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2 회)
제 2 편
제 3 장
4
공장앞마당에 빙 둘러세운 여러대의 자동차들에서 쏟아져나오는 불줄기가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랭동닭고기들까지 타는 불처럼 보이게 했다. 아낙네들의 살진 웃음소리와 랭동짝을 엿판 노느듯 툭툭 까서는 저울에 올려뜨리는 사내들의 롱지거리가 그 불빛아래 말짱히 드러났다. 공장안이고 밖이고 사람들로 사태였다. 아이들까지 자지 않고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닭고기산을 허무는 희한한 구경을 나왔다. 목욕물을 붓고 들어앉으면 제격일상싶은 커다란 나무함지를 썰매처럼 줄줄 끌고온 녀석이 있는가 하면 닭 한마리가 겨우 들어갈 야영배낭을 멘 아이들을 셋씩이나 줄세워온 로인도 있었다. 하여튼 장관이였다. 공급이 거의 끝나갈무렵에 누군가가 사람들을 헤집고 박송봉의 앞에 나타나 인사를 꾸벅 하였다.
《안녕하십니까?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누구더라?!》
《김승철입니다. 그때 표창장때문에…》
《오! 동무로구만. 동생도 같이 왔소?》
《그 앤 지난 봄에 군대에 나갔습니다.》
《어머니는 무고하시고?》
《모시고왔습니다.》하고 청년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새 두 형님이 제대되여오고 나까지 네식구가 모두 함께 왔습니다.》
《형님들도 공장에서 일하오?》
《예, 그래서 우리 집에선 닭고기를 18키로나 받았습니다.》
쪽진 머리를 정성스레 틀어올리고 비로도저고리에 누빈조끼를 받쳐입은 녀인이 저쯤에서부터 허리를 숙이며 다가왔다.
《이 애들 에미올시다. 어른, 이제 평양에 돌아가서
그쯘한 아들 삼형제가 어머니와 함께 머리를 숙이였다.
어느덧 공급이 끝났다. 0시 15분전이였다.
박송봉은 행정청사 웃층에 자리잡고있는 당위원회로 올라갔다.
0시 정각 평양을 찾았다.
그리고
《고맙소. 공급은 다 끝냈소?》
《예, 모두가
《그렇게 많이? 요란하구만!》
무릎을 치며 웃으시는것 같았다.
《내 그러지 않아도 동무한테 전화를 하려던 참인데 랭동한 닭고기를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알려주었소?》
박송봉은 아차! 하고 머리를 쳤다
《대답이 없는걸 보니 놓친게로구만. 수고스럽지만 이제라도 알려주는게 좋겠소. 그리고 한본새로 온반만 해먹지 말고 찜이랑 튀기, 구이도 해먹도록 료리방법을 가르쳐주는게 좋겠소.》
《알겠습니다, 곧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박송봉은 공장일군들을 모두 동원시켜가지고 상석동, 백운동, 새골동 하고 마을별로 긴급포치를 내보냈다. 그중 먼 상석동쪽에는 권춘호의 안내를 받으며 그가 직접 나가기로 하였다. 길이 미끄럽다며 춘호가 들려주는 지팽이를 짚고 목도리도 두르고 백운천을 거슬러올라간 그들은 매 집집을 돌며 주부들을 불렀다.
이렇게 수십세대를 돌았다. 자는 집은 하나도 없었다. 장기판, 윷놀이판을 꺼내놓고, 지어 시내에 사는 친척들까지 불러다가 아이들의 노래춤판을 벌려놓고 들썩거리는 집도 있었다.
《야, 정말 좋은 밤입니다.》 춘호가 느닷없이 말했다.
박송봉의 기분도 이런 밤이라면 시를 몇수 지을것 같았다.
그때 어둠속에서 또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닭고기를 얼음을 뽑고 잡수시오! 얼음을 뽑아야 합니다!》
《저게 누구요?》 박송봉이 춘호에게 물었다.
《글쎄 말입니다? 목소리를 들으면 분명…》
전지불을 휘친거리며 나타난 사람은 한유준이였다.
뜻밖이였다. 그럴것이 한유준에게는 그런 과업을 준적이 없거니와 그의 집은 여기서도 한참 더 올라가야 있었던것이다.
《방금 공장에서 나오는데 사람들이 그러더구만요. 1부부장동지랑 간부들이 모두 공장주택지구에 나갔다구요. 그래 기분도 좋구 해서 시킨 사람은 없지만 나도 한소리 치는중이지요.》
그 말에 박송봉은 고개를 젖히고 껄껄 웃었다.
춘호가 그쪽은 벌써 다 돌았다고 하자 한유준은 《어쨌든 잘됐습니다. 오셨던김에 우리 집에 들려 닭고기맛이나 좀 보고 가지요.》라고 하면서 그들을 부디 집으로 이끌었다.
곁에 유일하게 녀자손으로 남아있던 외동딸마저 지난해에 시집을 가자 한유준은 작식을 손수 하며 지내고있었다. 그런 살림에 식객으로 묻어간다는것이 멋적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번 가보는것이 옳겠다고 생각되여 박송봉은 사양하지 않았다.
딸이 떠나면서 도배를 새로 하고 이부자리도 다시 꾸며놓았다지만 어째서인지 집안에 윤택이 흐르지 않았다. 보기 싫은 처도 빈방보다는 낫다더니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눈치빠른 춘호가 어느새 련락을 보냈는지 그의 안해가 전지불을 켜들고 한유준의 집으로 건너왔다.
사람들이 끓이자 휑뎅하던 집에도 제법 화기가 돌았다. 한유준은 손님들앞에 꼭지를 묶어 노랗게 말리운 잎담배를 내놓으면서 제 손으로 터밭농사를 지은것인데 맛이 괜찮다고 자랑하였다.
담배를 한대씩 말아무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부엌에서 가마를 부시던 춘호의 안해가 반색하며 《여보, 누가 왔나 보세요. 평양대학생이 왔어요!》하고 소리쳤다.
《누구?》
춘호가 뉭큼 일어나 사이문을 열어제꼈다.
대학생복을 쭉 빼입은 만천이가 비닐구럭에 든 술병을 절그렁거리며 들어서다가 큰 손님들이 와있는것을 보고 굳어졌다.
《경산 경사다, 어떻게 평양대학생이 나타났소?》
춘호가 벙글거리며 손을 잡아끌자 만천이는 박송봉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방학에 집으로 내려왔다가 우리 공장에 큰 경사가 났다기에 당장 달려왔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만천의 집은 안흥 서쪽에 린접한 천마군에 있었다. 평양에서 대학공부를 하면서도 우리 공장이라고 정깊게 부르는 그의 가슴속에는 이 땅과 여기서 사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간직되여있었다.
《대학공부가 힘들지 않소?》 박송봉이 물었다.
《힘들 때도 있지만 공부하기가 재미납니다.》
《기숙사생활을 하겠구만?》
《예.》
박송봉과 만천이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듣고있던 춘호가 《가만, 만천이도 이젠 장가갈 나이가 되지 않았던가?》하고 물었다.
《글쎄요, 그렇잖아도 이 만천이를 탐내는 부모들이 한둘이 아닌데 여직 혼자서 집을 지키고있는 우리 아바이때문에 그러지요.》
《이런 엉뚱한 녀석이라구야.》 한유준이 구들을 두드렸다.
《네가 장가를 가는데 내 일이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그렇다면 오늘은 빠개놓고 이야기해보자며 되려 만천이쪽에서 만만치 않게 접어들었다. 만천이는 이 중대한 론전의 증견자가 되여달라는듯 박송봉과 권춘호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제 비록 총각이기는 하지만 아바이의 소개를 해볼가 하는데 말입니다, 녀석이 재수없다고 욕하지는 마시구요.》
《허허, 주걱이 제법 삽구실까지 하겠단다.》
한유준이 들어볼게 없다는듯 손을 내저었지만 박송봉은 저으기 호기심이 동해서 말목을 바투 찾아쥐였다.
《동무, 그게 정말이요?》
《예, 사실은 저 희천에 있는…》 하고 만천이가 말꼭지를 떼기 바쁘게 이번에도 한유준이 끼여들며 헤살을 놓았다.
《1부부장동지, 저 만천이의 소리는 들을게 못됩니다. 저 사람의 고모인즉은 옛날 고등기계전문학교시절의 제 스승인데…》
《가만, 혹시 그 지식인대회때 만났던 녀선생 말인가요?》
한유준은 그렇다고 하면서 몇해전에 자기가 입원치료를 받고있을 때 안흥공업대학에 교수강습을 왔던 김인순이 침상곁에서 밤을 새우던 이야기를 하였다.
《퇴원해서 집에 와보니 그 선생이 우리 정애를 데리고(이때 한유준은 벽에 걸린 8각시계를 흘끔 쳐다보았다.) 시장걸음까지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새 정이 든 우리 딸애가 역에 나가 바래주기도 했습니다만, 그건 어데까지나 사제간의 도의이구요. 그런 감정을 제 좋을대로 아무데나 섞어놓아서야 안되지요.》
박송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한유준의 기색을 보아서는 정말 모든것을 사제간의 도의로만 받아들이겠다는것인지 아니면 그 한계선을 넘어서기 힘들다는것인지 알수 없었다. 아무래도 만천이를 조용히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날이 푸릇이 밝아올무렵 박송봉은 한유준의 집을 나섰다. 공장까지는 반시간길이 나마 되는데 그만하면 만천이와 이야기를 나누기에 충분했다. 성격이 명랑하고 장소의 구애를 모르는 만천이였지만 박송봉과 단둘이 있게 되자 말을 힘들게 했다. 그의 말이 한유준의 딸이 시집을 간 후에 아버지도 가보지 못하였지만 자기 고모가 불원천리 군인사택마을에까지 찾아가 신살림을 돌보아주었다는것이였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쉽지 않은 녀성이였다.
《그러니 동무의 고모도 한유준설계가에 대해서 남다른 정을 가지고 있다? 나이든분들이니 선뜻 다가서기가 힘들테지.》
《그런데다가 우리 고모님은 교직을 놓기 힘들어합니다. 대학에서도 없어선 안될 사람이라고 늘 그런다는데…》
《음, 대학에서…》 박송봉은 잠시 궁리를 해보다가
박송봉은 백운천을 건느면서 만천이와 헤여졌다.
공장에 도착하여 연형묵에게 전화를 걸었다.
희천공업대학 강좌장으로 있는 김인순선생을 아는가고 묻자 제편에서 놀라며 그에 대해서는 왜 물어보는가고 하였다.
박송봉은 사연을 설명했다.
《허허, 그러니 날더러 사람을 내놓으라 그 소리구만.》
《내놓고말고가 있소, 인륜대사가 아니요?》
《그야 그렇지. 정 그러면 평북이 자강도로 오면 될게 아닌가?》
《자네 정말… 이건 롱담을 하는게 아니야.》
박송봉이 정색해서 들이댔다.
《글쎄 새 가정을 무어주는것은 나도 절대찬성이요. 하지만 당신 그 선생이 누군지 알기나 하고 그러오? 우리 자강도가 손해보는것은 물론 나까지 개인적으로 약차한 손해를 보게 된단 말이요. 평북이 오는것으로 합의하자구, 살림세간은 내가 다 맡을테니.》
《정 이러긴가?》
박송봉이 어성을 높이자 저쪽에서는 딴전을 피우며 슬그머니 말을 돌렸다. 아무래도 연형묵이 쉽게 내놓을 잡도리가 아니였다.
(좋다, 그럼 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