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1. 가리울수 없는 눈부신 태양
세상에 없는 수령영생의 대기념비
절세위인들의 품속에서 한생을 빛내여온 국가의 한 책임일군은 자기가 쓴 책의 한 대목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위대한 장군님을 잃은 그해에는 례년에 없이 많은 눈이 내리였다. 절세의 위인과 영결하는 인민의 마음인양 소리없이, 하염없이 내리는 눈은 사람들의 마음을 더더욱 아프게 하였다.
인민들은 떠나가시는 어버이장군님을 찬눈길에 모실수 없기에 영결의 거리를 쓸고 또 쓸었고 그것도 부족한듯 저저마다 솜옷과 목수건을 벗어 장군님 지나가실 길에 정성들여 폈으며 지어 가정들에서 단 한번도 덮어본적이 없는 새 이불과 담요까지 가지고 나와 장군님의 령구차가 지나갈 도로에 펴드렸다. 영결의 거리거리에서 우리를 두고 장군님은 절대로 못가신다고 목놓아울며 령구차를 에워싼 인민들의 눈물겨운 화폭, 아프고 쓰린 마음을 달래지 못하여 령구차를 따라 영결의 거리를 달리다가는 쓰러지고 령구차가 멀어져 더는 보이지 않게 되였을 때에는 그 자리에 어푸러져 일어설념을 하지 못하고 땅을 치며 뜨거운 눈물을 쏟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영원한 그리움의 군상으로 이 땅에 력력히 새겨졌다.
자애로운 어버이를 안타까이 찾고 또 찾으며 곡성을 울리는 천만자식들의 그 눈물겨운 광경은 이 세상 그 어디에서 볼수도, 지어낼수도 없고 흉내낼수도, 재현할수도 없는 인류력사에 전무후무한 감동깊은 화폭들이였다.
억장이 무너져내리는것과 같은 비통한 아픔에 산천초목도 몸부림치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잃고 오직 위대한 장군님만을 굳게 믿고 따라온 인민들이였기에, 장군님과 떨어진 자신들의 삶을 어느 한순간도 생각해본적이 없던 이 나라의 천만자식들이였기에 장군님과 영결의 시각의 그 고통은 그 어디에 비길수 없는것이였다.
그런 인민이 어버이의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모시고 살수 있게 하여주신분이 계셨으니 그이는 바로 인민들에게 수령영생의 신념을 더욱 억세게 심어주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이시였다.》
일찍부터 위대한 장군님의 사상과 로선, 절대적인 권위를 견결히 옹호하는데 언제나 크나큰 심혈을 기울이시였으며 그 어떤 조건에서도 위대한 장군님의 구상과 결심을 최대의 충성을 다 바쳐 완벽하게 실현해오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그 누구보다 크나큰 상실의 아픔속에서도 수령영생위업의 위대한 새 력사를 펼쳐나가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온 나라 전체 인민의 절절한 그리움과 함께 자신께서 하셔야 할 중대한 사업의 의미를 깊이 헤아리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서거하신 직후에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장군님을 수령님과 함께 생전의 모습그대로 모시고싶은것이 나의 마음입니다. 장군님은 언제나 수령님과 함께 계시였으며 수령님께서 서거하신 후에도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주체의 한길을 드팀없이 걸으신 수령님의 가장 가까운 전우, 동지이시였습니다. 수령님과 장군님을 금수산기념궁전에 함께 모시는것은 도덕의리적으로 보아도 조선의 혁명가, 장군님의 전사들이 꼭 하여야 할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장군님을 위대한 수령님께서 생전의 모습으로 계시는 금수산기념궁전에 함께 모시기로 결심하였습니다. …
수령의 영생을 보장하기 위한 사업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인민들이 수령이 생존해계실 때처럼 스스럼없이 찾아뵙고 인사를 올리며 그이와 마음속대화를 나누는것, 인민들모두가 기쁜 일이 있어도, 슬픈 일이 있어도 생전의 모습그대로 계시는 수령을 찾아 사연을 아뢰고 가르치심을 받게 하는것, 이것이 다름아닌 수령의 영생이다.
위대한 장군님을 생전의 모습으로 모시려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심중에는 장군님께서 생존해계실 때와 다름없이 늘 위대한 장군님을 찾아뵙고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으며 새로운 결의도 다져나가시려는 확고한 신념이 자리잡고있었다.
그리고 일군들과 인민들도 지난 시기 생전의 모습으로 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찾아뵙고 수령님과 마음속대화를 나누어온것처럼 생전의 모습 그대로이신 위대한 장군님을 자주 만나뵈옵고 자식된 심정에서 장군님께 인사도 올리고 자신들이 하고있는 사업정형을 보고하며 가르치심도 받게 하시려는 깊은 의도가 담겨져있었다.
위대한 장군님을 생전의 모습그대로 금수산기념궁전에 모심에 있어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특별히 관심하신것은 위대한 장군님께 입혀드릴 옷이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생전에 늘 입고다니시던 옷, 조국과 인민에 대한 무한한 헌신성과 한없는 소박성, 풍상고초를 그대로 보여주는 옷을 입혀드릴 생각을 하시였다.
그것은 다름아닌 잠바옷차림이였다.
위대한 장군님을 인민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있는 야전복차림, 잠바옷을 입으신 모습으로 모셔야 한다!
이것이 위대한 장군님을 생전의 모습그대로 금수산기념궁전에 모시기 위하여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품게 되신 결심이였다.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에게는 아직 제낀형옷을 입을 경황이 없다고, 지금은 혁명하는 시대이라고, 혁명하는 시대에 자신에게는 할 일이 대단히 많다고, 일을 많이 하자면 옷도 전투적으로 입는것이 좋다고, 자신의 잠바는 자신에게 있어서 전투복이나 다름없다고, 자신께서는 활동형의 옷이 좋다는 가슴뜨거운 교시를 하신적이 있다.
어버이장군님께서는 여름철에 온몸이 땀에 절고 뙤약볕이 사정없이 쏟아지는 폭양속에서도 늘 야전복차림의 잠바옷을 입으시고 인민들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계시였다.
온 나라 인민들이 한번만이라도 꼭 입어보시였으면 하는 간절한 소원을 담아 지어올린 원수복도 단 한번도 인민들앞에 입고 나서지 않으신 장군님이시였다.
인민들에게 있어서 장군님의 야전복은 단순한 전투복이 아니라 세월의 모진 비바람과 강추위를 다 막아주고 사랑의 넓은 품에 뜨겁게 안아준 자애롭고 다심한 친어머니의 정깊은 옷자락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런 야전복차림으로 조국과 인민을 위해 마음써오시다가 달리는 렬차에서 순직하신것이다.
언제나 야전복인 잠바옷과 색날은 솜옷차림으로 인민들과 함께 어울리시던 위대한 장군님의 한없이 소박하신 평민적인 옷차림새에 대하여 생각할 때면 그이께서 생존해계실 때 좋은 옷을 한벌도 해드리지 못한 죄책감으로 오늘도 가슴이 찢기는 아픔을 억제하지 못하는 인민들이다.
그래서 이 나라 인민들에게는 야전형의 잠바옷차림이 아니라 다른 옷차림으로 모신다면 인민들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있는 잠바옷차림의 장군님의 모습, 자애로운 인민의 수령으로서의 장군님의 영상에 그늘이 질수 있다고 보신분이 경애하는 원수님이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인민들은 장군님께서 생존해계실 때처럼 야전복차림, 잠바옷차림의 장군님을 사무치게 그린다는것, 그래서 위대한 장군님께서 생전의 모습그대로 영생하시게 하려면 반드시 잠바옷을 입혀드려야 한다고 보신것이다.
이렇게 되여 위대한 장군님은 야전형의 잠바옷차림으로 금수산기념궁전에 모셔지게 되였다.
금수산기념궁전을 수령영생의 대전당으로 완벽하게 꾸리기 위하여 위대한 장군님을 생전의 모습으로 모실 영생홀을 최상의 수준에서 꾸리는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립상을 모실 홀을 다시 꾸리는 문제, 울음홀을 더욱 숭엄하게 꾸리는 문제,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훈장보존실들과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현지지도와 외국방문의 길에서 리용하신 승용차와 전동차, 배, 렬차보존실들을 꾸리는 문제 그리고 수령님과 장군님의 혁명생애와 령도풍모를 보여주는 귀중한 영상사진문헌들을 모시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바치신 로고와 심혈, 뜨거운 지성에 대하여 이야기하자면 정녕 끝이 없다.
주체101(2012)년 2월 16일 주체의 최고성지에서 엄숙히 거행된 금수산기념궁전을 《금수산태양궁전》으로 명명함에 관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의 공동결정을 공표하는 행사도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의도에 따른것이였다.
수령을 모시는 전당의 이름을 어떻게 명명하는가 하는 문제는 단순한 명칭문제가 아니라 수령을 모시는 자세와 립장문제, 인민의 마음속에 수령의 영생을 지켜드리기 위한 심각한 정치도덕적문제이다.
이것은 수령영생위업실현에서 중요한 문제의 하나가 바로 수령을 모시는 전당의 이름을 말그대로 인민의 수령, 인민의 태양을 함께 모신 전당으로서의 성격이 살아나게 명명하는것이라는것을 말해준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은 력사상에 존재하였던 모든 위인들과는 대비할수도 없는 위인중의 위인, 우리 인민과 민족, 세계 진보적인류가 한결같이 흠모하고 따르는 태양이시였다. 그런것만큼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생전의 모습으로 모신 전당이 반드시 태양의 격에 맞게 명명되는것이 너무나도 응당하고 마땅한것이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영원한 태양으로 높이 받들어모시려는 인민들의 절절한 소원과 념원을 담아 금수산기념궁전을 태양의 집으로서의 성격이 살아나게 이름을 명명하는것이 시대의 요구라고 보시였다.
경애하는 그이께서는 금수산기념궁전을 《금수산태양궁전》으로 명명할것을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에 제의하시였으며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특별보도를 발표하도록 하시여 금수산기념궁전이 명실공히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영원히 높이 모신 태양의 궁전이라는것을 온 세상에 숭엄하게 공표하도록 하시였다.
하여 수수천년 인류력사에 있어본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있을수 없는 수령영생의 궁전을 뜻하는 금수산태양궁전이라는 새로운 고유어가 태여나고 수령영생위업실현의 또 한페지 새로운 장이 펼쳐지게 되였다.
주체101(2012)년 12월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영생의 모습으로 계시는 태양의 성지에서는 보다 새롭고 독특하면서도 숭엄하게 꾸려진 금수산태양궁전 개관식이 만사람의 관심속에서 성대히 진행되였다.
이날 개관식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그 어느것이나 최대의 정중성과 상상을 뛰여넘는 건축미학성, 수령님들의 위대함과 자애로움, 령도풍모와 인민성이 직관적으로 가슴에 젖어들고 마음속에 깊이깊이 새겨지게 하는 태양의 성지를 우러르면서 감탄을 금치 못하였고 인민의 마음을 고이고이 아로새겨주신 경애하는 원수님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의 정에 넘쳐 뜨거운 눈물을 머금었다.
거룩한 태양의 성지에 비껴흐르는 다함없는 칭송과 흠모의 결정체들, 귀중한 사적물들과 훈장보존실 그리고 특색있게 꾸려진 광장공원이며 주단을 펼친듯 푸르른 잔디밭과 황홀한 분수터며 휴식의자 하나하나도 무심히 대할수 없는 인민들이였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나라일이 그처럼 바쁘신 가운데서도 몸소 금수산태양궁전광장공원건설장에 나오시여 새 품종의 잔디를 심는 방법도 일군들에게 하나하나 가르쳐주시고 화단형식과 나무수종, 수형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가르쳐주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불면불휴의 로고에 대하여 전설처럼 들은 이 나라 인민들이였던것이다.
이를 목격한 외국의 한 인사는 자기의 심정을 이렇게 피력하였다.
《일반적으로 릉이라고 하면 무게와 정중성이 최대로 보장되고 숭엄한 감정이 안겨오도록 하는것이 공통의 견해이다.
특히 생전에 나라와 인민을 위해 업적을 남긴 위인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계시는 금수산태양궁전은 엄숙하기 전에 수령과 인민이 언제나 한데 어울려앉아 가정사도 의논하고 기뻤던 일, 슬펐던 일도 죄다 털어놓으며 간격없이 어울려사는 대식솔의 모습을 펼치고있다.
이 세상 고운 꽃들은 다 여기에 피여난것만 같은 드넓은 화초밭과 독특하고 정교한 조각품들을 련상케 하는 각종 형식의 휴식구들, 푸른 주단을 펼친듯 보기만 해도 마음이 상쾌해지는 드넓은 잔디밭들, 쉴새없이 뿜어오르는 분수들, 푸른 잎 설레이는 수많은 크고작은 나무들, 궁전광장의 휴식터들에 앉아 담소도 하고 이야기꽃도 피우고 즐거운 휴식의 한때도 보내는 인민들, 그들을 축복해주시는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의 자애로운 영상… 참으로 이곳은 수령영생의 대화원이고 인민의 공원이다.》
오늘도 공화국인민들이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속에 되새겨보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절절한 말씀.
금수산태양궁전은 말그대로 수령님과 장군님을 생전의 모습 그대로 모신 태양의 궁전인것만큼 인민들의 발길이 끊어지지않는 곳으로 되게 하여야 한다. …
바로 이 숭고한 뜻을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시였기에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금수산태양궁전의 외부를 돌아보시면서 지금까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중요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깨우쳐주시며 수많은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금수산태양궁전은 수령님들께서 계시는 주체의 최고성지로서 우리 공화국의 영상이나 같은것만큼 궁전정면 웃부분에 국장을 새겨놓을데 대한 문제, 금수산태양궁전광장 주석단아래벽에는 대원수별을 새기고 궁전정면에 수령님과 장군님의 태양상을 모시며 그우에 국장을 새겨놓고 국기를 띄우도록 할데 대한 문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그로부터 두달후에도 금수산태양궁전의 불장식을 잘하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기둥과 벽체를 비롯하여 골조들이 두드러지게 살아나도록 불장식을 하되 공화국기발과 국장에 조명을 잘 집초시켜야 한다고 일군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방안을 제시해주시였다.
이렇게 되여 훈장보존실과 사적물보존실이 새로 꾸려지는것과 함께 공화국기가 날리는 지붕아래 앞벽면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장을 새기고 위대한 수령님들의 태양상을 정중히 모심으로써 금수산태양궁전은 태양의 성지로서의 존엄과 품격을 한층더 살릴수 있게 되였고 금수산태양궁전은 말그대로 절세의 위인들의 체취와 업적이 꽉 들어찬 성지로서의 품격을 보다 완벽하게 갖추게 되였다.
진정 비오는 날에도, 찬눈내리는 날에도 그리고 아침에도 저녁에도 이른새벽에도 찾아오시여 금수산태양궁전을 훌륭히 꾸리기 위해 바쳐오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로고를 세월이 흐른들 어찌 잊을수 있겠는가.
위대한 수령님과 함께 위대한 장군님의 체취와 숨결이 뜨겁게 어려있는 금수산태양궁전을 세상에 둘도 없는 영원한 태양의 집으로 훌륭히 꾸리기 위하여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주체101(2012)년 한해에만 하여도 40여차례나 몸소 현지에 나오시여 수십여차의 귀중한 가르치심과 1 150여차의 구체적인 과업을 주시였다.
이처럼 낮과 밤이 따로없이, 끊임없이 커만지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심혈과 로고는 모든 세부들과 공간들을 훌륭하게 형성하도록 하였고 가장 숭엄하면서도 가장 완벽한 수령영생의 대전당으로 되게 하였다.
그렇다.
수령영생은 인민의 소원과 념원이 강렬하다고 하여 자연히 이루어지거나 완벽하게 성취되는것이 아니다.
수령영생은 오직 고결한 량심과 숭고한 도덕의리로 수령이 이룩한 혁명업적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한걸음의 양보도 없이 대를 이어 빛나게 계승해나가는 위대한 령도자, 인민의 지향과 요구를 자신의 실천으로 빛나게 실현해나가는 인민의 령도자에 의해서만 완전무결하게 이룩될수 있는것이다.
세계에는 국가령도자들과 위인들의 력사적공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건설된 릉묘들과 기념당, 성지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금수산태양궁전처럼 인류의 태양, 불세출의 위인들을 생전의 모습으로 모시고 내용과 형식, 규모에서 그처럼 숭엄하면서도 완벽하게 꾸려진 수령영생의 대기념비, 대전당은 없다.
절세의 위인만이 지닐수 있는 비범한 천품을 체현하시고 그것을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으로 뜨겁게 분출시키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도덕의리심이 펼친 자랑찬 화폭인 금수산태양궁전!
진정 금수산태양궁전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영원불멸할 업적과 절세의 위인상을 온 민족이 가슴깊이 새기고 온 세계가 똑똑히 알도록 하시려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의도와 정력적인 령도가 낳은 수령영생의 대기념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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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송의 목소리
세계의 태양은 김정은동지이시다
이딸리아의 한 인사는 경애하는 원수님께 유리공예 《빛세기측정기구》를 선물로 올리면서 자기의 진정을 이렇게 토로하였다.
《조선은 비록 크지 않은 나라이지만 세계정치의 중심에서 위대한 힘으로 세계를 움직이고있다.
해빛은 이 측정기구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다시말하면 세계의 태양은 바로 김정은동지이시다.
위대한 태양을 모신 조선이 세계를 주도하며 주체의 길로 확신성있게 나아간다고 생각하는 나의 심정이 그대로 이 선물에 반영되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