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회)
제 2 편
제 1 장
7
권하세는
1월 현지지도때 희천공작기계종합공장에서는
아침부터 공장일군들은
어쩌면 다행인지도 몰랐다.
공장이 멎었는데
이렇게 책임비서가 지배인을 설복하고 지배인이 기사장을 위로하며 그만 들어가려는데 경적소리가 들려왔다.
《왜 생산을 못하오? 무엇이 걸렸소?》
권하세, 네 정신상태가 얼마나 떨떨해졌는가.
희천공작기계를 찾으신 그날
《지금 우리 공장에서는 불이 붙었습니다, 불이! 좀전에 전화를 해보니 옛날 잘살 때 묻어버렸던 몽금포모래를 파러 간답니다. 이런 때 하필 대학에 공부하러 올건 뭐겠습니까.》
젊은 부지배인은 막 속이 달아하였다.
권하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하였다.
그로서는 바로 이런 때 공장을 위해서도 자기가 지배인자리를 내놓은것이 천만번 지당하다고 생각되였다.
오전에는 공업기술학강좌에서 조직한 질의응답이 있었고 오후에는 강당에서 특강이 있다고 했다. 점심식사를 하고났을 때 공장에서 면회를 왔다는 련락이 왔다. 까닭없이 가슴이 울렁거렸다.
(누가 왔을가? 혹시 춘호가?!)
그러나 곧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니야, 그녀석이 뭣하러 여기까지 찾아오겠는가.)
아무튼 친우나 친척도 아니고 공장에서 누군가가 찾아왔다는 사실이 눈물이 나게 고마왔다. 그는 정문으로 달려나갔다.
대학거리가 거의 끝나가는 마지막네거리교차점에 위치하고있는 대학정문은 면회자들로 붐비였다. 알만 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희천부지배인을 찾아온것을 같은 공작기계로 삭갈렸을수도 있다는 추측이 들었다. 그게 옳겠다고 생각되여 발길을 돌리려는데 《지배인동지!》하는 웨침소리가 도로건너편에서 들려왔다.
권하세는 그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지배인동지는 공부를 안합니다. 주먹구구지요. 자꾸 돼지랑 싣고 뭘 얻으러다니지 말구 그걸 다 우리 기술자들한테 먹여보시지요.》하고 그를 비판했던 만천이의 목소리였다.
권하세는 돌덩이처럼 단단한 만천이의 어깨를 그러안았다.
그가 비록 멋진 새 양복을 뽑아입고 왔지만 몸에서는 그렇듯 낯익은 쇠가루섞인 기계기름냄새가 풍겨왔다. 다시 보니 옷차림만이 아니라 머리모양도 달라졌다. 작업모에 눌리운 자리가 나있군 하던 머리칼을 뒤로 빗어넘기고 고대로 모양까지 잡은것이다.
《오래 기다렸습니까? 그동안 난 저 도로건너 리발소에 갔댔습니다. 아무튼 시간이야 효과있게 리용해야지요.》
너스레를 떠는 성격은 여전했다.
《한데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소?》
《어떻게라니요? 내가 뭐 못 올데를 왔나요.》
갑자기 어른을 대하듯 하는 말투가 어색한듯 만천이는 《지배인동지, 그전처럼 〈얘, 만천아!〉하십시오.》라고 했다.
《그럼 그러지. 언제 올라왔냐?》
《어저께요. 난 평양기계대학에 추천받았습니다.》
《그러니 입학시험을 치러 왔겠구나!》
《예, 나도 지배인동지처럼 대학생이 돼서 큰일을 해보려구요.》
《에끼 녀석, 그 입심은 여전하구나. 허허허…》
만천이는 지고온 짐을 끄르고 편지뭉테기와 자그마한 보퉁이를 꺼내 놓았다. 편지는 공장사람들이 보낸것이고 보퉁이는 집사람이 보낸것이라고 했다. 손에 잡히는대로 편지를 집어드니 마침 한유준이 보낸것이였다. 지난겨울에 자기가 겪은 일들을 상세히 적고나서 한유준은 지금
권하세는 그것을 선뜻 풀어헤치고싶지 않았다. 만천이가 보퉁이를 매만지기만 하는 그의 모양을 보고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수수엿을 달여 보낸다던지요. 안에 편지도 있습니다.》
《응, 알겠다.》 하고 권하세는 대답했다.
《기쁜 소식이 또 한가지 있는데… 아마 아주머니가 편지에도 썼을겁니다. 지배인동진 이젠 할아버지가 됐습니다. 춘호형님이 아들을 봤다니까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까?》
모르긴 왜 모르겠는가. 권하세는 분명 들었다. 춘호가 아들을 보았단다. 결혼식상도 차려주지 않은 이 못나고 고집불통인 늙은이를 할아버지라 부를 생명이 태여났단다. 불시에 가슴이 찌르르 해왔다. 할머니가 된 집사람은 그 피덩이를 안고 기뻐서 어쩔줄 몰라할것이다. 그러니 공장이나 가정이나 이 권하세가 있어서 좋을것은 하나도 없고 멀리 떨어져있으니 기쁜 일만 생기는가부다.
《전 이만 돌아가야 합니다.》 만천이 먼저 일어섰다. 《내려가기 전에 또 들리겠습니다. 집에 보낼 회답을 써놓아야 합니다.》
《응, 그래. 쓰지.》
권하세는 만천이를 바래우고도 한동안 밖에 서있었다.
집사람에게 회답을 쓴다? 일생에 그런 일은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희여지는 때에 와서 이런 일이 생긴것이다.
(하기야 내 25년만에 책상앞에 다시 앉아보았으리. 변했어, 세월은 확실히 변했어. 그런데도 나한테는 25년전의 그 뻘건 주먹밖에 뭐가 더 있었나? 아무것도 없었지, 아무것도…)
권하세는 한손에 수수엿이 들어있다는 보퉁이를, 다른 한손에는 편지뭉테기를 들고 터벅터벅 대학으로 들어갔다.
호실앞에서 희천부지배인을 만났는데 벌써 모두 강당에 모였다고 하였다. 권하세는 짐을 침대머리에 던져놓고 부랴부랴 강당으로 달려갔다. 마침 대학교직원들이 입장하고있었다. 그들까지 참가하는것을 보면 중요한 특강이 조직되는 모양이였다.
《어데서 나온다오?》
《어느 회사라는데 기업관리경험을 소개하려는지…》
교무부에서 나와 자리를 정돈하더니 《CNC기술의 세계적발전추세와 련하기계》라는 제목으로 련하기계회사 사장 리정의 특강이 있겠다고 하였다. 권하세는 학습장우에 펜을 박은채 옆사람을 돌아보며 《이자 누구라고 했소?》하고 물었다.
《련하기계회사 사장이랍니다.》
연단으로 강사가 걸어나왔다. 그의 푸른 샤쯔와 넥타이허리를 찌른 삔과 곧게 탄 가리마까지도 권하세에게는 똑똑히 보였다.
(저 사람이 리정이구나!)
그는 권하세가 생각했던것보다 젊었고 생김이 날카로왔다.
리정은 웅글은 목소리로 강의의 취지를 밝힌 다음 CNC라는 용어의 풀이로부터 강의를 시작하였다. 처음에 청강자들은 그가 최신기계제작기술에 대한 개괄강의를 하는줄로 생각했는데 점차 내용이 심화되면서 너나없이 거기에 끌려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공업이 발전했다고 하는 나라들에서는 CNC기술을 국가경제발전과 잠재적전략에서 중심을 이루는 핵심기술로 인정하고 많은 자금과 지적자원을 투자하고있습니다. 사실 공장을 하나 일떠세우고 설비를 차려놓는데는 1년, 길어서 1년반이면 됩니다. 그러나 CNC기술과 같은 첨단급의 기계제작기술과 경험을 획득하는것은 10년, 그 몇배가 걸릴수도 있습니다.》
객석에서 누군가 언권을 요청했다.
《우리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그러자 장내에서는 박수갈채가 터져올랐다.
《이 10년은 여느때의 10년과는 다른 운명적인 10년, 100년과도 같은 10년이였습니다. 잘 먹고 잘 입고 편안한 날에 태여난 련하기계가 아닙니다.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의 붕괴와 가증되는 제국주의자들의 고립압살책동, 우리 나라 기계공업의 창시자,
권하세는 끝내 손에서 펜을 놓았다.
련하라는 거울에 자기를 비춰보았다.
련하가 걸어온 10년에 비해 나의 10년은 어떤것이였던가를 생각할수록 부끄럽고 허무해지는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지금 그는 자기가 그토록 헐뜯던 《회사것들》이 아니라 최첨단과학기술에 의거하여 기업활동을 해나가는 훌륭한 지식인들을 보고있었다.
《또한 이 나날에 우리는 과학기술과 생산 및 경영활동을 밀착시키고 일체화하는 경험을 창조하였습니다. 현재 우리 회사종업원 거의모두가 기사, 연구사들입니다. 사장인 나부터 과장, 부원들모두가 전문지식을 소유하였으며 따라서 우리 회사내에는 순수 행정일군, 순수 연구사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연구사이면서 생산지휘를 하고 무역활동을 하고 판매와 도입도 맡아봅니다. 기술을 잘 아는 사람이 생산과 관련된 모든 사업을 통일적으로 장악하고 종합적으로 지도하는것, 이것은 우리
이때 휴식종이 울렸다.
그러나 움직이는 사람이 없었다.
《저는 사실 우리가 겪고있는 시련으로부터 련하기계의 전도를 멀리에 두고 생각한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강의가 끝났다. 권하세는 맨 마지막으로 일어섰다.
리정을 만나보고싶은 충동을 누를수 없어 휴계실로 찾아갔다.
휴계실문은 열려있고 안에는 벌써 여러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문득 그들속에서 안시학의 얼굴을 보았다.
안시학은 모여온 사람들과 담소를 하면서 이따금 리정에게 무슨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한때는 내가 저 사람을 교양개조하는듯 여겼던적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발을 들여놓기가 거북했다. 권하세는 종시 문앞에서 돌아섰다. 밤새 뒤척거리다가 회답을 써놓으라던 만천이의 당부가 떠올라 안해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권하세는 자기가 그렇게 긴 편지를 쓸수 있으리라고 생각해본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