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 회)
제 2 편
제 1 장
3
한유준이 입원치료를 마치고 퇴원하자 공장에서는 그를 다시 한달 정양소로 보냈다. 식량이 보장되지 않아 운영이 중지됐던 그곳에서는 단 한사람 한유준을 위해 7명 정원이 출근을 하고 하루 삼시 삭정이를 주어다가 쟁개비밥을 지었다. 정양 나흘째 되던 날 한유준이 밤이 깊어 하던 일(그는 직선안내베아링을 국산화하기 위한 연구사업을 계속하고있었다.)을 접어놓고 잠자리에 들가말가하는데 누군가 기척도 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누구요?》
그러자 발끝걸음으로 다가오던 사람이 그 자리에 멈춰섰다.
《자지 않고있었구려. 허허!》
《혹시… 1부부장동지가 아니십니까?》
그의 직감은 들어맞았다.
《예, 박송봉이올시다.》 하며 박송봉이 라이터불을 절컥 켰다.
초불이 켜졌다. 한유준이 덮고있던 이불을 들추며 자리를 내주었지만 박송봉은 비여있던 맞은켠 침대우에 걸터앉았다.
《다 들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도 미처 못 올리고…》
《인사야 내가 아니라 여기 안흥사람들한테 해야지요.》
박송봉은 한유준이 하려던 말을 밀막았다.
《예, 그것도 제가 다…》
《그래서 북천기계에 내려왔던 길에 우야 들렸습니다. 선생의 건강상태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자구요.》
《예, 그것 마침입니다.》 하고 한유준이 엉치걸음으로 나앉으며 우는소리를 늘어놓았다. 《보시다싶이 전 이렇게 건강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아직까지도 나를 무슨 영예군인취급하듯 하지요. 제발 이젠 저를 좀 해방시켜주십시오.》
《음…》
박송봉은 눈을 밝혀가며 한유준을 이리보고 저리보고 하였다. 혈색이 불깃불깃한것이 건강이 퍽 좋아졌다는것이 알렸다. 그래도 뭐가 안심치 않은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조용히 건의했다.
《실례지만 선생, 그 덧옷을 좀 벗지 않겠소?》
《옷을요?!》 갑자기 늙은것이 옷을 벗어보이라니 아무리 조용한 밤이라 해도 놀랍고 쑥스러운 모양이였다.
《정 그러면 불을 끕시다.》
미처 말릴 사이도 없이 박송봉이 원탁우에 놓여있던 초불을 후 불어 꺼버렸다. 주위가 갑자기 새까매지자 한유준은 누군가의 손이 두눈을 꽉 쥐였다놓는듯 한 압통을 느끼였다.
《아니, 왜 이러십니까? 어서 불을 켜십시오.》
《나이든 선생이 부끄럼을 타는것 같아 그럽니다.》
《부끄럼이요?! 내가 부끄럼을 탄다구요?》 하고 한유준이 도리머리를 했다. 《1부부장동지, 이 한유준이도 어미품에서 알몸으로 태여난 사람입니다. 한데도 내가 부끄럼을 탄다면 그건 당을 배다른 엄마처럼 여긴다는 소릴겝니다. 일없습니다. 불을 켜십시오.》
박송봉은 눈굽이 쿡 해왔다.
반팔내의만 입은 한유준은 아예 침대에서 내려 맨발바람에 활개를 치며 돌아갔다. 발을 탕탕 구르고 팔을 내뻗치기도 하였다.
《자, 보십시오. 날 보십시오. 한팔로 베트를 굴려낼것 같지 않습니까? 춤이라도 한판 추리까? 씨름도 일없지요. 자! 자!》
《아니 선생, 그러다가 여기 사람들이 다 깨여나겠소. 누가 보면 저 늙은것들이 정신이 나갔는가 하지 않겠소?》
아닌게아니라 맨살을 드러내놓고 활개짓을 하며 돌아가는 모양이 해괴하기 그지없었다. 그제서야 한유준도 얼굴을 벌겋게 구우며 박송봉이 거들어주는 옷에 팔을 찔러넣었다.
《씨름까지는 몰라도…》 박송봉이 이불을 들추어 침대자리를 넓히며 말했다. 《나와 팔씨름을 한판 겨루어봅시다. 둘 다 사무원부류니까 의견을 가질것도 없겠다.》
《한데 그냥이야 맨숭맨숭해서… 만약 내가 이기면 건강이 완전히 회복된것으로 보고 나를 여기서 내보내주어야 합니다.》
《그럽시다.》
두사람의 손이 마주붙었다. 생각외로 박송봉의 손은 아주 두텁고 딴딴했다. 기술자이지만 늘 생산현장에 붙어살아서 어지간한 사무원쯤은 쉽게 눕혀놓을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한유준이 도리여 땀을 뽑았다. 끝내는 박송봉에게 왼손, 오른손 다 지고말았다.
늙마에 변변치 않은 힘들을 한껏 뽑고나서 그들은 젊음이 되살아난듯 고개를 젖히고 웃었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옆방에서 쉬고있던 정양소소장이 무슨 란장판인가 해서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는 죽마고우를 만난것처럼 붙잡고 돌아가는 두사람을 보자 헤벌쭉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늘 하던 그 소리,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한다, 마시기 싫어도 마셔야 한다, 마렵지 않아도 변을 봐야 한다, 자기 싫어도 자야 한다는 소리를 늘어놓고는 돌아갔다.
박송봉이 소매를 내리우며 말했다.
《내가 선생을 만나러 온것은 사실
한유준은 눈물이 그렁해서 고개만 끄덕였다.
《이번에
《권지배인이 대학엘요?!》
《예,
《알다뿐이겠습니까. 기저귀때부터 크는걸 보아왔지요. 똑똑하고 목적지향이 뚜렷한 청년입니다. 고향을 무척 사랑하지요.》
《그 고향을 등지려고 했댔지요.》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련하기계에 가려고 했습니다. 아버지를 피해서 말입니다. 그런걸
박송봉이 한유준의 건강상태와 권하세지배인에 대한 문제를 보고드렸을 때
《알겠습니다.》
박송봉은 그만 돌아가려고 일어섰다. 밤중으로 평양에 올라가 보고드릴 문제들이 많았다. 그는 정양소마당까지 따라나온 한유준에게 마음을 편안히 가지고 치료에 전심할것을 당부하였다.
일단 차에 올라 자기 세계에 빠져들자 피로가 아니라 긴장감이 엄습해왔다.
계획은 그저 수자가 아니다. 그것은 비유해 말한다면 나라의 경제적 운동량이나 같다. 원료, 연료, 동력과 기술, 전략 등 경제활동에 필요한 모든 요소들이 맞물려돌아가야 한다. 지금은 이 뉴대가 끊어졌다고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러니 무엇부터, 무엇으로 살릴것인가. 답은 없었다. 자기가
평양에 도착한것은 자정이 지나서였다.
《저녁식사는 했소?》
《북천기계공장 합숙에서 먹었습니다.》
《합숙에서?》
《국수로 식사를 보장하고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한유준설계가도 만나보았는데 건강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대책은 벌써 한가지 취하고 온셈이요.》
《예?!》
《기술자들을 살리지 않았소. 방금 연형묵동무한테서도 보고가 올라왔는데… 저기 저 자료들이요. 희천려관동무들이 정말 용소. 대학에 온 권하세동무는 어떻게 생활하는지 걱정되누만. 공장을 떠나올 때 그가 생각이 많았을거요. 한때는 소리를 치며 얼마나 일을 잘하던 사람이요.》
《권하세동무의 문제는 제가 알아보고 대책하겠습니다.》
《이게 뭔지 아오? 돈이요. 사연깊은 돈이지.
박송봉은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받아들었다.
《난 지금이 바로 그런 때가 아닌가 하고 생각되오.》
박송봉은 덮을듯 손을 펼쳐들고 어쩔바를 몰라했다.
《뭘 말하려는지 아오. 그걸 천만금에 비기겠소. 그러니 동무가 내 경우라면 어떻게 하겠소? 국고는 비다싶이 하고 탄광과 광산, 공장들, 발전소들, 학교, 상점, 아이들… 모두 나를 바라보고있소.》
애타는 심중이 그대로 어린 말씀이시였다.
박송봉은 생각했다. 나도 그렇고 인민들도 그렇다.
그런데
《오늘은 돌아가서 푹 쉬시오.》
박송봉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