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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쟁로병미술가의 그림앞에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국은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으며 이 세상에 조국보다 더 귀중한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한편의 그림을 마주하고있다.

포신을 꺾은채 흙탕속에 구겨박힌 적땅크, 그우에서 환하게 웃고있는 인민군병사, 공화국기를 날리며 전진해가는 아군땅크와 보병들…

그림은 전쟁로병 김덕천이 주체81(1992)년에 창작한 조선화 《남진의 길에서》이다.

그는 지난 기간 조국해방전쟁을 주제로 한 수많은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조선화 《남진의 길에서》는 주체39(1950)년 7월 마산계선에서 있었던 실재한 사실을 그대로 재현한 사진과도 같은 작품이다.

 

*                *

 

산기슭도로는 비발에 싸여있었다. 인적도 없는 그곳을 여러쌍의 눈초리들이 긴장하게 주시하고있었다. 진주시에 대한 정찰임무를 마치고 귀로에 올랐던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 정찰중대의 정찰병들이였다. 그들속에는 17살의 김덕천도 있었다.

몇시간전 그들은 뜻밖의 정보를 입수하게 되였다. 적중땅크들이 진주로 기동해간다는것이였다.

당시 적들은 진주, 마산방향으로 진격하는 아군련합부대를 막아보려고 필사적으로 발악하고있었다. 미제가 본토로부터 우리 나라에 기여든 보충병들을 진주로 끌어들인다, 새로 개조한 중땅크들을 진주방어에 돌린다 하면서 진주의 방어에 큰 의의를 부여하는것은 아군련합부대의 진주, 마산방향으로의 맹렬한 진격이 대구-부산 도로를 차단할수 있다고 판단하였기때문이였다.

정찰병들은 전선에 닥친 위험을 스스로 막아나섰다. …

도로는 여전히 정적속에 묻혀있었다.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보슬비로 하여 정찰병들의 위장복은 물론 속옷까지 젖어들었다. 벌써 며칠밤을 내처 제대로 자지 못한데다가 더운 국 한술조차 입에 넣어보지 못한 그들이였다. 속은 비고 몸은 떨렸다.

오전 10시, 도로쪽에서 둔중한 발동기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여 적땅크들이 나타난것이였다. 예견했던대로 맨앞에서는 지휘차가 달리고있었다.

정찰병들의 얼굴에 느슨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200m, 100m, 10m …

적지휘차와의 거리는 점점 가까와졌다.

지휘차가 금방 굽인돌이를 돌아섰을 때였다. 한 정찰병이 번개같이 도로에 날아내렸다. 태연스레 차를 맞받아나가던 그는 권총으로 운전칸에 앉아있는 장교놈을 단방에 쏴제꼈다. 뒤좌석에 앉아있던 적병들은 김덕천을 비롯한 정찰병들이 맡아 해제꼈다. 지휘차가 허둥대며 멎어서려는 순간 그들은 나는듯이 차에 뛰여올랐다. 운전칸에 오른 정찰병이 얼이 나간 운전사놈의 옆구리를 권총으로 쿡 찔렀다.

《살겠으면 차를 몰라!》

지휘차는 다시 달리기 시작하였다.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모르는 적땅크들은 여전히 극성스레 따라왔다.

얼마후 적지휘차가 개활지대에 나서자 운전칸에 또다시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오른쪽으로 꺾으라!》

그쪽에는 아군진지가 있었다. 운전사놈은 사시나무떨듯 하며 차를 몰아갔다.

이때였다. 갑자기 도로상공에 적비행기가 나타났다.

적포지휘기였다. 적기는 지휘차가 달리는 도로상공을 계속 맴돌았다.

긴장한 순간순간이 흘렀다. 자칫 잘못하면 품들여 준비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수 있었다. 정찰병들의 눈길이 허공에서 서로 부딪쳤다.

한동안 적기를 유심히 노려보던 한 정찰병이 운전칸에 차곡차곡 접어놓은 기발을 들어 차의 앞부분에 띄웠다. 그제야 적기는 아무 일 없는듯 유유히 날아가버렸다.

지휘차는 더욱 속도를 높이였다.

적땅크들을 아군의 반땅크포병들이 기다리고있었다. 그들은 적들이 사격권내에 들어서자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세찬 불길이 중땅크들을 휩쌌다.

《포병친구들. <떡함지>를 통채로 안겨주었으니 실컷 두들겨패라구.》

이미 으슥진 곳에 차를 멈춘 정찰병들은 이 통쾌한 광경을 기쁨속에 바라보고있었다.

미제가 품들여 개조했다는 중땅크들은 이렇게 전선에 가보지도 못한채 파철이 되고말았다.

전투가 끝나자 김덕천은 배낭속에서 화구들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파괴된 적땅크를 향해 달려갔다. 나는듯이 적땅크에 오른 그는 붓을 달리기 시작하였다. 파괴된 적땅크에 이런 글발들이 새겨졌다.

《양키 미제를 씨도 없이 소멸하자!》, 《만신창이 된 월가의 <성새>》…

 

*                    *

 

김덕천은 용감한 정찰병이면서 사랑받는 전투소보원이기도 하였다.

그는 언제나 화구들을 배낭에 넣고다녔다. 진격의 길에서 집채만 한 바위들에 김일성장군 만세!》라는 글발과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새겼고 종이가 없으면 포탄상자의 포장지며 나무껍질에 전사들을 위훈에로 불러일으키는 그림을 그려나갔다.

적후의 산발들에서 바위들을 책상삼아 적들을 유인하는 그림을 그려 놈들을 생포했고 깊은 밤 미제침략자들의 병영구내에 들어가 높이 선 굴뚝에 《미제를 타도하라!》는 글발을 새겨 놈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군 하였다.

그날도 그가 적땅크에 새긴 글발들은 남진의 길을 달리는 병사들에게 커다란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었다.

김덕천은 전후에도 붓대를 놓지 않았다.

전쟁로병인 그에게 있어서 붓대는 총대나 다름이 없었다. 자기의 꿈을 찾아주고 희망을 꽃피워준 고마운 조국, 전쟁로병이며 영예군인이라고 내세워주는 어머니당을 받드는 마음으로 그는 이 시각도 붓대를 억세게 틀어잡고있다.

 

본사기자  리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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