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서장
3
1988년 10월 22일 새벽 4시.
전화가 걸려왔다.
《
3일전인 10월 19일
별스레 기분이 맑아지는것 같으시였다.
첫페지… 거기에는 수자에 앞서 사람이 보였다.
그리고 대담했다. 전문화된 생산기지들의 신설 및 능력확장과 함께 현대화된 조립공장들을 일식으로 들여오거나 앞선 나라들과의 합영, 합작을 실현하는것도 배제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부 사람들속에서는 합영, 합작이란 말만 나와도 뭐가 묻어오는것처럼 께름해하는가 하면 보세가공무역 같은것을 하는것은 더구나 체면이 깎이는것으로 여기면서 손 시리다, 발 시리다 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허나 우리는 결코 체면주의자들이 아니다. 조국의 부강발전과 인민의 복리증진에 이바지되는것이라면 무엇이나 할 용의에 넘쳐있는것이 우리들,
다음페지에는 현실적인 국가경제형편과 제3차 7개년계획의 전망목표들에 비추어 잘 타산된 건설 및 투자계획이 반영되여있었다.
《…200일전투계획에 추가로 반영하였던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의 탄산소다공장건설을 다음해로 미루는 한이 있더라도 지적된 신설 및 능력확장공사를 빨리 다그쳐 끝내려고 합니다.》
손잡이를 잡으시였던
《무슨 책인데 그렇게?…》
연필을 집어드시며
《프로그람과 자동조종기술에 대한 최신기술도서인데 참고할것이 있어서 짬짬이 보던중입니다. 배울것은 너무도 많은데… 어떤 때는
《공부를 많이 하는거야 좋지. 왜 그런가 하면 알아야 일을 바로할수 있는것은 물론이고 학문을 모르는 사람의 곁에는 인재가 모이지 않기때문이요. 그래서 옛날부터 나라님이 소리를 하면 풍각쟁이가 모이고 칼을 차고 나서면 장수들이 모여든다고 했지.》
두분께서는 응접실의 다담상을 사이두고 마주앉으시였다.
쇠물바가지가 기울어지는 장쾌한 광경에 《강철》이라는 묵직한 글자를 새겨넣은 성냥곽이
철과 기계! 돌이켜보면 사회주의건설에 바쳐진
《참, 며칠전에 올려보낸 문건을 보았소. 그때도 그랬지만 엊그제 공작기계전시관까지 돌아보고나니 생각이 많아지더구만.》
《왜 그렇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하나가 다
《그래, 정말 잊혀지질 않소. 해방이 돼서 배낭 하나 덜렁 메고 조국에 돌아와보니 원체 허약한 공업토대에 공작기계라고는 통털어 2백대쯤 되더랬는지… 흥남비료공장과 성진제강소, 남포제련소, 철도기관구들이 몇대씩 차고있었는데 그나마 피대로 축을 돌리는 락후하기 짝이 없는것들이였소. 둬해 지나서부터는 피대식선반이나마 자체로 만들수 있게 되였는데 그게 너무 귀해서 1947년에는 몇대, 다음해에는 또 몇대 하고 연필심에 힘을 주어가며 꼬박꼬박 적어두군 했댔지.》
잠시 말씀을 멈추신
어둠이 덮인 하늘가에 검은구름이 모여들고있었다.
《…전쟁이 일어났소. 함흥쪽에서는 공작기계공장을 지으려고 착공식까지 했다가 참 아프게 되였지. 더러는 묻히고 더러는 불타고 깨지고… 령이 됐지. 아니, 미누스가 됐더랬소. 그때 나는 전략적인 일시적후퇴까지 겪으면서 자체의 튼튼한 기계공업이 없이는 아무것도 안되겠구나 하는것을 더욱 뼈저리게 절감했소. 그래서 전쟁을 하는 어려운 때였지만 당중앙 정치위원회결정과 내각결정을 채택하고 기계공장들을 크게 일떠세우기로 했소. 오죽했으면 그렇게 안 떨어지겠다고 떼를 쓰는 친위중대원들까지 욕을 하며 공부하러 보냈겠소. 기계를 배워라, 기계를 배워라 하면서 말이요. 박송봉이랑 연형묵이랑 다 그렇게 공부시킨 사람들이지. 그런데…》
음성이 갑자기 갈리시였다.
《이번 전원회의에 앞서 심각히 돌이켜지는것이 있소.
뭔가? 공업국가에 있어서 기계공업은 그 골격과 같다고 말할수 있소. 그런데 지금의 형편에서 우리 기계공업에 3차 7개년계획의 만짐을 지울수 있는가? 나아가서 새 세기로 가는 당과 인민의 요구를 충족시킬수 있는가? 물론 해방직후에 비해볼 때 우리 기계공업은 천여배나 장성했소, 자급률은 98프로에 가깝고. 그러나 지금은 수자로만 만족할 때가 아니요. 지난해 금성뜨락또르종합공장사건때에도 내가 가슴아팠던건 바로 그때문이였소.》
그때
즉시 기계공업부문 책임일군협의회를 조직하신
…립춘이 지난지도 한달이 됐다.
그런데 지금 금성뜨락또르공장의 작업장온도는 령하 5℃라고 한다. 이게 말이 되는가. 그런데서는 스케트나 탈수 있을것이다. 로동자들이 그런 곳에서 일을 하는데 어떻게 국가주석이며 당총비서인 내가 털외투를 입고 찾아간단 말인가. 내가 올것 같다니까 남포시당 책임비서가 어제부터 거기에 나가 불을 때고있다는데 나는 손발이 시려 못 가는것이 아니라 속이 얼어들어 못 간다. 거기서 일은 어떻게 하며 한다 한들 무슨 온전한 제품이 나오겠는가!… 그날
로동자들에 대한 일군들의 태도도 격분할 일이였지만 기계공장이란 의례 그러하다는 식의 낡은 사고방식이 가슴아프시여서였다.
당의 뜻을 따르지 못한 일군들이 저지른 잘못이였으나 그들모두를 품에 안고계시는
《지금 동유럽쪽에 떠도는 구름이 심상치 않소. 이런 때 우리가 경제의 자립을 더욱 완비하지 않는다면 장차 그들과 함께 휘청거리는 신세가 될수도 있소. 이건 심중한 문제요.》
《고맙소. 그러니 이제부터는 내가 기계짐을 벗어놓아도 되겠구만. 한데 말이요, 나도 조선로동당의 한 성원이니 당적분공이야 뭔가 한가지 맡아야지 않겠소.
혁명과 건설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풀어나가심에 있어서 무엇보다 사람을 첫자리에 놓으시는
《그러니 인재를 한사람 찾아냈구만.》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기대가 갑니다. 고열속에서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찾았다는 이야기도 무심히 들리지 않습니다, 어쩌면 도래하는 시대의 부름소리처럼 들려오는것이…》
《그래, 아침이 부르는 소리요. 우린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게 해야 하오, 래일에 준비되게 해야 하오. 내 그래서 이번 당전원회의에서 〈공작기계공업과 전자, 자동화공업발전에서 전환을 일으킬데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결론을 하자고 하오.》
사업토의는 일단 끝난것 같았다. 그러나
《어릴 때?! 허허, 무슨 일 말이요?》
《제가 삼석에서 소학교를 다닐 때 난로당번날이 되면
《참, 그랬었지.…》
갑자기 창유리가 드르릉 떨리더니 우뢰소리가 지나갔다.
《저는 그때처럼
《고맙소.》
세찬 비발이 그 무슨 사변을 예고하듯 창문을 다급히 두드리는 속에 미명의 도시상공으로 방송개시신호음악이 울려퍼졌다.
비꽃이 후두둑 떨어졌다.
《내가 어렸을 때는 이런 날씨에 들메나무에 오르군 했댔지, 무지개를 잡아보겠다고.… 동심은 지난지 오랬지만 난 여전히 멀리를 내다보고싶소. 5년후, 10년후… 그때는 무슨 일이 있을것인가? 그때를 대비하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것인가?》
꽈르릉!- 또다시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애국가》의 장중한 선률이 수도의 하늘가에 메아리쳤다. 검은 장막이 뒤덮인 하늘가로 비에 젖으며, 폭풍에 나붓기며 울리는 노래소리는 이날따라 자못 의미심장하게 두분의 가슴에 젖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