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8 회)
제 2 편
제 3 장
10
자강도사람들은 어디에 가도 남한테 절대 짝져서는 안된다면서 연형묵이 보내온 두대의 대형뻐스에 참관단에 속한 사람들을 가득 태워놓은 권하세는 무엇 놓친것이 없나 해서 북쪽기후에는 아직 이른 봄외투자락을 너풀거리며 신이 나서 돌아갔다.
《나많은분들은 될수록 창문쪽에 나앉으시오, 멀미를 하지 않게스리. 동석아! 넌 아직도 차를 타지 않구 어딜 그렇게 쳐다봐?》
《아, 고 맹꽁이같은 순이가 오지 않아서 그래요.》
《맹꽁인 네가 맹꽁이다. 걘 벌써 차에 탄지 오랬어.》
궁둥이를 툭 쳐주고는 다른 뻐스로 건너갔다. 거기서는 작달막한 키에 눈매가 자못 사무러워보이는 운전사가 물자루처럼 흐물떡 주저앉은 다이야를 발길로 툭툭 건드려보며 혀를 차고있었다.
《젠장, 자령사람들은 뭘 먹어서 이리 무거워.》
뻐스창이 하나 드윽 열리더니 앞이가 토끼이발처럼 길쑴하게 삐여져나온 홍령감이 흐흐 웃으며 맞대거리를 했다.
《내사 40년동안 쇠를 깎아먹어서 그렇다니.》
거기다가 권하세까지 맞장구를 치면서 벌써부터 입안에 사탕알을 굴리고있는 몸집좋은 녀인을 향해 《덕분아주머니, 혹시 아침을 두그릇 자시지 않았소?》하고 롱담을 건넸다.
《아이구, 난 되려 지배인이 참관가서 씀씀을 크게 낸다기에 호물락 굶고 올랐시다. 이제 가면 뭘 내실텐데요?》
《느릅쟁이국수에 팥고물을 한 수수지짐을 대접하지요.》하고 권하세는 무턱 제 좋을대로 대답해버렸다.
오래간만에 렬을 지어 바깥바람을 쏘이게 된 공장사람들은 고작 하루길에 옷을 고른다, 간식을 준비한다 하며 간밤을 분주하게 보냈다. 권하세가 몰이군처럼 휘돌아치며 사람들을 다 태우고났을 때 바래주러 나왔던 최수광이 그를 조용한 곳으로 이끌었다.
《아무쪼록 깊숙이 보고와야 합니다. 자령도 현대화의 본보기를 창조하고있는데 저 북천에서처럼 재구를 치면 야단이지요.》
그의 말이 어쩐지 귀에 거슬렸다.
그렇지만 권하세는 시간이 바쁘고 헤여지면서 감정을 상하게 하고싶지 않아 물러났다. 뻐스에는 화면반주기도 설치되여있었다. 들은것, 본것이 적은 촌사람들은 그만에도 입이 함박만 해가지고 출발하자부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돌아갔다.
평양-향산사이 관광도로를 따라 수백리길을 달려 련하기계에 도착했을 때가 마침 점심참이였다. 련하기계는 물론 봉화기계공장과 군당에서까지 군지경에 마중을 나와있었다. 점심도 군에서 주최가 되여 읍거리의 국수집에서 깨끗하게 차려주었다. 권하세가 허투루한 소리였는데 식탁에 정말 수수지짐이 올라서 사람들을 웃기기도 하였다. 참관사업은 오후에 있었다.
가까운 안흥에서는 점심을 먹고 떠난다더니 자령사람들이 련하기계앞에 차를 대고있을 때 꽃테프까지 휘감은 3대의 중형뻐스에 갈라타고 나타났다. 공장사람들이 뻐스에서 다 내리도록 권하세는 차창만 멍하니 내다보며 앉아있었다. 안흥참관단을 인솔하고 나타난 춘호를 보았던것이다. 일어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권하세의 얼굴빛이 이상했던지 운전사가 물었다.
《아니, 왜 그러고있습니까?》
《그저 좀… 다리가 쏴서…》
《저것 보십시오. 사람들이 모두 기다립니다.》
마침내 권하세는 뻐스에서 내렸다. 누군가 꽃목걸이를 아꼈다가 달려나와 걸어주었다. 기동예술선동대가 환영곡을 울렸다.
《반갑습니다!》
《환영합니다!》
다행이라고 할지 두 단위가 따로 갈라져 공장을 돌아보았기때문에 그들부자는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권하세는 안흥사람들쪽으로 자꾸 눈길이 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춘호는 그가 온것을 모르는지 참관에만 열중하고있었다.
아니면 보고도 못 본척 하는지 몰랐다. 온덕수가 자령기계공장을 맡아 안내했고 젊은 기사장이 대렬을 인솔해온 안흥사람들에게는 특별히 얼굴이 환한 처녀안내원을 붙여주었는데 그 처녀는 효은이였다. 한개 공장이 들어앉았다고 보기에는 너무 아담한 생산건물을 보며 놀랐고 각종 CNC공작기계들이 줄지어 늘어선 생산현장에 들어서자 더욱 놀랐다. 어딘가에 설치된 고성기에서는 한창시절에 권하세가 사랑하였고 지금도 2절까지는 가사를 더듬지 않고 부를수 있는 노래 《보람찬 우리 일터》가 울리고있었다. 검고 텁텁하고 둔한것이 여기서는 기계와의 인연이 아니였다.
(훌륭하구나!) 권하세는 탄복했다.
춘호가 그렇게도 외우던 련하였고 권하세가 그렇게도 도외시했던 련하였다. 자령사람들은 련하기계 종업원들이 칼날같은 바지주름을 세우고 노래까지 들으며 일하는것을 보고 야! 야! 감탄했다.
설계실에서는 공간을 격자무늬처럼 구획지어놓은 간막이들에서 젊은 설계기사들이 콤퓨터로 3차원설계를 빚고있었다.
《여길 좀 보십시오.》 그들을 안내하던 온덕수가 말했다.
《이 동무는 지금 수평타레트머리식공구쌈을 설계하고있습니다. 보시다싶이 작업순차와 공구교체, 바이트각도와 절삭두께를 임의로 지적하고 수정할수 있으며 실지 기계가 수행하게 될 가공작업을 콤퓨터상에서 재현해볼수도 있습니다.》
모두 콤퓨터에 눈이 팔린새 권하세는 슬그머니 온덕수의 팔소매를 잡아끌었다. 이 틈에도 뭔가 공장의 욕심을 차려야 하겠다는 역시 지배인다운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우리 공장에도 련하기계가 여라문대 들어왔는데…》 권하세는 미리 롱담을 한다는것을 알려주듯 껄껄 웃었다. 《련하기계라는게 본시 이렇듯 호사스럽게 났으니 입이 밭아 막전기는 통 먹지 않겠다니 야단이 아니요. 무슨 딱실한 비방이 없는지요?》
《비방이요? 허허, 그런게 있다면야 자령에 가있던 우리 사장동무가 벌써 내놓았지요. 그렇지만 락심할건 없습니다.》
온덕수는 나들문쪽으로 그를 안내했다.
《지금 이 동무가…》 온덕수의 말은 조금 떨리는듯싶었다. 《전압주파수안정기를 맡아 설계하고있습니다.》
젊은 설계가였다. 테가 큰 색안경을 끼고있었다.
《동무가 전압주파수안정기를 설계하고있소?》
《예, 그렇습니다.》
《야, 이 친구!》 권하세는 환성을 올리며 다짜고짜 그를 부둥켜안았다. 《동무들, 이 젊은 기사동무가 누구인지 아오? 우리 공장의
버덩이홍령감이 소리쳤다.
《넨장, 우리네 젊은것들은 련하구경에 혼맹이가 빠졌나? 멍청히 서서 무엇들 하느냐? 얼른 저 선생을 춰올려라!》
억센 팔뚝들이 정림이를 공중에 띄워놓고 발닿을 새없이 여싸여싸 고패뜀을 시켰다. 권하세는 온덕수의 눈굽이 젖는것을 보았다.
《왜 그러시오?》
《사실은… 저 애가 내 아들입니다.》
《아들이요?》
정림이의 과거사를 알수 없었던 권하세로서는 서로의 뜻과 지식이 잘 부합된 그들부자의 관계가 참으로 부러웠다.
(그때 춘호가 뭐라고 했던가?)
권하세는 언제인가 대학주변 국수집에서 있은 일을 생각했다.
(모르면 당에 충실할수 없고 부자간의 의리도 지킬수 없다고 했지. 그 말이 옳았어. 녀석이! 확실히 발전했거던, 허허. …)
권하세는 련하기계며 과학기술이며 하는 실무적인 말들이 사실은 전혀 딱딱한게 아니고 매
그 불이 꺼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설사 자기 아들이라도 알아보지 못하는것이다.
온덕수가 설계실을 나선 그들을 안내해간 곳은 기술보급실이였다. 거기서 권하세는 안흥사람들과 마주치게 되였다. 숱한 사람들이 모여와 권하세를 둘러쌌다. 그들의 어깨너머로 춘호가 보였다.
춘호도 붉어진 눈으로 권하세를 바라보고있었다.
춘호가 다가왔다.
《아버지, 우리 차에 좀 가십시다.》
차에 오르자 춘호는 당반에서 가방을 하나 내리웠다. 쟈크를 열자 낯익은 털모자가 나졌다. 언제인가 권하세가 대학기숙사에 찾아갔다가 벗어두고온 그 곰털모자였다. 춘호는 그것을 굉장히 무거운 물건처럼 받쳐들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그간 아버지앞에 욕되는 일이 많았는데 용서하십시오.》
《아니다, 그게 아니다.》하고 권하세는 손을 저었다.
《내가 네앞에 면목이 없다. 내 눈이 어두워서…》
권하세는 말을 맺지 못하고 춘호를 이끌어다가 곁에 앉혔다. 아들의 둥실한 어깨가 몸에 와닿자 권하세는 큰 나무에 기대인듯 마음이 평온해지는것을 느꼈다. 권하세는 젖어드는 눈굽을 문대겼다.
《이 털모자를 여직 건사하고있었느냐?》
《어머니가 사드린게 아닙니까.》
《그래, 오래전에 받았댔지. 좀 써볼가?》
봄계절에 털모자가 어울리지 않았지만 권하세는 자기의 모습을 차창에 비춰보며 껄껄 웃었다. 참관을 마친 사람들이 뻐스안을 가득채울 때까지 그들은 래일에 대한 그리고 삶에 대한 새로운 희열을 느끼면서 행복스럽게 앉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