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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때 리명산은 철부지소년이였다. 고향은 함경북도 회령이였다. 아버지는 군검찰소 검사로 있다가 전쟁이 일어나자 전선으로 나갔다.

아버지가 전선에 나간지 한달만에 어머니와 동생 하나가 원쑤놈들의 폭격에 잘못되였다. 집이 불탈 때 리명산은 조무래기아이들과 함께 놀러 나갔다가 참화를 면하였다.

혼자 남은 어린 명산을 고모 리순녀가 큰리의 독골로 데려왔다. 고모는 평안남도에 시집을 왔다가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는통에 홀로 살고있었다.

리명산이 그곳에 온지 얼마 안되여 함경북도의 고향마을에서 고모와 함께 자랐다는 한 중년남자가 찾아왔다. 그가 고모에게 청혼을 하고 고향 회령으로 데려가려 했다.

리명산이 보니 고모부가 되겠다는 사람은 전쟁전에 군검사였던 아버지한테서 심문을 받고 법적제재를 받았던 사람이였다. 그 사람은 어쩌다가 화재를 일으켜 산판의 적지 않은 나무들을 불태운것이였다. 리명산의 눈에는 그가 나쁜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무던한 고모가 그런 사람을 따라간다는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리명산은 처음부터 그 사람에게 곁을 주지 않았다. 그 사람이 소년의 환심을 사보려고 미소를 띠우며 말을 걸어보려 할 때면 원쑤를 대하듯 쏘아보며 피하군 했다. 고모가 불쌍했다. 《나쁜 사람》때문에 불행에 빠져드는 수난자처럼 보이였다.

《명산아, 그 사람은 한때 죄를 짓고 법적제재를 받았지만 잘못을 뉘우치고 새 출발을 하였다. 군대에 나가 미국놈들과 싸우다가 한쪽다리를 상해가지고 돌아온 사람이다.》

그 사람이 없을 때 고모가 말했다. 실지로 그 사람은 다리를 심하게 절었다.

고모가 아무리 애달픈 호소를 해도 고집불통소년의 마음을 돌려세우지 못했다. 그래도 고모가 불쌍하여 함께 함경북도로 가는 자동차에 올랐다. 자동차가 어느 한 고개마루에서 고장때문에 잠간 멈춰서있는 사이에 명산은 끝내 차에서 내리여 몰래 도망을 쳤다. 그때는 어두운 밤이였다.

리명산은 이틀밤을 꼬박 새우며 큰리의 독골이란데를 다시 찾아왔다.

고모가 살던 집에는 그사이에 피난을 온 다른 사람들이 들어있었다.

리명산은 갈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낯설은 피난객들에게 붙어살기는 싫었다. 명산은 그때 자동차에서 뛰여내려 달아나다가 두 방랑아를 만나 그 애들과 함께 큰리로 왔다. 리명산이와 나이가 같은 홍숙희란 처녀애와 그들보다 두살 아래인 남자애였는데 그 애들도 전쟁통에 부모들을 잃고 고아가 된것이였다. 그 애들과 함께 방아골의 무성한 소나무숲속에 들어가 자그마한 풀집을 짓고 살며 마을에 내려가 밥을 훔쳐다먹었다.

그때 방아골어구의 초가집마을에는 최학세라는 늙은 산림감독원이 살고있었다. 이른아침이면 로인은 보신용렵총을 메고 가라말우에 올라 호기있게 산으로 달려올라가군 했다. 사람들은 늘쌍 산에서 사는 학세로인을 흔히 《산신령》이라고들 불렀다. 《산신령》의 가라말은 이따금씩 아이들의 풀집이 있는 골안에도 나타나군 했다. 요란한 발굽소리와 호용소리를 터치며 자욱한 안개속으로 사라졌다가 골안을 돌아내려오군 했다.

아이들의 풀집은 소로에서 얼마간 벗어난 숲속의 양지에 있었는데 《산신령》의 눈에는 발견될 우려가 없었다.

그런데 웬걸! 하루는 걸려들고말았다.

아직은 이른 봄철이여서 싸늘한 기운이 도는 숲속의 풀집앞에 나란히 나앉아 해볕쪼이기를 하던 방랑아들앞에 바라지 않던 불청객들이 나타났다. 마을에서 리명산또래의 아이들이 올라온것이였다. 마을아이들은 난데없이 생겨난 풀집과 그앞에 나앉은 방랑아들을 보자 한순간 어리둥절해서 굳어졌다. 더부룩한 머리는 온통 검불투성이고 얼굴들은 검댕이에 얼룩졌으며 해진 옷들은 먼지와 때가 올라 어지러워진 풀집주인들은 불청객들을 향해 마구 돌을 던지였다. 고아들이라면 흔히 작용하는 자기 보호에 대한 본능에서 나온것이였다.

방랑아들의 적의에 가까운 돌연한 행동에 마을아이들은 황황히 달아나버렸다.

마을아이들이 왔다간 다음날이였다. 이번에는 소로쪽풀덤불너머에서 어험, 어험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산신령》로인이 나타났다. 주름많은 얼굴, 멀리에서도 유표하게 알리는 하얗게 센 수북한 눈섭, 거푸시시하게 일어선 허연 머리… 그것은 여불없이 옛말에 나오는 《신령님》그대로였다.

《뛰자!》 방랑아들중에서 제일 나이많은 명산이 나직이 소리쳤다. 세아이는 《산신령》이 이상하게 웃는 얼굴을 해보이며 자기한테 오라고 손짓할 때 토끼처럼 날쌔게 달아나버렸다. 따라오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무성한 숲속에 숨어서 동태를 살피였다.

《산신령》은 아이들이 없는 풀집으로 슬렁슬렁 다가갔다. 텅 빈 풀집안을 기웃이 들여다보기도 하고 주변을 돌아보기도 했다. 《산신령》은 행여나 아이들이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리는듯 풀집앞에 앉아있다가 내려가버렸다.

방랑아들은 그래도 혹시나 해서 주변을 살피며 풀집으로 다가갔다. 아무것도 없어지지 않았다. 하긴 없어질만 한것도 별로 없었다. 아이들의 살림도구란 자그마한 주철남비 하나가 전부였다. 그런데 남비옆에는 늄밥곽 하나가 놓여있었다. 잡곡밥과 산나물찔개가 들어있는 밥곽이였다.

보자기에 싼채로 놓여있는것을 보니 아마도 《산신령》이 아이들을 기다리다가 잊어먹고 간 모양이였다.

세 아이는 달라붙어 《산신령》의 점심밥을 잠간사이에 먹어치웠다.

밥곽을 비워버린 다음에야 《산신령》이 그걸 찾으러 다시 나타나지 않을가 해서 걱정을 했다. 《산신령》은 오지 않았다. 아마도 밥곽을 다른 곳에서 잃어버린줄로 알고있는거라고 생각했다.

하여 아이들의 경계심이 사라졌을 때 《산신령》이 나타났다. 늙은 《산신령》은 풀집에서 가까운 마른 새초밭에 주저앉아 아이들이 다 듣도록 신음소리를 질렀다. 《어허구, 누가 없느냐? 날 좀 도와주려무나!》하고 소리질렀다.

아이들은 얼마간 대담해졌다. 《산신령》은 분명 다리를 상한것 같았다. 그러니 일어나서 《요놈들! 다시 마을에 내려와 밥을 훔쳐갈테냐?》하며 냉큼 붙잡지는 못할것이였다. 그래도 어떤 일이 있을지 알랴.

방랑아들은 보호의식이 작용하여 여차직하면 들고 뛸 생각을 하며 조심조심 다가갔다. 《산신령》은 발목을 붙들고 《어허, 어허.》하고 신음소리를 질렀다. 그러다가 다가오는 아이들을 보고 자기는 발목을 다쳐서 걸을수가 없으니 좀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도와주면 우리를 붙잡지 않을래요?》 리명산이 먼발치에서 그를 슬밋슬밋 훔쳐보며 물었다. 《산신령》의 얼굴에는 철부지아이들의 믿음을 사고도 남을 친절한 미소가 떠올랐다.

《내가 너희들을 왜 붙잡는단 말이냐? 미국놈들때문에 집과 부모를 잃은 너희들이 아니냐.》

늙은 《산신령》은 나쁜 사람같지 않았다. 아이들은 조심조심 다가가서 《산신령》이 바라는대로 그의 다리를 주물러주었다. 《산신령》은 꽁무니에 차고온 보자기를 풀어헤치더니 그안에서 따끈따끈한 수수떡을 꺼내 아이들의 손에 하나씩 쥐여주었다. 팥고물에 굴린 맛있는 수수떡이 고슴도치처럼 곤두서있는 아이들의 경계심을 말짱 풀어주었다.

《산신령》과 아이들은 인차 친숙해졌다. 《산신령》은 상했던 다리가 다 나았노라고 하면서 산을 내려갈 때 래일 또 오겠노라고 했다.

다음날에는 보신용렵총을 메고 가라말에 앉아왔다. 그날은 수수떡대신에 강냉이지짐을 싸가지고 왔다. 아이들은 반지르르 윤기가 도는 까만 가라말을 한번 타보고싶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번쩍거리는 사냥총에 더 눈길이 갔다.

《할아버지, 이 총으로 범을 잡아봤나요?》

사냥총을 슬슬 만져보며 명산이 물었다.

《범을 말이냐? 못 잡았다.》

《그럼 범을 보지도 못했나요?》

《보기야 봤지. 내가 범 보던 이야기를 해줄가? 한번은… 참, 그게 언제였던가 하믄… 그래, 전쟁이 일어나기 이태전에 있은 일이였다. 산속에 들어갔다가 고양이만 한 범새끼를 봤다. 그놈은 어미가 없는 사이에 자유주의를 해서 나다니다가 벼랑에서 떨어졌는지 다리 하나를 상했더구나. 그래서 그놈의 다리를 싸매주고 일어나는데 바위우에 백년은 살았을 호랑이란 놈이 떡 버티고앉아 나를 내려다보고있질 않겠니!》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할아버지, 총으로 쐈어요?》

《총으로 쏜다는게 다 뭐냐. 홍찌를 쌌지. 다리야 날 살려라 하구 집으로 달려내려와 정신을 잃었단 말이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도 다 있지. 범을 만나 얼이 빠져서 달아나다가 그만에야 넘어지는 바람에 점심밥이 들어있는 밥곽을 흘리고 왔는데 글쎄 아침에 보니까 그 밥곽이 우리 집 토방우에 놓여있질 않겠니. 그놈의 범이 물어다놓은거란다. 범도 아무때나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그래서 범을 보기만 하고 못 잡았어요? 곰은 잡았어요?》

《곰이라… 그놈들은 사랑스럽고 령리한 짐승이지. 우리 큰리의 산들에 숲이 울창해서 곰들이 욱실거렸으면 좋겠다.》

《그럼 노루는요? 산토끼는요?》

《그래… 우리 큰리의 산들엔 노루도 있고 산토끼들도 많지.…》

그때 마침 가까운 숲속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커다란 장끼 한마리가 날아올랐다. 몸통이 온통 붉은 장끼는 풀집에서 멀지 않은 개울가의 오리나무가지우에 와앉았다. 땅으로 기여다니기 좋아하는 꿩이 나무가지우에 앉는것은 보기 드문 일이였다.

명산은 얼른 《산신령》의 손에 렵총을 쥐여주며 장끼를 빨리 쏘라고 속살거리였다.

《산신령》은 아이들의 요구에 못이겨 총을 들어 장끼를 겨누었다. 장끼는 재난의 전조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까딱 움직이지 않았다. 건너편산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겨있는듯 했다.

《원, 거기 앉아있을건 뭐냐!》 사냥총을 받쳐들고 《산신령》이 중얼거리였다. 마치 장끼와 말하는것 같았다. 명산이 의아해서 바라보았다. 어인 일인가? 《산신령》은 꿩을 겨누고있으면서 방아쇠를 당길 생각을 안했다. 아니, 《산신령》은 꿩을 겨누고있는것이 아니였다. 주름많은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피여오르고있었다. 장끼는 끝내 날아가버렸다. 《산신령》은 총을 내리우며 껄껄 소리내여 웃었다.

《얘들아, 서운해말아라. 꿩이 있으니 이 산촌이 얼마나 더 아름답느냐. 꿩을 쏘지 않은 대신에 내 재미나는 옛말을 하나 들려주지.》

그것은 아득한 옛날에 있은 일이였다. 두 형제가 삶의 터전을 찾아 오래동안 방황하다가 여기 큰리라는 고장에 이르게 되였다. 그들은 골안막바지에 자그마한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형제처럼 솟아있는 두 산을 보자 거기에 삶의 터전을 닦기로 결심했다.

형제는 산을 하나씩 차지하고 거기에 괴나리보짐을 내려놓았다.

형은 그날부터 열심히 산을 가꾸었다. 많은 나무를 심었다. 부지런히 노력한 보람이 있어 형네 산은 해마다 푸르러갔다. 그런데 동생네 산은 정 반대였다. 동생이라는 사람은 나무를 심어가꿀 대신에 찍어 쓰기만 했다. 그 나무로 고대광실 집을 짓고 키높은 울타리도 둘렀다. 집앞에는 정자도 세웠다. 동생은 무더운 여름이면 정자우에 올라가 누워 산촌의 유정한 물소리, 새소리에 취하여 흥타령을 부르거나 낮잠만 잤다. 그는 하루도 쉬지 않고 땀흘리며 일하는 형을 속으로 비웃었다.

(미욱한 짓이야.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 저렇게 뼈빠지게 일만 한담.) 하고.

그렇게 놀새만 부리는 사이에도 형네 산에는 나무들이 늘어나고 자라 온갖 아름다운 새들이 날아들어 지저귀고 짐승들이 욱실거리는 락원으로 되여갔다. 반대로 동생네 산은 나무 한대 없고 먼지만 날리는 불모의 산으로 되여버렸다.

형은 그것을 보다못해 말했다.

《명덕아, 그렇게 놀새만 부리지 말고 나무를 심어라! 삶의 터전이 아니냐. 나무 한그루 자라는게 없고 새 한마리 날아들지 않으니 그게 무슨 산이란 말이냐.》

그래도 동생은 코웃음만 쳤다. 여전히 정자우에서 낮잠만 잤다. 그러던 어느해 여름날 밤중에 비가 억수로 쏟아지더니 동생네 산에서 무시무시한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질려 온밤 잠들지 못하던 형은 날이 밝자마자 소리난 곳으로 가보았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동생네 산에서 사태가 내리면서 그아래에 있던 고대광실 집도 주인도 흔적도 없이 묻어버린것이였다.

형은 행여나 해서 《명덕아!―》, 《명덕아!―》하고 동생의 이름을 피타게 불렀으나 대답은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동생네 산을 사람들은 《명덕산》이라고 불렀는데 그 산에서는 이상하게도 별난 소리가 나군 했다. 사태속에 묻혀버린 명덕이란 불행한 사나이가 땅속에서 뭐라고 웨치는것인지?…

쓰라린 비화는 어린 리명산의 가슴속에 아릿한 여운을 남기였다.

《할아버지, 〈명덕산〉이 어디에 있나요?》 락조의 어설핀 잔광이 소나무우듬지들에 걸린 우중충한 숲을 둘러보며 명산이 물었다.

《이 골안으로 들어가면 명덕산도 있고 형네 산이였다던 만덕산도 있단다. 이담에 올라가보자꾸나.》

늙은《산신령》은 쓸쓸하게 말했다. 그러더니 인차 껄껄 웃었다.

《이 녀석들아, 오늘은 나와 함께 우리 집으로 내려가자.》

늙은《산신령》은 의심을 품은 아이들에게 집에 내려가면 맛있는 수수떡이랑 지짐이랑 해주는 마음 좋은 할머니도 있고 너희들과 친할수 있는 동무도 있단다 하고 말했다. 하여 아이들은 기연가미연가 하면서 《산신령》의 제의에 동의했다. 골안어구에 있는 그의 집으로 내려가면서 가라말은 아이들이 끌고갔다.

《아니, 이 꼬맹이들은 어디서 난 애들이우?》

얼굴이 조골조골하고 자그마한 몸에 허리가 굽은 우습강스럽게 생긴 할머니가 령감과 함께 나타난 때국이 자르르 흐르는 아이들을 보더니 놀라서 물었다.

《어디서 나긴 어디서 나? 숲에서 데려왔지.》

《령감의 숲엔 별게 다 있는게지요? 요런 꼬맹이들도 있구. 원, 너네들이였구나. 동네 집들에서 밥이 드문히 없어진다면서 산에 요란한 반동이라도 숨어있는것처럼 말들 하더니…》

《쯧쯧… 쓸데없는 소리!》 할머니가 아무 소리나 한다고 령감이 퉁을 놓았다. 실은 엊그저께 손자녀석또래의 마을아이들한테서 숲속에 수상한 애들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로인내외였다. 할머니가 반동소리를 한것은 한 술망태기때문이였다. 태여날적부터 다리 하나를 절어서군대에도 못 나가고 드문히 술에 취해서 마을돌이를 하는 그 어이없는 사나이가 한번은 방아골숲속에 들어갔다 나와서는 키가 원숭이만 한 도깨비가 바람처럼 사라지는것을 보았노라고 했던것이였다. 허풍기가 있는 사나이여서 그 말을 그대로 믿을것도 못되지만 그 도깨비가 귀신으로 가장한 반동일수도 있다는 소리에는 귀가 솔깃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늙은《산신령》은 숲에서 방랑아들을 보는 순간 술주정뱅이 사나이가 엄청난 착각을 했다는것을 의심치 않았다. 반동은 무슨 반동이람, 전쟁이 빚어낸 불행이 아닌가! 로친이 롱삼아 해보는 실없는 소리일망정 늙은《산신령》은 어녕 노엽기만 한것이였다.

《산신령》이 말하던대로 늙은 안주인은 참 좋은 할머니였다. 아이들을 따로따로 부엌에 불러내여 더운물로 함지목욕을 시키였으며 저녁밥은 구수한 찰기장밥에 토장을 넣은 산나물국을 끓이였다.

《얘들아, 많이 먹어라, 그 버섯이랑.》 할머니는 눈물이 그렁해서 음식그릇들을 바싹 놓아주었다. 인정많은 할머니였다.

늙은《산신령》의 집에는 정말로 리명산또래의 손자가 있었는데 그가 최영우였다. 그 애의 아버지는 군대에 나갔고 어머니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선거위원회에 동원되였다가 반동놈들의 칼에 맞아 많이 다쳤는데 그때문에 몇해동안 고생했다. 그러다가 반년전에 끝내 세상을 떠났다.

리명산네는 인차 최영우와 친해졌다.

《얘, 너 명덕산을 아니?》

리명산이 어느날 영우소년에게 물었다.

《알지 않구. 우리 할아버지하구 올라갔던적이 있다. 건달뱅이동생이라는 사람이 묻혀있는 산이다. 지금도 그 산밑에선 이상한 소리가 난대.》

《너 들어봤니?》

《난 못 들어봤지만 그건 정말이래.》

리명산은 명덕산에 가보자고 했다. 그러면 자기들이 살던 숲속의 풀집도 구경시켜주겠노라고 했다. 최영우는 기꺼이 응했다. 명산은 명덕산에서 때없이 난다는 그 이상한 소리를 듣고싶었다.

며칠후 아이들은 숲속으로 원정을 떠났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하여 아이들을 휘동해가지고 떠났던 길, 숲에로의 원정은 한생의 추억으로 남게 될 의의깊은 길이였다. 바로 그날에 리명산의 어린 가슴속에는 한생을 규정짓는 귀중한 메아리가, 숲과 남다른 인연을 맺고 간고한 길을 기꺼이 걸어가게 한 생의 서곡이 울린것이였다.

숲! 물소리 소란하고 새들이 우짖는 숲! 고느적한 정적! 두억시니가 불쑥 나올것 같은 두려움! 해를 볼수 없는 어둑시근한 숲! 거기엔 없는것이 없다.

《얘들아, 이게 뭔지 아니?》

해묵은 락엽을 밟으며 앞장에서 풀숲을 헤쳐가던 최영우가 이끼덮인 바위밑에 모독히 자란 진갈색의 자그마한 우산같은 버섯들을 가리켰다.

《그게 버섯 아니냐?》

《개암버섯이란다.》

《개암버섯이라구?》

그것은 늙은《산신령》을 따라 그의 집에 내려갔던 첫날 저녁 인정 후한 늙은 할머니가 상우에 놓아주던 맛있는 버섯이였다.

《이제 가을이 오면 여기에 개암버섯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지금은 버섯철이 아니지 않니. 제 철이 아닌 때에 나온 버섯은 독이 있어서 못먹는다. 여기엔 버섯이 많기도 하단다. 참나무버섯, 송이버섯, 싸리버섯, 느타리버섯, 보라버섯도 있다. 땅버섯이라는것도 있단다. 산나물은 또 얼마나 많다구. 이것 봐라, 어디에 더덕이 있을거다!》

영우는 사위를 두리번거리며 코를 벌름거리였다. 그 애의 눈이 반짝했다.

《아마 저 노박덩굴옆에 있을거다. 가보자.》 소년은 거기로 아이들을 이끌어갔다.

《봐라, 내 말이 맞지 않니. 이게 바로 더덕이란다.》

토끼발자국처럼 생긴 자그마한 이파리들이 달린 연푸른 줄기! 영우는 그게 2년 자란 더덕일거라고 장담했다.

《이건 아직 캐면 안된다. 좀더 커야 한다. 이 산속엔 산나물이 많단다. 고사리, 고비, 당콩나무, 마타리, 둥글레, 삽주, 도라지, 더덕, 산삼도 있단다. 100년 묵은 산삼도 있을거야.》

그 애는 이 고장의 숲에 대하여 모르는것이 없었다. 숲속 어디선가 산짐승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는데 그것은 어치들의 소리라고 했다.

산비둘기들은 《구구구》한다고 신통한 소리까지 내보였다.

《이것 봐라, 까투리를 잡아먹었구나. 새매란 놈이 한짓이다.》 새초들이 길길이 자란 한곳에 새털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새매가 내장을 파먹다 버린 꿩의 잔해가 보이였다.

《할아버지는 매가 성하면 다른 새들의 마리수가 적어진다고 했다. 그놈은 매일 아름다운 새들을 잡아먹어.》

그 애는 개울에서 좀 떨어진 바위옆에 있는 가밋가밋한 배설물이 물을 먹으러 내려왔던 시라소니의 똥이라는것도 알았다. 숲에는 토끼나 노루는 물론이고 승냥이나 범도 있다고 했다. 제일 밉광스러운것은 여우인데 동네에 내려와서 자주 닭들을 물어가는데다가 눈보라사나운 겨울이면 집뒤울밖에 와서 울어대는게 꼭 갓난애기의 울음소리와 같다고 했다.

아이들은 풍만한 대자연에 취하여 풀집을 퍽 지나 올라왔다는 생각도 못했다. 골안은 점점 어둑시근해졌다. 한낮인데 해는 산너머에 있는것이였다. 숲이 무성하여 하늘이 잘 보이지 않았다. 골안 중간쯤까지 올라올 때엔 햇풀들이 자라는 싱그러운 향기며 물오른 소나무들의 상긋한 송진내가 기분을 상쾌하게 했는데 골안막바지가 가까와오면서부터는 해묵은 락엽이 썩는 냄새가 풍기였다. 시야는 훤해졌다. 키높이 자란 나무들때문에 해빛이 들지 않아 키낮은 식물들은 자라지 못했기때문이였다. 해묵은 락엽층을 밟을 때마다 실려오는 푹신한 촉감이 가슴을 사뭇 두근거리게 했다.

갑자기 멀지 않은 앞에서 와르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돌사태가 내리는 소리였다. 아이들은 놀라서 한동안 굳어졌다. 와르르하는 소리 뒤끝에 사람의 비명소리같은것이 어렴풋이 들린것이였다.

아이들은 한동안이 지나서야 조심조심 소리나는쪽으로 올라갔다.

드디여 이상한 사람들을 발견했다. 수염들이 꺼멓게 자라고 옷들은 나무가지에 걸채여 찢어지고 해진 사람들이 나타난것이였다.

모두 세명이였다. 한사람은 방금 일어난 돌사태에 밀렸던듯 온통 피투성이가 되였는데 두명의 동료들이 그를 부축하여 내려오고있었다.

몸이 성한 두사람중 한명은 총까지 메고있는 군인이였다.

아이들은 풀덤불속에 몸을 숨기고 수상한 사람들의 일거일동을 지켜보았다. 가슴들이 두근거리였다. 분명 숲속에 숨어있는 반동놈들이라고 생각했다.

최영우가 할아버지에게 알리려고 마을로 달려내려가고 리명산은 나머지 아이들과 함께 숲속에 남아 수상한 사람들을 감시하기로 했다. 명산은 두 아이와 함께 낯설은 사람들의 뒤를 멀찌감치에서 은밀히 따라갔다. 수상한 사람들은 리명산이네가 살던 풀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개울가의 새초밭우에 부상당한 사람을 내려놓았다. 한사람은 부상당한 사람을 시중들고 군복입은 사람은 개울가에 나가 세면을 했다.

리명산의 눈길은 수상한 사람들이 나무가지에 걸어놓은 가죽가방에 미치였다. 그의 머리속에는 하나의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가죽가방안에는 틀림없이 나쁜놈들이(그 수상한 사람들은 틀림없이 나쁜 놈들일것이다.)리용하는 지도라든가 그러루한 비밀문건 같은것들이 들어있을것인데 명산이 그것을 훔쳐내기만 하면 일약 용감한 아이로 인정받게 될것이였다.

명산은 운수가 그닥 좋지 못했다. 조심조심 다가가서 가죽가방을 벗겨내려는 찰나에 물가에서 세면을 하고 돌아오던 군복입은 사람의 눈에 걸려든것이였다. 꼼짝 못하고 덜미를 잡히는 신세가 되였다. 군복입은 사나이는 이 아래마을에 사느냐고 물어보더니 싱글싱글 웃으면서도 《달아나기만 해봐라. 혼쌀을 내줄테다!》하고 엄포를 놓았다.

리명산이 달아날 기회만 노리고있을 때 숲의 《수호신》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늙은《산신령》은 렵총을 메기는 했으나 자기의 애마에 올라앉아 말발굽소리로 골안을 진동시키며 올라오는것이였다. 반동을 잡으러 올라오는 사람같지 않았다. 그런데다가 최영우까지 할아버지의 말잔등에 올라앉아 싱글싱글 웃고있었다.

《허허… 반동은 무슨 반동. 총 멘 인민군대까지 끼여있다기에 내 임자네들인줄 알았네. 상리감독원령감이 엊그제 자기네한테 들렸댔다고 하더라니까.》

《산신령》은 수상한 사람들의 신분을 확인해보고나서 얼굴에 유쾌한 주름살을 가득 그리며 껄껄거리였다.

나쁜놈들을 잡는줄 알았던 리명산네는 멋적게 되였다. 수상한 사람들이란 평양에서 내려온 산림조사대원들인것이였다. 돌사태에 묻힐번했던 사람은 산림조사대의 한개 조를 책임진 산림학자 김세명이였다.

그날 밤, 석유등잔불이 타는 최학세네 집에서는 젊은 산림학자 김세명이 우리 조국의 숲에 깃든 곡절많은 력사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있었다.

숲이란 무엇인가? 물처럼, 공기처럼 흔한것으로 알고 례사롭게 보아오던 숲에 그토록 심오한 리치와 눈물겨운 력사가 비껴있단 말인가?

행성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푸른 보호막, 이 지구우에 생명이 생겨나 진화의 길을 걸어온 수수백만년 인간들을 품어주고 먹여살려준, 로동대상이였으며 생활 그자체이기도 한 숲! 오랜 진화의 길을 걸어온 지상의 모든 생물체와 마찬가지로 숲도 인간에게 복무하며 자기나름으로 생장과 도태의 자연순화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해왔다. 생장과 도태과정은 숲을 부단히 갱신의 길로 이끈다. 사멸과 도태 그자체가 진화과정이다. 그것은 새로운 종의 탄생을 전제로 하기때문이다. 이 영원의 과정에 차단봉을 내리는 인자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인간들자신이였다. 숲에서 나왔고 숲이 주는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을 마시며 살아온 인간들에 의하여 지구상에는 무자비한 란벌의 시대가 도래한것이였다. 행성의 푸른 보호막은 가속도로 줄어들고 인간은 장차 생태환경파괴라는 생존위협의 시대에 직면하게 될것이다. 인류문화의 발상지로 되여 번성의 시대를 맞이했던 고장들이 사막의 모래속으로 자취를 감추어버리여 오늘날 고고학자들의 관심사로나 되고있는것도 그것이 어떤 원인이였든지간에 숲의 고갈이 가져온 귀결이라 할수 있다. 하지만 영원한 차단봉이란 없다. 다행히도 인간은 리성적인 존재이다. 인간은 자기 세대만이 이 세상에 태여나 사는것이 아니며 재부란 퍼내고 또 퍼내여도 끝없이 솟아나기만 하는 요술단지가 아니라는것을 깨닫게 된다. 하여 진화의 차단물을 제거할 생각에 이르게 된다. 조림이란 말이 생겨난다. 도태와 생장의 순화과정은 미래를 생각할줄 알며 부를 창조하는 인간의 지혜와 노력에 의하여 다시 이어지게 된다. 자각이란 얼마나 중요한것인가. 그런데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특수한 시기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왜놈들에게 나라를 통채로 빼앗겼던 망국의 시기이다. 단군민족의 조상들이 태여나고 삶을 깃들인 땅, 인류문화의 발상지의 하나로 자랑높은 이 땅이 대륙의 나라들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있었던 탓에 그 주인들만이 아닌 이 땅의 숲도 욕을 보았다. 조선을 강점한 왜놈들에게는 산림략탈의 안내서가 필요하였다. 하여 놈들은 《한일합병》을 전후하여 《산림조사》요, 《림적조사》요 하는 놀음을 벌려놓았다. 조림은 무시되였다.

침략의 군화소리 높은 이 땅으로 조선의 풍부한 산림자원에 눈독을 들인 현해탄너머 경제동물들이 송충이떼처럼 밀려들었다. 산림이 울창하여 수많은 전설들과 민요들과 신화들을 낳은 압록강과 두만강류역의 대원시림들, 백두산과 랑림일대의 천고의 숲이 왜놈들의 총칼에 내몰린 목부들의 도끼질소리, 기계톱소리에 놀라 천년잠에서 깨여나고 협궤철길로 이 나라의 푸른 보화―아름드리통나무들을 토장들에로 실어나르는 가소링차들의 아츠러운 쇠바퀴소리, 목갈린 기적소리에 강토가 소란스러워졌다. 나무들은 대동아전쟁터로 실려가 토목화점이 되고 군용차들을 움직이는 연료용숯으로 되였으며 야전부대들의 밑천으로 되였다.

략탈의 털벌레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록색재부는 사라지고 눈물같은 송진방울들이 맺힌 허연 도끼밥들만 날리였다. 왜놈들은 이 나라의 나무를 략탈해가는데만 혈안이 되여 후계림조성에는 전혀 낯을 돌리지 않아 나무 한대가 씨앗에서 발아되여 거목으로 자랄수 있는 옹근 하나의 주기와 맞먹는 근 40년동안 숲을 순전히 자연갱신에만 의거해왔다.

《왜놈들은》 산림학자 김세명은 말했다. 《우리 나라를 강점한 전기간 이 땅의 청청밀림을 도륙내여 7억립방이 넘는 산림자원을 빼앗아갔지요!》

산림학자자신도 그 엄청난 수자앞에 새삼스럽게 가슴이 얼어드는듯 목소리가 떨리더니 침묵해버렸다. 누군가 등잔심지를 돋구어놓았다. 오이씨같은 발간 불이 너름거리며 방안을 밝히였다. 사람들은 누구도 말이 없었다. 어른들은 조국의 숲의 수난사를 들으며 자기들이 체험한 피눈물나는 지나온 나날의 일들을 생각하고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인간세상의 일들을 알기에는 너무나도 어린 아이들은 분노를 묵새기는 어른들의 침묵에 아직은 막연한 불안만을 느낄뿐이였다.

산림학자 김세명은 숲의 개화기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때 그의 얼굴은 환희로 빛났다. 김세명은 백두산3대장군들께서 해방된 조국 평양의 모란봉에 오르시여 조국의 산을 푸르게 하실 원대한 구상을 무르익히시던 그때로부터 숲의 새 력사가 시작되였다고 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에 개선하신 후 한가정의 살림살이를 하자고 해도 숟가락이 몇개 있고 저가락이 몇개인지까지 알아야 하는데 나라의 재산이 얼마인지 몰라서야 되겠는가고 하시면서 해방후 전국에 널려있는 산림부문 기술자들로 산림조사대를 무어주신 이야기, 전쟁이 일어나자 전선에 나간 산림일군들을 모두 소환하시여 산림조사를 계속하도록 해주시고 산림일군들이 산속에 들어갔다가 반동놈들이나 맹수들을 만나 한명이라도 잘못될세라 전선군인들을 부르시여 그들을 보호하도록 산림조사대에 편입시켜주신 이야기도 했다.

산림학자 김세명도 전선에 나가 싸우다가 그때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받고 평양으로 소환되여 들어왔으며 산림조사대의 한개 조를 책임지고 나오게 되였다.

그에게는 필생의 꿈이 있었다. 그것은 나라의 림상도를 완성하여 위대한 수령님께 올리는것이였다. 왜놈들은 수십여년세월 이 땅을 타고 앉아 산림자원을 긁어가면서도 림상도 한장 남겨놓지 않은것이였다. 김세명은 산림조사대에 망라된 이번 기회에 자기의 꿈을 실현하고싶었다.

하여 단단히 준비를 해가지고 숲을 찾아떠났다.

조선중부의 산림지대를 신발창이 몇개나 창이 나도록 편답하던중 큰리에 이르렀다. 그는 화려한 숲을 보았다. 그는 기뻤다. 왜놈들의 략탈의 마수가 어디에나 미쳐있었건만 다행히도 남아있는 푸르청청한 숲! 전란의 불길속에서도 그 숲의 나무 한그루 타버리지 않은것은 놀라운 일이였다.

그런데 김세명은 큰리의 숲지대를 돌아보다가 이상하게도 나무 한대 변변히 자라지 못한 돌박산을 보게 되였다. 그는 가슴이 아릿했다.

어떻게 되여 여기에 이런 불모의 산이 있단 말인가! 자그마한 실개울 하나를 사이에 둔 저 건너편산에는 숲이 무성하지 않는가. 김세명은 그래도 나무가 영 자랄수 없는 산이기야 하랴싶어 돌박산에 올라갔다가 돌사태에 말려들어 하마트면 크게 상할번 했다.…

늙은《산신령》 최학세는 그 이야기를 다 듣고나서 학자에게 무거운 질문을 했다.

《그러니까 우리네 그 명덕산도 김일성장군님께 올릴 림상도에 오르게 되겠네그려.》

《명덕산이라니요? 그런 산이 있는가요?》

《임자가 사태를 만났던 산에 그런 별난 이름이 붙어있다네.》

김세명은 더 말이 없었다.

《산신령》은 갑자기 무거운 한숨을 내그었다.

《이 나라의 산들도 개명하게 되였구나. 숲을 그토록 사랑하시는 위인들을 만났으니… 그런데 이 몸은 인생고목이 되여버려 그분의 뜻을 받들어 더 일할수 없게 되였으니 한스럽구나!》

늙은《산신령》은 여태껏 산을 지킨다면서 명덕산에 나무 한대 심어 가꿀 생각을 못했으니 자기가 무슨 산을 지키는 《산신령》이겠는가 하며 허허 탄식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해방전에 있었던 일을 추억했다.

그때 여기 큰리의 숲도 하마트면 왜놈들한테 도륙을 당할번 했다. 노구찌계렬의 한 목재거간군놈들이 왜놈 산림간수놈과 짜고들어 큰리의 숲에서 침목감들을 뽑아낼 작간질을 한것이였다. 큰리의 숲이 조만간에 녹아나 산들이 벌거숭이가 되리라는 소문이 돌아갈무렵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는 모르나 참으로 이상야릇한 소문이 돌아갔다. 큰리의 산속에 숲을 지키는 《산신령》이 있는데 이제 왜놈들이 숲에 손을 대는 날에는 《산신령》이 노하여 그놈들을 그냥두지 않을거라는것이였다. 그 소문이 돌아가기 시작한지 한 두어달 지나간 어느날 목재거간군놈이 왜놈산림간수놈을 차에 태우고 림적조사를 한답시고 안골에 들어왔다가 황천객이 되였다. 골안의 림지들을 돌아보고 내려가는 길에 차가 별로 높지도 않은 낭떠러지에 굴러내려 차도 목재거간군놈과 왜놈산림간수놈도 박살이 난것이였다. 신통히도 운전사 하나만이 팔 하나가 부러지기는 했으나 겨우 목숨이 붙어있었다.

수수께끼같은 이 일은 최학세의 공로였다. 왜놈들의 징용살이를 피하여 안골의 울창한 숲속에 아들과 함께 들어가 살던 최학세가 마을에 몰래 내려왔다가 《산신령》설을 퍼뜨려놓았으며 목재거간군놈이 림지조사를 왔을 때에는 아들과 함께 기회를 보다가 그놈들의 자동차에 접근하여 조향장치와 제동장치의 나사들을 풀어놓았던것이였다. 소문은 소문이고 큰리의 산속엔 정말로 숲의 《수호신》이 있는듯 했다. 그렇지 않다면야 왜놈들의 자동차가 골안에 하나밖에 없는 낭떠러지에 이르러 굴러떨어졌으랴. 어쨌든 이 일이 있은 다음부터 어느 왜놈도 이 고장에 손을 대기 두려워했다. 《산신령》의 존재를 실지로 믿었던 모양이였다.

해방이 되여 그 소문을 낸 당사자가 최학세라는것이 알려졌는데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산신령》이라고 불렀다.…

최학세로인은 이야기를 끝내고나서 말없이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로인은 인차 돌아오지 않았다. 늙은《산신령》은 또 산으로 들어간게 아닐가? 명덕산을 찾아간게 아닐가?

어린 소년 리명산은 꼭 그랬을것 같이 생각되였다. 명산은 그때 가슴이 무엇에 짓눌리는것 같은 아픔을 느끼였다. 같은 또래중에서도 명산은 류별나게 마음이 여린 아이였다. 그는 명덕산전설이야기가 새삼스럽게 생각났다. 불행한 사나이가 묻혀있다는 그곳에서 무슨 소리가 울려나오군 한다는 그 이야기! 그게 무슨 소릴가? 그런데 할아버지가 어째서 들어오지 않을가?

명산은 언제 할아버지가 들어왔는지 알지 못했다. 소년은 그사이에 잠들었다가 깨여났다. 일어나보니 연한 달빛이 창호지를 뚫고 새여들어와 사람들이 혼곤히 잠든 방안을 희읍스름하니 밝혀주고있었다. 소년은 한참이나 꼼짝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리였다. 방금 꿈을 꾼것이였다. 꿈속에서 옛말에 나오는 사나이의 이상한 목소리를 들은것이였다. 소년은 그 소리가 정말로 들려올것만 같아 귀를 강구었다. 삽짝문너머 골안쪽에서 숲의 설레임소리만이 아슴푸레 들려왔다. 신비한 속삭임마냥… 숲에 깃들어있는 하많은 사연을 읊조리듯…

옆에서 금시 숨넘어가는것 같은 꾸르륵소리가 불안스럽게 들리였다.

할아버지가 잠을 자는 소리였다.

《꿈을 꾸었니?》

잠을 자는줄 알았던 산림학자가 멍청해있는 그를 보며 물었다.

《꿈을 꾸었어요. 명덕산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어요!》

《거기서 무슨 소리가 난단 말이냐? 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을 하니?》

명산은 더 말하지 않았다. 명덕산전설을 모르는 산림학자는 철부지소년의 꿈이야기를 리해할수 없는것이였다.

그런데 최학세로인이 어느새 깨여나 꿈속에서처럼 웅얼거리였다.

《그런 옛말이 있수다!》

그리고는 또 코를 골았다.

명산은 다시 누웠다가 끝내 잠들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때맞춰 밖으로 나왔던 산림학자가 다리 하나를 불편스레 절면서 다가왔다.

《어 여기가 선선해서 좋구나!》

산림학자는 별이 총총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심호흡을 했다. 아닌게아니라 방안은 늙은 안주인이 불어난 손님들의 밥까지 짓느라 불을 많이 때서 무덥고 답답한것이였다.

뒤산에서 소쩍새소리가 들려왔다. 박쥐들이 어둠속으로 날아옜다.

《명덕산엔 왜 나무들이 자라지 못할가요?》

산림학자를 초롱초롱한 눈을 올려다보며 명산이 물었다.

산림학자에게는 뜻밖의 질문이였다. 학자는 한동안 말없이 소년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이윽하여 나직이 말했다.

《토양이 없기때문이란다.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자면 토양이 있어야 한다.》

《…》

산림학자는 별빛이 내리는 골안의 우중충한 숲을 한동안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였다.

《하지만 저 산도 김일성장군님께서 찾아주신 우리 나라의 산이다. 명덕산에도 숲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산림학자는 또 생각에 잠기였다. 그리고는 혼자소리를 하듯 말했다.

《네가 그것을 안다면! 저 산에, 우리 나라의 숲에 어떤 사연이 깃들어있는지 네가 안다면!》

하지만 학자의 그 말을 리해하기에 리명산은 너무도 어린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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