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회)
제 1 편
제 1 장
2
봉화기계공장은 수도에서 멀지 않은 교외에 자리잡고있었다.
력사는 자못 짧지 않아서 거슬러보면 멀리 해방후 산업성 기계공업관리국아래 발족했던 평양기계제작소에 가닿는다.
빨찌산출신의 유명한 지휘관이 있던 보안부대대며 또 무엇이며 하는 단위들이 이쪽저쪽으로 둘러앉은 넓은 평천벌의 한모통이에 조심스럽게 내걸렸던 공장간판은 후날 평양중앙기계제작소로 명칭이 바뀌였다. 그후 전쟁으로 파괴되고 소개도 하면서 적지 않게 시련을 겪은 공장이 재더미를 헤치고 다시 일떠선것이 오늘의 봉화기계공장이였다. 나라의 경제가 비약적인 장성을 기룩하던 1960년대, 1970년대와 더불어 공장의 규모도 커졌다. 지배인방에서 내다보느라면 아치형의 옛스러운 모양을 한 창문틀안에 그것도 널널이 들어앉아있던 공장구내가 오늘에 와서는 한겻품에 돌아볼수 있는 거대한 기계공업기지로 변모되였다.
출장길에서 달아오른 바퀴도 식힐새없이 달려온 안시학이 도착인사겸 지배인 최윤동의 방에 들렸을 때 그는 긴 쏘파에 반쯤 드러누워서 혼자서 불편스럽게 혈압을 재고있었다.
《아, 그냥 누워계시오, 내 도와드릴테니.… 》
안시학이 만류했음에도 최윤동은 팔에 두르고있던 압박대를 풀며 몸을 일으켰다. 염색물감이 다 빠져서 불그레하게 탈색된 머리카락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경황없는 나날을 보내고있는지 짐작되여 사고소리가 쉽게 입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 사고때문에 오셨소?》
최윤동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안시학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응대하였다.
《일을 하느라면 사고를 낼수도 있는거지요. 몸도 불편한것 같은데 안내자로 적당한 사람이나 붙여주시오.》
최윤동이 전화로 강습간 김경조를 대리하고있다는 부비서를 찾아 몇마디 합의를 하는것 같더니 붙여준 사람이 최수광이였다.
청이 센 머리카락에 기름을 발라 뒤로 빗어넘긴 그는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턱이 뭉실하고 몸집이 실했다.
그에게서 사고의 동기를 대략 파악하는 과정에 안시학은 간과할수 없는 문제에 부닥치게 되였다. 김경조의 발기로 봉화기계공장에서 줄방전가공반(콤퓨터수자조종줄방전가공반을 그렇게도 불렀다.)을 개발하고있는 사실이였다. 그 대상책임자가 누군가고 묻자 최수광은 로보트설계실장 온덕수라고 대답했다.
안시학은 그부터 만나보자고 했다.
그러자 최수광은 온덕수의 출신과 사회생활경위를 비롯하여 담화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자료들을 요약해서 적어주었는데 그때 안시학은 동작이 둔중하고 생김새가 무릇해보이는 이 사람에게 놀랄만큼 세심하고 진지한 성미가 내재되여있음을 느꼈다.
최수광은 지난해 온덕수가 가정적인 불행을 겪은 후로 신경이 몹시 약해졌다고 하면서 담화과정에 지나친 부담을 주지 말았으면 하는 의견까지 제기했다.
온덕수는 과연 모든 의욕을 잃은것 같았다. 줄방전가공반개발을 왜 심중하게 대하여야 하는가를 설명하자 군말없이 들었고 연구사업을 중지해야겠다는 의견에도 덤덤한 표정이였다. 대상책임자라면 적어도 어떤 정당성을 설명할줄 알았는데 담화가 너무 싱겁게 끝나 놀랍기까지 했다. 공장대학을 나왔다는 그의 학력부터가 미덥지 않았다. 아무렴 노루가죽에 무늬를 그려준다고 범노릇 하겠는가.…
온덕수가 돌아가자 안시학은 물었다.
《저 사람을 책임자로 내세운게 당비서요?》
《예, 그와 김책공대에서 온 연구사동무가 주동이 되여 합동연구를 진행하고있습니다.》 하고 최수광은 대답하였다.
《김책공대에서? 어떤 사람이요?》
《리정이라고, 나이는 젊습니다만… 우리 공장과는 별나게 인연이 얽힌 동뭅니다. 공화국창건 40돐기념 공작기계전시회때 우리 공장에서 출품한 로보트를 살려준 동무지요.》
《아! 들은 생각이 나오.》
안시학이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소문이 짜했댔지.
《예, 그렇게 됐더랬습니다.》
《그럼 그도 제꺽 만나보기요.》
《그 동무만은 현지에 나가서 만나보는게 어떻겠습니까?》
《그건… 어떻게 하는 말이요?》
《다른게 아니라 그 동무의 성격이 좀 특별해놔서…》
《특별하다? 허허, 정 그렇다면…》
어떻게 특별한지는 알수 없으나 안시학은 기꺼이 응했다.
그 기회에 개발조성원들을 만나보는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들은 공장후문쪽에 자리잡은 로동자합숙으로 향했다. 합숙뒤마당에 공장후방부에서 쓰던 부식물가공칸을 개조한 단층건물이 있었는데 거기서 전자자동화부문의 《흔치 않은 수재》들(김경조의 표현이기는 하지만)이 콤퓨터수자조종줄방전가공반을 연구개발하고있었다. 바로 그 《흔치 않은 수재》들이 얼마전 공장의 핵심설비들중의 하나인 도이췰란드제 2차원가공수자조종후라이스반을 태워먹는 사고를 저지른것이였다.
그날 자정이 깊어 공장을 돌아보던 최수광은 1가공직장에서 나는 말소리를 듣고 우연히 찾아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리정과 온덕수가 머리를 맞대고앉아 수자조종후라이스반을 통채로 분해하고있었던것이다.
불과 반년전에 들여온 외아들설비였다.
최수광이 나타났을 때에는 이미 2차원가공을 수행하는 두 조종축과 볼나사, 걸음전동기, 유압원 등이 분리되여있었고 설비의 핵심부라고도 할수 있는 수자조종장치는 가능한 최소단위로 분해되여있었다. 재조립할 때 삭갈리지 않기 위해 요소별로 꼬리표를 달아놓는 일을 맡은것은 공장사람들속에서 일명 《멱반장》이라고도 불리우는 1가공직장장 장현국이였다. 최수광으로서는 이 일을 벌려놓은 장본인인 리정을 추궁하는것이 옳겠지만 어째서인지 자기 공장사람인 온덕수에게 먼저 눈길이 갔다.
《실장동무, 어쩌자고 이런 일을?!…》
《아침까지 제대로 해놓겠으니 마음놓으시오.》
대답은 리정이 하였다.
《그럼 나도 아침까지 여기 있겠소.》
《그건 어째서 말입니까?》
어째서라니? 리정의 말이 몹시 귀에 거슬렸다.
그것은 단순한 물음이 아니라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들사이에 의연 존재하는 미묘한 간격을 암시하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불현듯 최수광은 언제 보아도
아침도 못 먹고 달려나온 최윤동이 누가 제멋대로 이따위짓을 벌려놓았는가고 따져물을 때 최수광은 나도 지난밤 현장에 있었노라고 자인해나섰다. 그 말은 마치 최수광자신도 그 일에 개입했다는 소리처럼 들렸지만 정정하고싶지는 않았다.
그것도 리정이 보는 앞에서… 결국 놓은지 얼마 안되는 설비를 페기시키니, 어쩌니 소동이 벌어지고 안시학까지 공장에 내려오게 된것이였다.
《우리쪽에서는…》 하고 안시학이 자기가 맡아보는 산하공장이라는 데로부터 봉화기계를 《우리》라고 칭하며 물었다. 《온덕수동무말고 또 누가 이 일에 동원되여있소?》
《기술과와 로보트실에서 각각 한사람씩입니다.》
《하여튼 그 사람은 귀가 큰게 약점이야.》 하고 안시학이 중얼거렸다. 리정을 공장에 데려온 김경조를 빗대놓고 하는 소리였다.
《참, 우리 당비서동지와 오랜 친구지간이라던데…》
《동무도 귀가 크구만.》 안시학은 껄껄 웃었다. 《김경조, 원래 산골태생이였지. 고중을 나오자 몇년간 집에서 농사를 짓다가 남포에 있는 전문학교에 입학했는데 졸업후 기계공업위원회(당시)아래 설계기관에 배치받게 되였소. 그런걸 평양에까지 올라와 떼를 써서 조선소현장배치를 받아갔다오. 나도 그때 갓 대학을 졸업하고 기계공업위원회에 미배치생으로 대기중이였는데 독신자합숙에서 한 보름 같이 딩구는 새 친구가 되고말았지.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얽히고 저렇게 풀리면서 이 나이가 됐소. 하여튼 김경조의 뿔이라 하면 그때 벌써 유명했소.》
안시학이 봉화기계공장에서 문제가 제기되자 계획했던 사업을 뒤로 미루고 달려온데는 직책상 책임도 책임이거니와 김경조와의 깊은
안시학자신부터가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4차전원회의 결정관철을 위해 조직된 614중앙지휘부성원으로서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잘 알고있었다. 불집이 커지기 전에 조용히 처리해보자고 결심한 안시학에게는 김경조나 온덕수보다도 타기관에서 데려온 연구사가 걱정거리였다. 그가 점잖은 손님이라면 눈치를 보고 조용히 물러갈것이요, 그렇지 않고 자기를 이 일에 끌어들인 공장일군들을 걸고든다거나 하면 복잡해질수도 있었다.
《온실장은 다른게 없겠고… 그 김책공대동무 말이요, 어떻소? 동무생각엔 조용히 물러나겠다고 할것 같소?》
《예?! 그를 또 대학에 돌려보내자는겁니까?》
《또?!…》 안시학이 예민하게 되뇌이였다.
최수광의 말을 들어보면 마치 줄방전가공반을 개발하는 일이 3년전 공작기계전시회로부터 한맥을 타고 흘러오는듯 했다. 그의 추측도 정 틀리는것은 아니였다. 그때 전시회장에서 리정을 다시 만나게 되였을 때 최수광은 놀라는 한편 반가왔었다. 그의 고향에 대한 추억속에서 리정은 그만큼 진한 바다가소나무에 맺혀 흐르는 송진처럼 진득하고 생생한 향기를 풍기는 존재로 나타나군 하였다. 이사가는 날까지도 승부를 다투자고 찾아왔던 소년, 허나 그것이 전혀 불쾌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서 리정이 아니겠는가!
지나치게 강렬하고 집요한것 같지만 그 성격이 과학자로서의 목적지향에 부합될 때에는 생을 촉진하는 에네르기가 될것이며 그런 사람이 성공한다고 최수광은 믿어의심치 않았다.
3년전 공작기계전시회장에서 리정이
(리정이 나에게 곁을 주지 않는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개인적감정을 따지기에 앞서 그는 분명 아껴주어야 할 재사인것만은 틀림없다. 더구나 당일군이라면 과학자, 기술자들의 생활을 책임지고 돌보아주는것이 원칙이 아니겠는가?)
《저 집이요?》
《예?!》
안시학의 목소리에 최수광은 눈길을 들었다.
진흙물을 풀어 바른 건물벽에 의지하여 둬뽐가량 될가말가한 울바자를 둘러친 꽃밭이 보였다. 전에는 없던것인데 아마 요 며칠사이에 일구어놓은것 같았다. 기와대신 스레트지붕을 올린 단층건물에는 《성원외 출입금지》라는 글까지 나붙어있었다.
안시학은 《나도 〈성원외〉에 속하는가?》 하고 롱담을 하며 갓 벵끼칠을 한 널문을 열고 들어갔다. 천정이 낮은 집안에는 벽시계가 걸려있었고 바른켠에 단계별연구계획이 도표로 걸려있었다.
각종 전자기판, 참고서와 연구자료들도 보였다.
《누가 리정동무요?》
《연구사동문 지금 없습니다.》
땜쟁이처럼 고대를 달구고있던 사람이 일어서며 대답했다.
《어데 갔소?》
《수영하러 갔습니다.》
《뭐요?! 수영?…》 안시학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예, 저기 은정원수영장에… 점심시간이 아닙니까.》
봉화기계공장에는 물놀이장까지 갖춘 은정원이 있었다.
게다가 때는 점심시간이니 그럴 리유는 충분하다는것이였다.
《정서가 있소.》 하고 안시학은 껄껄 웃었다.
역시 큰사람인지라 그는 정황에 개의치 않고 표정을 관리할줄 알았다. 이때 뒤에서 《누굴 찾습니까?》 하는 울림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수영복주머니를 옆구리에 낀 젊은 사람이 키가 어깨바루에 오는 소년과 함께 서있었다. 머리칼이 푹 젖은 소년은 아직도 어느 백사장에 나선 기분인지 색안경을 끼고있었다.
《리정동뭅니다.》 최수광이 소개했다.
리정은 젖은 머리카락을 빗질하여 깨끗이 가리마를 타넘겼는데 날이 선 코마루와 반짝거리는 작은 눈매로 하여 상대하기 조련치 않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몸집은 보통인데 목소리는 웅글고, 어쨌든 뭔가 비대칭적이고 불안정한것이 첫인상부터 그닥 좋지 않았다.
《연구사동무, 나 좀 볼가?》
《난 먼저 가겠어요.》
소년이 눈치있게 자리를 피했다.
《누구요?》 안시학이 물었다.
《온실장의 아들입니다.》
《그 눈을 다쳤다던 아들?》
《예.》
(아, 그래서 색안경을 끼고있었구나.)
안시학은 널문앞에서 물러나 살구나무들이 늘어선 길쪽으로 걸음을 선도했다. 리정은 반보쯤 간격을 두고 따라왔다.
《연구사동무가 공장에 찾아온데 대해서는 리해가 가오.》
말을 뗀 다음에야 안시학은 김경조의 초청을 받아왔다고 하는것이 더 정확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친김에 그냥 이야기했다.
《과학연구를 생산에 접근시키는 견지에서 봐도 그렇고 설비사고문제는 더 론하지 말기요. 보다 심각한 문제들이 있소.》
그 심각성을 강조하듯 안시학은 걸음을 멈추었다.
《동무도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결정을 알고있겠지?》
《알고있습니다.》
《그와 관련한 정무원결정 78호도 전달받았겠고…》
《예,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줄방전가공반을 개발한다?》
리정의 대답이 스스럼없이 흘러나오는데 대해 안시학은 다소 불쾌한 인상이였다. 리정의 낯빛도 달라졌다. 안시학이 무엇을 말하고저 하는가를 알아차렸던것이다. 그때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는 수자조종선반은 어느 공장에서 만들며 줄방전가공반은 어디서 개발할것이라고 단위명까지 구체적으로 찍어서 과업을 분담하였었다.
봉화기계에서 무엇을 개발한다는 결정은 없었다.
《…그래서 지금 당에서는 해당한 단위들에 본격적인 투자와 건설을 진행하고있소. 그런데 여기서처럼 저마다 연구요, 개발이요 판을 벌려놓고 당결정을 가위질하려든다면 어떻게 되겠소? 그 일에 적지 않은 생산용자재와 자금까지 돌려쓴것 같던데 일이 잘못되면 공장일군들이 어떻게 되겠는지 생각해봤소?》
《…》
《그래서 어쩌면 좋겠는가?》 안시학이 자문하듯 했다. 《내 생각엔 동무가 당분간 이 공장을 뜨는게 어떻겠는가 하는거요.》
《예?! 공장을 뜨라구요?》
리정의 목소리가 랭랭해졌다.
《다르게 생각지는 마오. 동무야 이제라도 짐을 싸가지고 떠나가면 그만이겠지만 여기 일군들이야 어디 그렇소?》
《그렇다면… 한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어서.》
《방금 부부장동지도 당정책에 대해 말씀했는데, 제 알기에는 당에서 공작기계공업과 전자, 자동화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과학기술운동을 대중적으로 벌리라고 했지 언제 아무개 공장, 아무개의 운동으로만 벌리라고 했습니까?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후날 생산은 어느 공장이 맡아하든간에 연구사업이야 왜 못하겠는가? 조선의 과학자라면 뺨을 맞으면서라도 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이것을 당결정의 외곡집행으로 보아야 합니까?》
몹시 까다롭고 자극적인 발언이였다.
(과연 록록치 않은걸. 하긴 그러니까 김경조도 훌 업히웠겠지. 여하튼 인물이야. 잘 도와주면 어느때인가는 큰일을 치겠어.)
《그건 연구사의 소리고… 나도 례법에 없는 가라 소리를 하기가 멋적소만 그렇게 하는것이 동무자신을 위해서도 좋을거요. 일단 문제가 터졌으니만큼 형편이 너그러워질 때까지 기다려달라는건데… 여기 일군들의 립장도 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가?》
리정은 고집스레 침묵을 지켰다.
어쨌든 그만했으면 말뜻은 알아들었으리라고 생각한 안시학은 그럼 이렇게 락착이 되였다는듯 리정의 등허리를 툭툭 쳐주는것으로써 작별인사를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