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 회)

제 2 편

제 3 장

1


박송봉의 심장병이 도지기 시작했다는 보고를 받고 당장 입원치료를 받으라는 엄명을 내리시였던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보다도 집에서 안정치료를 받게 하는것이 좋을것 같다는 의사들의 권고를 따르도록 하시였다. 일손을 놓은 박송봉은 하루도 마음편히 보내지 못하였다.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병이 나은것처럼 보이려고 요술을 부려보았지만 의사들은 《퇴원》을 승인하지 않았다.

《겨울이지만 산보를 자주 해야겠습니다.》

홀로 강변을 거닐 때마다 그는 어쩐지 마음이 서글퍼졌다.

먼저 간 안해가 생각나서였다. 한해전에 세상을 떠난 안해는 처녀시절 소문난 설계가였고 미인이였다. 박송봉을 만나서 평생 좋은 날은 별로 없이 빈집만 지키다가 먼저 갔다. 쌍쌍이 거니는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그 생각이 더 간절해지군 했다.

누군가 강변정서는 젊은 쌍쌍과 늙은 낚시군이라고 하던데 늙은것이 홀로 객적게 풍경을 흐리면서 돌아다니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마음을 알았던지 오늘은 맏딸 희송이가 산보길을 따라나섰다.

그것도 뒤에서 가만히 따라오다가 도중에 불쑥 끼여들었다.

《우리 맏딸이구나. 무슨 할말이 있냐?》

《나도 장수를 좀 할가 해서요.》

《허, 그래? 그럼 매일 나올게지.》

《호호호.》

겨울치고 퍽 온화한 날씨였다. 박송봉은 딸에게 팔을 맡기고 년로보장을 받은 늙은이처럼 한가로이 보통강변을 거닐었다. 제 어머니를 꼭 빼문 딸에게 이끌려 걷느라니 마음속에 나있던 공백이 저절로 메워지는것 같았다. 만수교까지 올라갔다가 되돌아섰다.

《아버지, 나 말이예요, 오늘 연구소당위원회에서 불러서 갔더니 국가과학원 대외사업국으로 조동될것 같다고 해요.》

《미생물연구사가 거긴 왜?》

《대외사업부문에서 요구하는 4가지 조항에 다 들어맞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나요. 그래서 아버지와 토론해보겠다고 했어요.》

《그렇단 말이지.…》

《그리구 외삼촌네 광영이하고 우리 은순이 말이예요.》

딸은 그새 밀렸던 가정사를 총화짓자고 따라나온것 같았다.

《당장 중학교들을 졸업하게 됐는데 야단났어요.》

《응? 졸업을 하는데 야단이 날건 뭐냐?》

박송봉의 무뚝뚝한 반응에 딸의 얼굴빛이 변하였다.

《아버진 너무 일밖에 모르셔요. 바쁘신줄은 알지만… 이제는 어머니도 안계시는데 이따금 아버지가 집안일을 관심해주셔야 하지 않겠어요. 할아버지의 무릎에도 변변히 앉아보지 못하고 자란 애들에게 늦정이나마 기울여주시면 안되나요.》

(저게 애들을 빗대고 제 섭섭한 소리를 하는게 아닐가?) 하고 박송봉은 생각했다. 그의 자식들은 모두 공학을 전공한 지식인들이였다. 생물공학, 정보공학, 핵물리학 등 분야는 서로 달랐지만 자식들모두를 첨단과학기술부문에 내세운것을 자랑으로 여기고있는 박송봉이였다. 대외사업부문이라… 손자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몇걸음 앞에서 유원지관리원이 웅크리고앉아 걸음길에 덮인 얼음을 까내고있었다. 그 한쪼각이 툭 튀여날아와 박송봉의 바지가랭이에 맞았다. 관리원은 모자를 들었다놓으며 량해를 표했다.

《다들 일을 하고있는데…》 하고 박송봉이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집안이 한번 모여앉아야 할가보구나.》

그러자 딸의 얼굴에 웃음이 확 피여났다.

《그럼 오는 일요일에 모이게 하겠어요.》

《집에 말이냐?》

《그럼 어디겠어요.》

《갈데가 있다. 내 오래간만에 궤도전차를 타보고싶구나.》

《어마나,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뜬것 같네!》

일요일에 분부한대로 일가식솔들이 모여왔다.

큰애, 작은애 할것없이 경주를 하듯 뛰여다니고 시누이, 동서 찾고 부르며 궤도정류소로 가는것이 큰 경사라도 난것 같았다.

하기는 집안의 가장격인 박송봉이 늘 나가살다보니 명절날에조차 단란한 가정의 멋을 모르고 살아온 그들이였다. 박송봉은 가족들을 이끌고 송신-만경대행 궤도전차에 올랐다.

손자, 손녀들이 그의 무릎을 흔들며 옹알댔다.

《할아버지, 우리 어데로 가나요?》

《응, 할아버지의 고향집으로 찾아간단다.》

《할아버지의 고향집? 할아버지의 고향집이 평양에 있나요?》

《그렇지 않구. 평양에서도 제일 경치좋은 곳에 있지.》

박송봉이 자라난 집, 그것은 만경대혁명학원이였다.

우리 공화국이 창건된 이듬해 8월 박송봉은 만경대혁명학원을 찾아주신 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뵈왔다. 연형묵도 그 자리에 참가했다. 수령님께서는 그때 눈같이 하얀 조선바지저고리에 대님을 맨 차림으로 그들을 만나주시였다. 으리으리한 금술을 드리운 군복차림에 싸창을 메신 장군님을 뵈옵게 될줄로만 알았던 그들의 눈에 비쳐든 김일성장군님의 모습은 얼마나 뜻밖이였던가.

오늘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날 조선옷을 입으시였던 모습이 어쩌면 수령님의 본래의 모습이였던것 같다. 조선의 가장 위대한 아들이시였고 애국자이시였던 수령님의 한생은 그 흰옷의 유구한 전통과 순결함, 영원한 미래를 위한 투쟁의 력사이기도 하였다.

학원에 도착한 박송봉은 먼저 수령님의 동상을 찾아 인사를 드렸다.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모신 수령님의 동상이였다.

수령님께서는 불비 쏟아지던 전화의 날에도 나어린 만경대의 아들딸들과 함께 계시였고 그들을 지켜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곁을 떠나기 아쉬워하는 친위중대원들에게 지금은 전쟁을 하는 어려운 때이지만 너희들은 승리한 조국의 래일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전쟁은 내가 하겠으니 너희들은 피타는 배움으로 조국의 미래를 건설하라고 류학을 떠밀어보내시였다.

지금도 그때와 다를바 없다고 박송봉은 생각했다.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빈터에서 새로 일떠서는 심정으로, 전후복구건설을 하는 심정으로 기계공업의 현대화를 실현해나가자고 말씀하시였다. 미래건설, 그것은 결국 후대건설이라고 할수 있다.

박송봉은 만경대에서 자라난 1세대 혁명가유자녀였다.

혁명의 대가 바뀌는것과 함께 유자녀들의 대도 바뀌여 그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혁명가유자녀 3세, 4세들이 자라났다. 그들속에 조국의 래일보다 가정의 앞날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박송봉은 생각했다. 그래서 가족들을 데리고 만경대혁명학원을 찾아온것이였다. 박송봉은 혁명사적교양실을 돌아본데 이어 몇해전 태양절을 맞으며 새로 건립한 혁명사적비 《빛나라 만경대혁명학원이여!》의 비문을 모두가 읊어보게 했다.

그리고 중학교를 졸업하는 손자, 손녀를 불렀다.

《광영이와 은순이는 대학에 가려고 한다지?》

《예.》

《둘 다 최우등을 했겠지?》

최우등생이 아니고서야 할아버지앞에서 대학소리를 할가 하는 눈치들이였다. 지망을 알아보니 그 애들도 공과부문의 대학을 지망했다. 그렇지만 가정적으로 보면 문제가 없는것도 아니였다. 전번학기에 우등을 한 애가 있는가 하면서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을 고상하게 키운다고 하면서 일찍 손풍금을 메워놓고 역사를 하는 부모들도 있었다. 그런 부모들에게는 따끔히 침을 놓았다.

《물론 재능을 찾아내서 키워주는것도 중요하지. 하지만 그저 추세가 음악이더라 하고 좇아다닌다면 그건 정말 좋지 않다. 그러고도 학교를 졸업할 땐 대학에 보내달라고 하겠지?》

애들이나 어른들이나 모두 얼굴에 땀이 돋았다.

《희송이는 말이다,》 박송봉이 맏딸을 불렀다. 《내 과학원에도 전화를 걸었다만… 장군님께서는 우리 집안에 나까지 모두 다섯명의 공학자가 있다고 대견해하시면서 나를 〈오성장군〉이라고까지 불러주셨다. 그런데 이제는 사정이 이러하여 그 별 하나는 떨어졌습니다 하고 말씀드려야 옳겠느냐? 우리 장군님께서 제일 부러워하시는게 뭔지 아느냐? 대학생이다. 그이께서는 만사를 제껴놓고 공부만을 하라는 그런 행복한 혁명임무가 어데 있겠는가고, 이제라도 다시 대학생이 될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말씀하신다. 그렇듯 배움을 중시하고 인재를 갈망하시는 그이이시기에 현지지도의 길에서도 어느 지배인이나 당비서보다 먼저 과학자, 기술자들의 이름을 불러주신다. 나는 너희들이 과학과 기술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고 조국의 부강에 이바지하는 애국자가 되기 바란다.》

《아버지!…》 희송이 고개를 떨구었다.

《애들아, 우리 가정은 혁명가유자녀가정이다. 혁명가유자녀란 남보다 특별히 받을것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보답할것이 많은 사람들이다. 우리 장군님을 위해서 더 많은 일을 하자꾸나.》

박송봉은 미더운 눈길로 자식들을 둘러보았다.

그는 자식들을 믿고싶었다. 아니, 믿었다. 그들은 달리는 살수 없는 장군님의 아들딸, 만경대의 손자, 손녀들인것이다. 이어 만경대고향집을 방문하고 송산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는데 입맛이 별로 좋아 박송봉은 덧국수까지 사양하지 않았다. 이튿날 그는 의사들로부터 하루 8시간이상 휴식을 하는 조건에서 일을 해도 되겠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달음으로 사무실에 달려나가 장군님께 건강한 몸으로 다시 사업에 착수했다고 전화보고를 드리였다.

《그렇게 말만 들어서야 알겠소? 빨리 여기로 오시오.》

《알았습니다, 장군님. 가겠습니다.》

박송봉이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 그이께서는 누군가와 전화말씀을 나누고계시였다. 박송봉은 자강도의 낯익은 지명들과 자령기계공장이라는 명칭이 자주 불리워지는것을 보고 상대자가 연형묵이 아니겠는가고 짐작했다. 리정의 이름도 몇번 흘러나왔다.

통화를 마치신 장군님께서는 박송봉에게 의자를 권하시며 《연형묵동무가 올려보낸 자령기계공장현대화추진정형에 대한 보고서를 읽고 생각되는것이 있어 전화를 걸었댔소.》라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재래식설비들을 들어내고 련하기계를 도입하는 단계에서 제기된 전압주파수안정문제를 요약하여 말씀하시였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나름의 견해를 내놓았는데 리정이만 침묵이더라오. 첫 출발부터 좌절을 겪다나니 충격이 컸을거요. 그 문제를 과학기술적으로 해결할 방도가 없겠는지 해서 며칠동안 자료작업을 좀 했는데 수확이 괜찮소. 인버터, 다시말해서 역변환기술을 리용하여 전압주파수를 안정시킬수 있소.》

《장군님, 그렇게만 되면 많은 문제들이 풀릴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강도당으로 자료를 발송해주었는데 리정은 이미 평양으로 떠났다는거요. 연형묵이 그의 행처를 알아본 모양이요. 외국문출판사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는데 집에까지 전화를 해보겠다는걸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소, 가정분위기를 방해하지 말자고.》

《그가 출판사에는 왜 갔댔습니까?》

《아직은 모르겠소. 그것 역시 내 일감이지.》 하고 그이께서는 웃음을 지으시였다. 《그래 나와 같이 렬차행군을 할수 있겠소?》

《예, 장군님. 어디라도 갈수 있습니다.》

자기를 데려가지 않을가봐 겁이 난듯 큰소리로 말씀올리는 박송봉을 눈여겨보시며 그이께서는 다시금 호탕히 웃으시였다.

《좋소. 그럼 래일 새벽에 떠날수 있게 준비하오.》

박송봉이 돌아간 후에도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신과 함께라면 그 어디라도 갈수 있다고 하던 말이 떠올라 가슴이 후더우시였다.

(박송봉이, 명이 아니라 일이 모자라면 죽을 사람이지. 내 비는데 제발 건강에 주의해주오. 나를 위해서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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