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 회)

제 1 편

제 5 장

3


밤 11시였다.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찾아가보라고 자식들이 꾸려주었던 면회품을 그냥 싣고 돌아오는 밤 11시였다.

도로에는 뒤따르는 차도, 마주오는 차도 없었다.

별마저 성근 밤이였다. 수백리길을 달려가서 설비들을 해체하고 다시 싣고 운반해서 련하기계공장에 가져다놓은것이 한시간전이였다. 그때야 박송봉은 허리가 쑤시고 입술이 말라드는것을 느꼈다. 공장에서는 잠간만이라도 쉬고가라고 붙잡았으나 귀가에 들려오는것은 밤이 열둘이라도… 하시던 그이의 음성뿐이였다.

얼마나 달렸는지… 운전사가 갑자기 속도를 죽였다.

《왜 그러오?》

《저앞에서 웬 승용차가 불빛신호를 보내고있습니다.》

과연 멀리서 전조등이 껌벅거렸다.

벌써 거리가 상당히 가까와졌다. 근거리등으로도 희뜩희뜩 앞에 서있는 군용승용차의 형체가 비쳐졌다. 불시에 박송봉이 웨쳤다.

《그이이시오!》

박송봉은 모자를 벗어 막 휘두르면서 달려갔다. 차에서 열댓보쯤 떨어져계시던 김정일동지께서 그를 알아보고 마주 오시였다.

《혹시나 했더니 옳구만, 송봉동무가 옳아!》

청이 시원한 웃음소리가 가까이 다가왔다.

《장군님, 이밤중에 무슨 일로 여기까지…》

《그야 동무를 마중나왔지. 좀더 달릴가 하다가 자칫하면 서로 못 보고 지나칠것 같아서 여기에 눌러앉고말았소.》

그이께서는 뒤따라 차에서 내리며 인사를 드리는 박송봉의 운전사에게도 다정히 손을 흔들어보이시였다.

《동무 〈아바이〉는 내가 모시고 갈테니 돌아가 쉬시오.》

몇걸음 달려오고있던 운전사는 그이의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한듯 엉거주춤 그 자리에 멈춰섰다.

《왜 그러고있소? 돌아가라는데.》

그래도 운전사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우리가 먼저 가야 할것 같구만. 타오.》

그이께서 손수 뒤문을 열어주시며 박송봉을 재촉하시였다.

방향을 돌려세운 승용차는 그때까지도 길가에서 서성거리고있는 박송봉의 운전사를 뒤에 남기고 빠른 속도로 질주해갔다.

김정일동지께서 먼저 침묵을 깨치시였다.

《내 방금 병원에 들렸다가 오는 길이요.》

박송봉은 무슨 말씀이신지 잘 리해하지 못했다.

《동무 집사람이 입원해있는 병원 말이요. 의사들의 말이 인차 퇴원할것 같다오. 동무도 가끔 심장병이 도지는데 주의하오.》

《장군님, 고맙습니다.》

그이께서는 박송봉의 손을 잡아 무릎우에 올려놓으시였다.

《아까는 내가 너무했지?》

《아닙니다, 장군님!》 하고 박송봉은 머리를 저었다. 《제가… 머리가 크다매가지고 안목이 어둡다나니 그런 망탕짓을 했습니다.》

그이의 손에 지그시 힘이 가해지는것을 박송봉은 느꼈다.

억세고도 따뜻한 힘이였다.

《내가 련하를 왜 그처럼 아끼는가? 련하는 새 세기를 위해 묻어놓은 씨앗이요. 혁명을 한다는 우리가 배가 좀 고프다고 종자까지 파먹어서야 되겠소? 오늘 정치국회의에서도 말하였지만 수령님을 영원히 높이 모신다는것이 뭐겠소? 그것은 바로 수령님의 념원을 잊지 않고 현실로 꽃피우는것이요. 그래서 나는 올해 농업생산계획도 다시 세울것없이 수령님께서 비준해주시였던 1994년계획을 그대로 다시 집행하라고 했소.》

수도의 거리에서는 일찍 가로등이 꺼졌다.

《밖이 어둡구만. 정말이지 어려운 때요. 제국주의자들의 고립압살책동은 날로 더 우심해지고있지, 게다가 당의 새로운 혁명적경제전략이 발표되자 대오안에서까지 박약자들이 생겨나고있소. 그들은 당이 제시한 새로운 경제전략을 휴식구령처럼 생각하면서 동면을 하고있소. 이런 때 민족의 대국상까지 당하고보니 솔직히 앞이 보이지 않았소. 아마도 물러가는 천년대는 나의 의지를 시험해보려는것 같소. 그렇지만 송봉동무랑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이 곁에 있기에 나는 두렵지 않소. 내 이 마음을 리해해주오.》

《장군님!…》

조금 더 가면 박송봉이 사는 주택지구였다.

《지금이 몇시요?》 하고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장군님, 밤 12시가 지났습니다.》

《이제 집으로 가겠소?》

《예.》

《그럼 며느리손에서 밥을 얻어먹어야겠구만?》

《자랑은 아니지만 우리 며느리가 정말 괜찮습니다.》

《에, 그래두 친구집에서 한술 나눠먹는게 낫겠지. 밤중에 궁색스럽게 젊은 부부를 깨울것 없이 나랑 같이 우리 집에 가기요.》

박송봉은 하루껏 쌓였던 긴장이 삽시에 풀리는듯 너무 좋아 어쩔줄 몰라했다. 숫배기소년처럼 자기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내놓는 박송봉의 성미에 더 정이 끌리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저택뜨락에 못미쳐서 차를 멈추시였다.

버팀목을 떼지 않은 어린 나무 몇그루가 달빛아래 보였다.

회물을 바른 동글동글한 자갈로 그루둘레를 장식하고 물이 빠져나가지 않게 도드락하니 흙턱까지 지어준 나무들에서는 분명 알뜰하고 다심한 주인의 손길이 엿보였다. 뒤따라선 박송봉이 나무모양을 살피다가 이게 대추나무가 아닌가고 말씀올렸다.

《그렇소. 간봄에 심은 나무요.》

그이께서는 나무주위를 꾹꾹 밟아주시였다.

《내가 며칠 집을 나가있는 사이에 우리 집사람이 가족식수를 했더구만. 구뎅이도 직접 파고 물도 제 손으로 길어다주게 했다오. 이제는 뿌리가 자리를 잡았나보오.》

이제 겨우 새끼손가락처럼 가늣한 가지들을 펼치기 시작한 애목에서 대지가 베풀어주는 젖냄새를 맡으시려는듯 아니면 무슨 이야기를 나누시려는듯그이께서는 허리를 굽히시였다.

《내가 지금까지 나무를 몇그루나 심었을가?》

그이의 음성은 애틋한 추억에 젖어들었다.

《나무야 남산학교시절에 많이 심었지. 그때 우리 학교앞에는 전쟁을 이겨낸 큰 아카시아나무가 두그루 서있었는데 그게 얼마나 장하고 대견해보이던지. 우린 그때 나무를 모란봉에도 심고 학교울타리주변에도 심고 대동강가에도 심었소. 그런데 졸업식보고서를 쓸 때 우리 학급 친구들이 무엇이 성과였다, 무엇을 잘했다고 다 박아쓰면서도 나무를 심었다는 말은 한마디도 써넣지 않았길래 내가 보고서를 다시 쓰자고 했댔지.》

그이께서는 나무주위를 돌아가며 말씀하시였다.

《지금은 우리가 〈CNC〉라는 나무모를 심은셈이요. 이제 그 잎이 무성해지고 열매를 따게 될 날은 언제일가고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이군 하오. 련하는 나의 희망이요. 송봉동무, 련하가 억세게 자라서 거목이 될 때까지 우리가 조림공이 되여줍시다.》

《예, 장군님!》

김정일동지께서는 박송봉의 등을 떠미시며 오늘 밤은 같이 새우면서 긴히 토론할 문제가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토론하실 문제란 국가과학원과 봉화기계공장에 대한 현지지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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