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 1 편
제 1 장
1
1991년의 시작은 무엇이나 류달랐다.
정월변덕에 꽃망울이 맺힌다는 희귀한 소문들이 울려나오는가싶더니 2월 하순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들이닥친 한파에 감고장으로 유명한 강원도 김치독이 깨여져나가는 판이였다. 황룡산구렝이가 굴속에서 얼어 죽었더라고도 하였다.
평양에서 1991년인민경제발전계획을 완수하기 위한 정무원결정 제1호가 채택되고있을 때 지구의 다른 한쪽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있었다. 1월 17일 현지시간으로 새벽 2시 30분에 미군주도의 다국적군의 공습으로 시작된 일명 만전쟁은 예상과는 달리 지속시간 6주, 지상전개시 4일만인 2월 28일에 종결되여 세상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아라비아반도의 머리우에서 한껏 완력을 뽐낸 미국은 그만 스스로 감격해져서 갓 입직한 규찰대원처럼 열심히 새로운 《세계질서확립》에 떨쳐나섰다.
연단에 나선 《각하》들은 저마끔 《북핵의혹》을 목놓아 웨치였고 어느 석간신문엔가는 달아오른 총신에 대고 조선의 이름난 성천담배를 붙여무는 미해병대원의 용맹한 모습이 만화로 실렸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리해할수 없는 평화적건설이 한창이였고 봄철에 들어서자 년례대로 수많은 사관들이 제대되여 고향으로 돌아가고있었다. 상사 황창일도 그들중 한사람이였다.
그가 대학추천을 받고 부대를 떠나올 때 그의 지휘관은 두손을 뜨겁게 잡고 흔들어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학습도 공병처럼 하시오!》
《알았습니다!》
발뒤꿈치를 딱 모으며 대답은 그럴듯하게 했으나 그 뜻이 무엇인지 사실은 아리숭했다. 요란한 박수갈채와 꽃보라, 꽃테프, 통신병처녀들이 쥐여주던 《최우등》이 새겨진 하얀 손수건…
축하와 환송의 도가니속에 얼벌벌하게 볶이우고나서 창일은 지휘관의 말을 다시금 생각하였고 제나름대로 결론지었다.
공병! 우리가 복무한 병종처럼 성실하게, 꾸준하게.…
떠나기 앞서 그는 병사로서 자기의 땀방울이 깃든 마지막창조물을 돌아보았다.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4차전원회의 결정에 따라 안흥땅에 일떠서는 수자조종공작기계분공장이였다. 때마침 설비납입문제로 공장에 내려왔던 기계공업부 부부장 겸 대상설비종합납입국 국장 안시학이 평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를 자기의 차에 태워다주기로 하였다.
달천강을 옆에 끼고 뻗어나간 토사도로를 따라 차는 달렸다.
간혹 군용승용차는 타보았지만 고급승용차가 처음인 창일은 아래도리를 쑥 빨아들이는듯 한 좌석과 은근히 풍겨오는 향수내에 정신이 다 어리어리해지는것 같았다. 그러나 평양으로 간다는, 그것도 이름있는 대학의 제대군인수험생으로 간다는 생각으로 마음은 가벼웠다. 그가 품속에서 사연깊은
《아, 내가 종합대학을 다녔기에 묻는거요.》
《아니, 전… 김책공대에…》
《그런데?…》 하고 넌지시 안경테우로 빠져나온 눈길이 창일의 손바닥우에 놓여진 대학모표에 떨어지고있었다. 김책공업종합대학에 간다면서 그게 웬 모표냐 하는 눈치였다.
(챠, 그저 등등하면 굿인가?)
창일은 대답을 피하느라 애꿎은 배낭만 무릎우에 추슬렀다.
그러자 너부죽한 얼굴에 소묘용조각처럼 관골이 뚜렷한 안시학은 《배낭이 좀 낡았구만.》 하고 말을 돌렸다. 아닌게아니라 창일은 새 군복에 어울리지 않게 물날은 배낭을 안고있었다.
《저의 옛 분대장동지가 물려준 배낭입니다.》
《오, 력사가 있는 배낭이구만.》
《내가 이 배낭을 메고 대학에 나타나면 놀랄겁니다.》
《하니까 그 분대장도 김책공대에 있다는거겠소?》
《예, 지금은 무슨 로보트연구사라던지…》
말은 뜨아하게 했지만 사실 창일은 며칠전에도 옛 분대장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었다. 그는 창일의 대학추천을 열렬히 축하하면서 평양길에 익숙하지 못한 제대병사를 위해 대학으로 오는 길까지 편지에 구체적으로 설명해보냈다. 렬차로 올것을 타산하여 평양역에서부터 시작한 한페지짜리 긴 설명이였다.
(평양역에서 곧추 나가다가 오른쪽으로 굽어서… 굽어서…)
《한데 동무가 참 아쉽게 됐소.》 하고 안시학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공장조업을 보지 못하게 됐으니 말이요.》
《아닌게아니라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안시학은 공감된다는듯 고개를 끄덕이였다. 보건대 이 성실한 공병상사도 건설부대밥을 적지 않게 먹은 까닭에 산업건설에서는 건축공사가 시작에 불과하다는것쯤은 잘 알고있는것 같았다. 이제 조업이 당겨지는가, 늦춰지는가 하는것은 전적으로 설비납입을 맡은 안시학 자기에게 달려있다고 생각되였다.
《우릴 믿으시오.》
저도 모르게 튀여나간 말이였다.
그런 뒤에야 안시학은 자기가 혼자생각에 옴해서 우아래없는 소리를 했다는것을 알았지만 그런바 하고는 대학으로 떠나가는 제대병사에게 뭔가 속에 있는 말을 해주고싶기도 하였다.
《안할 말 같소만 내가 여기에 왜 왔댔는지 아오?》
대답을 바라는 물음은 아니였다. 담배를 한가치 뽑아든 안시학은 불을 붙일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바로 동무네들이 지은 생산건물에 채워넣을 설비들때문에 왔댔소. 례를 들어 그 공장이 기계낳이를 하자면 베트가공에 쓸 5면가공중심반이라는게 있어야 하는데 지금 외국에서 그 값을 얼마나 부르는지 아오? 그 한대에 자그만치 서해곡창 세개 군이 한해농사로 꼬박 거두어들인 쌀값보다 더 부른단 말이요. 그뿐이 아니지.… 》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릴 하는가?!)
창일은 의아해졌다. 그러니 이 시각도 공사의 완공을 앞당기기 위해 아슬아슬한 트라스우를 배밀이로 넘나들고있을 나의 전우들이 흘리는 땀방울이 괜한것이란 말인가?!…
알지 못할 불쾌감이 서서히 치밀었다.
《하긴 값은 어떻더라도 돈주고 사올수만 있어도 좋겠소. 상사동무, 내가 이런 말을 하는건…》
뒤바퀴쪽에서 팡! 하는 아츠러운 소리가 터지면서 조향륜이 후뜰한것은 그때였다. 운전사가 튕겨일어나고 창일도 순간 당황해졌다. 안시학만이 자세 한끝 흐트리지 않고 자약하니 앉아있었다.
여느때 같으면 은근히 감복하여 쳐다보았겠지만 창일은 마침이라 생각하고 얼른 배낭목을 틀어쥐였다. 고장난 차를 남겨놓고 혼자 떠나간다는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방금 받은 충격이 그로 하여금 빨리 떠나갈것을 재촉하는듯싶었다.
(푹신한 차에 앉아 제대길을 가기로 한것부터가 잘못이였지.)
창일은 두사람에게 량해를 구하고나서 초간한 정주역을 바라보고 씩씩하게 걸음을 옮겼다. 산촌의 맑은 공기에 막혔던 가슴이 확 열리는것 같았다. 마음속에서는 다시 풍선이 부풀어올랐다.
봄, 민들레, 어디선가 들려오는 개울물소리…
양지바른 구릉에서는 애리애리한 새싹들이 아죽아죽 돋아나고 내숭스럽게 들어앉은 골짜기들에서는 해춘의 눈석이가 울며불며 흘러나온다. 우실우실 봄누기가 배여오르는 땅에 코를 쿡 박고 실컷 어푸러져있고싶기도 했다. 종다래끼를 멘 조무래기들속에 섞여 달래를 캐든가 봄갈이하는 젊은 축들과 어울려 민둥씨름이라도 한판 겨루고싶은 봄이였다. 낡은것이란 죄다 물러가는 봄이였다.
(좋구나!)
창일은 상쾌한 산촌공기를 한껏 들이켰다.
불현듯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니! 제가 지금 평양으로 가고있습니다. 어머니가 그처럼 바라시던대로 기계를 배우자고 말입니다. 저의 옛 분대장동지는 말했습니다. 창일이, 사람은 배워야 해, 알아야 혁명에도 충실할수 있어, 배우고 또 배워서 나라에 보탬을 주는 사람이 되자.)
허나 창일은 자기가 그렇듯 잊지 못해 외우는 옛 분대장 리정이 봉화기계공장에서 뜻하지 않던 고충을 겪고있는줄 알수 없었다.
한편 창일을 바래우고나서 안시학은 멋모르는 제대병사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한것 같아 속으로 자기를 나무람하였다. 운전사가 바퀴를 교체하는 동안 안시학은 길가를 거닐며 생각하였다.
(상사라! 참 얼마나 간편한 직무인가. 아마도 저 젊은이의 사고는 기껏해서 소대나 중대틀거리를 벗어나지 않을것이며 그것으로도 자기 책임을 다할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는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4차전원회의이후 나라의 기계공업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한 속에 안흥땅에 우리 나라에서의 첫 수자조종공작기계생산기지가 일떠서게 된데는 자기의 공적도 자그만큼 깃들어있노라고 자부해왔었다.
그런데… 대목장에서 해금통 깨진다더니 그렇게도 철석같던 이웃나라 대방들이 정작 구조물건설이 끝나가고 설비납입문제가 일정에 오르자 약속이나 한듯 죽어가는 소리들을 하면서 피치 못할 《사정》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제는 무슨 수로 공장을 채워놓는단 말인가?
눈앞이 노래지는것 같았다. 그러다가 이틀전에 기계공업부장의 호출을 받게 되였는데 안시학외에도 설비국장, 공작기계지도국장 등을 대동하고 안흥공작기계에 내려온 기계공업부장은 설계사업소의 그중 넓다는 방을 내여 공장안의 기술자, 기능공들을 불러 협의회를 열었다.
5면가공중심반을 자체로 만들수 없겠는가 그 한가지 문제토의였다. 무슨 영화요, 책이요. 하는것을 보면 일군들이 아래에 내려와 흉금을 터놓을 때 대중은 무섭게 일어나 주먹을 흔들고 결의를 다지더라만 현실은 꼭 그런것만은 아니였다.
답답해난 기계공업부장이 안경을 벗어 흔들며 《총과 대포를 쏘아대는것만 전쟁인줄 아오? 무역도 전쟁이고 생산도 전쟁이고 과학도 전쟁이요.》 하고 열변을 토했다. 격해진 그가 물 한사발을 청하여 쭉 들이키고났을 때 한 설계가가 일어났다.
《자동반설계실의 한유준이라고 합니다.》
체소한 몸에 어울리게 눈매도 상냥한 사람이였다.
《사실 보통기계도 아니고 첨단급의, 그것도 90톤이나 나가는 대형설비를 조업일전으로 만들어내겠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하더니 그는 다음말을 인차 잇지 못하였다. 혹시 그 《왜냐면》에 속하는 리유가 너무 많아서는 아니였는지… 《솔직히 여기엔 5면가공반을 본 사람조차 없습니다. 다만 제가 그전에 기술교류성원으로 다른 나라에 갔다가 개발중이던 그 설비를 본적이 있습니다. 왜 이 말을 하는가 하면… 에, 긴말이 필요없지요. 저를 5면가공반개발책임자로 임명해주십시오.》
안시학은 흥분할줄 모르는 성격이였다.
사람들은 그가 원래 그렇게 랭정하고 꼿꼿한 사람인가 하지만 젊어서 대학시절에는 노래보급책임자도 해보고 배구선수로도 활약한 그였다. 어쩌면 그의 랭정하고 딱딱한 성격은 대학을 졸업하고 30년가까이 감정없는 쇠붙이를 다루는 기계공업부문에 종사하면서 직업으로부터 호환된것인지도 몰랐다.
(한유준, 그 체소하고 구식학자의 냄새가 풍기는 설계가가 꽤 감당해낼수 있을가? 하기는 매
차수리가 좀 늦어져서 안시학은 예정했던것보다 거의 한시간 늦게 평양에 도착하였다. 돌아와서는 우선 특수설비들을 끌어들일 대책을 강구하자던것이 봉화기계공장에서 설비사고가 났다는 보고를 받고 이튿날로 그곳을 찾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