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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과오를 범하고 엄한 책벌을 받았다는 말을 들은 다음부터 현심은 도무지 마음편히 공부할수가 없었다. 인민대학습당에서 돌아온 현심은 초저녁부터 공부할 생각은 하지 않고 침대우에 누워있다가 이튿날 아침 기숙사를 나섰다.

그는 곧장 현웅오빠가 연구사로 있는 공업대학으로 향했다. 제대군인대학졸업생인 큰오빠 리현웅은 어느 정밀기계공장의 생산공정현대화를 위한 연구과제를 받아안고 1년째 현지에 나가있는데 일이 있다면서 얼마전에 올라왔다.

《얘, 넌 대학습당에는 가지 않고 여긴 뭣하러 찾아왔니? 아침부터 말이다.》

이른아침 온다는 소리도 없이 불쑥 나타난 누이동생을 보자 현웅이 의아해서 물었다.

《오빤 내가 온게 반갑지 않아요?》 현심은 밉지 않게 입을 비쭉해보이며 눈을 흘기였다. 오빠가 좀 수상해보였다. 외출복은 별스레 잘 손질해서 침대우에 놓았고 방금 세면을 한 모양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머리는 꼼꼼히 빗어넘기였다.

《똑바로 말해, 오빠! 처녀와 만나자고 약속한건 아니야요?》

《너 정말 사람 놀리겠니? 생뚱같이 처녀는 무슨 처녀야?》

《음―》 현심은 눈을 할깃이 치뜨며 오빠를 올려다보았다.

《시치미를 뗄테야요?》

현심이 처녀소리를 한것은 떠보느라고 한 소리였다. 그럴만한 일이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누이동생이라고 현심이를 끔찍이도 사랑하며 일요일마다 자기네 합숙에 놀러오라고 하던 오빠가 연구사로 떨어진 다음부터 태도가 조금 변한것이였다. 현심이 자주 찾아가는것을 오히려 시끄러워하는 눈치인데다가 어떤 날에는 지어 바쁜 일이 있다면서 《얘, 오늘은 너하고 시간을 보낼 형편이 못돼.》하고 서운한 소리를 하는것이였다.

연구사업이 바빠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혹시 알랴 하는 의문도 없지 않았다. 며칠전에는 합숙을 찾아가니 오빠는 없고 대신 오빠와 한 호실에 있는 다른 연구사가 나왔다.

《오빠는 동무를 만나서 어디 나갔는데요.》

그 연구사는 별스레 싱글거리며 말했다.

《동무라니요? 어떤 동무예요?》

《글쎄… 오빠를 만나면 직접 물어보지뭐.》

아무리 캐묻는댔자 그 이상 더 말해줄것 같지 않았다. 남자들이란 다 싱검둥이들이라고 속으로 종알대며 현심은 자리를 떴다.

다음날에 오빠를 만나 따지였다.

《오빠, 어제 누구를 만났댔어요?》

《만나기는 누구를 만났다고 그래?》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듯 오빠는 태연스레 말했다.

《다 들었어요. 함께 어디에 갔댔다는것 말이예요. 그 〈동무〉라는게 처녀지요?》

《오, 넌 대학생이라는게 별난데 다 신경을 쓰는구나.》 오빠는 소리내여 웃었다.

《작년 여름에 집으로 내려가다가 길에서 우연히 만나 알게 된 처녀야. 교원대학에서 공부하는 처녀더구나. 그 처녀와 나는 인민대학습당에 자주 가게 되니 자연히 그곳에서 드문히 만나게 되더라.

우리야 전공이 서로 다르니 그저 생활적인 이야기나 나누었지. 그 처녀는 얼마전에 대학을 졸업했는데 배치문제때문에 신경 쓸 일이 생긴거야. 그때문에 처녀를 만나야 해서 찾아갔던거다.》

《천연덕스럽네. 거짓말!》 현심은 고양이발톱이 되여 할퀴였다.

《이 동생의 눈은 못 속여! 집에 가면 아버지, 어머니한테 죄다 일러바칠테야. 아버지가 뭐라고 했어? 〈먼저 장가부터 갈 생각은 하지 말아. 사회를 위해 큰일을 한가지라도 해놓고 장가를 가도 가야지.〉하지 않았어. 그런데 연구사업은 끝맺기도 전에 련애만 한다고 말이야.》

《련애》소리는 사실 오빠의 속을 뽑아보기 위해 한 엄포였다. 오빠는 대번에 바빠맞아 얼굴이 뻘개졌다.

《너 정말 말 다했니? 처녀한테 고민할 일이 생겨 만나러 갔댔다는데 련애는 무슨 련애냐. 똑똑히 알지도 못하면서!》

현심은 얼굴이 수수떡처럼 뻘개지며 변명이라도 하듯 말이 많은 오빠를 보며 흡족해서 해해 웃었다. 오빠가 만났다는 그 처녀가 정말 오빠와 범상한 관계가 아닐가? 큰오빠 나이가 서른한살인데다가 그 처녀도 이제는 대학을 졸업했다고 하지 않는가. 어떤 처녀일가? 시샘많은 새침데기는 아닐가? 현심은 큰리에 내려가면 부모님들한테 고발하겠다고 했지만 정말로 그럴 생각은 없었다. 큰오빠가 제대군인, 당원이고 대학을 졸업한 연구사인데 처녀가 생겼으면 좋은것이지 나쁠게 뭐람. 그런데 부모님들, 특히 아버지는 온 나라에 소문난 산림감독원이지만 생활에서는 좀 낡은데가 있어 젊은이들을 리해하는데서는 린색하다고 현심은 생각했다. 어쩌다 집에 내려가면 아버지는 개체생활을 똑바로 해라, 공부에 전념해라 하고 훈시를 하는것이여서 오빠한테 좋아하는 처녀가 생겼다고 하면 연구사업은 다 줴버리고 《련애질》에만 빠져있는줄 알것이다.

현심은 아직 얼굴 한번 본적이 없는 그 처녀가 대단히 아름답고 또 새침데기일거라고 생각되였다. 그런가하면 큰오빠를, 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자기에 대한 큰오빠의 사랑을 보물단지 훔쳐가듯 가로채가려는것만 같아 밉광스럽기도 했다.

현심이 오늘은 그 《밉광스러운》처녀때문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오빠.》 현심은 갑자기 심란해서 말했다.

《나 집에 내려가겠어요.》

의아해할줄 알았던 현웅이 재미있다는듯 싱글싱글 웃었다.

《얘,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니? 변덕도 심하다. 너 방학을 시내에서 보내겠다고 하지 않았니. 한달새에 박사라도 될것처럼 그러면서 말이다.》

현심은 눈을 찔 빨았다. 《오빤 속이 편안두 하겠다.》 그리고는 호― 하고 한숨을 내뿜었다.

수심에 잠기는 동생의 얼굴을 본 현웅은 그제서야 조금 놀라며 웃음을 거두었다.

《너 정말 무슨 일을 치지 않았니?》

《…》

《답답하다! 그렇게 한숨만 쉬지 말구 말을 해야 알게 아니냐.》

《오빠, 무슨 소리 못 들었어?》

《무슨 소리?》

《아버지에 대한 소문말이야요.》

심기가 편해있던 현웅이 신중해지며 동생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버지가 어쨌다는거냐?》

현심은 인민대학습당에 갔다가 들은 소리를 그대로 말해주었다.

현웅은 한동안 말없이 신중해있다가 애써 헌헌한 표정을 지었다.

《넌 뭘 알지도 못하는 처녀한테서 겨우 귀동냥이나 한걸 가지구 큰일이나 난것처럼 그러는거냐? 설사 그게 사실이라고 한들 뭐래? 사람이 큰일을 하느라면 비판도 받는 때가 있는것이지.》

현심은 항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약이 올랐다.

《오빤 뭐예요? 아버지가 과오를 범해서 책벌을 받았다는데 그렇게 태평스레 말해요?》

《얘얘, 됐다 됐어. 그게 사실인지는 전화로 알아보자꾸나. 넌 그 일때문에 계획했던 공부를 그만두고 집으로 내려가겠다는거냐?》

《어디 마음편히 공부할 형편이 됐어요?》

《원, 생각했다는게… 네가 내려가선 어떻게 하겠다는거냐?》

《알아라도 봐야지요 뭐. 전화로 물어보면 아버지나 어머니가 사실대로 말해줄게 뭐예요, 자식들 걱정할가봐. 그럼 오빤 여기 그냥 있겠다는거예요?》

《일을 해야지. 나야 제대군인이 아니냐. 대학을 늦게 나왔으니 벌충을 해야지. 그러지 않아도 난 바쁘다. 얘, 내 생각에는 말이다, 너도 집에 내려가는건 공연한 일같다. 소문이 잘못 돌았겠지. 아버지한테 일이야 무슨 큰일이 있겠니. 나라의 재부를 늘이자는 생각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한테 말이다. 최영우지배인동지가 우리 아버지때문에 해임되여 하동으로 내려왔다는것두 모를 소리다.》

현웅은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난 우리 아버지를 믿는다. 너도 생각해봐라. 아버지가 정말로 량심이 깨끗치 않구 사람들한테 해되는 일만 한다면 어떻게 한생을 산에서 살며 숲을 위해 일해올수 있겠니? 아버지가 어떻게 일해오셨는가야 너도 잘 알지 않니.》

《그건 그렇지만 영 근거없는 소문이 떠돌수야 없지 않아요. 군대에 나가있는 둘째오빠도 알면 걱정할거예요.》

《딴 생각 말구 공부나 잘해라. 공연히 발딱해서 그러지 말구. 네가 공부를 직심스레 해서 유능한 의사가 되는건 어머니의 소원이 아니냐.》

그것은 사실이였다. 현심은 원래는 의사가 되고픈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현심이 중학교를 졸업할 때 어머니가 말했다.

《얘, 너 다른 대학에 갈 생각은 말아라. 꼭 의학대학에 가야 해. 그렇게 지망서를 내거라.》

아버지가 오랜 산림감독원인것으로 해서 어려서부터 숲에 정을 붙이며 자라온 딸애가 다른 생각을 못하게 미리 못을 박아놓는 말이였다. 그때로 말하면 사실 현심이 자기의 전망문제를 놓고 똑똑한 선을 긋지 못하고있던 때였다.

이상한것은 아버지였다. 일찍부터 숲에 대한 사랑을 딸애의 가슴속에 심어준 아버지이고보면 《얘 현심아, 무조건 산림학자가 돼야 한다! 산림에 대해서 배울수 있는 대학에 가거라!》하고 강박이라도 할것 같은데 순순히 어머니의 의사를 따르는것이였다. 《의사가 되는것도 좋은거지. 사람의 생명을 지켜주는 일이 아니냐. 의학대학에 갈수 있다면 가거라.》하고 아버지는 말했다.

왜 그랬을가? 《고집불통》이라는 소리까지 듣는 아버지가 어째서 딸의 전망문제를 놓고서는 어머니한테 그렇게 양보를 했을가? 그것은 먼 후날에 가서야 풀게 될 인생수수께끼라고 할수 있었다.

큰오빠와 헤여져 기숙사로 돌아온 현심은 인민대학습당에 갈 생각은 하지 않고 침대우에 누워 혼자 뒤척거리였다. 어떻게 할가? 오빠 말대로 시내에 남아 공부나 할가? 그는 한나절이나 생각하다가 드디여 집으로 내려갈 결심을 했다. 현심은 하나의 앙큼한 생각을 했다. 그는 누구한테도 그것을 말하지 않으리라 속다짐했다.

갑자기 생각을 달리하여 집으로 내려갈 차비를 하는 현심을 보고 한호실의 동무들이 의아해했다. 강남군에 집이 있다는 옥금이란 처녀는 가방안에 학습장이며 참고도서며를 챙겨넣느라 부산을 피우는 현심을 보며 놀리듯 웃었다.

《얘, 방학기간에 인민대학습당의 책들을 몽땅 읽어치울것처럼 그러더니 어찌된거냐? 또 무슨 굉장한 결심을 했니?》

《림기응변이란 말 있지 않니. 전략이란 한번 세워놓으면 굳건해야 하지만 전술은 조건이 변하는데 따라 달리 할수도 있는거야.》

《모르겠다. 네 그 〈철학〉이란 론리가 엉성하구나. 무슨 고민거리라도 생겼니?》

《고민은 무슨 고민. 내 일은 잘돼간다.》

현심은 그 누구든지 자기의 약점을 들여다보는것을 절대로 바라지 않았다. 지금은 누가 뭐라고 해도 좋았다. 그는 기어코 자기의 결심을 실행할 생각이였다.

큰오빠한테는 다시 알리지 않고 큰리로 내려가는 뻐스에 올랐다.

무더운 8월의 한낮이였다. 뻐스안은 하동쪽으로 가는 각양각색의 손님들로 꽉 찼다. 뻐스가 출발하여 포장도로우를 달리기 시작하자 더워서 헐떡거리던 손님들이 기분이 좋아져서 뻐스안은 흥성거리기 시작했다.

현심은 손님들의 즐거운 기분에 말려들지 못했다. 그는 심란한 기색을 하고 말없이 차창너머로 흘러가는 다박솔 덮인 푸른 야산이며 강냉이들이 실하게 자라오른 밭들에 눈길을 보내고있었다.

생각은 다른데 가있었다. 류정혜란 처녀의 말이 사실일가? 아니, 세상에 별난 사람들이 다 있다고 해도 우리 아버지같은 사람이 남한테 해가 되는 일을 할수 있다는 말은 믿을수 없는 소리야. 오히려 우리 아버지를 나쁘다고 하는 그들이 나쁜 사람들일거야. 그 사람들이 안대? 우리 아버지가 큰리의 숲을 위해 얼마나 많은것을 바쳤고 고생은 얼마나 많이 했는지 안대? 집에 들어와서는 척추때문에 앓음소리를 지르는 아버지의 고통을 알기나 한대? 그 척추때문에 일생 두툼한 포단이나 폭신한 침대우에서 편히 자보지 못하고 딴딴한 맨 장판바닥에 불편스레 누워 가까스로 잠들어야 하는 아버지의 그 고통을 그 사람들이 알기나 한대? 아버지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공정치 못하며 바로 《그 사람들》이 앞에 있기라도 한듯 현심은 분해서 속으로 부르짖었다.

소학교를 졸업하던 그해에 있었던 일이 문득 떠올랐다. 이른봄의 산산한 기운이 떠돌던 그날, 마른 풀대들이 바람에 날리던 그날, 아직은 개울가에 얼음버캐가 허옇게 붙어있던 그 봄날…

어린 현심은 어머니가 집에서 텔레비죤이나 보라고 했지만 고집을 부려 아버지를 따라 방아골막바지에 있는 명덕산으로 올라갔다. 거기맨 돌투성이의 산에는 아버지가 등짐으로 부식토며 흙을 져올려다가 펴고 심어놓은 어린 이깔나무들이 있었다. 엄혹한 겨울을 이겨낸 나무들이였다. 잎이 떨어져서 더더욱 앙상해보이는 어린 나무들은 바람과 해볕에 말라가고있었다. 겨우내 땅땅 얼어있던 땅껍질이 녹으면서 부풀어올랐는데 바람이 새여들어가 뿌리까지 말라버릴수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토심이 얕은 돌박산이였다.

아버지는 어린 이깔나무주변의 부풀어오른 흙을 꽁꽁 밟아주고 물기가 증발되지 말라고 그우에 돌들을 얹어주었다. 그 일을 도와 어린 현심이 주변에서 돌들을 날라왔다.

아버지는 해가 머리우에 떠올라 따스한 빛을 뿌려줄 때 점심을 먹자고 했다.

물줄기가 말라버린 개울가 너럭바위우에 싸가지고 간 점심밥을 펴놓았다. 아버지는 왜서인지 현심이더러 먼저 먹으라고 하고는 펀펀한 자리를 골라 바위우에 누웠다. 현심은 맛있는 김밥 한토막을 누워있는 아버지의 입에 넣어주며 말했다.

《아버지, 엄마가 한 김밥이야. 닭알지짐이랑 썰어넣었어. 아버지가 좋아하는 김밥이야.》

아버지는 빙그레 웃었다.

《너나 먹으렴. 아버진 좀 누워있어야겠다.》하며 눈을 끔뻑해보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얼굴색이 하얘지고있었다. 이마에는 작은 땀방울들이 무수히 돋아있었다. 아버지는 허리의 심한 아픔을 참느라고 모지름을 쓰고있었다.… 아, 어째서 지나간 하많은 일들중에서 그 일이 생각나는것일가? 사람들앞에서는 그 모든것을 내색하지 않고 웃으며 살아오는 아버지! 사람들이 어떻게 알아? 아버지가 그런 몸으로 지금까지 얼마나 힘들게 숲을 가꾸어왔는지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알아?

《아지미, 사탕 먹으라.》

자그마한 손이 현심의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애어린 목소리가 또랑또랑 울리였다. 그 손에는 빨락지로 싼 사탕이 하나 쥐여있었다.

현심은 생각에서 깨여나며 소리없이 웃어보였다. 소녀는 앞좌석에 앉아가는 젊은 녀인의 품에 안겨 그의 어깨너머로 현심을 보고있었다. 무척 귀엽게 생긴 소녀였다.

《아지미 우누나.》 해죽거리던 소녀의 눈에 놀람과 의혹이 실리였다. 《아지미》의 눈에 어린 눈물을 본것이였다.

《어서 받아요, 아지미.》

이번에는 소녀애를 안고가는 젊은 녀인이 따뜻이 말했다. 동정이 어린 목소리였다.

처녀애의 손에 쥐여있는 사탕 한알, 그것은 한뻐스를 타고가는 이름모를 처녀의 《괴로움》을 위로해주고싶어하는 녀인의 마음이였다.

녀인은 물기에 젖은 현심의 눈을 보고 그가 그 어떤 인생의 곡절이나 슬픔을 안고있는줄로만 아는 모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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