였다.

아이들이 보채서 아침일찍 서둘러 방아골로 올라갔다. 장미화는 정말로 처녀시절이 되돌아온듯 했다. 아이들이 태여나서부터는 남편과 함께 산보를 하거나 야유회를 나가본적이 한번도 없는것이였다. 그것을 생각하면 흘러보낸 젊음이 아쉬운것이였다. 하여 오늘은 놓쳐버린 그 모든것을 봉창이라도 하고싶은 심정이였다.

가을의 골안은 잠풍하고 신선했다. 굽이굽이 산으로 오르는 돌많은 오솔길, 길가의 깨끗한 잔디, 노박덩굴사이를 빠져 날며 우짖는 메새들의 우짖음소리, 졸졸졸… 돌짬으로 흘러내리는 시내물소리, 하루전에 비가 내리여 공기는 더욱 청신해졌다. 땅에서 물씬물씬 풍겨오르는 습기냄새마저 기분을 마냥 상쾌하게 했다. 이제 태양이 솟아오르면 파아란 하늘가득 해빛이 서리고 골안은 더욱 눈부실것이다.

그들은 방아골의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음식들을 차리였다. 그사이에 해가 떠올랐다. 생활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것인가! 아이들 성화에 너무 일찍 올라온줄 알았는데 인차 많은 사람들이 올라왔다. 골안은 어른들의 부름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록음기에서 울려나오는 양산도가락으로 흥성이였다.

현웅이 남들한테 뒤질세라 바위우에 걸터앉아 기타를 뜯었다. 그애는 요즘 기타를 배우는중이여서 앉으면 기타밖에 몰랐다. 안해와 딸이 음식을 차려놓는 동안 리명산은 산을 돌아보고 오겠다고 골안막바지로 올라갔다. 거기엔 리명산이 습관처럼 자주 밟아보는 명덕산이 있는것이였다. 큰리의 숲의 수호신이였던 《산신령》이 마루에 잠들어있는 산이였다. 그 산에는 리명산의 심혼이 깃들어있었다. 리명산은 벌써 10년도 넘는 세월 돌밖에 없는 그 산에 등짐으로 부식토와 흙을 져올리면서 해마다 창성이깔나무들을 심어오고있는것이였다. 그 나무들이 오랜것은 벌써 12년생이 되였다. 그런가 하면 올해 봄에 심은 2년생들도 있는데 그 어린것들은 이제 겨우 뿌리를 내리였다.

가족들은 음식들을 다 차려놓고 리명산을 기다렸다. 그런데 한식경이 지나도록 리명산은 내려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아버지를 찾으러 떠났다.

리명산은 그런줄도 모르고 어린 나무모들을 고쳐심는 일을 하고있었다. 하루전에 내린 비에 명덕산비탈면의 갓 심은 나무들이 더러 뿌리가 드러난것이였다. 탕수가 흘러내리면서 파헤쳐놓은것이였다.

기다리던 장미화는 아이들까지 내려오지 않아 찾아올라갔다. 장미화는 아예 작업할수 있는 차림까지 했다. 남편의 성미를 알고도 남음이 있는 그였다.

명덕산으로 올라간 장미화는 아이들과 함께 신발이며 손에 온통 흙매닥질을 하고 돌아가는 남편을 보자 어이없어 웃고말았다. 화를 내서 뭣하랴. 차라리 웃어버리는게 낫다고 장미화는 생각하는것이였다.

야유회가 다 뭔가! 온 가족이 달라붙어 뿌리가 드러난 나무모들을 찾아내여 다시 심다나니 해질녘이 거의 되였다. 장미화가 골안에 펴놓았던 음식가지들을 아예 그곳으로 날라 올려왔다. 락조의 어설핀 잔광이 걸린 산등성이에 모여앉아 때늦은 점심을 먹었다.

《여보, 미안하오.》

리명산이 아이들보다도 안해보기가 더 미안하여 말했다. 실은 안해를 기쁘게 해주려고 마음써오던 끝에 조직한 야유회가 아닌가.

장미화도 그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장미화대로 남편의 마음을 쓰리게 해주고싶지 않았다.

《어찌겠어요, 〈산신령〉한테 시집 온 덕인걸.》

장미화는 밝게 웃었다. 아닌게아니라 야유회는 못했지만 장미화는 조금도 서운해하지 않았다. 이게 녀자의 행복이라는걸가? 장진의 정순희라는 녀자가 편지에 썼던 그 행복이라는걸가?

《얘들아, 내 옛말을 하나 해줄가?》

안해가 리해한다는것을 알고 마음이 가벼워진 리명산이 밝은 웃음을 피워올리며 말했다. 리명산은 바위우에 걸터앉아 옛말을 했다. 리명산이조차도 이제는 드문히 떠오르군 하는 최학세로인의 옛말이였다.

《아버지, 지금도 들리나? 명덕산아래에서 난다는 그 소리 아버지도 들었나?》

현심이 눈이 올롱해서 물었다. 처녀에게는 그것이 그리 슬픈 이야기가 아니였다. 그 애는 행복한 세월에 태여난 세대였다. 조국의 산들에 새겨진 파란많은 력사에 대하여, 거기에 슴배여있는 인간들의 심혼에 대하여 알수도 없고 깊이 생각해볼수도 없는 나이였다.

밤, 으스산한 밤이였다. 큰리에는 비가 내리고있었다. 가을비치고는 전례없던 폭우였다. 현심은 두런두런하는 말소리에 깨여났다.

《여보, 현웅이 아버지, 왜 그래요?》 어머니가 깨여나서 묻고있었다.

현심은 살풋이 눈을 떴다. 방안은 어두웠다. 번쩍! 하는 번개의 섬광에 한순간 방안이 환해졌다. 방 한가운데 우두커니 앉아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였다.

《여보, 당신 못 들었소?》 아버지가 되묻는다.

《무슨 소리 말이예요?》 어머니의 불안에 싸인 목소리.

《분명 방아골쪽에서 났는데, 이상한 소리가.》

《당신 꿈을 꾸지 않았수?》

《넨장, 소리가 났다는데그래!》

《아니, 화는 왜 내시우?》

리명산은 불을 켤 생각도 하지 않고 일어나 말코지에서 옷들을 내리여 입기 시작했다.

《아니, 산에 가시려우?!》

장미화가 놀라며 물었다.

리명산은 대답하지 않았다. 방수포비옷을 찾아입고 밖을 나섰다.

문이 열렸다닫기면서 습기를 머금은 찬바람이 방안으로 쓸어들어왔다.

밖은 캄캄했다. 다시금 번쩍하는 번개의 섬광! 비는 여전히 내리고있었다.

《어머니, 아버지 왜 그러나?》

《모르겠다. 너의 아버지 산때문에 환장을 하지 않았는지.》 불안과 짜증이 뒤범벅된 소리로 말하며 장미화는 문쪽을 초연히 바라보았다.

《자려무나!》 하고 딸에게 말했다.

현심은 자리에 누웠으나 잠들지 못했다. 어머니는 누울 생각을 하지않았다. 아마도 아버지가 돌아올 때까지 그렇게 앉아 기다릴 작정인것 같았다.

폭우는 잦아드는 기색이 보이였다. 그래도 완전히 멎지는 않고 추적추적 끈질기게 내리였다.

리명산은 돌아올줄 몰랐다. 그것이 집안사람들을 더욱 불안하게 했다.

아직 날이 채 밝지 않은 어뜩새벽에 장미화는 아이들을 데리고 방아골로 올라갔다. 간밤에 내린 폭우에 골짜기의 개울물이 와짝 불어났다.

탕수가 흘러내리는 소리에 골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아버지!》

현심이 목청을 돋구어 찾았다. 대답은 없었다. 메아리만이 골안막바지에서부터 불안을 싣고 날아왔다. 아버지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현심은 점점 컴컴해지는 어머니의 얼굴색을 보자 겁이 났다. 무정한 골안이 아버지를 삼켜버린것이나 아닌가?! 비로소 아버지가 들려주던 명덕산전설이 가없는 슬픔의 색조를 띠고 가슴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그 옛말로 자기의 운명을 예언한것이나 아닐가?

골안막바지에 채 이르기 전에 현웅이 소리쳤다.

《어머니! 저길 보라요!》

《!》

어머니도 놀라고 딸도 놀랐다.

명덕산에서 사태가 내린것이였다. 리명산이 몇해동안 갖은 고생을 다하며 져올린 흙과 부식토가 거기에 심어놓았던 이깔나무들과 함께 말짱 흘러내리였다. 인공피복이 벗겨지고 험상한 바위들만 드러나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바로 그아래 산밑에 흘러내린 죽같은 시꺼먼 흙사태우에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사람이 있었다. 온몸이 감탕으로 매닥질된 《감탕사람》이였다.

《아버지가… 어머니, 아버지가!…》 현심의 입에서 토막토막 끊어진 말마디들이 새여나왔다.

《여보, 현웅이 아버지!》

장미화가 억이 막혀 부르짖으며 달려갔다.

리명산은 가족들이 다가오는것도 느끼지 못하는듯 말할수없이 지쳐버린 팔다리를 겨우 놀리며 감탕을 헤집고있었다. 사태와 함께 흘러내려 묻혀버린 이깔나무들을 찾고있는것이였다. 정신이 나간 사람같았다. 묵묵히… 묵묵히… 꽉 다문 입은 백년이 간대도 열릴것 같지 않았다. 눈앞에 나타난 안해와 아이들을 보자 비로소 그의 입에서는 무정한 하늘에 대한 원망같기도 하고 분노같기도 하며 어찌 보면 절망같기도 한 말마디들이 흘러나왔다.

현심은 눈물이 나왔다.

어린 나이에도 가슴이 쓰리였다.

아― 이것들이 우리 아버지가 어떻게 심어 살려놓은 이깔나무들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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