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 회)
제 2 편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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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조가 천리밖의 리정에게 전화를 걸어 언제쯤 돌아오는가고 재촉하게 된것은 정림이의 일때문이였다. 자령기계로 떠나기 전에 리정은 김경조를 만나 이번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면 정림이를 련하기계에 받아들이려고 한다는 의향을 표시했었다.
김경조는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정림이는 공장대학을 졸업한 후 3년간의 현장기사생활을 거쳐 지금은 봉화기계공장 기술발전과에서 일하고있었다. 정림이가 그렇게 되기까지 리정의 노력이 컸다는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정림이는 아버지보다 리정을 더 따랐다.
워낙 머리가 좋고 정열적인 정림이는 공장대학시절에도 그랬지만 기술발전과에 올라와서도 사람들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던 정림이가 요즘은 무엇때문인지 성격이 괴벽해지고 주위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가지지 못해 말밥에 오르고있었다.
별치않은 일에도 걸핏하면 신경질을 부렸고 누가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되면 (그것부터가 심한 오판이였다.) 몹시 불쾌해하면서 퇴근도 하지 않고 미친듯이 일했다. 사람들속에서는 그가 사업도 생활도 다 반발적으로 한다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혹시 그것이 육체적인 약점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심리현상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주위에서는 정림이를 보는 눈들이 달라졌다.
온덕수도 그것을 모를리 없지만 애당초 정림이를 다루어내지 못하였다. 그런데다가 북천기계공장의 현대화가 시작되면서 닷새전에 훌렁 출장을 가버렸다.
정림이의 생활은 더 엉망이 되여갔다.
며칠전에는 밤새 술을 마시고 사무실에 노그라진것을 그의 어머니가 와서 부축해갔다고 한다. 출근을 하다가 그 말을 듣고 찾아가보니 온덕수의 안해는 아침까지도 깨여나지 못한 정림이를 아래목에 눕혀놓고 돌미륵처럼 쭈그리고앉아 한숨만 쉬고있었다.
《아주머니, 도대체 이녀석이 왜 이 모양이요?》
김경조가 물었으나 머리만 깊이 수그렸다.
무슨 사연이 있기는 있는 모양인데 좀처럼 속을 털어놓지 않으니 답답했다. 방에 돌아온 김경조는 보온병에서 물을 따라 시큼털털한 소다를 한줌이나 풀어먹었다. 요즘 신경쓸 일이 많아져서인지 위가 허해지고 먹은것이 잘 내려가지 않아 속이 달리군 하였다.
이튿날 김경조는 뜻밖의 소문을 얻어들었다.
아침모임때 공장탁아소에 땔감이 떨어졌다는 보고를 받고 김경조는 그곳으로 찾아갔다. 한창 가느라니 탁아소책임자이자 젖떼기반 보육원인 그의 안해가 다른 보육원과 함께 구멍탄수레를 끌고가는것이 보였다. 그는 걸음을 재촉하는 한편 앞에 대고 소리쳤다.
《책임자동무! 좀 서시오.》
뒤를 돌아본 보육원이 입을 싸쥐며 자리를 피했다.
《남들이 있는데서 그렇게 찾을건 뭐예요.》
《당신이 듣고 자각하라는거요. 땔감이 떨어질것 같으면 미리 대책을 세웠어야지. 그러고도 책임자소리가 귀에 들어오오?》
《그렇게 미우면 철직이라도 시키시지요.》
《하라면 못할것 같소? 구실을 못하면 마누라라도 못 봐줘.》
손수레에 싣고가는것은 구멍탄이였다. 날도 인차 더워지겠기에 그때까지만 탄불을 때기로 토론했다는것이였다. 그렇게라도 공장에 부담을 끼치지 않고 자기들끼리 땔감을 해결하려고 했다는 안해에게 김경조는 당장 추궁을 들이댔다.
《구멍탄을 모았다고? 잘하오. 가스사고가 날수 있기때문에 탁아소에서는 절대로 탄불을 땔수 없다고 내 몇번이나 말했소?》
안해를 앞세우고 탁아소로 간 김경조는 보수반을 전화로 찾아 낡은 휘틀과 발대목을 있는대로 실어오도록 지시하고 놀이터에 나왔다. 배그네며 회전목마며 놀이기구들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점검을 하느라 돌아가는데 보수반사람들이 오면 대접하겠다고 큰 늄주전자에 콩우유를 끓여가지고 나온 안해가 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김이 문문 오르는 콩우유를 고뿌에 가득 따라주며 요즘 공장에 정림이에 대한 소문이 돌아가는것을 듣지 못했는가고 물었다.
《소문?! 무슨 소문 말이요?》
소문따위를 들고다니는것을 천하 질색하는 김경조여서 안해는 말을 꺼내놓고도 《나도 얻어들은 소리가 돼나서…》하고 주저했다.
《정림이가 뭐 어떻다는거요?》
《한달전엔가 어느 화보사에서 취재를 왔댔다면서요?》
그런 일이 있었다. 외국문출판사에서 봉화기계공장의 기술발전성과를 소개하러 왔던것인데 김경조는 회의차로 평양에 가있었다.
《한데 그게 정림이와 무슨 상관이요?》
《듣자니 그날 정림이만 사진을 못 찍었대요.》
《정림이만?! 그건 왜?》
《사람들이 말하기는 그날 사진을 찍기 전에 취재왔던 녀기자가 정림이만 따로 밖으로 불러냈는데 그리고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나요. 부모들이 들으면 가슴아프겠지만 화보에 정림이의 얼굴을 내기가 딱해서 그런것 같다고들 합디다.》
김경조는 그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연해졌다.
안해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림이는 그때 큰 심리적충격을 받았을것이고 전에 없던 행동들도 그로부터 초래된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당장 사실여부를 알아보려고 일어서는데 보수반에서 나무를 싣고오는 화물자동차가 탁아소마당으로 들어섰다. 적재함에서 난데없이 기술발전과장이 사색이 돼서 뛰여내렸다.
《왜 그러오?》
《이거 문제가 생겼습니다. 정림동무가 사직서를 냈습니다.》
《정림이가 사직서를?!》
실로 뜻밖이였다. 정림이가 그전처럼 현장에서 일하겠다고 제기하면서 사직서를 냈다는것이였다. 한쪽에서는 리정이 련하기계에 데려가겠다고 하는데 사직서를 낸것이다. 마침이라고 기술발전과장에게 취재소리를 꺼냈더니 안해에게서 들은바 그대로였다.
김경조는 바로 그날 리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는 오겠다는건지 말겠다는건지 똑똑한 대답을 못하던 리정이 불쑥 김경조의 방에 나타난것은 사흘이 지나서였다. 원래 얼굴이 칼칼한 축인 리정은 외지생활끝에 더 해쑥해져서 나타났는데 그 인상만 보고도 갔던 일이 시원치 않게 됐다는것을 짐작할수 있었다. 거기다 정림이 소리까지 꺼내기가 미안해서 하루쯤 쉬게 놔두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밤중에 리정이 제발로 다시 찾아왔다.
퇴근준비를 하고있던 김경조는 덧옷과 모자를 다시 옷걸이에 걸어놓으며 (무슨 소문을 들은게로구나!)하고 생각했다.
아니나다를가 그는 김경조가 권하는 의자에도 앉지 않고 《방금 정림이를 만나보고 오는 길입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