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1. 가리울수 없는 눈부신 태양
눈물속에 새겨진 태양의 모습
주체100(2011)년 12월 대국상의 나날 공화국에 와있던 어느한 나라의 기자는 본사편집국으로 이런 글을 전송하였다.
《…인간의 꾸밈없는 눈물은 순결한것이여서 그것은 지어낼수도 꾸며낼수도 없다.
지금 이 시각 여기 조선의 모든 남녀로소가 흘리는 눈물이 바로 그러하다.
평양의 기온은 -20℃를 오르내리건만 수많은 평양시민들이 솜옷도 입지 않고 말그대로 중대보도를 들은 즉시 거리로 달려나왔다. 김일성주석님의 동상과 모자이크벽화를 비롯한 여러 영상작품이 모셔진 곳을 찾아와 땅을 치며 흐느끼고 통곡하고있다. 어른들과 함께 아이들도 발을 동동 구르며 아버지를 부른다. 가시면 안된다고 장군님을 부르며 목메여 운다. …
수도 평양만이 아닌 온 조선의 인민들이 모두 달려나와 위대한 령도자의 서거를 비통한 마음으로 슬퍼하고있다.
조선인민이 흘리는 눈물을 통하여 령도자와 인민들사이의 뉴대가 얼마나 진실하고 뜨거운가를 잘 알수 있다.》
그처럼 열과 정을 다하여 사랑하시던 인민을 두고 조국을 두고 어버이장군님께서 가시였다는 사실을 정녕 믿을수가 없어 몸부림친 인민, 장군님의 전사, 제자들인 이 인민이 흘리는 눈물은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인민은 우리 인민이라고 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그대로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우리 인민이라고 외우고 또 외우시던 위대한 장군님. 인민을 위한 일을 하나라도 더 할수 없겠는가 하는 불같은 마음을 안으시고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인민행야전렬차에서 쪽잠에 줴기밥을 드시면서 초강도강행군길을 정력적으로 이어가신 위대한 장군님의 한생의 총화는 그대로 《인민》이였기에 인민의 슬픔과 고통은 더없이 컸다.
하늘이 무너져내리는것만 같은 청천벽력같은 비보에 위대한 장군님을 부르며 태질하고 땅을 치며 통곡하다 쓰러지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늘어갔다. 더는 이 땅에서 웃음이란 없을것같았다.
그해의 겨울은 또 얼마나 춥고 맵짰던가.
그러나 온 강산을 동토대로 만들어버리는 강추위도 위대한 장군님을 애타게 부르며 흘리는 인민의 뜨거운 눈물과 장군님을 그리는 그 마음만은 얼구지를 못했다.
그 누가 지시하거나 명령한 일도 없건만 스스로 밤을 새워 조의식장에서 호상을 서고있는 사람들, 장군님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에 눈물지으며 송이송이 엮은 화환들이 눈발에 젖을세라 자기들의 솜옷을 벗어 씌우며 조의식장을 찾고 또 찾는 사람들…
그들속에는 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쳐온 로투사들로부터 전화의 불비속을 뚫고온 전쟁로병들, 평범한 로동자, 농민, 인민군군인들과 사무원들, 청년학생들 지어는 유치원어린이들도 있었다.
남녀로소 할것없이 모두가 모자와 목수건, 장갑을 벗어들고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속에 조의순서를 기다렸다. 커다란 슬픔속에 조의를 표시하고는 위대한 장군님의 태양상을 우러르며 그곁을 차마 떠날수가 없어 스스로 호상을 섰다.
하지만 건강을 돌보아야 한다고 의견을 내놓거나 대책을 세우는 일군도 없었고 추위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있을수도 없었다.
그러나 위대한 장군님을 목놓아 찾고 부르는 인민의 흰눈처럼 순결하고 깨끗하며 꾸밈없는 모습, 모진 추위속에서도 위대한 장군님곁에 있어야 춥지도 않고 맘이 편하다고 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잊어버린듯 언제까지나 호상을 서고 추위속에서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구름처럼 모여들어 갈수록 커지기만 하는 인민의 거대한 추모행렬을 직접 목격하시며 가슴아파하시는분이 계셨으니 그이가 바로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고 얼마나 아껴주시던 인민인가. 인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불편을 주고 인민생활에 티끌만치라도 해를 끼치는 현상이 나타나면 그토록 가슴아파하시며 인민을 위해 자신께서 주실수 있는 사랑이란 사랑은 다 부어주시던 위대한 장군님, 장군님께 있어서 인민은 한시도 떨어져서는 사실수 없는 살붙이가 아니였던가.
위대한 장군님을 운명의 태양, 삶의 전부로 간직하고 하늘처럼 우러러모시고 따르던 충직한 인민을 추위속에 그대로 둘수 없다고 생각하신 경애하는 원수님.
위대한 장군님을 부르고 또 부르는 인민의 성의가 눈물없이는 볼수 없는 진정이기는 하지만 그들을 떨게 하는것은 장군님께서 바라시는 일이 아니며 이 사실을 우리 장군님께서 아신다면 얼마나 가슴아파하시겠는가 하는 생각이 원수님의 심중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으셨던것이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인민들의 편의를 최우선적으로, 절대적으로 보장해주는것이 위대한 장군님과의 영결을 앞둔 그 시각에 장군님을 위하여 자신께서 하실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업임을 확신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인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담긴 친필서한을 한자한자 적어나가시였다.
장의행사기간 인민들의 리익을 옹호하고 편의를 철저히 우선적으로 보장하는데 중심을 두고 모든 행사 조직진행할것이다
…
또한 의료보장대책, 더운물보장대책 철저히 따라세우고 평양시는 물론 전국각지에서 각종 사고방지대책을 예견성있게 세우도록 해야 하겠음
각급 당조직들에서 (일군들이) 책상에 앉아서만 추운 겨울 밤 인민들 걱정을 하지 말고 일별, 시간별 교대로 현장에 나가 인민들을 위로하고 그들과 함께 슬픔을 나누며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가도록 해야 하겠음.
당조직들(일군들)에서는 추운 겨울밤 추위속에서 인민들이 떨고있다는것을 아시면 우리 장군님께서 가슴아파하신다는것을 명심하고 인민들의 편의를 최우선 절대적으로 보장할것
김정은 2011 12 23
2011년 12월 23일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보내주신 친필서한에 접한 온 나라 인민들은 오열을 터뜨렸다.
《하늘도 그처럼 위대하신분, 어버이를 잘 모셔드리지 못한 불효막심한 우리에게 벌을 주느라 추위를 몰아오고 눈까지 퍼붓고있는데 가장 큰 슬픔을 안고계실 김정은원수님께서 오히려 인민들을 더 걱정하여주신단 말입니까.》
위인을 잃은 공허는 위인만이 메꿀수 있다는 말이 있다.
비록 친필서한은 요란하지도, 길지도 않았지만 인민은 경애하는 원수님이시야말로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 그대로 인민을 제일로 사랑하고 아껴주시는 자애로운 어버이, 사랑의 태양이시라는것을 뜨거운 격정의 눈물속에 스스로 마음속에 새겨안게 되였다.
그렇게 원수님께서는 위대한 장군님을 잃고 눈물흘리던 이 나라의 천만자식들의 젖은 얼굴을 인민의 리익, 인민의 편의라는 따뜻한 사랑, 어버이의 사랑으로 닦아주시였다.
어느한 책임일군은 그때를 이렇게 감회깊이 회억하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 얼마나 크고 뜨거운가를 구태여 따로 고백하시거나 선언하지 않으시였다.
사랑의 친필서한을 보내주신 이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야외조의식장을 찾는 인민들과 호상을 서는 사람들이 모자와 머리수건, 장갑과 귀걸이를 착용하게 하고 조의를 표시할 때에만 벗도록 하며 그들이 추운 날씨에 불편을 느끼거나 동상을 입는것과 같은 현상이 절대로 나타나지 않도록 할데 대한 지시를 주시였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야외조의식장들에서 호상을 서는 사람들의 몸을 덥히는데 필요한 수만개의 발열붙임띠와 발열신발깔개를 보내주시였다. 또 그 다음날인 12월 25일에는 추운 겨울날 맹물을 끓여주는것보다 더운물에 사탕가루를 풀어주면 좋아할것이라고 하시면서 평양시안의 조의식장들에 사탕가루, 산꿀, 우유가루, 빵, 과자 등 많은 식료품을 보내주시였다. 뿐만아니라 조의식장을 찾는 사람들과 호상을 서는 사람들이 추운 겨울에 동상을 입거나 감기에 걸리지 않게 의료보장대책을 세우도록 할데 대한 조치를 또다시 취해주시였다.
인민을 위하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사랑은 끝이 없었다.
사람들이 대국상을 당한 상제로서 목욕과 리발을 하지 않고있다는것을 아시고서는 목욕탕과 리발소를 비롯한 편의봉사시설들을 여느때와 같이 정상적으로 운영하도록 해주시였으며 평양시안의 야외조의식장에서 호상을 서고있는 사람들과 보장부문 성원들에게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불돌이야기, 야외봉사매대는 물론 몸녹이는 가설물과 대형뻐스들에 대한 이야기, 동지팥죽봉사에 대한 이야기 등 대국상시기에 펼쳐진 인민사랑의 전설같은 이야기들을 다하자면 끝이 없다.
예로부터 우리 나라에는 상제가 되면 3년동안 기름진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를 삼가하면서 부모의 령혼을 지키는것이 하나의 풍습으로 전해져왔다. 하물며 민족대국상의 상제들인 우리 인민들에게 있어서 날씨타발은 물론이고 꿀물을 생각하며 손발이 시리다고 탓하는 일은 꿈에도 있을수 없었다.
하기에 조의식장에서 따끈한 사탕물과 꿀물을 받아안은 사람들은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정말 대국상의 나날에 수도시민들과 인민이 받아안은 뜨거운 사랑과 은정은 그 누구보다 어버이장군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계시면서도 장군님과 혈연의 정으로 이어진 인민을 먼저 생각하시며 장군님사랑을 그대로 부어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충정의 세계였다.》
바로 그러했다.
대국상의 나날 수도 평양만이 아닌 조국의 최북단으로부터 분계연선의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들에 이르기까지 인민이 있는 모든 곳에서 이 세상에 사랑이라는 말이 생겨 처음 보는 광경이 펼쳐졌다.
그 사랑이 얼마나 따뜻한것이였는가를 일군들과 인민들은 오늘도 이렇게 전해간다.
《…그렇게 하는것은 자식의 도리, 전사의 도리가 아니라고 손을 내흔드는 사람들, 이것은 경애하는 원수님의 뜻이라고 목이 메여 설복하며 봉사매대와 몸을 녹이는 뻐스들로 잡아이끄는 일군들과 봉사자들, 이끄는 사람도 이끌려가는 사람도 누구나가 한사람같이 터치는 격정으로 하여 조의식장들은 눈물바다가 되였다. 그럴수록 인민의 어버이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간절해졌고 인민은 피눈물이 흘러내리는 얼굴을 경애하는 원수님 품에 묻었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위대한 인민사랑의 빛발이 그대로 조의식장들의 맵짠 추위를 가시는 열원이 되였다.
이 나날에 동지죽을 받아안고 인민들이 격정의 눈물을 또다시 쏟아부은 잊지 못할 12월 22일도 흘러갔다.
어버이장군님을 잃은 비통함에 잠긴 온 나라 인민들은 어느 누구도 이날이 동지날이라는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있었다. 설사 동지날이라는것을 알았다고 해도 동지죽 같은것은 감히 생각조차 할수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뜨거운 사랑이 깃든 동지팥죽이 야외조의식장주변의 가설건물들에서 인민들에게 안겨졌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속에서 동지죽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있는 인민들을 위하여 동지죽을 수도의 급양봉사망들에서 봉사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고 동지날 전날에는 동지죽원자재공급대책까지 세워주신것이였다.》
《대국상속에서도 동지날을 잊지 않으시고 어버이장군님의 크나큰 사랑을 가슴뜨겁게 되새겨주시며 동지죽을 안겨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위인상을 우러르며 우리 장군님의 불같은 한생이 어려와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였다.》
민족의 대국상의 시련속에서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더더욱 뜨거워만지는 어버이사랑속에서, 동이로 쏟고쏟은 뜨거운 눈물속에서 인민은 자기들의 운명으로, 미래로 받들어올린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영상을 위대한 장군님의 태양의 모습으로 새겨안았다.
남조선의 한 정치평론가는 《북의 2012년이 말하는 진리》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북주민들이 어버이로 믿고 살던 령도자를 잃고 어떻게 일어설것인가.
하늘땅을 놀래우는 비애의 곡성과 강처럼 흐르는 눈물을 멈출수 있을가. 이것이 진보적인류의 우려였다. 그러나 오랜기간 〈찰나〉를 노려온 북의 적대세력에게는 대북프로그람을 적용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일심단결된 나라의 표상을 60억의 시야에서 지우는것이 그들의 꿈이였다.
당시 생중계는 북의 〈조락〉을 예언하며 추모행사에 찬물을 뿌려대던 사이비언론을 기슭으로 밀어버리고있었다. 눈여겨봐야 도저히 내부의 균렬을 찾을수 없었다. 오히려 비쳐드는것은 더 뭉쳐진 모습이였다. 만약 시청이 불가능했다면 세계는 령도자의 서거에 인민전체가 오열하는 현장을 볼수 없었을것이며 그렇게도 순결무구한 신뢰심이 있다는것도 몰랐을것이다. 〈몸녹이는 뻐스〉와 치료소들에서 더운 차를 마시며 조의를 표하는 나라, 호상을 서는 젊은이들에게 모자를 씌워주고 장갑을 끼워주며 건강을 살펴주는 특이한 인정을 목격하지 못했을것이다. 과연 택시들이 병약자들을 찾아 무료봉사했다는 사실을 믿을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모든것은 엄연한 현실이였다.
세계 1만 2 000여개 언론기관은 도의를 지키는 국민들을 위해 이러한 조치를 취해주신분이 가장 큰 슬픔을 안고계신 김정은령도자님이시라는데 대해 새 소식의 홍수를 터치였었다.
세계는 호상을 서며 눈물로 포석을 적시던 사람들이 잠을 잊고 일터로 나가는 모습에서 마술적힘을 릉가하는 그분의 사랑을 보았다. 78년만에 닥쳤다는 12월의 강추위에 얼어버릴수 있었던 이북은 이렇게 견디였다.
견디여냈을뿐 아니라 더 굳은 결정체로 표면화되였다.
인간은 마음으로 본다고 한다.
어버이사랑에 습관된 북주민들은 금방 어버이께서 다시 오시였음을 알았고 자기들의 마음의 문을 여신 그분이시야말로 어버이이심을 눈물너머 확인하였다. 그들은 그분께서 쏟아내는 정이 수천만 심장을 울리고있다는것을 체감하였다. 이북을 투시해보면 해방조선에서부터 흘러온 근 70년세월의 자리길이 인간사랑으로 다져졌다는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원자탄보다 위력하다고 하는 일심단결을 이룬 이민위천의 사상에 기초하고있다. 따라서 선대수령들과 같은 좌우명을 지니시고 정으로 인민의 마음의 문을 여신분께 매혹되는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사랑은 그분께서 지니신 풍모의 단면이였다.
인류정치사에는 백성이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겠노라 뜻을 세우고 나섰다가 그것을 미지수로 남기고 사라진 정치인들이 많았다.
하지만 인류는 한 나라 인민이 흘리는 비애의 눈물이 닦아지고 그것이 의지로 바꿔지는 사실을 목격하였다. 공식추대가 있기 전에 이미 그분을 자기들의 령도자로 결정한것은 북의 민심이였다.》
그렇다.
그처럼 짧은 력사의 순간에 인민의 심장속에 오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대국상의 나날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을 그대로 안으시고 인민들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오시였다.
인민의 어버이는 결코 바란다고 하여 저절로 되는것이 아니며 요란하게 선전한다고 해서 되는것은 더욱 아니다. 그 어떤 사람도 지닐수 없는 가장 숭고한 인민관으로 하여 스스로 만인의 절대적인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되는 과정에 인민의 어버이로 되는것이다.
은정어린 친필서한과 사랑의 특별조치와 더불어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인민의 마음속에 위대한 어버이로 오시였다. 우리 인민이 피눈물의 언덕에서 뵈온 경애하는 원수님은 분명 위대한 수령님들의 모습 그대로였다.
당시 원수님 몸가까이에서 사업한 한 일군은 그때를 회고하여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한가정의 부모가 항상 마음속에 제일 큰 걱정거리로 안고있는것은 자기 자식들의 아픔과 불편이다. 자식들의 아픔과 불편을 자기의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덜어주기 위해 제일로 왼심을 쓰며 지어는 자기자신까지 바치는것이 바로 부모이다.
마찬가지로 친어버이의 심정을 지닌분만이 인민들의 아픔과 불편을 깊이 헤아리고 말끔히 가셔줄수 있는것이다. 인민의 어버이에게는 인민이 겪는 자그마한 불편이나 걱정도 스스로 맡아안고 가셔주는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닐수 없다.
경애하는 원수님은 인류정치사가 일찌기 알지 못하는 숭고한 풍모를 지니시고 인민을 아끼고 극진히 사랑하며 따뜻이 돌보시는 인민의 어버이이시다.
그래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다른 모든 정치가, 위인들에게는 결코 중대한것으로 보이지 않는 인민의 아픔과 불편, 괴로움이 제일 아프게 여겨지셨고 인민의 리익과 편의의 최우선, 절대시라는 력사에 류례없는 인민사랑의 원칙을 내세우신것이다.》
인민의 리익과 편의를 최우선, 절대시!
바로 여기에는 이 세상 그 무엇도 인민우에 놓일수 없고 인민의 존엄과 리익은 그 어떤 경우에도 건드릴수 없으며 인민을 위한 일보다 더 긴급하고 중대한 일은 없고 그 해결에서는 오직 완전무결함만이 있어야 한다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확고부동한 관점이 응축되여있다.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최대로 중시해야 할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 인민뿐이라는것이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삶의 지론이다.
그것이 어떤것이든 인민들의 리익과 편의를 최우선, 절대적으로 보장하는데 철저히 복종되여야 하며 그렇지 못한것은 아무리 품을 많이 들이고 값진것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런 의의도 가치도 없다고 보시는 인민의 어버이.
이런 어버이를 대국상의 눈물속에서 운명의 태양으로, 삶의 태양으로 새겨안은것은 이 나라 인민에게 있어서 최대의 영광이였고 더없는 행복이였다. 대국상의 나날에 인민의 눈물너머로 비쳐온 태양의 빛발은 정녕 이 나라 인민에게 있어서 운명과 삶, 그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