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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옥희소년자위대 (2)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세계적으로 소년근위대와 소년빨찌산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 나왔으며 자기 수령의 초상화를 목숨바쳐 지키고 불붙는 산림을 구원한 영웅적소행들도 우리 소년단원들속에서 처음으로 발휘되였습니다.》

조국해방전쟁기간 벽성군을 중심으로 한 황해남도일대에서 수십차례의 전투를 벌려 근 200명의 적을 살상포로, 수많은 전투무기와 탄약로획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서 조옥희소년자위대의 투쟁에 대한 해설을 듣고난 소년단원들이 장령강사에게 매여달렸다.

《우리만 한 나이에 어떻게 이처럼 용감하게 싸울수 있었습니까?》

그들에게 에워싸인 장령강사 김형봉, 올해 77살인 그는 전쟁시기 조옥희소년자위대 대장이였다.

기대에 넘치는 초롱초롱한 눈동자들을 이윽토록 들여다보던 김형봉은 품속깊이에서 무엇인가 꺼내들었다.

그것은 60여년전의 색낡은 소년단휘장이였다.

 

 애국에는 명령이 없다!

 

엷은 젖빛안개가 포근히 내려앉은 고요한 새벽이였다.

미제의 야수성을 세계에 고발하기 위하여 주체41(1952)년 3월 신천군을 방문한 국제민주녀성련맹조사단 성원들에게 싸우는 조선소년들의 용맹한 모습을 보여주고 돌아오는 조옥희소년자위대원들의 마음은 절로 상쾌해졌다.

늘 그러했듯이 김형봉은 동구길에 들어서는 걸음으로 마을을 돌아보기 시작하였다. 골목골목 예리하게 살펴보던 그는 본능적으로 말고삐를 나꾸어채였다. 읍지구의 철길쪽에서 폭음이 들려왔던것이다.

그날부터 취야벌의 우묵한 곳에는 조옥희소년자위대원들의 림시숙영지가 설치되였다.

《우리 마을에 숨은 적은 우리가 잡자!》

이것은 그들자신이 스스로 맡은 전투임무였다.

밤낮으로 이동감시가 계속되던 8일째 되는 날 달밤에 드디여 그들의 눈초리에 남의 집 개구멍으로 기여들어가는 한 사나이가 걸려들었다. 즉시 대흥마을(당시)이 포위되고 그 집에 대한 수색전이 벌어졌다.

유별하게 먼지 한점없이 반들반들한 벽체를 자세히 살펴보던 김형봉은 즉시 천정쪽으로 전지불을 비치며 웨쳤다.

《아직도 천정에서 내려오지 않겠는가? 사격하겠다.》

2발의 위협사격이 끝나기도 전에 털보 한놈이 부시시 떨어져내렸다.

철도폭파사건관계자인 그놈을 심문하는 과정에 락하산을 타고내린 나머지놈들이 다보산에 숨어있다는것을 알게 된 김형봉은 다음날 10여명의 소년자위대원들을 이끌고 새벽길을 떠났다.

다보산밑에 이르렀을 때였다. 산아래 밭가운데 있는 여러개의 돌무지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떼장들이 있는 한 돌무지를 유심히 살펴보던 김형봉은 대원들에게 떼장을 들추어볼것을 명령하였다.

그렇게 떼장을 들추기를 여러번, 마침내 굴을 찾아낸 소년들은 그안에 숨어있던 적병 두놈을 끌어내여 범굴에 그놈들의 소굴이 있다는것을 알아내였다. 그런데 단숨에 범굴까지 올라가보니 개도 들어가기 힘든 굴이 아닌가.

대원들을 엎드려 전투준비하게 하고 범굴우에 있는 바위에 올라가 찬찬히 지형을 살피는 김형봉의 눈에 그 지대에서는 보기 드문 참나무가랑잎이 띄웠다.

(소나무밑에 떨어져있는 참나무가랑잎?)

번개치듯 떠오르는 생각에 그는 바위밑에 일제사격을 가했다. 그 화력에 흙과 함께 그밑에 깔렸던 벼짚이 뒤집혔다.

《여기다!》 하고 환성을 올리면서 바위에서 뛰여내린 그는 말뚝을 얻어 구멍을 뚫고 함화를 들이대였다.

《우리는 인민군대다. 너희들이 여기에 있다는것을 알고 왔다. 나오지 않으면 뚜르레기(기관단총)로 쏴없애겠다.》

그랬더니 과연 《인제 나가겠습니다.》 하는 놈들의 답변이 들려왔다. 그런데 어느 구멍으로 나오겠는지 알수 없었다.

김형봉은 다시 굴에 대고 소리쳤다.

《나오라 할 때 한놈씩 손을 들고 나오라. 알았는가?》

범굴앞 작은 바위새짬으로 벌레처럼 벌벌 기여나오는 적의 손을 포승끈으로 묶고 잡아끌어 올려놓게 한 그는 또 소리쳤다.

《또 나오라!》

이렇게 다섯놈을 체포하여 이미 잡아놓았던 두놈까지 일곱놈의 악당들을 앞세우고 산을 내리는 소년자위대원들의 사기는 충천하였다.

얼마전에도 그들은 인민군련대지휘부가 자리잡고있는 집의 지하실에 엎드려 기습기회만 노리던 무장간첩들과 그에 합세할 기회를 엿보던 적들을 오소리굴소멸작전으로 몽땅 생포했던것이다.

《조국보위의 노래》를 부르면서 씩씩하게 들어서는 그들을 온 마을사람들이 겹겹이 에워쌌다. 그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던 인민군련대장이 꼬마병사들에게로 다가왔다. 대장의 다기찬 보고가 산발을 챙챙 울렸다.

《련대장동지! 조옥희소년자위대는 철도폭파사건을 일으킨 놈들을 모조리 사로잡고 돌아왔습니다.》

《동무들의 전투성과를 축하합니다.》

《조국을 위하여 복무함!》

 

 

전투승리를 기념하여

 

*                  *

 

《1952년 6월 2일 제1소대 대원 박수만외 1명 인민군대로 가장하고 휴계소에 들어온 간첩 4놈 체포하여 내무원들에게 넘겨줌…》

대원들이 잠든 깊은 밤 전투기록장을 정리해나가던 김형봉은 중대부의 벽면에 걸려진 구호를 다시한번 바라보았다.

《소년단원들이 있는 곳에는 한놈의 간첩, 파괴암해분자들도 얼씬 못하게 하자!》

소년단원, 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영예로운 부름인가.

언제나 심장가까이 간수하고있는 귀중한 권총을 생각깊이 쓸어보는 그의 귀전에는 안주탄광소년근위대 대장을 몸소 만나주신 그날에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 남기셨다는 뜻깊은 말씀이 되새겨졌다.

《우리 나라 소년들은 정말 영웅적인 소년들입니다. … 소년들이 근위대를 조직하여가지고 싸운것은 우리 조국력사에 길이 빛날 일이며 세상에 내놓고 자랑할만 한 일입니다.》

못 잊을 그 말씀을 자자구구 새겨보며 이윽토록 북녘하늘을 우러르던 그의 발걸음은 저도모르게 해안가잠복초소로 향하였다. 거기에는 그들이 품들여 개간한 1정보가량 되는 논이 있었다. 선생님들의 이동강의를 받으며 학습전투를 벌리는 속에서도 그들은 짬을 내여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거기서 잠복근무를 섰다.

한치의 땅도 묵이지 말라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받들고 그들은 제손으로 소를 몰아 땅을 갈아엎었다. 뼈심들여 거름을 주고 첫모를 내였다. 더운 땀 묻으며 포기포기 정성다해 벼를 가꾸었다.

바다바람에 설레이는 벼포기들을 쓸어보며 김형봉은 생각하였다.

(아직은 한 일이 너무도 적어. 무엇을 더 할수 있을가?)

도로밑을 가로뚫어 적기의 폭격에도 끄떡없는 《소년군인휴계소》를 꾸려놓고 오가는 군인들이 어느때나 불편없이 휴식할수 있게 온갖 성의를 다하느라 하였지만 성차지 않았다. 김형봉은 얼마전부터 대원들과 함께 시작했던 원호물자를 마련하기 위한 준비를 더욱 다그쳤다. 싸우는 고지의 전사들에게 고향의 향기를 안겨주고싶었던것이다.

 

*                  *

 

방아쇠를 건 손가락이 굳어졌다.

놈들의 몰골이 가까와질수록 시꺼먼 형체가 괴물처럼 보였다.

옹진군 교정면(당시)에 상륙하여 귀축같은 만행을 감행하고 꼬리를 사렸던 원쑤놈들이 잠복 5일째만에 대형발동선을 타고 나타났던것이다.

《겁날것은 없다. 뭍에 올라서는 놈부터 쏘라. 우리 부모들의 피값을 받아내자!》

김형봉의 결패있는 사격구령이 력량상 대비도 안되는 적들과 마주선 조옥희소년자위대원들의 용기를 한껏 북돋아주었다.

발동선이 집중사격을 받자 도망치던 적들은 되돌아서서 필사적으로 발악하였다. 점점 형세가 기울어졌다. 총알도 떨어지고 남은것은 수류탄 몇개뿐이였다. 결사전을 각오한 소년자위대원들은 결연히 일어섰다.

이때였다. 총탄이 비발치는 속으로 누군가가 돌덩이처럼 날아들었다. 엉겁결에 전호가에 쓰러졌던 자위대의 막내대원은 뒤늦게야 낯익은 내무원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자기를 와락 덮었던 그의 가슴에서 선지피가 쏟아져나오는것이 아닌가. 그는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였다.

소년자위대원들은 눈물을 머금고 원쑤들에게 맹호처럼 달려들었다.

그날 내무원들과 함께 수십명의 적들을 살상포로하고 경기관총을 비롯하여 많은 무기와 탄약을 로획한 조옥희소년자위대원들은 다음날 아침 승전의 기쁨드높이 귀로에 올랐다.

하지만 그들은 정든 고향마을까지 곧바로 갈수 없었다. 섬에서 가천면(당시)으로 쓸어든 300여명의 적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온 군이 떨쳐나섰다는 소식에 접하였던것이다.

지칠대로 지쳤지만 그들은 다시 신들메를 조이고 복수에서 복수에로 나섰다. 원쑤놈들이 있는 곳이라면 100리건 200리건 한달음에 달려가 요정을 내고야마는것이 조옥희소년자위대의 기질이였던것이다.

무자비한 징벌은 승리로 끝났다. 온 가천면을 피바다로 만든 원쑤놈들은 다시는 날치지 못하였다.

가렬처절한 싸움이 벌어졌던 격전장에 새날이 밝아왔다.

동터오는 하늘을 환희에 넘쳐 바라보던 소년자위대 소대장 박용흠이 불현듯 총알처럼 대오밖으로 뛰여나갔다. 벌써 그는 면당사무실지붕우로 오르고있었다. 그가 띄운 람홍색공화국기가 펄펄 나붓기는 순간이였다. 두발의 총성이 정적을 깨뜨렸다. 박용흠은 피를 물고 쓰러졌다. 교묘하게 몸을 숨기고있던 원쑤의 흉탄에 맞았던것이다.

《용흠아!》

천진한 웃음을 입가에 띠운채 눈도 못 감고 숨을 거둔 박용흠의 손에는 기관단총이 꽉 쥐여져있었다. 그것은 한해전 6. 6절을 맞으며 황해도주둔 경비련대에서 용감하고 슬기로운 그에게 부대명의로 수여해준것이였다.

꼭 군복입은 시인이 되겠다고 꿈도 많던 소년, 흔들어깨우면 금시라도 기관단총을 추어올리며 씩씩하게 대오로 들어설듯…

김형봉은 그가 늘 품속에 간직하고있던 푸른 주머니를 펼쳐들었다.

소년단휘장과 나란히 빛나는 군공메달!

그것은 송간인민학교(당시) 소년단위원장이였던 그의 빛나는 모습이였으며 고향땅을 지켜 병사로 산 14살 소년단원의 영웅적생이였다.

 

*                  *

 

주체42(1953)년 1월 17일 민청창립기념일을 맞으며 조옥희소년자위대원들은 등잔불이 가물거리는 자그마한 책상주위에 경건히 모여섰다.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께 올리는 편지를 끝맺으며 한자두자 자기들의 이름을 정히 써나가는 소년자위대원들의 마음은 한없이 숭엄해졌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일성장군님!

우리 조옥희소년자위대는 식량증산도 전투라고 하신 장군님의 말씀을 받들고 저희들의 힘으로 마련한 벼 50가마니를 전선원호미로 삼가 올리오니 받아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소년단기앞에서 선서를 다지던 그날처럼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의 초상화를 우러르며 그들은 더욱 억세게 총을 틀어잡았다.

이 총으로 우리 학교, 우리 마을을 지켰듯이 소년단휘장도 지켜가리라!

 

*                  *

 

조옥희소년자위대 대장 김형봉의 60여년전 추억은 여기에서 끝났다.

어버이수령님의 각별한 관심과 따사로운 은정속에 만경대혁명학원을 졸업하고 또다시 혁명의 총을 잡은 그는 한생을 포에 얹고 살았다. 조국수호의 위훈으로 빛나는 그 자욱자욱의 뿌리는 과연 무엇이였던가.

《당원의 영예와 영웅의 금별메달도 붉은넥타이와 소년단휘장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하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원수님의말씀은 정말 천백번 옳은 가르치심입니다.》

전쟁로병의 소년단휘장을 뜨겁게 안아보는 소년단원들의 심장속에 혁명선배의 의미심장한 당부가 아로새겨졌다.

-소년단휘장을 지킨다는것은 조국을 지킨다는것이다!

 

본사기자 조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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