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회)

제 1 편

제 4 장

1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께서 조선지식인대회 주석단에 나오시자 만세의 환호성이 터져올랐다. 회의장을 가득 채운 지식인대표들은 160만의 목소리로 뜨거운 환호를 올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 나라 지식인의 일원이 된 심정으로 수령님을 우러르시였다.

김일성동지! 일제를 쳐부시고 민족의 영웅으로 개선하시여 생가의 초가이영도 벗기기 전에 크나큰 터를 잡아 인민이 공부하는 대학부터 세워주신분, 어느 갈피에 운명을 적어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이 나라 지식인들을 품에 안아 여기 마치와 낫이 새겨진 기폭의 한가운데 운명과 미래를 적으라고 붓대를 곧추 세워주신분!

그때부터 진정한 인민의 지식이 자랐다. 망망대해 섬마을 아이들을 위해서도 종소리가 울리는 나라, 책을 주고 가방을 메워주고 교복을 입혀주며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우라고 당부하는 나라, 일하면서도 대학을 나오고 지식인이 되는 나라…

개회가 선언되자 《애국가》가 주악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심장으로 노래를 부르시였다.

《애국가》의 구절구절이 그이의 마음을 뜨겁게 울리였다.

아침은 빛나라… 그것은 어제날 지도에서조차 빛을 잃었던 이 나라, 이 민족이 수령님을 높이 모시여 다시 찾은 존엄에 대한 긍지이며 미래에 대한 확신이다. 그리고 오늘만이 아니라 래일의 밝은 아침을 위하여 투쟁하고 또 투쟁해야 한다는 호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래일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장내를 굽어보시였다.

여기 대회장 어느 곳엔가 리정도 있을것이다.

나는 그를 보지 못하지만 그는 나를 바라보고있을것이다. 그를 만나면 콤퓨터수자조종줄방전가공반을 개발한데 대하여 축하해주고 기쁜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는데 뜻밖에 나의 기대를 허물어놓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탁자우에 놓인 문건철에 무겁게 손을 가져가시였다. 대회장으로 떠나시기에 앞서 두번이나 읽어보신 문건이였지만 아직도 잘 믿어지지 않으시였다.

련하기계에서 개발한 첫 콤퓨터수자조종설비를 3대혁명전시관에 전시하려고 한다는 제의서에는 주개발자인 리정의 수표가 있는 동의서가 첨부되여있었다.

리정의 이름을 그렇게 보게 된것이 뜻밖이시였다.

련하기계를 진렬해놓겠다고? 어쩌면 나의 마음을 이렇게도 몰라줄수 있단 말인가. 세계를 노려보며 세계와 경쟁하겠다는 야심만만한 배짱을 지닌줄로 믿었던 리정이 자그마한 성과에 만족한 작은 사람이 되여 나타난것이다. 마음이 허전하시였다.

기대했던 상봉이 멀어지는것 같으시였다.

그러면 이제는 어떻게 할것인가. 물론 리정을 만나 안타까운 심정을 털어놓고 비판을 할수도 있다. 그러나 더 좋기는 말이 아니라 실천활동속에서 리정자신이 잘못을 깨닫게 해야 한다.

불현듯 안시학의 얼굴이 떠오르시였다.

안시학이 범한 과오와 리정의 잘못은 서로 다르지만 그들을 깨우치는데서는 무엇인가 공통점을 찾을수 있을것 같으시였다.

그게 무엇일가? 안시학이 잃어버린 존엄과 리정에게 부족한것을 함께 찾아줄수 있다면…

이번에는 그들의 얼굴이 나란히 떠오르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시금 문건을 펼쳐드시였다.

리종옥부주석이 조선지식인대회앞으로 보내온 당중앙위원회 축하문을 전달한데 이어 조선소년단축하단이 입장하였다.


우리는 자랑합니다.

아버지대원수님과

어머니 우리 당이 키운

160만 지식인대부대를


선생님들이

당기발에 새겨진 그 붓을

억세게 틀어쥐고있는 한

우리는 남부러울것이 없습니다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회관홀과 복도는 각지에서 모여온 대표들의 짤막한 상봉장소로 화하였다. 무늬가 잘 살아난 대리석기둥들이 규칙적으로 배렬된 중심홀에서는 조선지식인대회 사진전시회가 열리고있었는데 휴식시간을 리용해서 그곳을 돌아보고있던 리정은 누군가 자기를 찾는 소리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몹시 낯익어보이는 중년의 사나이가 그를 향해 손을 흔들고있었다.

《리정동무, 나를 모르겠소?》

《글쎄, 어데서 꼭 본것 같은데…》

《우린 4년전에 공작기계전시관에서 만났댔지요.》

《아! 생각납니다, 그때 〈안흥104〉호를 전시했던?!》

《예, 제가 바로 한유준이올시다.》

역시 회합은 큰 회합이였다. 스승과 제자들, 선배들, 동창생들, 각이한 인연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만났다.

《참, 이분은 고등기계공업전문학교시절 제 스승인데…》 하고 한유준이 뒤켠으로 자리를 터놓으며 한 녀성을 소개했다.

《지금은 희천공업대학에서 교편을 잡고있지요.》

녀인은 가볍게 목례를 하며 그의 말을 시정했다.

《김인순이라고 합니다. 스승이라야 전문학교가 공장대학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한두달 기초과목이나 가르쳤는걸요.》

보매 녀선생은 한유준보다 나이가 아래인것 같았다.

그래도 벌써 흰머리가 섞이기 시작한 한유준에 비해 윤기나는 얼굴이며 단아한 몸거둠새가 중년치고 여간하지 않았다.

그의 박사메달이 은근히 눈길을 끌었다. 그런 눈치를 알아차렸던지 녀인은 5면가공중심반을 설계한 한유준이나 새형의 줄방전가공반을 개발한 리정의 앞에 박사메달을 내놓고있기가 부끄럽다고 말하는것이였다. 한유준은 여전히 수십여년전의 공업전문학교 학생처럼 그를 선생님이라고 존경어린 목소리로 불렀다.

《전 그때 선생님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학생동무들, 참된 과학자에게 있어서 명예란 목적이 아니라 흔적일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셨댔지요?》

(목적이 아니라 흔적이라.)

리정은 그 말이 가슴을 찌르는것 같았다.

한유준의 정중하고도 다감한 회상에 김인순은 활딱 얼굴이 붉어져서 《제발 그 말씀 좀 낮추시지요.》 하고 손을 내흔들었다.

한유준이 문득 생각키운듯 《박송봉1부부장동지를 만났소? 아까부터 리동무를 찾댔는데…》 하며 사위를 둘러보았다.

《1부부장동지도 이번 지식인대회대표로 참가했습니까?》

《웬걸요, 방청으로 참가했다오.》

《방청으로요?》

리정이 알고있건대 박송봉은 지식인중에도 지식인으로 손꼽아야 할 사람이였다. 총대를 펜으로 바꾸어잡고 가렬한 전쟁의 포화속에서 학업을 시작한 박송봉은 1950년대에 벌써 전기 및 원자력기사의 자격을 수여받았다. 우리 나라에서 청소한 원자력발전의 길을 개척하였고 과학지구와 리과대학을 창설하는데도 크게 기여한 그가 이번 대회에 방청으로 참가했다는 사실에 리정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가만, 저 방송에서 당신을 찾고있지 않소?》

한유준이 리정의 팔소매를 잡아당기며 대리석원주가 높이 뻗쳐오른 홀중심쪽을 가리켰다. 구내방송소리가 공명되여 그곳에서 흘러나오는듯이 들려왔던것이다. 젊고 부드러운 녀성의 목소리가 다시금 김책공업종합대학에서 온 리정대표동지를 찾고있었다.

《들었소? 동쪽휴계실로 빨리 오라오.》

《예, 들었습니다.》

리정은 침착하게 작별인사를 나누고 방송에서 알려준대로 휴계실로 찾아갔다. 진한 밤색에 목각장식을 한 휴계실문은 무겁게 열렸다. 풀색주단이 깔려있는 넓은 휴계실 한복판에 서있던 사람이 문소리가 나자 고개를 돌렸다.

박송봉이였다. 그는 몹시 초조한 표정이였는데 리정의 인사도 받지 않고 다우쳐물었다.

《줄방전가공반을 전시품으로 등록했다는게 사실이요?》

《예, 그런 토론이 있었습니다만…》

박송봉이 왜 그렇게 급해하는지 알수 없었다.

《동무도 수표를 했다는게 사실이요?》

《예, 했습니다.》

《리정동무, 장군님께서 대회장에서 그 문건을 보시였소.》

리정은 목구멍이 화끈 달아오르는것 같았다.

어떤 말씀이 계시였는가고 묻고싶었다. 그러나 박송봉의 엄한 눈빛을 마주하자 입이 굳어졌다. 박송봉은 침착하게 물어왔다. 《동문 왜 거기에 수표를 했소?》

《전… 1부부장동지, 저는 조선의 과학자, 기술자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보여줄 때가 되지 않았는가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조선의 기술자가 아니라 리정이겠지!》 하고 박송봉이 부정했다. 《언제인가 동무가 했던 말이 생각나누만, 성공에 대한 갈망뿐이였다고… 그건 도대체 어떤 성공이였소? 바로 동무 개인의 성공, 자기 능력과 기질의 성공이였을테지?》

《그건 너무합니다, 1부부장동지. …》

《너무하다고? 내 눈을 똑똑히 보오. 그 문건에 수표를 할 때 리정이라는 존재의 가치성을 계산하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소?》

리정은 대답할수 없었다. 만약 그 물음에 《아니》라고 대답한다면 그것은 거짓이라고 생각되였기때문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그 문건을 보여주시며 이게 리정의 수표가 옳긴 옳은가고 몇번이나 물으시였소. 그러시면서 련하기계는 진렬품이 되여서는 안된다고, 나는 전시관이나 채워놓고 만세를 부르자고 련하기계를 내온것이 아니라고 가슴아프게 말씀하시였소.》

《예?!》

《내 여태 동무를 좋게 보아오면서도 뭔가 부족한것이 있다고 생각되더니 이제야 알겠소. 이제보니 동무는 오직 남을 이겨보겠다는 야심만 꽉 들어찬 사람이요. 동무한테서 그 야심을 떼버리고나면 무엇이 남겠소?》

야심을 떼버리면 무엇이 남는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것이였다. 리정은 박송봉의 말을 들으면서 자기가 왜 지금껏 성공이라는 환희와 함께 밀려드는 불안을 체험해야 했던지 그 리유를 깨닫게 되는것 같았다.

《동문 애초 여기까지를 바라보고 길을 떠났소? 세상에 대고 리정이 이런 사람이다, 우리도 이런 기계를 만들수 있다고 소리쳤으니 어쨌단 말이요? 난 놀랍소. 동무의 행동이 아니라 장군님께서 지니고계시는 천리혜안에 경탄을 금할수 없소. 장군님께서는 동무에게 전하라고 하시였소. 세계를 디디고 올라서겠다는 야심도 애국심에 기초해야 빛날수 있다고 말이요. 알겠소?》

리정은 지금껏 팽팽하게 느껴지던 가슴이 바람만 들어찬 비닐주머니처럼 허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제딴에는 세계를 견주며 과학을 한다던 리정, 한데 너라는 인간은 결국 야심만을 핑핑하게 불어넣고 하늘로 날아오르려던 풍선같은 존재였단 말인가.

리정은 번민속에 양복단추를 쥐여뜯었다.

단추알이 떨어져 줌안에 흘러들었다.

그후 일정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리정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한시바삐 공장에 돌아가고싶었다. 그런데 대회가 끝나는 날부터 내리기 시작한 폭설에 교외로 가는 길들이 막혀버렸다. 무슨 정신으로 공장까지 근 백리길을 도보로 나섰는지 몰랐다. 어둠이 짓깔린 하늘에서는 바람이 무섭게 태질했다. 나무가지들이 부러져 짚나라미처럼 흩날리다가 눈판에 쿡쿡 곤두박혔다. 차가운 눈송이들이 덜미에 들어붙자 흐리마리하던 정신이 좀 맑아졌다.

련하기계는 진렬품이 돼서는 안된다. …

그런데 나는 그것을 성공의 단상인듯 꿈꾸지 않았던가.

어쩌면 나는 인생 그자체를 진렬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자세로 계속해서 나갔더라면 세번째, 네번째 성공과 영예가 뒤따른 후에 자기의 모습이 어떠했겠는가를 상상해보자 속이 떨렸다.

리정은 언제부터인가 자기가 눈구뎅이에 꼬꾸라진것도 느끼지 못하였다. 잔등이 꽛꽛하게 얼어와서야 형편을 깨달은 그가 몸을 일으켰을 때 하늘이 희벗이 트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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