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제 1 편
11
어느덧 김천에 있는 전선사령부 근처에까지 포탄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적들은 진주, 합천, 김천 지역으로 미친듯이 공격해오고있었다.
김책은 무릎우에 지도를 펴놓고 거기에 눈길을 박고있었다. 전선서부방어집단 참모장이 합천지역에서 벌어진 전투와 차후 예상되는 적들의 행동성격에 대해 보고하고있었다. 그와 좀 떨어진 탁자끝에서는 전선사령부 군사위원 김일이 무겁게 입을 다물고있었다.
어려운 정황이였다. 전선서부방어집단의 정면에서 미제25보병사단과 영제27려단이 미제2보병사단과 배합하여 포위태세를 취하고있었다. 특히 합천지역에서 적의 공격을 저지시키지 못하면 서부방어집단의 익측이 무너질수 있었다. 이미 적들의 화력권내에 들어가있는 전선사령부도 위험하였다. 서부방어집단 참모장은 전선사령부지휘소를 시급히 옮기지 않으면 안된다는것을 집요하게 반복 강조하고있었다.
그러나 김책은 오직 한가지 생각만 골똘히 하고있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력량상차이에서 오는 일시적위험을 가시고 관하부대들을 신속히 후퇴시키겠는가 하는것이였다. 서울에서 쟁취하고있는 귀중한 시간을 리용하여 전선련합부대들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철수시켜야 했다. 적들은 서울에서 예상외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치자 수원쪽으로 남하시켜 인민군주력부대들을 협공하려 했던 미제7보병사단과 괴뢰군부대들을 서울동남쪽으로 다시 돌려세우지 않을수 없었다.
김책은 머리를 들었다. 그새 전선서부방어집단 참모장은 보고를 끝내였었다.
전선사령관이 어떤 지시를 주겠는가 하여 초조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고있었다. 김일도 무겁게 눈길을 들고있었다. 한초가 새로운 때였다.
《좋소.》 김책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입을 열었다. 《즉시 군집단 작전적예비대로 장악하고있는 모터찌클부대를 기동시켜 대도로를 따라 공격해오는 적의 선두부대를 반격해야겠소. 불의에 맹렬히 타격하여야 하오. 곡사포련대가 화력으로 그들을 지원하게 하고 교도대대와 자동포대대를 진입시켜 익측을 엄호하도록 하오. 그리하여 적의 공격집단이 공황상태에 빠져있을 때 오백룡동무네 련합부대를 반공격에 인입하시오.》
《알았습니다. 전선사령관동지!》
《차후 행동방향은… 동무도 알고있는 그대로요. 적이 퇴각하면 즉시 철수해야 하오. 추격은 필요없소. 그럼… 집행하시오!》
김책은 또 지도우에 머리를 수그렸다. 이번엔 차요방향인 전선동부방어집단의 좌익방향에 주의를 돌렸다. 대구-김천, 대구-군위계선의 방어는 전선주요방향 련합부대들의 익측을 보장하는데서뿐아니라 군집단부대들의 차후행동을 보장하는데서도 큰 의의를 가진다. 그리하여 지난밤 김책은 전선예비대인 류경수의 기계화부대를 투입하여 영천-안동사이의 큰길에서 공격해오는 괴뢰군 수도사단 선두부대에 치명적인 타격을 안겼다.
그러나 이제는 또 방어전선을 축소해야 한다. 한두개 련합부대만 남기고 전선사령부관하 모든 련합부대들을 즉시 기동시켜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는 군사위원 김일이 앉아서 기다리고있다는것을 감감 잊고있었다. 전선동부방어집단에 나가있는 그를 급히 불렀으며 중대한 문제를 의논하고저 했다는것을 잊고있었다.
저녁때가 다 되여오는 지금까지 점심식사도 못하고있다는것도 잊고있었다. 부관은 안타깝게 서성거렸으나 감히 그의 사색을 방해할념은 못했다. 말수더구 적은 김일도 두툼한 입을 꾹 다물고 부처님처럼 단정히 앉아있었다.
(누구를 남길것인가?…) 김책은 생각하고있었다. (군집단 련합부대들의 철수를 보장하며 마지막까지 피어린 싸움을 벌리게 될 이 방어계선에 누구를 남길것인가?… 이제 그들은 정해진 날까지 비할바없이 우세한 적을 견제하여 싸워야 한다. 포위될수도 있고 전멸의 위기에 처할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악조건에 처한다 해도 그들은 그 누구의 도움이나 지원도 기대할수 없다.
그는 머리를 들었다. 이 문제로 군사위원 김일과 의논하자고 했었다. 김일의 생각을 묻고 결심하려 했던것이다. …
《군사위원동무.》
김책은 무릎우에 놓고있던 지도를 들었다. 탁자가운데로 옮겨앉으며 자기가 생각하고있는 문제를 꺼내였다. 지도는 접어놓았다. 지도에는 누가 용감하고 더 완강하고 헌신적이며 더 믿음직한가 하는것이 적혀있지 않다.
김일은 생각에 잠겼다. 그 생각이 오래 계속될수도 있다. 김책은 독촉하지 않았다. 단지 자기의 생각과 일치되기만을 바랐다.
저쪽 반토굴에서는 무선수, 전화수들이 땀을 들쓰며 일하고있었다.
별안간 김일이 두툼한 입술을 실룩거리며 미소를 그렸다.
《전선사령관동진 벌써 결심하고있겠지만… 굳이 제 생각을 묻기에 하는 말인데… 솔직한 말로 이런 일에야 최현동무이상 있습니까. 끝까지 버텨낼겝니다.》
김책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한사람 더 골라보시오.》
그는 련합부대가 아니라 그 지휘관을 가리켜 말하고있었다. 왜냐하면 사단장이란 곧 련합부대의 전투력과 견인성, 정신과 의지를 통털어 의미하기때문이였다.
《그런데.》하고 김책이 계속했다. 《우린 여기서 마지막까지 견지하며 싸우다 죽을 사람이 아니라 명령받은 시간까지 한사코 적을 견제할뿐아니라 기어이 살아서 돌아올 그런 련합부대장을 골라야 하오. 다시말하면 그걸 믿어야 하오. 누가 좋겠소.》
《전선사령관동지! 결심한바가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박정덕동무를 생각하고있소. 군사위원동무 생각은 어떻소?》
《?…》
김일은 침묵했다. 눈동자마저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그는 생각하고있었다. 박정덕은 사단장으로 임명되자 자기자신이 공격전면에 대한 정찰을 면밀히 진행하였다. 당시 사단은 령산에서 덕암산의 적방어진을 돌파하지 못해 한주일나마 못박혀있었다. 특히 해발 545m의 덕암산기슭에는 옛 성벽이 길게 뻗어있었는데 적들은 여기에 수십대의 땅크와 각종 포들을 집중배치하고 련합부대의 공격을 막고있었다.
박정덕은 매 중대에서 키가 크고 날렵한 대원들 200명을 선발하여 수류탄투척훈련을 시키는 한편 련3일간 밤낮 끊임없는 허위공격으로 적들을 피로케 한후 갑자기 공격을 중지했다. 그때 200명 기습조는 성벽밑에 붙어있었다. 그들에게는 기습조의 지휘관이 가지고있는 권총을 내놓고 보총한자루 가진것이 없었다. 등에 진 배낭뿐이였다. 그 배낭속에 지고갈만큼의 수류탄이 들어있었다.
이 모험적인 습격을 반대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박정덕은 한사코 고집했다. 그때 련합부대에 나가있던 군사위원 김일이 그를 지지해주었다. 그가 지지한것은 련합부대 지휘관인 박정덕이 추호도 동요하지 않고 승리를 확고히 믿고있는 그때문이였다.
약속한 시간이 되였다. 새벽3시, 신호탄이 날아올랐다. 200명 기습조는 서로서로 목마를 타고 성벽을 뛰여넘으며 일제히 수류탄을 뿌리기 시작했다. 돌격의 함성도 없었다. 별안간 달려들어 유령같이 돌아가며 적들의 땅크, 곡사포, 박격포, 기관총좌지들에 수백수천개의 수류탄벼락을 들씌웠다. 30분후에 련합부대는 덕암산기슭의 적방어선을 돌파하고 공격성과를 확대할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공격전투이다. 공격전투에서 솜씨를 보이던 지휘관도 방어전투에서 무력해지는 경우가 없지 않다. 더우기 박정덕은 너무나 젊다. 하지만 젊다는것이야 무슨 불만의 리유로 되겠는가!…
그때 일을 회상하며 김일은 미소를 그리였다. 내가 이게 무슨 로파심인가!… 그는 김책을 향하여 말하였다.
《박정덕동무야 훌륭한 지휘관이지요. 용감하고 침착하고…싸움군이지요.…그런데
김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군사위원동문 매번 내 생각과 같아서 좋소.》
김일도 서둘지 않고 일어섰다. 김책이 또 말했다.
《이제부터 군사위원동문 전선동부방어집단의 철수를 도와주시오. 그럼 시간을 맞춥시다. 내 시계는 지금…》
별안간 시계를 들여다보던 김책의 눈길이 굳어졌다.
《가만, 오늘이… 22일 아니요?》
김책이 속삭이듯 묻는 말에 김일은 흔연히 대꾸했다.
《예, 22일입니다.》
《9월 22일! 오늘이로구만…》
김책의 짧고 검은 눈섭이 미간으로 잔뜩 쪼프려졌다. 그의 두눈엔 형언할길 없는 고통의 빛이 뿌옇게 서리였다. 번듯한 이마언저리에까지 아픔의 그림자가 비껴갔다. 그는 칼칼해진 음성으로 낮게 부르짖었다.
《오늘이 바로…그날이요.
그는 목구멍에 무엇이 걸린듯 괴롭게 기침을 했다. 볕에 타서 거무스레해진 얼굴이 경련을 일으킨듯 했다.
《지금 평양에선 어떻게들 하고있는지…생각해보오. 김일동무, 지금
《…》
김일의 숱진 눈섭이 푸들푸들 떨렸다. 어떤 경우에도 겉에 드러내지 않던 마음속 격정이 그의 얼굴에 잔무늬를 그리며 줄달음쳤다. 김일은 슬며시 고개를 돌리고말았다.
김책은 부관을 손짓해 불렀다.
《이제 곧 최사통신결속소와 련계를 짓소!》
《알았습니다. 전선사령관동지!》
김책은 또 한번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벌써 밤이 오고있었다.
밤과 더불어 마지막 방어전의 시각도 다가오고있었다.…
밤이 깊었다.
지난 19일부터 적들은 서울 서북쪽에 주타격을 지향시키는 한편 영등포와 동남쪽에서 맹렬한 공격을 배합하여 서울시를 포위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사전에 준비된 서울시 원형방어에 부딪쳐 뜻을 이루지 못하고있었다.
《남일동무요?》
계속하여
9월 22일!… 탁상일력의 무심한 수자들이 눈에 띄시였다. 그러자 다시금 날카로운 아픔이 가슴을 어이듯 스쳐가는것을 느끼시였다.
오늘 하루 벌써 수십번도 더 느껴보시는 감정이였다. 탁상일력의 이날 페지엔 아직 글 한자 씌여있지 않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여러 지명, 이름, 시간을 적어놓군 하시였으나 오늘은 매번 연필을 들었다가는 곧 놓으시군 하였었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창가로 가시였다. 밤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널려있었다. 정원의 나무가지에는 실날같은 달이 걸려있었다. 창백한 달빛이 꺼멓게 보이는 유리창으로 흘러들었다.
한 중대장은 신관을 장치한 지뢰를 안고 적땅크에 육박하였다. 바로 서울 서북쪽교외에서 있은 일이다. 그때부터 반땅크수류탄대신 지뢰를 가지고 적땅크와 싸우기 시작하였다. 이동차단물대를 지휘한 그 중대장의 이름은 박경식이라고 한다. 서해안방어사령부에서는 공화국영웅칭호를 내신하는 문건을 써보냈다. 그런데 락동강전선의 다른 한 중대장은 총살될번 하였다. 류현수라는 보위성직속 도하대대의 중대장이다. 류현수…
라지오에서는 흐느끼듯 떨리는 바이올린음악이 계속되고있었다. 그것은 애절하고 비통한 흐느낌이 아니라 희망과 동경의 부르짖음이였다. 아니 그저 애끓는 추억의 음악인지도 모른다. 고향에 대한 추억의 음악, 거기에는 세찬 숨결이 있었고 열렬한 속삭임이 있었다. 내 나라, 내 고향에 대한 벅찬 사랑이 흐르고있었다. 푸른 하늘, 푸른 들, 시내물, 나리꽃… 지금 전선의 인민군전사들은 사랑하는 자기의 고향과 부모처자들을 지켜 피흘리며 싸우고있다. 온 나라 인민이 원쑤치는 싸움에 떨쳐나서고있다. 해방된 남녘인민들도 그러하다. 오늘 서울에서는 적들의 포격과 폭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수천수만의 녀성들이 멸적의 기세를 시위하는 일대 군중시위를 단행하였다. 밤하늘에 매달린 무수한 조명탄아래 거리에 떨쳐나 서울방위를 결의해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들은 서울을 공략한듯이 떠들고있다. 방송과 출판물, 삐라까지 총동원하여 우리 인민군대가 두개 전선에서 전멸되고 공화국이 다 망한것처럼 요란히 선전하고있다. 이에 질겁하여 의기를 잃은 사람들도 나타나고있다.…
비로소
《?…》
강부관장이 더 설명하기도 전에 벌써 홍명희는 집무실에 들어서고있었다.
《아! 그렇습니까!》
《오늘까지
《예-》
홍명희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
《우린 그런것도 모르고… 김책동무가 전화로 물어와서야 그만…》
《김책동무가?!…》
《어려운 때에 그런 생각을 다해주니… 다들 고맙습니다.》
《새날이 또 시작됩니다. 오늘도 여전히 전선에서는 전쟁의 운명을 판가름하는 치렬한 싸움이 계속될것입니다. 그만큼 희생자들도 늘고 아픔과 고통도 커갈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민은 그 모든 슬픔과 아픔을 이겨내며 전쟁의 승리를 위해 한사람같이 떨쳐나서고있습니다. 이 인민의 모습에서 나는 무한한 힘과 용기를 얻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