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회)
제 1 편
제 4 장
5
방금 내려놓으신 송수화기는 천만근으로 무거웠다.
연형묵은 전화로 도내 경제실태와 인민생활형편을 말씀드리면서 무슨 낯으로
《용기를 잃지 마시오. 그래도 자강도에는 연형묵이 있다 하는 생각으로 나도 힘을 얻고있소. 흔들리지 말아야 하오. 자강도인민들이 동무의 얼굴을 바라본다는것을 잊지 마시오.》
출장지에서 볼이 푹 꺼져서 돌아왔던 박송봉의 모습도 그려지시였다. 박송봉은 자기가 군당위원회와 토의하고 어느 한 일군에게 직무정지처벌을 준데 대하여 보고드리면서 그가 정신을 차리면 다시 본직무에서 사업하도록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가 정신을 차리면…)
(어쩌면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흔들릴수도 있다. 난관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니까. 가만, 지금이 몇시인가?)
벽시계의 바늘이 오전 10시를 가까이 하고있었다.
그러니 아직은 10분쯤 시간이 남아있었다.
제국주의자들의 끈질긴 봉쇄와 제재책동, 무모한 핵전쟁소동은 인민들로 하여금 허리띠를 더욱 조여매게 하고있다. 이런 속에서 우리는 참으로 힘겹게 단행해온 제3차 7개년계획을 결속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그 보고서가
거기에는 다음의 내용들이 반영되여있다.
…계획수행기간 전력생산은 1986년에 비해 1.3배로 장성하였으며 (태천발전소, 위원발전소, 순천화력발전소, 동평양화력발전소, 남강발전소 등 수많은 대규모 및 중소규모발전소들이 건설되였다.) 석탄생산은 1.4배, 강철생산은 1.3배로 늘어났다.
수백억원의 기본건설투자로 공업부문에서만도 1만 1 000여개의 대상이 새로 건설되였고 개건 또는 능력확장되였다. 여기에는 김책제철련합기업소 2단계능력확장공사와 무산광산련합기업소의 능력확장공사, 흥남비료련합기업소 설비의 대형화, 현대화공사, 서해갑문건설과 상원세멘트련합기업소 건설도 포함된다. 1987-1993년사이에 공업생산은 1.5배로 늘어났으며 1만 2000여건의 발명과 수십만건의 창의고안, 합리화안이 현실에 도입되였다.
(그러나…)
책임서기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선전선동부와 출판보도부문의 일군들이 도착했습니다.》
《만나봅시다.》
우리는 결코 자기의 허물을 보자기로 감싸지 않는다.
인민앞에서 무한히 솔직한것이 우리의 사상사업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것을 터놓기로 결심하였다.
네명, 다섯명… 이제는 모두 들어온것 같다.
《여기 가까이들 와앉으시오.》
자리가 정돈되자
《력사적인 우리 당 제6차대회가 내놓은 사회주의경제건설의 웅대한 강령을 실현하기 위한 제3차 7개년계획을 시작한 때로부터 일곱해가 지나갔다. 이 7개년계획기간은…》
보도문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잠간!》
《그 대목을 다시 들어봅시다.》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였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련이어 일어난 국제적사변들과 복잡한 사태들은 우리 혁명과 건설에 큰 영향을 미치였으며 우리 나라 사회주의경제건설에 커다란 장애와 난관을 조성하였다. 여러 사회주의나라들과 세계사회주의시장의 붕괴로 이 나라들과 맺었던 장기 또는 단기 무역협정들이 헝클어지고 그 리행이 거의 중단되게 되였으며 우리 나라와 이 나라들사이에 전통적으로 진행되여온 경제협조와 무역거래들이 부진되게 되였다. 이것은 우리의 경제건설에 큰 피해를 주었을뿐아니라 전반적경제발전의 속도와 균형을 조절하지 않을수 없게 하였으며 제3차 7개년계획을 원래 예견한대로 수행할수 없게 하였다. 한편 제3차 7개년계획기간에 우리 공화국에 대한 원쑤들의 격화되는 침략책동과 발악적공세로 하여…》
《그만, 됐습니다.》
후 하는 숨소리들이 울려나왔다.
《우리는 무슨 일에서나 자화자찬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이 당장 될것처럼 떠들어대고는 은을 내지 못하는것이 지금 우리 일군들의 사업에서 나타나고있는 큰 결함입니다. 일부 일군들이 그렇게 무책임하게 일했기때문에 인민들이 그들의 말을 믿기 힘들어하고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당과 대중을 리탈시키는 해독행위를 한것이나 같습니다. 솔직합시다, 인민앞에서.》
선전사업에서 진실성, 과학성, 친절성을 보장하는것은
《국제적사변들과 우리 나라에 조성된 첨예한 정세로 인하여 제3차 7개년계획에 예견하였던 공업생산의 총규모와 전력, 강철, 화학섬유를 비롯한 일부 중요지표들의 계획을 미달하였으나…》
계획을 미달하였으나…
그 대목을 들으실 때
《보도문초안은 이상 미완성으로 되여있습니다.
《동무들도 듣다싶이 보도문은…》
《지난 시기와 다른 체계로 서술되여있습니다. 성과가 없어서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기간에 공업생산의 년평균증가속도는 5.6프로에 달했습니다. 특히 제국주의자들의 악랄한 반공화국제재책동을 짓부시고 사회주의를 고수하였을뿐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자체로 살아나갈수 있는 자립적민족경제의 토대를 튼튼히 다져놓았습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때문에 당보에서는…》
로동신문사 책임주필이 안경을 추스르며 일어섰다.
《앞으로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21차전원회의가 끝나는것과 동시에 완성된 보도문을 잘 편집하여 내보내야 하겠습니다. 선전선동부에서는 지금부터 작전을 면밀히 해두었다가 전원회의가 끝나는 차례로 평양시와 각 도군중대회를 열고 전체 인민들을 당의 새로운 혁명적경제전략관철에로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그러나 담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인민대학습당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밤 10시를 알릴 때
고요한 밤이였다. 몇 안되는 손님들을 태운 무궤도전차가 밤거리의 주인이 된듯 경적소리를 울리며 달리고있었다. 제법 선기가 나는 밤바람이 온 여름내 달아올랐던 도시의 집들과 도로를 식히며 반쯤 열어놓은 차창안으로 흘러들었다.
한편 전화련락을 받으신
마침내 뾰족지붕을 얹은 새집이 우듬지에 걸려있는 갈매나무아래서 두분께서는 만나시였다.
《이른 락엽이 졌나본데 밟아보지 않겠소?》
밟아볼만큼 쌓인 락엽이 아니였으나
《3차 7개년계획 총화보고서를 읽어보았소.》
《솔직한 말로 나도 이 며칠째 잠을 제대로 잘수 없었소. 총화도 총화거니와 이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많았소.》
두분께서는 끝내 걸음을 멈추시였다. 괴로운 마음을 애써 감추시며
《앞으로 한 3년간 중공업에 대한 투자를 줄이더라도 농업과 경공업에 힘을 넣어 인민생활문제부터 풀었으면 합니다.》
그 침묵이
한평생 손에서 중공업을 놓지 않으신
《정말 그렇게 결심했소?》
무진한 힘이, 거세찬 그 무엇이 느껴지시였다.
《고맙소. 물론 우리 인민은 배를 좀 곯고 좋은 옷을 입지 못하더라도 사회주의를 지키자고 떨쳐나설거요. 그러나 당이 인민을 외면하고 세우는 로선으로는 사회주의를 지켜낼수 없소. 앞으로 한 3년동안을 완충기로 정하고 농업과 경공업, 무역에 힘을 넣기요.》
《알겠습니다,
하많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밤이였다.
언제인가 지금처럼 밤이 깊어서 기계공업의 현대화를 위한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준비를 토의하시던 일이 떠오르시였다.
《섭섭하다고? 그야 나보다 동무가 더할테지. 우리 기계공업을 일신하자고 얼마나 아글타글 애써왔소. 련하기계가 태여나고 새 공작기계도 만들어내고… 좋은 일이 많았지.》
《련하가 잘 나가는데 비해 안흥이 시원치 않습니다.》
《수자조종공작기계분공장 말이요? 거기 지배인이 누구던가?》
《권하세라고 손탁이 센 일군인데…》
《열성만으로야 일하기가 힘들지.》
《나도 한편으로 걱정되는바가 없지 않소. 우리가 사회주의경제건설의 웅대한 목표를 제시한이래 처음으로 7개년계획을 미달했지, 국제국내정세도 각박한데다 당은 새로운 경제건설로선을 제시해. 그러니 은근히 손맥을 놓는 사람들이 나타날수 있소.》
《인민생활과 직접 련결된 세 전선에 힘을 집중한다는것은 사실상 강력한 중공업의 뒤받침을 토대로 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완충기라고 하여 기계공업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전후 3개년계획을 총화하던 때가 생각나누만.
그때 종파쟁이들은 이제 쏘련에서 몇억루불의 원조가 들어오면 북반부사람들은 모두 금깔창을 댄 신발을 신고다니게 될거라고 선전했소. 그렇지만 난 그 돈으로 당장 먹을것, 입을것이 아니라 기계를 사왔지. 그러자 백성이 굶고있는데 기계에서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잡소리가 울려나오기 시작했소. 아마 그자들은 우리 인민이 배만 불려주면 만세를 불러줄줄 알았던 모양이요. 난 지금도 그때 중공업을 추켜든 내가
《동유럽의 기발들이 다 내리워졌지. 그러나 우리는 2년을 더 지켜냈소. 앞으로도 2천년, 2만년을 날려가야 할 기발이요.》
《고맙소. 그럼 나는 앞으로의 국가사업을 당중앙위원회와 토의한것으로 생각하고 1994년 신년사도 그렇게 준비하겠소.》
헤여지기에 앞서
가벼운 발동소리를 남기고 차는 떠나갔다.
그러나
(어허, 새해가 밝는구나! 새해가… 얼마나 간고하고도 머나먼 혁명의 길이 저앞에 다가오고있는것인가. 새 세기의 령마루를 넘어 밝아올 아침이 보이는구나. 나는 믿는다,
그 시각
송수화기를 들어
군인다운 씩씩하고 절도있는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예, 방금전에 불이 꺼졌습니다.》
《알겠소.》
잘못 내려놓은 송수화기에서 전류흐르는 소리가 울려왔다.
손더듬으로 그것을 바로잡아놓으며
(불이 꺼졌다, 그러니 주무신다. 얼마나 단순하고 명료한 사고인가? 그러나
《따르릉-》
교환과 련결된 전화기에서 신호가 짧게 한번 울리였다.
아침 새소리처럼 맑고 명랑한 교환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직일관 박광룡 보고드립니다. 저…
《알겠소.》
송수화기를 내려놓으신
알았다고?! 무엇을 알았다는것인가?… 여느때같으면 그에게 어떻게 대답올렸는가고 물으셨을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빨리 불을 끄자.)
집무실은 곧 어둠에 잠기였다.
그들중 또 누군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