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 회)
제 1 편
제 3 장
1
1992년 7월 15일은 수요일이였다.
례사로운 날이였다. 날씨는 개였고 기온은 높았으며 지하철도의 문은 제 시간에 열리였고 궤도전차들도 제 시간에 첫 운행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봉화기계공장에 내려간 박송봉으로부터 콤퓨터수자조종공작기계를 전문적으로 연구개발하는 새 집단을 내오는 문제와 관련한 대책안이 완성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였던것이다. 곧 박송봉을 전화로 찾으시여 빨리 평양으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였다.
《아니 아니, 나도 그곳으로 떠나겠으니 도중에서 만나기요. 공장동무들도 데리고 오시오. 이런 기쁨이야 같이 나눠야지.》
시계를 보니 9시 10분전이였다.
승용차는 빠른 속도로 교외도로에 들어섰다. 그런데 얼마 못 가서 도로한복판에 정지표식이 나졌다. 붉은 수기를 든 외줄배기병사가 호각을 불어대며 우회로를 가리켰다. 그의 뒤쪽에서는 육중한 다짐기들이 궁싯궁싯 로라를 굴리며 전진해오고 떠들썩한 소음과 함께 피치냄새가 풍겨왔다. 도로포장을 다시 하는 모양이였다.
우회로는 몹시 들추었다.
최윤동의 승용차에서 박송봉이 먼저 내리고 뒤따라 김경조와 온덕수, 최윤동이 내렸다. 그리고는 잠시 옷매무시들을 다듬었다.
《반갑습니다, 지배인동무!》
최윤동과 먼저 인사를 나누신
《변하지 않았구만. 김경조가 틀림없소.》
《제가… 걱정만 끼쳐드렸습니다.》
김경조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신
《온덕수동무! 이게 얼마만이요?》
《저는…
《됐소, 됐소. 그만 진정하시오.》
이때 멀리서 물동량을 가득 실은 중량화물차가 먼지를 뽀얗게 일구며 나타났다. 자동차는 비좁은 우회도로에 서있는 일행을 발견하자 빵빵- 하고 새된 나팔소리를 울리며 무섭게 질주해왔다.
《저런!…》 김경조가 놀라서 손을 쳐들었다.
《아, 놔두시오. 오금이 쑤실 나이들이겠는데.》
《이크, 끝내 궁둥방아를 찧는구만. 하하하!…》
자동차에 눈길을 따라세우시던
《공장일은 잘돼가오?》
《동무가
얼굴이 벌개지는것이 최윤동이 쓴 모양이였다.
《지배인동무가 썼소?》
《저, 펜대는 제가 쥐고있었습니다만…》
최윤동이 뭔가 털어놓을듯 하자 김경조가 바빠맞아 옆구리에 손침을 꾹꾹 박아대는것이 눈에 뜨이시였다. 무슨 재미나는 사연이 있는 모양이였다. 최윤동이 김경조의 손을 뿌리치며 입을 열었다.
《글쎄 이 사람이 말하기를 사실은 내가 당신을 살리자고 당에 편지를 올리려댔다, 그런데 당신이 고목생화하여 돌아왔으니 쓰기는 당신이 써야겠다, 그러면서 편지에 담아야 할 내용까지 자자구구 불러주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래, 〈관료주의자〉지! 하하하!》
김경조의 《억지다짐》이 방불하게 안겨와
《자, 여기 좀 앉읍시다.》
별지를 넘기기에 앞서 손이 굳어지시였다.
약전기사, 주조기사, 자동화기사 등 필요한 기술인원보장대책을 밝힌 별지에는 체계프로그람기사(리정을 념두에 둔것이였다.)를 비롯하여 교육기관에 소속된 연구사들은 조동없이 시험생산이 끝날 때까지만 동원시키려고 한다는 의견이 적혀있었다.
박송봉으로서는 힘들게 쓴 내용이였다.
솔직히 김경조를 비롯한 공장일군들은 이 기회에 리정과 같은 인재를 공장에 끌어들여 덕을 볼 욕심이였고 대학에서는 그들대로 교육부문을 약화시키는것은 만대의 사업을 망쳐먹는것이라고 머리를 저었다. 원칙은 대학측에 있다고 박송봉은 생각하였다.
《괜찮게 됐소. 좀 생각되는것은 명칭문제인데… 명칭에는 그 집단의 성격과 사명까지도 비끼는것만큼 심사숙고해야 하오.》
《연구소, 교류사… 뭔가 부족해. 어떻소, 주인들의 생각은?》 하고
《저희들생각엔 연구소라고 하는것이 적합할것 같습니다.》
《연구소라…》
물론 연구사들이 모인 집단을 연구소라고 부르는것은 명실상부한 리치일지도 모른다. 허나 그렇게 쉽게 이름을 달기에는
《그야말로 도식이요.》
《회사 말입니까?!》
박송봉까지도 놀라는 눈빛이였다.
《놀랄건 없소. 나는 첨단기술을 소유한 인재들에게 활동의 폭을 넓게 지어주자는거요. 동무들은 왜 한사코 그들을 도면대앞에만 세워놓으려고 하오? 연구사가 지배인역할을 하면 안되는가? 무역활동을 하면 안되는가? 나는 새로 조직하는 연구집단에 현대적인 생산공장까지 배속시켜주자는거요. 그리하여 첨단기술개발과 생산 및 무역활동을 기술집단이 직접적으로, 통일적으로 진행하는 체계를 세우려고 하오. 김경조동무, 내 말이 잘 리해되지 않습니까?》
《저희들로서는 그런 례를 들어본적이 없다나니…》
어리둥절하기는 온덕수나 최윤동도 마찬가지였다.
《례? 그 례라는것도 누군가 먼저 만들어야 생기는게 아니겠소. 지금은 누가 먼저 례를 내놓기를 기다리고만 있을 때가 아니요. 우리 혁명에 필요한것은 우리가 그 례를 창조해야 하오.》
《그리고 이 〈련화〉라는 이름은 누가 지었소?》
《리정동무가 지은것입니다.》 하고 김경조가 말씀올렸다.
《〈련화〉라…》
《련하!》 네사람이 동시에 받아외웠다.
《〈련하기계회사〉로 합시다.》
《흘러간다는 뜻이 좋습니다.》
김경조와 최윤동이 저마끔 아뢰였다.
《그렇소, 〈련하〉는 고여있지 않을것이요. 이 땅을 적시고 온 나라를 물들이며 흘러갈것이요. 새 세기에로 나아갈것이요.》
《어떻소, 우리 한잔 마실가?》
《예?!》
《축배야 이런 때 드는거지! 갑시다.》
먼저 차에 오르시여 량쪽문을 툭 터쳐놓으신
《술은 없소. 샘물로라도 축배를 들기요.》
《동무들, 오늘을 기억합시다. 오늘은 우리 기계공업에 있어서 참으로 의의깊은 날이요. 먼 후날 이 길섶의 아카시아나무숲에서 련하기계탄생을 축하하여 축배를 들던 오늘을 즐겁게 추억하게 될거요. 동무들! 주체공업이 낳은 옥동자를 축복합시다!》
단숨에 고뿌를 비운 김경조가 입버릇처럼 카! 하고 소리를 내는 바람에 가벼운 웃음이 터졌다.
이 땅에는 얼마나 많은 새 집단, 새 생명들이 지금도 태여나고 앞으로도 태여날것인가. 그속의 작은 하나, 이 시각에 태여난 련하기계는 수만의 종업원을 가진 대기업체도 아니고 그 생산량에 따라 나라의 경제눈금이 오르내리는 굴지의 생산기지도 아니였다. 그러나 새 세기에 부치는 소중한 꿈과 념원이 깃들어있었다.
(혁명의 운명을 안고 큰걸음을 내짚었구나!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가야 할 먼길은 앞에 있다, 저앞에…)
한낮이 가까와오면서 소금을 졸여낼듯 한 염열이 지독스레 내려쪼였다. 후줄근해진 나무잎들이 차창 여기저기에 늘어붙었다.
《참, 책벌은 벗었소?》
《예, 벗었습니다. 두달전에…》
《매를 좀 맞았다고 뿔빠진 황소가 되여서는 안되오. 뭐니뭐니해도 뿔이 있어야 김경조지. 허허, 그건 그렇고…》
《아직 몇가지 부분품들은 국내에서 생산하지 못하기때문에 들여다가 조립을 하고있습니다. 아마 그래서…》
《당에서는 이미전부터 세계선진과학기술을 적극 받아들일데 대하여 강조했고 그것이 주체적립장과 어긋나지 않는다는것을 밝혀주었소. 그런데 뭐나 처음부터 자체로 연구개발해야만 주체가 선것이고 다른 나라의 선진기술을 받아들이는것은 체면도 주체도 없는것이라고 말한다면 그야말로 주체에 대한 비속화요.》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혁명의 길에는 용감한 나팔수가 있는가 하면 제 배낭조차 건사하기 힘들어하는 사람, 이게 도대체 어데까지 가야 끝이 나는가고 묻는 사람, 또 쉬여가자고 조르는 사람, 노래를 부르자고 선창을 떼는 사람, 그 짐을 벗어달라고 어깨를 내미는 사람 등 성격과 신념, 준비정도가 다른 천만이 서있는것이다.
《앞선 나라들이 몇십년전에 해결한 문제들을 이제야 붙잡고 어물거려서는 언제가도 현대과학기술의 요새를 점령할수 없소.》
《누가 뭐라고 하든 주대를 확고히 세우고 나가시오.》·
《아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 무슨 일을 하고있소?》
《편의사업소에서 적을 옮겨 지금은 우리 공장 1기계가공직장에서 일하고있습니다. 공장대학에도 입학했습니다.》
《공장대학에? 아들을 잘 키우시오.》
《자, 이젠 그만 헤여져야겠소. 박송봉동무는 내 차를 타고 갑시다. 지배인동무, 공장 로동자, 기술자들에게 인사를 전해주시오.》
《리정이 없는것이 유감이요.》
《리정동무가 오늘 대학에 가다나니…》
《그가 알면 섭섭해하겠는데… 앞으로 기회가 있겠지.》
승용차는 어느덧 시내의 첫 네거리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