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 회
제 2 편
11
압록강기슭의 고산진은 예로부터 혜산진, 중강진, 만포진 등과 더불어 군사들의 군영이 진을 치고있던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전 세기말까지는 변강의 한산하고 작은 고을로서 별로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동떨어져있었다. 그러던것이 일제의 대륙침공이 시작되면서부터 경찰관주재소, 면사무소, 우편국 등이 자리잡고 영림창이 들어앉아 떼군들을 소리쳐 불렀다. 온갖 떼거지들- 순사보, 경부, 목재상, 거간군들이 쓸어들어 밤마다 기생들이 두드리는 장고장단에 따라 거쉰 목청으로 《둥근달을 술잔에 담아 마시고》하는 노래를 뽑아대군 하였다. 눅거리의 대포집들은 영림창에서 회계를 마치자바람으로 쓸어든 떼군들, 이와실이군들이 양푼을 두들기며 《오동동추야에 달이 동동 떴는데》하고 울부짖는 소리로 법석 끓었다. 이렇듯 압록강에 면한 돌무재기슭, 서문거리에서 환락의 인생, 버림받은 인생들이 술에 팔리고있을 때 가상골, 림성골, 구절골과 안골 등에 들어찬 농가들에서는 굶주린 인생들이 눈물에 젖고있었다. 말라가는 천수답때문에 울고 배고파 우는 자식들때문에 멍이 든 가슴을 두드려댔다.
해방이 되자 순사, 기생, 겐뻬이다이(헌병대), 사카린, 류랑민들이 그리고 절컥거리는 칼소리, 온갖 소란과 혼잡이 가뭇없이 사라졌다. 그대신
그러던 고산진이, 수수한 이 나라의 모든 농촌마을들과 다름없이 이름없던 고장이 일약 온 나라와 이어진 곳으로 되였다. 11월 5일, 여기에
…
매일과 같이 남일에게 그리고 최사작전국의 방향장에게도 전화를 걸어 물어보시였다.
《아직 아무 소식도 없소?》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림성골의
《갑자기 무슨 일로?…》
《무슨 일인지 어서 말하시오.》
《저… 다름아니라… 지금 적들이 희천에까지 기여들었다고 하기에…》
《그래서?》
《이곳 형편에서 저… 정부기관들을 그대로 둘수도 없고… 그래서 무슨 조치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아무래도》하고 박헌영이
《옮기다니, 어데로말이요?》
《저… 국경너머로 옮기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뭐요?》
《그러지 않다가는… 위험합니다. 정부기관들뿐아니라
박헌영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목을 움츠리였다. 별안간
《그러니 나더러 또다시 압록강을 건느란 말이지…》
《전 사실…
《그럼 나라와 인민은 어떻게 하고?… 그들은 누가 념려하는가?!》
엄한 음성이 방안을 찌렁찌렁 울렸다.
《지금 온 나라 전체 인민이 전선과 적후에서 결사전을 벌리고있는데 그들을 버리고 가란말이요? 다시한번 말해보오. 이 준엄한 때 피흘려 싸우는 인민군대와 인민을 버리고 가면 어디로 가겠는가?!…》
아직
《나는 한시도 인민을 떠나서는 살수 없소. 그래서 나는 지금 인민을 믿고 인민은 우리를 믿고 생사운명을 같이하고있는거요. 그런데도 자기 인민을 버리고 감히 국경너머 남의 땅으로 가라고 한단말인가!… 자기 인민과 운명을 같이 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저갈대로 가시오. 그러나 우리는 기어이 인민과 함께 끝까지 싸울것이며 싸워 이길것이요. 비록 지금은 형편이 어렵고 우여곡절도 있지만 우리 인민군대와 인민은 반드시 침략자들을 쓸어버릴것이요. 우리 인민은 꼭 승리하오!》
박헌영은 피기 하나 없이 해쓱해져서 후들후들 다리를 떨고있었다. 그는 억지로 입가에 주먹을 가져다대고 컹컹 헛기침을 하려고 해보았으나 끝내 아무소리도 내지 못하고말았다. 분노하신
바로 그때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뭐 협주단배우들이?》
《예, 그런데 수천리길을 헤쳐온 그들을 좀 휴식시키려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그래서 부득이 전화를 걸었다는 의미일것이다. 그는 계속하여 협주단배우들이 지금
…이윽고 인민군협주단배우들이 나타났다. 손에 어깨에 악기를 들고 메고있는 배우들, 홀쭉한 배낭을 지고있거나 불에 그슬린 목도리를 감고있는 배우들도 있었다. 맨 먼저 앞코숭이가 터진 장화를 신고오던 한 녀배우가 두손을 모두어쥐며 딱 굳어졌다.
《동무들이 왔구만. 우리 협주단배우들이!…》
《동무들의 소식은 다 들었소. 지난 여름 해방된 서울에서 공연을 시작한 때로부터 계속 전선에 나가 전투원들을 고무해주었다지. 그래 동무들은 어데까지 나갔더랬소?》
지휘자인듯 한 군관이 그들모두를 대표하여 말씀드렸다.
《그래 제일 멀리 나갔던 소편대동무들은 누구요?》
《진주!… 그러니 저 남해기슭에까지 갔댔단말이요?》
《예,
《어린 동무가… 조국땅 한끝까지 갔다가 왔단말이지. 전사들과 같이 온 나라 삼천리를 다 밟으며!… 그러느라니 고생인들 얼마나 많았겠소!…》
처녀는 여기까지 말씀드리고는 또 소리내여 울었다. 목메는 생각이 눈물로 번져지고 아름찬 기쁨이 어깨를 마구 떨게 하였다.
《나는 동무들이 기어이 오리라고 믿었소. 장하오. 정말 장해!》
이 나어린 처녀는 조국땅 끝에서 끝까지 걸어
그때 지휘자가 앞으로 나서며 말씀드렸다.
그러자 전체 배우들이
《고맙소. 동무들의 공연을 봅시다. 꼭 보아주겠소!》
그리하여 후퇴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되는 인민군협주단공연이 고산인민학교강당에서 10월혁명 33주년기념보고회끝에 진행되였다. 객석이 좁아 의자를 들어내고 멍석을 깔았다.
협주단은 《
관중은 모두 하나같이 숨쉬고있었다. 락동강의 피어린 싸움터에서 높이 부르던 노래 《진군 또 진군》을 독창으로 불렀을 때엔 많은 전사들이 소리없이 흐느껴울었다. 떠나온 그 기슭에서 돌격을 앞두고 다지던 맹세를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 맹세와 함께 돌격에 나아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한 잊지 못할 전우들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조국보위의 노래》와 무용 《나는 정찰병》, 기악중주 《간호원의 노래》 등이 계속되였다.
마지막으로 《싸우리라 싸우리라 끝까지 싸우리라》는 시와 합창이 시작되였다. 소개자는 이 작품이 수천리 준엄한 후퇴의 길에서 시를 짓고 곡을 붙인것이라고 했다.
관현악이 울리면서 합창대앞으로 한 녀배우가 나왔다. 그때
은하수 비낀 저 하늘가에
오붓한 내 고향마을이 있어
푸른 시내가엔
진달래 그리도 붉게 타더니
그것은 그저 시인것이 아니라 뜨거운 속삭임이였다. 한없는 사랑의 정으로 내 고향, 내 마을을 그리는 절절한 흐느낌이였고 불같이 타는 부르짖음이였다.
침략의 불구름 밀려와
마을은 간곳 없고
웃으며 뛰놀던 내 동생
내물을 피로 물들여
차츰 숨결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련발사격의 총성과도 같은 소고소리, 포성같이 웅글진 북소리, 불덩이같이 뜨거운 호소가 사람들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하늘도 떨고 땅도 타는
사무친 저 원한 듣느냐
오 전우들아
탄환을 재우자
복수를 재우자
지휘자의 손끝이 곧추 뻗어오르자 음악은 격렬한 파도마냥 장내를 휩쓸었다. 비발치는 총탄을 맞받아 돌격에로 내달리는 전사들의 모습을 눈앞에 보는듯 했다. 돌격선의 맨 앞장에서 펄럭이는 공화국기발, 앞서가던 사람이 쓰러지면 뒤따르던 전사가 또 받아쥐고… 바로 이것이 우리 인민의 신념이며 의지이다. 비록 패배주의자들은 감히 제 나라, 제 땅을 버리고 자기 인민마저 버리려 하지만 우리 인민은 굴함없이 판가리싸움에 떨쳐나섰다. 저 분노의 웨침을, 저 피타는 호소를, 저 억센 신념과 맹세를 들어보라!…
오 전우들아
탄환을 재우자
복수를 재우자
겨레의 피눈물 헤치고
승리를 향하여 앞으로
가슴에 지니고 앞으로
조국을 위하여
끝까지 싸우리라
승리하리라
격앙된 심정이 장내를 휩쓸었다.
《
《만세!-》
《만세!-》
배우들이 울고 온 장내가 다 울었다. 그것은 그저 눈물이 아니라 분출하는 용기였고 맹세였다. 멍석을 깔고 가득 들어앉았던 군인들, 각계층 사람들이 서로 부둥켜안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가슴속에서 부글부글 끓고있던 그 피타는 호소를, 맹세를 들었었다.
《수고했소. 동무들, 좋은 노래를 불러주어 고맙소!》
배우들의 얼굴은 온통 젖어있었다. 하염없이 흐느끼며 매달리며 그들은 목메여 부르짖었다.
《아주 훌륭하오. 싸우는 조선인민의 신념을 잘 노래했소. 장하오. 조선의 예술은 살아있소!…》
공연은 끝난지 오랬어도 장내는 여전히 끝없는 환호와 격정으로 끓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