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회)
제 1 편
제 2 장
5
온덕수는 《몸이 말째서》 집에 누워있는지가 며칠되였다.
오늘은 아침부터 가두녀인들이 집에 몰려와서 무슨 절연물을 감는다고 왁작 판을 벌려놓아 환자놀음을 하기도 급했다. 안해의 말이 가두녀성들로 자원적인 돌격대를 무었다던지…
《하필 장소가 없어 이 집에 모이오?》
《돌림순서가 그렇게 됐어요.》
할말이 없었다. 왔다가 남정이 자리보전한것을 보면 인차 돌아갈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일을 손으로 하는지 입으로 하는지 말꼬리를 갈아대며 그냥 엉치를 늘어붙이고 앉아있었다.
참다못해 머리를 내밀어보니 어느 증판한 아낙네가 들고왔는지 펑펑이마대가 아직도 배가 불룩해서 서있었다. 저게 다 없어질 때까지 앉아있으려니 하고 생각하자 눈앞이 다 아찔했다.
잡다한 말이 오가다가 누군가 쉿 하며 물었다.
《그런데 평양간 지배인어른은 어떻게 됐다우?》
《그걸 누가 아나요.》
《듣자니 사직서를 냈다면서요?》
《그랬다나봐요. 그래서 불리워갔다니까 아마…》
온덕수는 놀랐다. 그가 집에 들어박혀있는새 일이 벌어진 모양인데 그게 사실이라면 줄방전가공반개발을 남먼저 결의하고 남먼저 포기한 온덕수로서도 그저 심상히 듣고 지나버릴 일이 아니였다. 불구멍을 열어놓았는지 구들장이 깨지게 달아올랐다. 몸에선 땀이 절절 흐르는데 모주독같이 참고만 있자니 화가 치밀었다. 끙끙 앓음소리를 냈더니 그제야 에게나 소리가 났다.
《에게나! 참, 정림이 아버지가 앓는다더니. …》
《얼른 마무리하고 돌아가자요.》
아낙네들이 돌아가자 이불을 차던진 온덕수는 물부터 찾았다.
물사발을 들고 나타난 안해는 또 어데 나갈 차비였다.
《어델 가려구?》
《읍상점에 새 안경이 들어왔대요.》
《허참, 또 안경이요? 집안이 안경상점이 되겠구려.》
《당신은 어쩌면…》
말해놓고나니 후회가 됐다. 요즘은 왜 이렇게 까닭없이 화가 나고 짜증을 부리게 되는지 몰랐다. 정림이가 눈을 다친 후 안해는 《안경애호가》가 되고말았다. 어데서 안경소리만 들려오면 그저 천방지축 달려가군 하였다. 그래서 사놓은 안경이 여러개나 되는데 또 안경이란다.
안해에게 있어서 그것은 단순한 물건사기가 아니였다. 설사 열개가 남아돌아간다고 해도 그는 갈것이였다.
《혹시 늦으면 가마안의 밥을 드세요. 찌개도 있으니…》
안해마저 집을 나가자 온덕수는 허울만 남은 사람처럼 멍청히 앉아있었다. 내 일은 왜 이렇게 꼬이기만 하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면 누구의 탓도 아니였다.
새 기계를 개발하겠다고 나섰을 때부터 일이 물먹듯 쉽지 않을것이라고 각오는 했던바지만 이렇게까지 고단할줄은 몰랐다. 그래도 김경조가 하정을 알고 리정을 데려왔을 때는 숨이 나가는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리정은 그가 진통을 겪을 때마다 어느 옛말에 나오듯 하늘에서 내려보내는 구원의 바줄처럼 나타나군 했다.
리정이 오자부터 연구사업은 생기를 띠는듯도 했다.
그러나 안시학이 오고 검사가 오고 하면서 정신이 아찔해졌다.
사고도 사고지만 당결정을 《외곡》하고 자금을 류용한것만으로도 누구 한사람은 책임을 지게 될지도 몰랐다.
(하기야 이 나라에 전문인재가 한둘이라구? 자그만치 수백만 지식인대군을 키우지 않았는가. 우에서 어련히 생각이 있겠는데 내나 리정이 중뿔나게 나서서 욕을 볼 필요야 없지 않은가?)
박송봉까지 내려오자 무슨 일이 나기는 날것 같았다.
그러나 한달이 가고 두달이 가도 《무슨 일》은 좀처럼 나지 않았다. 그가 처음으로 충격을 받은것은 5. 1절에 있었던 체육경기때였다. 정림이를 끌어낸 리정의 행동도 놀라왔지만 박송봉이
그러는 속에 형세는 서서히 뒤바뀌였다.
검사는 압수했던 물품들을 고스란히 돌려주고 꼭 성공해달라는 인사까지 남기고 공장을 떠나갔다. 온덕수는 헤여날수 없는 고민속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안해가 사라진 문가를 멍청히 바라보고있던 그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신발장밑에서 망치를 찾아냈다. 반질반질한 참나무자루가 달린, 뒤골이 뭉툭한 그것으로 개발조문에 못질을 했었다. 그 죄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최윤동은 그래도 스스로가 당앞에 벌을 청하려고 갔다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있는가 하는 생각에
(내가 얼빠진 놈이였지. 제 가슴에 못질을 했어.)
이튿날 공장사택에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평양에 올라간 최윤동이
리정은 그 소식을 사보전동기의 주파수응답실험을 하다가 전해들었다. 그때 제일먼저 떠오른것은 온덕수의 얼굴이였다. 그날도 온덕수가 몸살을 핑게로 출근하지 않았다는것을 알고 속이 정말 좋지 않았다. 리정은 워낙 표정이 다채롭지 못한 사람이였다.
그러나 이때만은 섭섭한 감정이 얼굴에 내비쳤다.
최윤동의 소식을 전하러왔던 장현국이 그것을 보고 《연구사동무라면 아마 언제 그랬더냐싶게 몸을 툭툭 털고 나섰겠지만 온실장은 그럴 사람이 못되지요. 소심한 사람에게는 들어오라고만 하지 말고 마중나가 문을 열어주는게 좋수다.》라고 하였다.
리정은 장현국과 함께 온덕수의 집으로 찾아갔다.
녹쓴 돌쩌귀에 축 처진 대문이 매달려있었다.
《있소?》 장현국이 소리쳤으나 응답이 없었다.
《실장동무 있습니까?》 리정이 다시 불렀다.
그러자 퇴마루와 잇닿은 방문이 찌붓 열리더니 정말 앓기는 앓던 모양인지 볼이 움푹 꺼져내린 온덕수가 밖을 내다보았다.
《아니?! 리동무가 어떻게…》
《병문안을 왔습니다.》
온덕수는 다 귀찮은듯 한 인상이였다. 여하튼 집에 찾아온 손님들이니 얼굴만 내밀었던 문을 열어제끼며 들어오라고 하였다.
《그럴새 없소. 여기서 기다리겠으니 얼른 옷입고 나오오.》
장현국이 입담배를 말아 물며 퇴마루에 걸터앉았다.
《무슨 일이요? 난 몸이 말째서 그러오.》
《실장동무, 어서 공장에 나갑시다. 평양에 올라갔던 지배인동지가 당의 신임을 안고 내려온답니다.》 하고 리정이 말했다.
《지배인동지가?!》
온덕수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못 가오, 난 못 가겠소.》 하고 중얼거렸다. 리정이 안타까운듯 퇴마루에 올라앉았다.
《실장동무, 이러지 마시오. 같이 갑시다. 정림이를 생각해서라도 실장동무가 이러면 안되지 않겠습니까.》
《그 애 소린 하지도 마오.》
솔직히 온덕수는 리정이 나타나자부터 아버지로서의 구실마저 그에게로 새여나간듯 한 느낌이였다. 정림이가 자기가 아니라 리정을 닮아가고있는것 같아 불쾌하게 여겨졌는지도 몰랐다.
《부탁이요. 더는 우리 집 일에 삐치지 말아주오. 아무리 그런들 그애가 당신처럼이야 되겠소.》
《뭐, 삐치지 말라구?》
장현국이 토방을 구르며 일어섰다. 그는 내동댕이친 마라초를 발로 비벼끄고 받아넘길듯 한 자세로 다가들었다
《아니, 난 삐쳐야겠소. 이 세상은 로동계급의 세상이요. 로동계급이 삐치지 못할 일이 없단 말이요. 당신같이 떨떨한 사람들을 로동계급화하는것도 다
장현국은 주먹으로 가슴을 땅땅 쳐댔다.
《실장동무,》 리정이 불렀다. 《지배인동지가
《공장에… 내가 어떻게…》 하고 온덕수는 중얼거렸다.
오래전에 지은 그의 집은 문턱이 앉은 사람의 가슴을 가리우게 높았는데 온덕수는 그 문턱에 엎드려 머리를 들지 않았다.
장현국이 그의 어깨를 쥐여흔들었다.
《우린 지금 흔치 않은 기계를 만들고있소. 당에서 늘 이야기하듯 기술신비주의를 돌파해가고있단 말이요. 그게 뭐 밖에 나가서만 해당되는 말이요? 하루 여덟시간만 소용되는 말인가?
내 보기엔 당신이
나와선 웃고 들어가서는 찡그리고… 우린 그렇게 살지 않소. 기술신비주의만을 돌파해가는것이 아니라 원체 잡다한것들, 목구멍에 걸리고 바지가랭이에 매달리는것들을 삼키고 차던지면서 나가고있단 말이요. 이게 일관성이라는거요. 내 보기에 당신한텐 그게 없는것 같소. 그게 없인 먼길을 가내지 못하오.》
장현국은 리정에게 그만 돌아가자고 하였다.
리정이 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 주저하는데 장현국이 《이깐 집에 무슨 미련이 있다구.》 하면서 등을 떠밀었다
그들이 사라진 다음에야 온덕수는 얼굴을 들었다.
그리고는 정신없이 홰대보를 들치고 옷을 찾아입었다.
온덕수는 대문밖으로 뛰여나가며 넉두리하듯 중얼거렸다.
《왜들 가오, 왜 더 욕해주지 않고 그냥 가오? 리동문 왜 가만있소? 이 못난 놈의 뺨이라도 한대 치지 않고 왜 가만있소?》
펀펀한 길을 걷는데도 발이 무엇인가에 자꾸 걸채였다.
공장정문을 가까이 하자 곳곳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누가 조직한것은 아니지만 종업원들모두가 스스로 퇴근시간을 미루며 최윤동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어데서 꽃목걸이를 얻어가지고오던 김경조가 멀리서부터 온덕수를 알아보고 반달음질해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온덕수의 손에 꽃목걸이를 쥐여주며 《온실장이 맡소.》라고 하였다.
《아니, 이거야?!…
온덕수는 굉장히 무거운 무엇을 받아든것처럼 허둥거렸다.
그러거나말거나 김경조는 온덕수의 바지가랭이에 묻은 흙부스레기를 털어주며 《이제 지배인이 차에서 내릴 때 이 꽃목걸이를 척 걸어주오.》 하고 흐름까지 정해주었다.
《온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장정문으로 들어선것은 최윤동의 승용차가 아니라 전혀 처음 보는 새형의 고급승용차였다. 그 차에서 낯익은 지배인의 운전사가 내려서자 사람들은 더욱 눈이 휘둥그래졌다. 온덕수도 어리둥절해서 자기가 꽃목걸이를 들고있다는것도 잊었다.
《이게 누구의 차요?》 하고 김경조가 물었다.
《누구긴 누구겠습니까. 우리 지배인동지의 찹니다.》
운전사는 김경조만이 아닌 온 공장사람들에게 웨쳤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달려와 차주위를 꽉 메웠다.
최윤동은 차에 그냥 앉아서 내릴념을 못하고있었다.
김경조가 달려가 차문을 활짝 열어제꼈다.
《왜 이러고있소? 어서 내리시오, 지배인동무!》
그리고 김경조는 차주위를 빙 돌아갔다.
《룡마로구나!》 하고 김경조는 말했다. 《나약하고 로쇠한 최윤동이 아니라 전장을 내달릴 장수에게 하사하신 천리마요! 지배인동무, 이 룡마를 타면 어떤 산이든 강이든 훨훨 날아넘겠소.》
그때 비로소 온덕수는 자기 소임을 깨닫고 달려나가 최윤동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최윤동이 온덕수의 손을 잡고 높이 쳐들자 사람들속에서 박수갈채가 터져올랐다. 지금껏 같이 살고 같이 일해오면서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고 생각해온 공장사람들의 모습이 온덕수에게 전혀 새롭게 안겨오는 순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