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회)
제 1 편
제 2 장
1
전날부터
여기는 교외의 숲속,
열려진 창너머로는 초여름의 해빛에 어머니의 젖품처럼 따스히 달아오른 대지가 펼쳐졌고 들려오는것은 새소리와 무성한 나무잎들의 설레임소리뿐이였다. 자연 그자체가 흔들이의자에 올라앉은듯 이리저리 둥개질하며 사람들을 모두 잠재우고있는듯싶었다.
아득한 망막속에 웬 글자들이 별찌처럼 아물거렸다.
…본위주의는 과학연구사업에서 금물이다.
과학의 모든 분과들과 연구분야들이 유기적으로 긴밀히 련관되여있는 조건에서 본위주의를 없애지 않고서는 과학기술을 발전시켜나갈수 없다. 세계적범위에서 과학기술적협조와 교류가 활발히 진행되고있는 오늘 한 나라안에서 과학연구사업을 하면서 본위주의울타리를 치는것은 시대착오이다, 시대착오이다.…
무척 낯익은 말이였다. 어데서 보았더라?!… 무엇인가 발등을 치며 떨어지는 바람에
뜻밖의 인기척이였다.
《왔으면 왔다고 할게지. 오래들 기다렸소?》
《아닙니다. 방금 도착하는 길입니다.》
《자, 어서 자리를 잡소.》
사실
…지금처럼 무리해서야 쇠덩인들 견디겠는가.
도대체 언제 출근을 하고 언제 퇴근을 하는가.
휴가를 무슨 큰 《처벌》처럼 말씀하시는
《그렇게 몸을 돌보지 않는것은 날 고생시키겠다는것과 같소. 그러니 휴가를 받은셈하고 며칠만이라도 좀 쉬오.》
이렇게 되여
《그래도 이 일이야 내가 좀 낫겠지.》
그 순간이 지나자 놓을수 없는 일거리들이 또다시
박송봉은 그동안 아래에 내려가 보고 듣고 체험한것을 될수록 감정을 섞지 않고 객관화하여 보고드리려고 애썼다.
보고도중에
…
《…이것은 사회주의적소유를 침해한 범죄와 경제관리질서를 위반한 죄에 속하는것으로서 형법 제5장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민법에 규제된 국가재산에 대한 기관, 기업소들의 경영상관리권의 요구에도 위반되는 행위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탐오, 횡령, 파손, 략취… 하여튼 이런 류의 많은 사건들을 나는 다루어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이번처럼 놀라보기는 처음입니다.》
《그렇게 험합니까?》
《제 말뜻은 그게 아닙니다. 너무 깨끗하기때문입니다.》
《?!》
《범죄로 규정지어지는 행위들은 벌써 그 목적과 동기에 있어서 불손합니다. 하지만 이 공장 일군들과 문제로 된 연구사의 행위의 동기는 얼마나 깨끗합니까. 지어 돋보였습니다.
어떤 임의의 경제사건이나 거기에는 〈나〉라는것이 존재했는데 이들에게서만은 그것을 찾아볼수 없었습니다. 있다면 오직 나라의 과학기술을 빨리 발전시키고 당이 바라는 새 첨단설비를 만들어내겠다는 그 한가지뿐이였습니다. 욕망의 과실이라 할지, 연구사동무를 만나보면서도 느꼈고 더우기는 공장당비서… 용서하십시오. 약속도 있었고해서 전개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 콤퓨터사건 말이지요?》
《그러니 알고계셨습니까?》
《어서 이야기하시오.》
《일군의 체면도 그렇고… 또 법이 무섭지 않던가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나는 이 일을 한번 해보자고 나선것이 아니라 죽어도 하자고 나선 사람이다, 우리 당이 바로 그렇게 결심하고 나섰기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길 보십시오. 이것이 지출된 자금 대 소요관계를 따진 문건인데 일푼의 차이도 없습니다.》
《…》
《그래서 나는 이 사건이 형법 제2조에 규정된 사유와 일치한다고 보면서 수사시작결정을 취소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니 위법으로 보지 않는다는겁니까?》
《아닙니다. 죄로는 되지만 형사책임을 추궁할 정도로는 보지 않는다는겁니다. 하지만 책임일군들에게는 적어도 행정처벌이…》
《그러면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법에 저촉되지 않으려면 연구사업과 자금류통관계가 지금처럼이 아니라 국가기관들사이의 거래로 되여야 합니다.》
《기관들사이의 거래로?》
《그렇습니다. 소유관계가 변하지 않으면 략취로는 되지 않습니다. 례하면 한 국가기관의 물자를 다른 국가기관에서 리용하였을 때 해당 물자는 국가소유의 재산으로 계속 남아있게 되므로 략취죄로는 보지 않습니다. 자금문제인 경우에도 국가기관들사이에 빌려주는 형식으로 류통이 됐다면 성격이 달라집니다. 물론 이 경우 리용된 설비나 자재, 자금은 여유분으로 되여야 하며 권한을 가지는 기관의 승인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규정들을 준수한다면 법은 물을것이 없습니다.》
…
《결국 기관을 새로 내와야 한다는건데…》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송수화기를 잡으시던
《전화로 사업얘기를 했다가는 또
청신한 숲속 공기가 바람을 타고 흘러들었다.
《좋구만! 어떻소, 송봉동무. 한번 쏴보지 않겠소?》
사격을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옛 친위중대출신의 로병인 박송봉은 대뜸 입이 벙실해졌다. 다른건 몰라도 사격이라면 늘 한발 나서는 그였던것이다. 기계공업부장은 좀 난감해하였다.
《그럼 나갑시다.》
사격장은 오리나무숲이 울을 치듯 둘러싼 공지에 남북방향으로 자리를 잡고있었다. 각이한 목표를 사격할수 있게 꾸려진 그곳에는 이미 몇개의 흰병들이 줄에 매달려 흔들거리고있었다.
《기계공업부장동무는 고정목표를 쏘지 않겠소?》
화선에 놓인 세자루의 권총을 번갈아 잡아보시며
《아닙니다. 락제를 해도 같은 목표를 쏘겠습니다.》
《허허, 배짱이 좋소. 역시 중공업이요.》
세자루의 권총중 한자루를 손에 드시고 총구가 우로 향하도록 팔굽을 세워드신
《이 총은 우리 로동계급이 만들어낸 새형의 무기요. 전번에 내가 한번 쏴보고 몇가지 결함을 지적해주었댔는데 어떻게 시정했는지 좀 보기요. 목표는 25메터밖에 있소.》
능란한 솜씨로 탄창을 박아넣으신
그다음은 자동무기처럼 련속 총탄이 발사되고 노란 탄피들이 재주를 부리듯 껑충껑충 튀여올랐다. 목표가 차례로 사라졌다.
몇발이나 쏘셨는지…
얼른 목표를 세여본 박송봉은 아직도 일곱발이 남아있다는것을 알았다. 그런데
《세가지만 말합시다. 우선 첫째…》
아홉번째 총성이 울렸다.
열번째 총성이 울리였다.
박송봉은 그 말씀이 비단 봉화기계공장만을 념두에 두신것이 아니라는것을 느꼈다. 경제사업에서 일정한 난관이 조성되자 일부 당일군들은 자기의 본분을 잊고 생산을 책임진다는 미명하에 부지배인이나 부기사장, 경우에 따라서는 총지배인처럼 행세하고있었다. 그 대표적인 실례가 김경조라고도 할수 있었다. 그런 허점은 가려보지 못하고 그저 당비서의 기질이 마음에 든다는 식으로 감상주의적인 사업보고를 올리지 않았던가.
열한번째 총성과 함께
《하하하! 공장당비서가 뙤창문출입을 했다? 여하튼 김경조, 그 기질만은 썩 마음에 드오. 그런 당일군이 범한 결함이라면 내 따라다니면서라도 깨끗이 털어주고싶소.》
나머지 네발의 총성은 련거퍼 울리였다.
박송봉에게는 세번째 권총을 쥐여주시였다.
《이 총은 시험적으로 방아쇠의 곡률반경을 좀 변경시켜본것인데 손가락에 딱 물리는감이 있으면 합격이요.》
두사람의 총소리는 떠듬떠듬 울리였다.
박송봉은 열한개를, 기계공업부장은 네개를 맞혔다. 박송봉으로서는 유감스러운 결과였으나
《둘째로… 일부 경제지도일군들은 조건타발만 앞세우면서 무슨 과업을 주기가 무섭게 돌아앉아 당중앙위원회에서 도와달라고까지 제기하고있소. 이것은 사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당에 넘겨씌우는 행위나 같소. 봉화기계공장에서 새 기계를 개발하는 문제도 그렇소. 지금 일부 일군들이 당결정, 당결정 하면서 선을 긋고있다는데 들여다보면 그 역시 뒤집어놓은 넘겨씌우기란 말이요.》
찔레덩굴이
박송봉이 놀라며 슬그머니 뒤로 반보쯤 물러났다. 두사람이 나란히 걷기에는 폭이 좀 비좁은 길이였던것이다.
《겸해서 본위주의에 대해 말한다면 아무개공장이 무엇을 만들려고하니 다른데서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그자체가 벌써 본위주의요. 리정, 김경조… 그들의 지향이야 얼마나 훌륭하오. 속담에 도깨비도 수풀이 있어야 재주를 피운다고 결함은 결함대로 따지더라도 일을 할수 있게 조건과 방도를 찾아주어야 했을것이요. 적어도 일군이라면 말이요. 그 검사가 용소. 사실 난 동무가 봉화기계공장에 내려갈 때 몇가지 부탁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댔소. 그런데 보시오, 결론은 그들이 애국자라는것뿐이요.》
《지금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4차전원회의 결정을 관철하기 위한 연구사업이 과학자, 기술자돌격대활동을 위주로 진행되고있는데 그렇게 되면 해당 단위들에서 그때그때 제기되는 문제들은 풀수 있으나 전략적이며 통일적인 사업으로는 될수 없소. 아무래도 전문연구집단을 내오는 문제를 생각해봐야 할것 같소.》
《예, 연구해보겠습니다.》
짧은 채양을 얹은 현관 량옆에서는 금시 퍼지는 안개모양을 한 두그루의 누운향나무가 쌍둥이처럼 자라고있었다. 그사이에 놓인 희끄무레한 화강석계단우에 한발을 짚으신
《그 김책공대연구사 말이요, 만나보니 어떻소?》
결국 마지막 세번째 문제는 리정에 대한것이였다.
박송봉은 잠시 생각하다가 젊은 동무인데 보는 눈이 높고 조직력과 수완도 있어 앞으로는 큰일을 맡길만 하더라고 말씀올렸다. 리정의 목소리가 화술배우를 찜쪄먹게 좋아서 《김책공대마이크》라고도 한다는것과 수영을 특별히 즐기며 옷차림을 가꾸고 사유적인 측면에서는 경직과 보수를 찾아볼수 없는, 한마디로 현대판이라고 평하였다.
안팎으로 볶이우면서도 온덕수의 아들을 데려다가 공부까지 시키고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마당가를 거니시였다
《우리 주위에는 두눈을 펀히 뜨고서도 현실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 있는가 하면 한눈을 잃고서도 그렇게 래일에로 향한 창문을 열고있는 사람도 있소. 사실 천냥 몸값에 눈이 팔백냥이라는 식으로 계산을 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거요. 우리 시대에는
《예.》
《안시학동무의 소식을 알고있소?》
《얼마전에 우리 계획국장동무가 안흥에 내려갔던 기회에 식사라도 한끼 나누려고 했는데 아예 만나주지도 않더랍니다. 하지만 로동자들속에서 들려오는 반향은 좋다고 합니다.》
《음, 그렇단 말이지.…》
《좀 있으면 안시학동무의 생일이요.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서 생일을 맞으니 얼마나 생각이 많겠소. 나 대신 동무가 좀 가주오, 쌍둥이딸들을 끔찍이 고와하는데 그들의 안부도 전해주고.》
작별에 앞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