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회
제 1 편
25
오전 10시엔 대동강류역에서 진행된 반돌격정형을 전화로 료해한 후 부관장에게 남일이 언제 도착하는가고 물으시였다. 남일은 수도방어에 새로운 후비부대를 증강하는 임무를 수행한 다음 이곳으로 오게 되여있었다. 부관장의 말에 의하면 남일은 오후 3시에 도착한다고 전화가 왔었다 한다.
남일의 사업에서 가장 특징적인것은 정확성이다. 그는 이번에도 제시간에 옥천지휘소에 도착하였다. 특별렬차가 가까이 보이는 곳에서 차를 세우고 개울물에 내려가 세수를 했다. 장화까지 말끔히 닦고 군복의 먼지를 털며 길우에 올라섰다.
그러나 렬차가까이 이르렀을 때 놀라운 일에 부딪쳤다. 남일이 나타나자 경위중대장이 몸을 돌려 차굴속으로 황황히 숨어버리는것을 띄여본것이였다.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은듯 했다. 어떤 경우에도 경위중대장이
남일은 주먹을 꽉 부르쥐며 승강대로 다가갔다. 그때 또 이상한 감촉을 받았다. 렬차부관이 울상을 하고 거수경례를 하는것이다. 한마디도 규정의 보고를 하지 못하고 입술을 비틀었다. 남일은 재빨리 그를 치떠보며 승강대로 올라섰다. 그 순간 번개같이 뇌리에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차대가리를 본것 같지 않았다. 차굴속에 있으려니 생각했었지만 그럴 리유가 없었다. 특별렬차는 차굴가까운 철길우에 나와있는것이다.
남일은 급히 승강대를 도로 뛰여내렸다. 그리고 차굴쪽을 그리고 정반대쪽의 텅빈 철길우를 휘둘러보았다.
기관차가 없었다.
분노의 아픔에 그의 심장은 조여들고 검붉어진 두볼은 후들후들 떨렸다. 넓은 이마우에로 검은 눈섭이 구붓하니 곤두섰다. 그는 충혈된 무시무시한 눈으로 자기의 서리찬 분격을 터뜨릴 대상을 찾았다. 차굴쪽으로 정신없이 걸어갔다. 장화발밑에서 자갈들이 불꽃을 튕겼다.
별안간 멎어섰다. 눈앞에 강부관장이 서있었다.
《기관차가 왜 없소?》
그는 속삭였다. 숨이 차서 헐썩거리며 눈을 가리는 땀방울을 손바닥으로 훔치였다.
《어데 갔소… 누가 그걸… 떼여냈소?》
그는 말을 떠듬거렸다. 오른손은 옆구리의 권총집을 꽉 잡고있었다. 입을 벌리고 마구 삼키듯이 공기를 마시고는 칼갈해진 목구멍으로 격노의 부르짖음을 터뜨렸다.
《이게 어떤 렬차요.
《…》
강부관장은 목에 경련이 이는듯 말 한마디 못하고 눈시울만 실룩거리고있었다. 그것을 보자 남일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모든것이 짐작되였다. 그러죄이는것 같은 아픔에 남일은 껄낏해진 목구멍을 누르며 띠염띠염 물었다.
《언제… 어데로 보냈소?》
《아침에… 신성천으로 보냈습니다.》
《왜?》
《그곳에 있는 위생렬차가 차대가리가 없어 움직이지 못한다고 하시며
《?!…》
둔덕우의 우중충한 수림이 철길로반우에까지 그림자를 드리웠다. 어느덧
남일은 군복옷섶을 쥐여당겼다.
《보위상동지와 함께 렬차안에 계십니다.》
《상동지?… 언제 도착했소?》
《좀전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최용건이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으신
《최용건동무가 왔단말이요?! 그런데 왜 그냥 들어오지 않고!…》
최용건이 거수경례를 올리는 순간
《최용건동무!…》
그러나 다음순간
《이게 웬일이요?… 어쩌다 이렇게 팔을 부상당했습니까?》
차창으로 흘러든 마가을의 설핀 해빛이 부상당한 왼팔을 붕대로 한쪽어깨에 걸메고있는 최용건의 검붉어진 얼굴을 비쳐주고있었다.
《언제 어떻게 되여 이리 됐습니까?》
《서울로 나갈 때 적들의 비행기가 달려드는통에… 좀 상했습니다.》
《그러니 한달전에?!… 그런걸 왜 오늘까지 보고도 하지 않았습니까!》
《뭐 별로 대수롭지 않은 부상이길래…
《…》
이윽고
《참 고생이 많았겠소…》
조용히, 혼자말처럼 뇌이시는 말씀이였다. 그러자 최용건은 살눈섭을 흠칫거렸다. 과묵하고 굳센 그였지만
《최용건동무.》하고
《어디 서울뿐입니까. 그동안 38°선과 남천계선의 방어전투를 지휘하여 얼마나 힘겹게 싸웠습니까. 그렇지만 정세는 여전히 엄중합니다. 최용건동무, 우리의 피어린 투쟁에도 불구하고 지금 수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비할바없이 우세한 적들은 단숨에 공화국북반부 전지역을 강점할 야망밑에 미친듯 공격을 계속하고있습니다.》
《이러한 엄중한 정세하에서 우리는 다시금 결사적인 방어로 반타격의 준비를 위한 귀중한 시간을 쟁취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어느새 최용건은 소리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서있었다. 그의 관자노리에서 피줄들이 살아 꿈틀거렸다. 입은 무겁게 꽉 다물고 턱은 모가 져있었다.
《최용건동무, 곧 황초령으로 떠나야 하겠습니다. 금시 싸움터에서 온 동무인데 다문 얼마간이나마 휴식을 주고싶지만… 정세는 위급합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최용건동무가 또 위험한 모퉁이를 맡아주어야 하겠습니다.》
최용건은 입귀를 실룩거렸다. 더부룩한 검은 눈섭이 흠칫거리고 가늘게 좁혀진 두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최용건은 크나큰 흥분을 멈출수가 없는듯 검붉은 두볼을 후들후들 떨었다.
《그럼 믿겠습니다. 최용건동무!…》
잠시후
그러자
최용건은 몸을 돌려 출입문쪽으로 걸어갔다. 거침없이 힘차게 가고있다. 그러자
《잠간!》
마침내
《최용건동무, 이거라도 가지고 가면서… 요기를 하시오. 오늘 아침 누가 가져다놓은 건빵인데… 변변치 못하지만 이밖엔 더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성의로 알고… 받아주시오.》
최용건은 두눈을 사뭇 슴벅거리고있었다. 이윽고 수척해진 얼굴의 퍼런 빛이 끼였던 눈언저리가 즐벅해졌다.
흐느끼듯 숨을 들이그을 때마다 그의 목에서 피대가 꿈틀거렸다. 그러는 최용건의 팔굽을 잡으며
《자, 갑시다… 내가 바래주겠습니다.》
…
얼마후
이제 남은것은 제2전선이다. 최현이만 돌아오면 그에게 2전선을 맡겨야겠는데… 하지만 그한테선 아직 아무 소식도 없다. 그래도 믿고 기다린다. 이러한 믿음이 없다면 황초령방어에 부상당한 최용건을 즉석에서 떠나보내지 못할것이다.
믿음이란 곧 가장 굳센 사랑이다. 믿음이 크면 클수록 그에 따르는 보답은 헌신적이다.
다음날 자동차행군이 시작되였다. 승용차들, 무선통신차, 화물자동차들로 구성된
한밤중에야 행군을 멈추고 잠시 휴식하기로 했다. 휴식구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운전사들은 조향륜에 머리를 기대고 잠들어버렸다.
그 동기와집으로 강부관장이 가고있었다.
《그 집엔 왜 가오?》
《난 일없소.》
《일없다니까. 뭣때문에 곤히 자는 사람들을 깨우겠소. 우리야 아무렇게든 잠간 쉬고 가면 되겠는데 마을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어서야 되겠소?… 그러지 말고 여기에 불이나 피우기요. 그게 더 좋소!…》
그리하여 잠시후 길가의 밭둔덕아래 작은 화토불이 타올랐다.
《보오, 얼마나 좋소! 고요하고 사색도 할수 있고…》
《남일동무, 산에서 싸울 때 우린 늘 이런 모닥불을 벗하며 살았소. 밤이면 불곁에 빙 둘러앉아 고향과 조국을 그리군 했지…》
감회깊으신 어조였다. 어느덧 손에 든 꼬챙이로 삭정이며 솔가리를 하나하나 덧놓으며 생각에 잠기시였다.
《이제 조국을 해방하면, 이제 고향에 돌아가면… 하고 누가 말을 떼기만 하면 끝없이 이야기꽃을 피우군 했더랬소. 참, 꿈도 많고 노래도 많은 모닥불이였지…》
벌써 화토불은 탁탁 소리내며 타올랐다. 솔가지가 타들 때마다 바글바글 진액이 끓어올랐고 너울거리는 불길속에서 나무잎들이 후둑후둑 타버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황백색의 불길이 확 나가 누우며 짙은 연기를 뿜어대기도 했다.
어데선가 선잠을 깬 강아지가 낑낑거리는 소리가 났다. 바람에 떠는 문풍지소리까지 들려오는듯싶었다. 혹시 둔덕우의 말라빠진 새초숲을 휩쓰는 산바람소리인지도 모른다.
《인젠 좀 눈을 붙이오.》
《일없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다?!… 나 역시 그렇소. 산에서 싸울 때도 불곁에 앉아 밤을 밝히던 일이 얼마나 많았겠소. 새 전투를 구상하느라 그래, 회의준비를 하느라 그래… 그중에서도 소식을 모르는 전사들, 소부대들을 기다리던 밤들이 제일 많았지…》
《…》
남일은 아무말 없이 입을 꾹 다물고있었다. 지금
지금 지난날 공격집단의 중추를 이루던 두개 사단이 뒤에 남았다. 적들은 그 사단들이 포위되여 전멸됐다고 불어대고있다. 그러나 포위가 곧 전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포위되면 항복하던가 전멸되는것이 제2차 세계대전의 전례들이다. 쓰딸린그라드에서 파울류스의 30만 독일군은 빈틈없는 포위환속에서 더는 헤여날 길이 없다는것이 명백해지자 항복하였다. 싱가포르에서 웨벨대장휘하의 영국, 인디아, 오스트랄리아의 련합군도 일본군 야마시다중장의 제25군에 포위되자 투항하였고 맥아더가 어뢰정으로 겨우 탈출한 바탄반도의 미군, 필리핀군 8만장병도 그러한 전례를 따랐다.
항복하지 않을 경우엔 꼬르쑨-쉡첸꼬브의 포위속에 든 10개사단 독일군처럼, 린가엔만, 레이떼 등 수많은 태평양상의 일본군처럼 전멸을 면치 못하였다.
그러나 포위당하면 끝장이라는것이 서방식전쟁론거일수는 있어도 우리 혁명군대의 성격에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지난날 우리의
투실투실한 그의 모습이 떠오르시였다.
그러면 박정덕은 또 어떠한가?… 미남형의 날파람있는 젊은이이다. 조용히 웃었고 침착하게 사색했다. 해방전엔 신의주의 소년배달부였었다. 그러다가
조국이 해방되자 곧 달려나왔다.
《본때나게 누구와 싸운단 말이요?》
《적들과 싸우겠습니다.
그후 박정덕은 제1중앙군관학교를 제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전쟁은 그의 용감성, 그의 지혜, 그의 군사적기량을 두드러지게 드러내보였다. 사단의 1제대로서 그의 련대는 통천에서부터 포항에 이르는 먼 싸움길을 앞장에서 헤쳐나갔다.
그들은 기어이 돌아온다!…
어데선가 차디찬 안개가 흘러오기 시작했다. 검푸른 하늘로 성벽처럼 솟아있는 산봉우리들이 희읍스름해지고있었다.
《아, 벌써 5시가 되였군…》
남일도 시계를 보았다.
《가서 사람들을 깨우겠습니다.》
《그렇게 하오. 마을사람들이 일어나기 전에 떠납시다!》
동기와집 굴뚝쪽에서 닭이 홰를 치며 길게 목청을 뽑았다. 그 장한 웨침소리에 외양간에서 자고있던 송아지가 음메- 하고 울었다.
승용차들이 발동을 걸었다. 최사통신결속소의 처녀병사들이 차에 올랐다. 다들 말없이 조용히 서둘렀다. 아직도 시꺼먼 어둠이 깔려있는 산비탈경사면으로 전조등의 밝은 불빛이 쭉 뻗어나갔다. 아직도 창성까지는 몇시간을 더 달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