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회)

제 1 편

제 2 장

2


오후에 김정일동지께서는 책임서기로부터 전화를 받으시였다.

수령님께서 방금 이곳으로 떠나시였다는 보고였다. 믿어지지 않으시여 다시 확인했지만 역시 같은 대답을 들으시였다.

바로 전날 밤에 헤여지신 수령님께서 웬일이실가.

연형묵에게 해주항을 확장하고 새로운 세멘트공장건설을 다그칠데 대한 교시를 주시였다더니 혹시 그때문에?… 아니면 국가계획위원회에 과업을 주신 문산공구공장의 자재보장문제때문에 오시는것인가?…

더 앉아계실수가 없었다.

보시던 일을 멈추고 밖으로 나오신 그이께서는 아름드리 수삼나무들이 길길이 늘어선 차도를 따라 그냥 걸어가시였다. 한걸음이라도 더 앞으로 나가 수령님을 맞이하고 싶으시였던것이다.

멀리 앞쪽의 활등처럼 굽어든 길녘에서 번쩍하고 차창빛이 반사되더니 귀익은 발동소리가 들려왔다. 경적소리가 짧게 반복하여 울렸다. 중속으로 달려온 승용차는 그이의 곁에서 멎어섰다.

《왜 여기까지 나와있소?》

차창을 내리우며 수령님께서 물으시였다.

《머리쉼도 할겸 마중을 나왔습니다.》

《하기야 좀 갑갑할수 있지. 어서 타오.》

《수령님, 공기도 좋은데 걸으시지 않겠습니까?》

《걸을가?》

수령님께서는 한손을 그이께 맡기며 차에서 내려서시였다.

초여름에 들어서면서 제법 화끈해진 해빛이 수령님의 회색중절모우에 자글자글 내려쪼이고있었다. 뒤짐을 가볍게 붙이고 아침산보를 나가듯 걸으시는 수령님의 안색은 밝아보이시였다.

《내가 갑자기 왜 왔는지 궁금하지 않소?》

《글쎄… 전 혹시 수령님께서 내가 휴식을 어떻게 하고있는지 마음이 놓이지 않아 〈감시〉하러 나오시는줄 알았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소리를 내여 웃으시였다.

《이것 좀 보오, 내가 오늘 부자가 됐소.》

수령님께서는 등뒤에서 큼직한 종이봉투를 내놓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일순 아연해지시였다. 봉투속에는 금시 찍어낸듯한 화페묶음이 가득 들어있었던것이다. 아무리 봐도 돈이였다.

《이런 노래가 있지? 이 많은 분배를 어디에 다 쓸가…》

《수령님, 무슨 기쁜 일이 생기셨습니까?》

《그래, 생겼소.》

수령님께서는 두손을 허리에 깊이 눌러대고 양복앞깃이 팽팽해지도록 가슴을 쭉 펴보이시였다. 그러시고는 자신께서 명예농장원으로 계시는 농장에서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온 분배돈을 보내여왔는데 이렇게 한봉투 가득찼더라고 하시였다.

《대단하지. 몇만원 잘되는데 한 절반쯤 세고나니 눈앞이 아물아물 해서 어디 세겠더라구. 그래 채순이 손까지 빌려썼지.》

채순이란 수령님의 담당간호원이다.

《이 많은 돈을 어디다 쓸가 하니…》 하고 금시 말씀해주실듯 하던 수령님께서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시며 오히려 되물으시였다.

《글쎄 어디다 썼으면 좋을가?》 김정일동지께서도 그만 대답이 막히시였다.

하기야 언제 이렇듯 많은 《개인재산》을 놓고 용도를 가늠해본적이 있으시였던가. 그이께서는 종시 웃음을 터뜨리시였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수령님.》

《허허, 야단이요. 돈이 많으니 정말 야단이요. 내 그래서 여기로 오면서 이 돈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냥 궁리해봤소.

가만, 우리 저기 풀밭에 좀 앉지 않겠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얼른 소담한 들꽃들이 피여난 가까운 풀밭우에 손수건을 펴놓으시였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결에 수령님의 귀전에 드리운 몇오리 백발이 가볍게 흩날렸다.

《이 돈을 기계공업부문에 써주오.》

《수령님, 이 돈이야…》

《내 많이 생각해보고 그러는거요. 글쎄 쓰자고 보면 많은 돈이 아니지. 그렇지만 김정일동무를 돕고싶은 마음이야 돈으로 치겠소. 아래 사람들한테는 늘 김정일동무를 아끼자아끼자 하면서도 실은 내가 제일 고생을 많이 시킨것 같소.》

《수령님, 무슨 그런 말씀을…》

《내 앞으로도 그 고생만은 벗겨줄것 같지 못해 그러오.》

수령님께서는 천천히 안경을 벗어드시였다.

불과 몇시간전까지도 수령님께서는 금속, 전력, 건설담당 부총리들을 비롯한 경제부문의 책임일군들을 부르시여 저조해지고있는 경제실태와 관련하여 장시간 담화를 하시였다.

년초에 여러 도들을 현지지도하시면서 강조하신것도 그 문제이지만 역시 우리 일군들에게는 지난 시기 만족하게 주어진 조건과 환경속에서 경제관리를 손쉽게 해오던데로부터 조성된 난관을 자체로 뚫고나가려는 강의한 투지와 혁명성이 부족했다.

일군의 직무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수령과 함께 혁명이 부여하는 무거운 짐을 나누어메는 책임일것이다. 그런데 난관앞에 겁먹은 일부 일군들이 슬그머니 내려놓는 짐들이 김정일동지의 어깨우에 다 쏠릴가봐 그것이 정말 걱정스러우시였다.

《작년에는 함경북도에서 너무 우는소리들을 하길래 무산광산의 철정광생산계획을 좀 떨구어 3차 7개년계획문건까지 수정하도록 했소. 김철에서는 덩지 큰 랭간압연박판생산기지를 꾸려놓고도 탈산제용알루미니움이 없다고 우는소리지, 성강에선 전기가 딸린대. 전력부문에 따지면 철도에 밀고 철도에선 또 금속이 매달 1만톤씩 넣어주게 되여있는 강판을 보장해주지 않아 화차를 무어내지 못한다는거요. 그러면 이걸 다 김정일동무가 나서서 뛰여다니며 일일이 해결해주어야 하는가?》

수령은 결코 신이 아니다. 손들어 가리키면 구름이 흩어지고 바다가 쭉 갈라지는 전설속에서가 아니라 보통사람들과 다름없이 피곤을 느끼고 안타까움을 느끼며 현실속에 사는 사람이 수령이다.

수령이 제시하는 모든 사상과 로선은 문장으로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안고 끝까지 집행할수 있는 일군들에 의하여 가치있는것, 현실적인것으로 되는것이다. 혁명이 심화될수록 우리에게는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서는 고생도 사서 할 일군이 많아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다름아닌 수령이 아픔도 겪고 눈물도 흘리면서 어려운 날 어머니가 열두자식을 키우듯이 그렇게 키워내야 하는것이다.

(이 역시 수령에게 차례지는 숙명의 사업이 아닐가.…)

김정일동지께서는 무겁게 봉투를 넘겨받으시였다.

《일을 많이 하라는 당부로 알고 받겠습니다.》

《고맙소.》

멀리 주단처럼 펼쳐진 잔디밭에는 포기배합을 한 각시원추리와 꽃창포, 타래붓꽃들이 군데군데 소담한 꽃무지를 이루고있었다.

그 진한 향기가 미풍에 실려왔다.

차도를 가로질렀던 나무그림자들이 주밋주밋 자리를 비켜서며 길어지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자귀나무가 던지는 그늘이 바람을 따라 움직일 때마다 눈이 부신듯 손을 들어 새여드는 빛을 가리군 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몇번이나 생각하시다가 봉화기계공장에 내려갔던 박송봉의 사업보고내용을 수령님께 말씀드리기로 결심하시였다.

그이께서 받으신 서면문건들중에는 최윤동지배인이 자필로 쓴 사직신청서도 들어있었다. 최윤동이 나이관계로 지배인직무에서 물러날것을 제기했다는것을 아시고 수령님께서는 몹시 놀라시였다.

《최윤동지배인이 자리를 내놓겠다고?!》

《박송봉동무의 보고를 들어보면 이번에 새 기계의 개발을 둘러싸고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자 심리적압박을 받은것 같습니다.》

봉화기계공장에서 벌어지고있는 일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보고드리면서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신의 견해를 덧붙이시였다.

《봉화기계공장의 실례가 보여주는것처럼 단위별로 벌어지는 기술혁신운동이나 과학자, 기술자돌격대운동만으로는 기계공업의 총적현대화를 원만히 실현할수 없다는것이 명백해지고있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우리 나라 기계공업의 현대화를 앞장에서 이끌어갈수 있는 모체기술집단을 조직하고 기술주도형의 새로운 기업관리방법과 경영방식을 창조해보자는것입니다.》

《기술주도형의 기업관리방식이라?》

《예. 지금 세계는 전통적인 생산수단에만 매달려 물질적부를 창조하던 기계제산업시대로부터 지식산업시대로 확고히 이행하고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부 우리 일군들의 인식에는 과학기술과 생산이 분리되여있으며 기술집단은 다만 연구집단인것으로 오인되여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구시대적인 사고를 깨고 첨단기술의 연구와 도입, 생산과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영활동을 주도하는 기술주도형의 본보기집단을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음, 멀리를 내다보고 한 결심같구만.》

새힘이 북받치신듯 수령님께서 먼저 성큼 일어서시였다.

《걷자구, 걸으면서 이야기하기요.》

두분께서는 오던 길을 되짚어걸으시였다.

《한데 예감이랄가, 왜 그런지 그 태아를 지금 기계공업이 품어안고 안타깝게 모지름을 쓰고있는듯 한 느낌이 듭니다.》

《일리가 있는 소리요. 기계공업은 공업국가의 견인기라고 말할수 있소. 그러니 경제를 주도하는 새로운 방식이 기계공업부문에서 창조되는것은 응당하다고도 볼수 있지. 기계…》 하고 수령님께서는 조용히 외우시였다. 《그… 대학때 생산실습을 나갔던 방직기계공장이 생각나오? 참, 그때는 제작소라고 했던가?》

《예,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러고보면 우린 기계와의 인연이 모두 깊지.》

두분께서는 어느덧 숙소마당에 이르시였다.

대기하고있던 승용차가 발동을 걸고 다가왔다.

《아무래도 휴가를 더 주지 못하겠구만.》

《수령님, 전 일없습니다. 제 걱정은 말아주십시오.》

《최윤동지배인의 사직신청문제는 좀더 생각을 해봐야 할것 같소.》

수령님께서 타신 차가 산굽이를 돌아갈 때까지 김정일동지께서는 사연깊은 생활비봉투를 안고 길가에 서계시였다. 문득 평양방직기계공장에서의 잊지 못할 나날들이 떠오르시였다.

20여일간의 생산실습을 마치고 대학으로 돌아가던 날 많은 종업원들이 그간 친형제처럼 정이 든 대학생들을 바래주러 나왔었다. 그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시던 김정일동지께 안시학이 배구경기때마다 계산수를 서군 하던 처녀를 데리고 찾아왔다.

《아, 오동무! 나를 찾아왔습니까?》

《사실은 물건을 돌려주자구…》 하고 말하는 처녀의 쌍까풀진 눈에서는 금시 서글픈 눈물이 맺혀 흘러내릴것만 같았다.

《전번경기때 해를 가리우라고 저에게 모자를 씌워주지 않았댔나요. 그때 장난을 하다가 이 모표꼭지를 부러뜨렸댔는데…》

그의 손에는 납땜으로 꼭지를 이어붙이고 정성스레 도금까지 한 대학모표가 쥐여져있었다. 모자를 벗어드신 그이께서는 달려있는것과 수리해온 모표를 나란히 대비해보시며 《보다싶이 나한텐 다른게 또 있으니 이건 동무가 기념으로 건사하오. 앞으로 꼭 훌륭한 기능공이 되기 바랍니다.》 하고 두손을 잡아주시였다.

곧 모엿구령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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