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회)
제 1 편
제 1 장
4
광복거리의 시원한 대통로를 따라 질주하는 차안에서
볼수록 마음에 드는 궁전이였다.
날개달린 황금마차를 타고 동화의 세계로 날아오르는 아이들의 모습을 형상한 아동군상이 차창옆으로 서서히 비껴지나갔다.
4월의 명절을 맞으며 공연을 준비하는지 손풍금과 가야금, 깜찍한 애기북통을 멘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계단을 오르고있었다.
이렇듯 웅장한 아이들의 집을
식수모임장소에 도착하신
《차수동지가 제일 모범적으로 출석을 그었나봅니다.》
《차수는 무슨, 오늘이야 그저 오아바이이지요.》 하며 다가온 오진우가
《그야 뭐 어렵겠습니까. 오아바이와 함께 나무를 심으면 나로서도 좋은 기념이 될겁니다. 이 분홍꽃아카시아가 어떻습니까?》
여긴 내 자리요 하고 선언하듯 오진우는 부근한 땅에 삽날을 쿡 박았다.
《참, 인사가 늦었습니다. 서평양베아링공장에 남자로력이 부족하다기에 걱정했댔는데 어느새 알고 끌끌한 제대군인들을 보내주었더구만요.》
《에, 그건 제가 받을 인사가 아닌줄로 압니다. 당이 이런 문제를 걱정하더라 하니까 저마끔 가슴을 두드리며 나서는데 다 받아줄수는 없고해서, 제가 땀을 뺐다면 그뿐입니다.》 하고 오진우는 눈귀에 진한 주름을 그리며 흐무러지게 웃었다.
봄바람에 싱그러운 풀냄새가 가볍게 실려왔다.
식수준비를 하고있던 아이들이 와 하고 달려나가
《여기서 조금 가면 우리 집이 있다. 난 오늘 손자, 손녀들을 거느리고 고향집울밖에 나무를 심으러 온 기분이다. 정말 좋구나.》
식수모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외교부에서 올려보낸 자료들을 읽었소?》
《예. 읽었습니다.》
쏘련의 정치정세와 관련하여 하시는 말씀이시였다.
《아무래도 금년중에 무슨 일이 날가보오.》
쏘련공산당은 지난해 7월에 있은 당 제28차대회에서 당의 령도권포기를 공식 선포하였다. 석달후 쏘련최고쏘베트는 《쏘련공산당이 쏘련사회의 지도적 및 향도적력량》이라고 규정한 헌법 제6조를 페지하였으며 그에 따라서 1991년 4월 11일 쏘련공산당은 사법성에 일반정당으로 공식등록을 하였다.
맑스의 철학이 낳은 첫 사회주의국가로서의 쏘련의 해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였다. 커다란 하나였던것이 몇개의 쪽으로 갈라진다는 도형학적인것이 아니였다. 수십년간 그를 위수로 하는 《사회주의경제공동체》의 테두리안에서 국가활동과 경제건설을 하여온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인 경우에는 함께 《순장》을 각오해야 하는 비극적사변이였다. 뒤따르게 될 사회주의시장의 붕괴는 우리의 경제건설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수 있었다.
《무역계통이 제일 난색이더구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계공업부문이나 화학공업부문도 마찬가질게요. 그래서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공장, 기업소들을 찾아갈 때마다 주체다, 주체! 하고 말을 해주군 하였는데 우리 일군들이 귀담아듣지 못했거던. 주체라는 말을 책에나 적어가지고 다녔소.》
세계는 이렇듯 급변하고있는데 아직도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 매달려있는 일군들이 적지 않았다. 하기에 새 세기를 향한 경제건설은 무엇보다 사람들의 낡은 사상관점부터 돌파해야 성과적으로 수행될수 있음을
《그래서 시간이 나는 차제로 무역부문 사람들을 불러다가 이야기를 좀 나눠볼가 하는데, 어떻소?》
《그렇게 조직사업을 하겠습니다.》
《사실 무역이 일을 쉽게 하자고 해도 우리가 국제시장에 뚫고들어가 으를수 있는 독점지표가 몇개는 있어야 하오. 례하면 수자조종공작기계 같은것 말이요. 우리가 돈이 많아 돈을 뿌리면서 시장을 개척하겠는가. 두뇌를 가지고 세계와 맞서야 하오.》
《일전에 연형묵이 갔던 나라에서도 우리와 신용장을 개설하자고 하더라오. 그걸 놓고 청산결제를 하자는것인데… 결국 맞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겠다는거요. 참, 수자조종공작기계분공장건설은 어떻게 되여가고있소?》
《기본생산건물은 이미 완공단계에 들어섰고 저수지와 도로망공사도 예정대로 진척되고있습니다. 설비제작정형을 본다면…》 잠시 기억을 더듬으시듯
《몇대요?》
《19종에 32대입니다.》
《나쁜 사람들이야.》
이미 계약된 설비들임에도 불구하고 주겠다, 못 주겠다 가탈을 부리는 사람들의 올곧지 못한 처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시였다. 하기는 그것도 지나간 일이 되고말았다. 동유럽을 휩쓴 자본주의복귀바람이 체약국들 그자체를 삼켜버리게 된것이였다.
《옳소, 기계공업부문 현대화의 총적방향은 국산화요. 이것만은 절대로 달리 될수 없소.》
올해 정초에도 대소한의 추위를 무릅쓰고 기계공업부문의 공장, 기업소들이 집중되여있는 평안북도에 내려가 도당전원회의 확대회의를 지도하시면서 기계제작공업을 발전시킬데 대하여 간곡히 말씀하신
《한유준이?… 아, 생각나오. 희천기술자! 1만대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때 프로그람다인자동반을 만들었던 동무가 아니요?》
《그렇습니다. 지금은 안흥공작기계공장 설계사업소에서 일하고있는데 그가 5면가공반제작을 자진하여 맡았다고 합니다.》
《그는 해낼거요. 한번은 도이췰란드에서 만든 수자조종공작기계를 사진찍어 보내준적이 있었는데 한주일쯤 지나 희천에 가보니 그가 우리 공장에서도 이런것을 만들어보겠다고 하지 않겠소. 당 제6차대회를 앞두고 정말 해냈지. 어디 류학을 갔다온것도 아니고 공장대학을 나온 동무인데 이것만 봐도 학력에 앞서서 사상적준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수 있소.》
《그래서
《조선지식인대회, 붓의 대회라!》 명칭부터가 마음에 드시는듯 곱씹어보시던
한겻새 집무탁우에는 또 많은 문건들이 쌓여있었다.
-북남고위급회담 제4차회담 준비와 관련한 보고서 우리측 단장이 제기하려는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에 관한 선언(초안)
②북남불가침에 관한 선언(초안)
③북남화해와 협력, 교류에 관한 기본합의서(초안).
-우리 나라의 유엔가입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들에 대하여 보고드립니다. 오는 9월에 열리게 될 유엔총회 제46차회의에서는 우리 나라를 유엔성원국으로 받아들일데 대한 문제가 토의되게 됩니다. 외교부에서는…
-
문건을 번지기가 한순간 서슴어지시였다.
침착하고 일밖에 모르는 최윤동지배인이며 거쿨진 체구에 어깨가 좀 우그러들사한 김경조의 모습도 떠오르시였다.
《이렇게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결정에 대한 몰리해로부터 봉화기계공장 일군들은 본위주의와 주관적욕망에 사로잡혀…》
밑줄을 그으시였다. 물음표를 치시였다.
종시 문건을 덮고 일어서신
(본위주의와 주관이라…)
주관이 훌륭했던적은 력사의 어느 시기에도 없었다.
우리 당이 내놓는 모든 사상과 로선들은 어느 개인의 생각인것이 아니라 바로 광범한 대중이 안고있는 지향의 반영이기에 그렇듯 힘있고 정당한것이다. 청년지식인들의 심장속에서 불타는 열망으로 끓어오르고 농촌집 퇴마루에서 로인들의 써레기연기와 함께 피여오르는것, 아이들이 어머니의 옷자락에 매달려 칭얼거리고 녀인들이 빨래를 비비다가 문득 손을 멈추고 생각하는것… 그 모든것을 귀중히 반영하여 구호로 높이 드는것이 바로 우리 당이다. 그런데 이 보고서를 만든 제안자의 마음속에는 리정이나 온덕수, 김경조가 체현되여있었을가? 없었을것이다. 이름만 올라있을뿐 그들이 품고있는 가슴속의 지향과 진정은 이 보고서에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법적으로 승인된 기관, 기업소들에서만 외화거래를 할데 대한 규정과도 어긋나는것이며 더우기 국내산이 아닌 일부 부분품들은 그 구입출처마저 명백치 않아 우려됩니다. 해당 법기관에서 초보적으로 료해한데 의하면…》
보고서의 또 한구절이 눈앞에 흘러갔다.
주위에 보이는 모든것이 새삼스러운 사색을 불러일으켰다.
작게는 책상우에 놓인 연필로부터 멀리서 들려오는 렬차의 기적소리, 아득한 우주공간에서 돌고있는 천체들의 움직임과 그 운동을 해명한 온갖 법칙이며 공식이며 정리들이 가까이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고있는듯 했다. 지금은 그것이 신비하지 않다. 그러나 언제인가는 그것이 신비로왔다. 그것이 신비할 때, 그것을 신비하지 않은 진리로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목숨도 바쳐야 했다.
왜? 낡은것이란 스스로 물러나는 법이 없기때문이다.
력사는 그 낡은것의 값을 훌륭한 사람들의 필생으로 치른 뒤에 그들의 이름을 이렇게 적어서 후세에 남겼다. 선각자!…
그러한 사람들은 지금도 태여나고 활동하고있다.
우리는 그들을 보호하고 지켜주어야 한다. 지금은 지동설을 목매달던 중세가 아니며 우리의 법정에는 죠르다노 부르노의 발밑에 불뭉치를 내던지던 종교재판관들이 앉아있지 않다.
여기까지 생각하신
좀 기다려서야 백무화학공장에 나가있던 박송봉과 련결됐다.
《봉화기계공장에서 제기된 자료를 보다가 알고싶은게 있어 전화를 걸었소. 이 문건을 작성해서 올려보낸게 누굽니까?》
《기계공업부 안시학부부장동무입니다.》
안시학의 이름이 나오자
《안시학이?!… 그가 지금 어데 있습니까?》
《수자조종공작기계분공장에 들여올 수입설비때문에 외국출장중입니다. 19일경에 국제렬차로 돌아온다는 련락이 왔습니다.》
《분공장에 넣을 수입설비를 해결해온다?》
《예. 저도 방금 보고를 받았는데 안부부장동무가 이번에 일정한 성과를 거둔것 같습니다. 신의주교두에서 특수설비 3대를 곧장 분공장까지 이관하고 평양에 올라오겠다고 알려왔답니다.》
안시학이 그 짧은 시일내에 수자조종공작기계생산에 필요한 특수설비를 3대나 해결해온다면 성과가 아닐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박송봉의 어조도 좀 떠있었다.
《제가 마침 평북도에 와있던바에 신의주역까지 마중을 갈가 합니다. 가능하다면 기술자들도 몇사람 데리고 가겠습니다.》
《알겠소, 평양에 도착하면 함께 나에게로 오시오. 그리고…》
다른 전화기가 번거롭게 울어대자
《전자자동화공업위원회에서는 큰 문제가 풀렸다고 기뻐하는 반면에 그들이 너무 욕심을 부린다는 말들이 좀 있습니다.》
《욕심을 부린다?》
《난 사실 그들이 조직된지도 얼마 안됐고해서 오히려 다른 단위들에 눌리울가봐 걱정을 했더니, 이번 기회에 일군들이 인재쟁탈전을 겪어보는것도 나쁘지는 않을거요.》
가벼운 어조로 말씀을 마치시였으나 마음이 개운하지 못하시였다. 봉화기계공장에서 벌어지고있던 새 기계의 개발을 중지시키고 한편으로는 우리의 로동자, 기술자들이 자체의 힘으로 생산할것을 궐기해나선 설비들까지 부디 외국에 나가 끌어들인 안시학의 처사에 의문이 생기는것을 어쩔수 없으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