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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5 회)

종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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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가는 집안에서는 싸움이 잦은 법이다. 7월 26일 련합국들의 포츠담회담에서 내놓은 항복요구를 접한 때로부터 일본의 대본영은 극도의 혼란상태에서 서로 상반되는 두 세력의 아귀다툼이 그칠새없이 계속되였다. 전쟁을 계속하자는 주전파와 전쟁능력을 상실한 일본으로서는 체면이나 서는 항복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협상파와의 대립이였다. 우메즈참모총장을 위시한 주전파들의 립장도 강경했지만 항복을 주장하는 협상파의 세력이 훨씬 우세하였다.

이놈들을 그저 한칼에…

우메즈의 두눈에서는 독기가 번뜩이였다.

협상파는 벌써 《천황》인 히로히도까지 끌어당겨 《체면이 서는 항복》을 실현하기 위한 외교전을 맹렬히 벌리기 시작했다. 우메즈의 힘으로도 도저히 막을수 없었다. 더욱 기막힌것은 우메즈자신도 울며 겨자먹는다는 식으로 이 외교놀음에 말려들지 않으면 안되는 사실이였다. 그는 《천황페하》의 특사로서 관동군참모총장 하다 히꼬지로와 함께 필리핀의 마닐라에 있는 맥아더사령부로 항복교섭을 가게 되였던것이다.

일본의 항복조건이란 《천황페하》의 지위와 국체의 보존, 일본상선대의 유지 그리고 조선과 대만에 대한 령유권보장이였다. 손을 들고 항복은 하더라도 속내를 차릴것은 다 차리겠다는 술책이였다.

하지만 우메즈는 이 굴욕적인 담판을 성사시킬 생각이 꼬물만큼도 없었다.

《좋소. 당신네 〈천황〉은 그대로 놔두겠소.》

회담탁에서 우메즈의 설명을 듣고난 맥아더는 실컷 굶주렸다가 배터지게 먹고난 승냥이처럼 희색이 만면해서 껄껄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대신 당신들은 두가지 의무를 짊어져야겠소. 우선 당신네 군대가 조선과 만주에서 계속 싸워야 한다는거요.》

《싸워야 한다구요?》

《그렇소. 우리 미국이 아니라 쏘련군과 중공군 그리고 조선의 김일성부대를 상대로 싸워야 한다는거요. 다음은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요. 쏘련과 만주, 조선에 대한 정보망을 전부 우리한테 넘겨주어야 하오.》

맥아더의 말에 우메즈는 어금이를 꽉 깨물었다. 맥아더의 언행이 너무나 오만방자했기때문이다. 게다가 이놈은 일본의 상선대나 조선과 대만의 령유권문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것이다.

어리석은 놈, 내가 이 담판을 성사시키자고 온줄 아느냐?

우메즈는 맥아더쯤은 우습게 여기고있었다. 맥아더로 말하면 서방세계가 요란스럽게 떠드는것처럼 명장은 결코 아니였다. 맥아더는 일찌기 일본군한테 여러번이나 된매를 맞고 구사일생으로 도주하기도 했었다. 진할줄 모르는 미국의 재력덕에 이제야 겨우 태평양의 섬들과 필리핀, 오끼나와를 손에 넣은 주제에 우쭐해하고있었다. 그렇듯 막강한 군력을 가지고도 래년에야 규슈를 점령하고 래후년쯤 가서 백만의 대군을 제물로 바치는 대신 일본본토상륙을 꿈구고있다는 맥아더였다. 이런 놈이 화평제안을 접하자 얼마나 주제넘게 놀아대고있는것인가.

어디 보자. 내 네놈의 몸뚱아리를 기어이 군화발로 짓밟아버릴테다!

우메즈는 이렇게 속으로 윽벼르며 주먹을 꽉 그러쥐였다. 그한테는 그럴만한 배심도 있었다. 그는 아직 본토결전이라는 든든한 주패장을 가지고있었다. 조선땅에서 벌리게 될 이 결전이야말로 죽어가는 일본을 되살려낼 유일한 출로라고 철석같이 믿고있는 우메즈였다. 하기에 그가 맥아더와의 담판을 제대로 성사시킬리 만무했다.

한편 일본이 쏘련을 상대로 벌린 여러차례의 외교전도 모두 실패로 끝났다. 쏘련측은 애당초 회담탁에 나와주지도 않았다. 하늘이 우메즈를 도왔다고 할수 있었다.

우메즈는 쾌재를 올리며 히로히도《천황》이 결사항전에 매달리지 않을수 없게 책략을 꾸몄다. 결국 히로히도는 그의 작간대로 대본영에 명령을 내려 무력을 본토로 집중시켰다. 53개의 보병사단과 25개의 공군려단, 2개의 땅크려단, 4개의 고사포사단이 집결되였다. 일반전투기 3천대를 대기시켜놓고 해군에 남아있던 구축함들과 잠수함들도 모두 본토항구들에 끌어다놓았다. 본토에 집결된 륙해공군은 무려 250만이나 되였다.

이 본토결전의 테두리안에는 조선도 포함되여있었고 결전의 핵심부도 조선으로 정해져있었다.

또한 전국에 총동원령이 내려졌다.

이러한 명령들을 내린것은 히로히도《천황》이였으나 그 모든것을 기안하고 집행한 사람은 다름아닌 우메즈였다. 사실상 일본이라는 난파선을 몰아가는것은 히로히도《천황》도 정부도 아니였다. 우메즈를 비롯한 군부의 우두머리들이 나라의 실권을 틀어쥐고있었다. 그래서 만사는 다 우메즈의 뜻대로 되여가는것 같았다.

허나 미국의 원자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끼를 페허로 만들고 쏘련이 대일전쟁을 선포하는 급변사태가 벌어지자 대본영은 죽가마 끓듯하였다. 또다시 화평파들이 머리를 쳐들었다. 그들은 어떡하든 조건부를 달아놓은 항복을 실현시키려 했다.

어떠한 항복도 있을수 없다!

우메즈는 끄떡않고 버티였다.

이러한 때인 8월 9일 오전에 우메즈는 히로히도《천황》의 부름을 받았다.

흥, 또 화평파들의 침을 맞은게로군.

우메즈는 태연하게 궁성을 찾아갔다.

히로히도는 응접실에서 요시꼬《황후》와 같이 우메즈를 만나주었다. 이례적인 일이였다. 아마 히로히도는 이런 가정적분위기속에서 우메즈와 이야기를 나누는것이 퍽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였다. 대원수복차림에 흰 장갑을 낀 히로히도는 중키에 호리호리한 몸집을 가진 마흔네살의 사나이였다. 일본의 국민이 신처럼 받드는 인물치고는 너무나 초라하였다. 더우기 요즘은 신경과민탓인지 누렇게 보이는 두눈에는 정기가 없었으며 얼굴은 창백하고 입가에는 깊은 주름이 패여있었다. 우메즈를 맞이한 다음에도 그는 말 한마디없이 대리석같은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저렇게 무맥한 사람을 온 국민이 신처럼 받들어왔단 말인가.

한순간 우메즈는 어이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것자체가 목숨을 열개 바쳐도 보상으로 될수 없는 큰 죄임을 모르는바 아니였으나 왜 그런지 우메즈는 자꾸만 갈마드는 죄많은 생각을 털어버릴수 없었다.

《이것 봐요, 참모총장선생.》

히로히도가 아니라 요시꼬《황후》가 먼저 말을 뗐다.

《지금 나라의 정국을 두고 페하께서는 몹시도 심려가 크시답니다. 정계와 군부안 중신들의 주장이 하도 엇갈리다보니… 나는 참모총장선생이 페하께서 옳은 재단을 내리시는데 도움이 될 고견을 드려줄것을 부탁하는거예요.》

《황송하옵니다, 황후페하.》

황급히 머리를 조아리는 시늉을 하는 우메즈는 요시꼬《황후》의 말뜻을 즉시 간파했다. 조선에서의 본토결전이 실제로 가망있는 일이냐고 따져묻는 히로히도의 의문을 대신하는 말이였다.

《소신은 페하와 페하의 나라를 기어이 지켜내기 위해 한몸을 구슬처럼 부스러뜨릴 각오로 살며 숨쉬는 노복입니다.》

《간단히 말하라.》

히로히도가 우메즈의 장광설이 시끄럽다는듯 차겁게 말했다.

《과연 조선에서 현 정국을 바꿔놓을 가능성이 있는가? 나는 진실을 알고싶다.》

《페하, 소신은 진실을 여쭤드리겠습니다.》

우메즈도 침착해졌다. 마음이 유약하기 그지없는 히로히도를 납득시키는데 모든것이 달려있었기때문이다.

《본토결전의 준비는 기본적으로 완료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맞선 적들은 결코 물리칠수 없는 강적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메즈는 무게있는 어조로 자기의 론거를 세워나갔다.

우선 미국의 원자탄을 지내 겁낼 필요가 없다는데 대하여 력설하였다. 미국의 원자탄이란 금방 만들어낸것으로 불과 몇개 안된다. 미국이 이미부터 원자탄을 가지고있었다면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았을수 없다. 또한 히로시마나 나가사끼에 원자탄을 떨군것도 묘한짓이다. 그곳은 군사대상물도 없고 일반주민들이 밀집된 도시일따름이다. 이런 곳에 원자탄을 떨구어 될수록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많은 집을 불태워 우리를 놀래워보자는것이 미국의 속심이다. 원자탄에 놀라지 말아야 한다.

맥아더는 패전을 거듭하면서도 끝없이 보충되는 함대들로 간신히 해전에서 승리할수는 있었다. 그러나 지상전에서는 얼마든지 격파할수 있는 상대이다. 미국이 래후년쯤 가서야 백만의 군대를 희생시키는 대가로 일본본토를 점령할수 있다고 타산하는것만 보아도 무적이 아니라는것을 증명할수 있다.

쏘련군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쏘련이 그렇듯 많은 대군을 준비하여 빨리 전쟁에 나서리라고는 미처 예견하지 못한것만큼 관동군이 일시 밀릴수도 있다. 만약 만주의 복곽진지까지 내놓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한다고 해도 조선에서만은 얼마든지 막아낼 자신이 있다. 조선은 산악지대인것만큼 쏘련군의 기갑부대나 포병대가 마음대로 전개될수 없다. 또 그들은 산악전의 경험이 없다. 그뿐이 아니다. 본토는 지금 폭격을 받아 모든것이 파괴되였으나 조선의 인적 및 물질적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때문에 본토사수를 위한 조선에서의 최후결전은 승산이 확고하다.

《제일 골치거리는 김일성부대입니다. 소신은 이미 관동군사령관을 할 때 그들과 겨루어보았습니다. 김일성 지략이 뛰여난 군사가이고 정치가의 자질도 완벽하게 갖춘 인물입니다. 김일성부대의 전투력도 문제로 되지만 그가 조선에 마련해놓은 지하항쟁세력이 큰 우환거리로 되고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을 막을 방책이 다 서있습니다. 조선의 절대다수 청장년들이 제국의 군대나 보국대에 들어가있어서 김일성부대와 격리되게 됩니다. 또 천황페하의 은총으로 군에 징집된 조선의 젊은이들은 김일성부대에 총부리를 들이대게 될것입니다. 김일성부대의 생명력은 민중속에 있는만큼 민중을 잃으면 그들은 절대로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기마련입니다.

황군은 조선땅에서 미군도 최종적으로 격파할 계획입니다.

페하, 황후페하, 조선에서의 최후결전은 본토결전의 핵심으로서 소신은 반드시 그것을 통하여 제국의 운명을 역전시킬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우메즈는 드디여 설명을 끝내였다. 대본영에서 그의 말은 무게가 있었다. 500만군대의 통수권을 거머쥔 참모총장이라는 직책도 있었지만 군사가로서 우메즈의 실력은 누구나 다 인정하고있었기때문이다.

히로히도는 설명을 다 듣고난 다음에도 한동안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우메즈의 설명을 다시 새겨보는듯 하였다. 그러나 창백하던 얼굴에는 얼마간 화기가 도는듯 했다. 요시꼬《황후》도 마찬가지였다. 우메즈의 설명에서 한줄기의 희망을 보았다고 할수 있었다.

《짐은 참모총장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히로히도가 말했다.

《그러나 측근의 중신들을 납득시키지 못하면 짐도 어찌할 도리가 없게 된다. 물론 짐은 끝까지 참모총장의 주장에 공감을 표시하고싶다.

잠시후 어전회의가 열리게 되는데 참모총장도 참가해서 자기의 경륜을 펴보도록 하라.》

이리하여 우메즈는 《황궁》안의 회의실에서 진행되는 어전회의에 참가하게 되였다.

회의장은 미국의 《B-29》의 대형폭탄에도 끄떡없을 지하구조물안에 꾸려졌다. 마루에는 두툼한 주단을 깔고 벽에는 장막을 쳐놓았다. 《천황페하》가 앉을 자리앞에는 두개의 커다란 평상이 나란히 놓여있었고 그우에는 비단탁상보가 씌워져있었다.

평상앞에 우메즈를 비롯한 열한명의 거물급인물들이 기척없이 앉아있었다. 방안은 화려하고도 아늑하게 꾸려졌으나 누기만은 제거하지 못하고있었다. 환기가 잘 안되는지 공기도 탁하고 어딘가 음침한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회의에 온 사람들은 마치 상가집에 온 조객같은 얼굴들을 하고있었다.

11시 55분에 《천황》 히로히도가 시종장의 안내를 받으며 회의장으로 들어와 자기 자리에 앉았다.

평상의 맨 앞쪽에 앉아있던 고령의 늙은이가 힘겹게 일어났다. 얼마전에 실각된 고이소 대신 81살의 나이로 수상의 멍에를 쓴 스즈끼 간따로였다. 약간 귀까지 먹은 그는 막판에 망해가는 나라를 붙들고있어야 할 수상노릇을 하느라 실로 보기 딱할 정도로 곤욕을 치르고있는중이였다.

망할놈의 두상태기, 감당도 못할 수상노릇은 그만두고 집에서 요강이나 그러안고있을게지.

우메즈는 이렇게 속으로 스즈끼수상을 욕하였다. 수상자리에 올라앉은 초기에는 그래도 본토결전을 해야 한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스즈끼가 어느새 두손을 들고 항복하자는 화평파에 가붙어서 혐오감을 금할수 없었던것이다. 그는 지금 스즈끼가 무슨 말을 꺼내자고 하는지 다 짐작하고있었다.

《페하!》

스즈끼는 죽어가는 늙은이의 깨여진것 같은 소리로 음침한 방안의 정적을 깨뜨렸다.

《오늘 진행된 전쟁최고회의는 포츠담선언을 어떤 조건으로 받아들이겠는가를 두고 진지한 론의를 거듭했으나 아직까지 아무 결정도 짓지 못하고있나이다. 론의중에 이채를 띠는것은 천황페하의 존위를 그냥 보존하는 조건에서 포츠담회담요구를 수락하자는 도오고오외상의 주장이나이다.》

스즈끼는 도오고오외상을 돌아보며 《천황페하》께 자기의 의견을 여쭈어올리라고 하였다. 로회한 책략가의 약삭바른 발뺌이였다. 제입으로 입안에서 뱅뱅 도는 항복의사를 먼저 표명했다가는 어느 칼에 맞아죽을지도 모른다는것을 잘 알고있는 스즈끼는 능청스럽게도 오고오외상을 위험수역에 떠밀어버린셈이다.

63살의 도오고오도 스즈끼의 교활한 속내를 빤히 들여다보고있었지만 피할 재주는 없어서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진주만공격때 벌써 외상으로 지내던 그는 군부의 미움을 받아 1942년에는 자리를 떼우고 지내다가 얼마전 중신들의 권고로 외상자리에 다시 올라앉은 사람이였다.

《페하, 전쟁에서 항복이란 두말할나위도 없이 최상의 치욕이고 굴욕이나이다.》

도오고오도 외교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이라 이렇게 방패막이부터 해놓고서야 본색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쏘련이 전쟁판에 뛰여들고 미국이 원자탄까지 쓰는 이 급변사태앞에서 항복을 외면할수는 없나이다. 여기서 요점이라 할수 있는것은 보다 유리한 조건을 내든 항복이란 기대할수 없다는 사실이나이다. 저는 황실안전의 조건 하나만으로 포츠담제안을 수락하는것이 상책중의 상책인줄로 아나이다.》

《저도 도오고오외상의 주장에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요나이해군대신이 냉큼 일어나며 생색을 냈다.

우메즈의 눈에는 독기가 서려올랐다. 명색이 해군대신이라는자가 군인의 체모를 잃고 항복을 극구 찬양하는데 참을수 없었다.

《나는 반대요.》

《나도 참모총장각하와 동감입니다.》

우메즈의 으르릉소리에 힘을 얻은듯 아나미륙군대신이 일어서며 엄청나게 큰 고함소리를 냈다. 한때 우메즈의 부하로 지낸적도 있는 이 사나이는 성급한 성격을 지닌 주전파의 한사람이였다.

그는 결패있게 말했다.

《우리 야마도민족에게는 어떤 경우에도 항복이란 있을수 없습니다. 요나이해군대신은 함대를 전부 다 잃고나더니 머리가 돌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페하, 페하의 국민은 항복의 치욕보다 떳떳이 죽는 길을 기쁘게 선택할것입니다.

저는 항복이 아니라 끝까지 본토결전을 주장합니다.》

《페하.》

우메즈도 일어나 묵직한 목소리로 방금전 히로히도에게 설명한 본토결전의 정당성을 론증해나갔다.

그러나 외무대신을 비롯한 화평파의 주장도 완강했다. 회의가 진행됨에 따라 그들의 주장이 점점 더 우세를 차지하고있었다.

이놈들이 미리 작당을 했구나.

우메즈는 잡아먹을것처럼 그들을 노려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화평파는 우세를 믿고 조금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항복의 구실밑에 죽음을 모면해보자는 속심들이였다.

이놈들을 그저…

론의는 계속되였다.

사람들은 증기가마에 들어앉은것처럼 땀을 뻘뻘 흘리고있었다. 그만큼 습기찬 실내는 무더웠다. 《황궁》지하실의 환기장치가 무슨 리유때문인지 고장난탓이였다. 게다가 모기의 성화도 이만저만 아니였다. 어디서 어떻게 슴새여들어왔는지 모기란 놈들이 여기서는 《천황페하》도 알아주지 않고 제 세상을 만난것처럼 마구 설개였다.

어느덧 시간은 10일 새벽 2시에 이르고있었다.

그러나 주전파와 화평파의 론전은 끝날줄을 몰랐다.

스즈끼가 자리에서 일어나 히로히도《천황》에게 말했다.

《황송하오나 이제는 천황페하의 재단을 바라나이다.》

이것은 전대미문의 일이였다. 일본의 력사에는 그 어떤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 중신들이 《천황》에게 의사표시를 요구한적이 있어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막다른 골목에 이르자 늙은 소같은 스즈끼가 엉뚱한짓을 한것이다.

놀랍게도 흰 장갑을 낀 두손을 깍지끼고 무릎우에 올려놓은채 대리석조각상처럼 꼿꼿이 앉아있던 히로히도는 마치 스즈끼의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듯 의자의 팔걸이를 잡으며 천천히 일어났다.

《그럼 짐의 의견을 말하겠다.》

입귀에 주름이 잡힌 입을 열자 히로히도는 강한 금속성을 띤 그 특유한 목소리로 말했다.

《짐은 외무대신의 의견에 동의한다. 지금 일본이 직면한 제반조건을 깊이 고려한 끝에 짐이 이 전쟁을 계속하는것은 일본의 파멸과 더 많은 류혈, 세계의 고난을 가중시킨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런 형편에서는 일본국민모두가 죽어없어질수 있다. 짐은 그렇게 되는것을 바라지 않는다. 짐은 일본국을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될수록 많은 국민이 살아남아줄것과 장래에 또다시 일떠서주기를 바랄뿐이다.》

말을 마친 히로히도는 장갑을 낀 손으로 눈물을 씻었다. 말 한마디없이 회의의 진행과정을 지켜보던 히로히도의 뇌리속에 우메즈가 주장하는 조선에서의 결전이 갑자기 현실성이 없는 일로 생각되였던 모양이다.

저렇게 약해가지고서야…

우메즈의 입가에는 가련한 히로히도를 경멸하는 빛이 스치였다.

히로히도의 본을 따서 모두들 고개를 숙이고 쿨쩍쿨쩍 울기 시작했다. 단순히 흉내나 내는것이 아니라 일본의 기막힌 운명을 생각하고 진심으로 슬픈 눈물을 쏟을수도 있었다. 그러나 개중에는 쿨쩍거리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나미륙군대신은 이런 때 우는척이라도 해야 한다는것을 망각한듯 멍청히 천정을 바라보고있었다.

아나미, 기운을 잃지 말게. 아무리 《천황페하》께서 항복선언올 했다고 해도 항복이란 있을수 없는거야, 절대로!

우메즈는 두눈을 내리뜨며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때 남들보다 특별히 크게 우는 시늉을 내던 스즈끼 간따로수상이 자기의 직분을 잊지 않고 가볍게 일어섰다.

《페하의 재단이 표명되였습니다.》

그는 《천황페하》의 재단표명을 회의의 결론으로 하겠다며 재빨리 페회를 선언해버렸다. 때는 새벽 2시 반이였다.

하지만 어전회의에서 항복이 결정되였으나 그것은 제대로 집행되지 못하였다. 늙고 심신이 쇠약해진데다 가는귀까지 먹은 스즈끼 간따로가 뒤처리를 제대로 밀고나가지 못한탓이라고 했으나 실상은 우메즈를 비롯한 군부의 작간질때문이였다.

우메즈는 항복을 인정할수 없었으며 아무리 《천황페하》가 결론까지 한 일이라도 기어코 뒤집어놓을 잡도리를 했다. 조선에서의 결전이 승산있는 일로 확인된 이상 꺼릴것이 없었다.

불행하게도 며칠사이에 정국은 그의 기대와는 달리 무섭게 기울어지고있었다. 만주전선의 관동군이 쏘련군의 공격에 물먹은 담벽처럼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조선의 북부지역에서도 김일성부대와 쏘련군이 두만강국경지대의 요새화된 방어진지와 해군요새들을 마구 짓뭉개며 맹렬히 남하하고있었다.

그렇다고 우메즈의 마음이 흔들린것은 아니였다. 그는 바위처럼 드팀이 없었다. 믿는 구석이 든든하면 사람은 강자가 되는 법이다.

때가 되면 역전될것이다!

바로 이런 때 조선헌병대사령관 다까구니 시게로의 지급편지가 날아들었다.

《참모총장각하.

본토사수를 위한 조선에서의 최후결전이란 우리의 심한 오산이였습니다. 개전벽두부터 김일성부대가 쏘련군부대와 함께 단숨에 북부국경요새들을 짓뭉개며 파죽지세로 남하하고있습니다. 때를 같이하여 조선전역은 땅속에서 솟아난듯 한 무장집단들의 배후타격과 대중폭동으로 대지진이 일어난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어디서나 우리 군대와 경찰, 국가기관을 기습점거하는 총소리이고 어디서나 제국을 무덤에로 몰아넣는 폭동입니다. 참으로 놀랍고도 리해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군대와 경찰이 그토록 막으려고 애써왔지만 김일성부대의 정치공작선은 조선사람이 살고있는 모든 곳에 깊숙이 뿌리를 박고 오늘을 준비하고있었으니 말입니다. 개전에 앞서 김일성장군은 벌써 조선을 다 해방시켰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김일성장군의 천재성에 대하여 새삼스레 탄복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우리는 조선을 타고앉아있으면서도 조선을 너무 몰랐습니다. 각하, 우리는 패했습니다. 더는 만회할수 없는 패배입니다. 저는 이것을 미연에 막지 못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배를 갈라 그 죄를 조금이라도 씻으려고 합니다.…》

비행기까지 띄워 긴급편지를 보낸 다까구니소장은 검으로 배를 가르고 죽지도 못하였다. 어제 조선헌병대사령부안에서 강한 폭탄폭발사건이 생겼는데 다까구니소장은 무전대성원들과 함께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져버렸다는것이다. 무전실밖에서 보초를 서다가 중태에 빠져 병원으로 실려간 보초병의 증언자료를 봐도 뭐가 뭔지 알수 없었다. 무전실로는 다까구니소장이 들어간 뒤 인차 그의 녀서기가 따라들어가더니 총소리가 울리고 이어 폭발이 일어났다는것뿐이였다. 다까구니소장이 중대한 명령을 하달하려던 순간에 서기인 녀중위가 그것을 막기 위해 자폭을 했다고 한다. 녀중위는 김일성부대의 공작원같다는 말도 있었다.

《음-》

부지중 우메즈의 입에서는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다까구니가 폭탄에 죽고 녀서기가 김일성부대의 공작원이라는것은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것은 조선에서 본토사수를 위한 결전을 벌리려던 그의 계획이 총파탄되였다는 사실이였다. 그는 온몸이 끝모를 캄캄한 나락으로 떨어지는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걸고있던 기대가 클수록 그것이 허물어질 때의 절망도 무엇에 비길수 없이 큰 법이다. 이제는 일본이라는 난파선이 망망대해에서 갈길을 잃고 깊은 바다속에 수장되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아, 정녕 출로가 없단 말인가.

《각하.》

부관이 들어왔다.

《저…》

《또 뭐냐?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 전화도 받지 않겠노라 하지 않았느냐?》

《저, 어전회의에 가실 시간이 됐습니다.》

《어전회의?》

우메즈는 일도 참 공교롭게 되였다고 생각했다. 어전회의란 일본의 항복문제를 놓고 다시 열리는 회의였다. 우메즈나 아나미를 비롯한 주전파들이 수를 써서 8월 9일 어전회의결정을 취소하고 다시 론의를 하도록 무진 애를 써서 열리게 되는 새 어전회의라 할수 있었다. 허나 이제는 그것도 소용없게 되였다. 조선에서의 결전을 해낼 능력을 상실한 이상 어전회의를 새롭게 한들 아무런 소용도 없는것이다. 그렇다고 《천황》이 소집한 어전회의에 가지 않을수도 없었다.

《으음-》

우메즈는 겨우 육중한 몸을 일으켰다.

8월 14일, 오전 9시 45분.

또다시 어전회의가 열렸다. 이번에는 참가인원이 열한명이 아니라 스물네명이나 되였다. 화평파도 독을 품고 수적으로 주전파를 내리누르려고 저들나름의 수를 쓴것이 분명했다.

이번에도 여전히 전쟁이냐 항복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치렬한 아귀다툼을 벌리였다. 《천황페하》가 이미 항복하기로 결론한 문제를 놓고 또 론의를 한다는것도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수 없었던 일이였다. 이제는 히로히도《천황》의 신적인 권위가 개차반으로 되였다는 의미라 할수 있었다.

아나미륙군대신이나 서북방면군사령관과 같은 주전파들이 지난번보다 엄청나게 몰리우면서 구원을 청하듯 안타까이 쳐다보았으나 우메즈는 못 본체 하였다. 조선이라는 마지막지탱점을 잃게 된 이상 전쟁을 계속 끌고나갈수도 없으니 무슨 말을 더 할수 있겠는가.

울음같은 한숨을 쏟으며 무심히 고개를 쳐들던 우메즈는 언뜻 히로히도와 눈길이 마주쳤다.

히로히도는 성난 눈길이였다.

어찌된 일인가? 참모총장, 네가 이 회의를 다시 열도록 할 때 난 그래도 무언가 기대하는바가 있었다, 그런데 왜 줄창 입을 다물고있는가.

히로히도의 싸늘한 눈길은 분명 이렇게 말하고있었다. 모름지기 그는 오늘까지도 조선에서 정국을 역전시키게 된다는 사실에 큰 희망을 걸고있었던 모양이다.

《페하, 저는 끝까지 싸울것을 주장합니다.》

어느새 그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크게 튀여나왔다. 그리고 싸우면 얼마든지 이길수 있다는것을 주장하였다. 그것이 히로히도앞에 서면 늘 하던 말의 타성이라는것조차 의식하지 못했다.

중신들의 눈길이 총구처럼 자기를 겨누고있는것을 느껴서야 정신이 펄쩍 든 우메즈는 갑자기 말을 뚝 그쳤다. 자기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빈소리를 하고있다는것을 깨달은것이다. 그는 힘없이 털썩 자리에 앉으며 속으로 부르짖었다.

천황페하, 인젠 다 늦었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패하였습니다.

히로히도가 그 속대사를 읽지 못할리 만무했다.

이때 줄곧 졸고있는듯 기척없이 앉아있던 스즈끼수상이 엉거주춤 일어섰다.

《천황페하의 재단이 있겠습니다.》

전번회의때와 꼭같은 반복이였다.

히로히도 역시 전번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짐은 지난 9일 회의때 표명한 결심에 변함이 없다는것을 다시 강조한다.》

금속성을 띤 그의 새된 목소리에서는 어딘가 신경질적인것이 누구한테나 다 알리게 드러나고있었다.

《지금 정국을 수습하지 않으면 국가를 파괴하고 민족도 절멸할것이다. 그러니 모두가 참기 어려운것을 참고 외무대신의 제안대로 수습하기 바란다. 짐의 뜻을 국민에게 알리는 조서를 작성해서 가져오라.》

히로히도는 말을 마치자 습관처럼 장갑 낀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총총히 회의장밖으로 걸어나갔다. 히로히도로서는 눈물을 흘릴망정 그와 같은 결단의 의지를 보여주기는 처음이였다. 아마 그는 요시꼬《황후》의 품에 안겨 실컷 소리내여 울게 될것이다.

이제는 누구나 항복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주전파도 화평파도 다같이 슬프게 울었다. 진심으로 울었다.

이리하여 8월 14일 오후 3시 내각회의에서는 열다섯명 대신들이 련명으로 수표한 항복조서가 작성되고 학자들에 의하여 문장들이 검토된 다음 아홉시간만에야 히로히도앞으로 가져가게 되였다고 한다. 히로히도는 그 조서를 옥음으로 두번, 세번씩 다시 록음해놓고는 미흡한데가 없다고 생각되자 래일 즉 15일 낮 12시를 기하여 방송으로 공개하기로 했다는것이다.

아, 우리 제국은 더는 지난날의 제국이 아니구나!

집무실에 들이배겨 이 모든 과정을 보고받고난 우메즈는 느닷없이 눈물을 좔좔 쏟기 시작했다. 극도의 절망이 퍼내는 슬픈 눈물이였다.

아, 일본은 바야흐로 천손강림의 옛적으로 되돌아가 하늘의 바위굴에서 다시 나와야 한단 말인가.

천손강림이란 하늘의 손자가 땅으로 내려온다는 말이다. 일본의 력사책에는 아득히 먼 옛날 하늘의 손자인 아마데라스 오오미까미가 하늘의 바위굴에서 나와 땅으로 내려온 때로부터 일본의 력사가 시작되였다고 서술되여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천손강림이라 했다.

우메즈의 개탄은 다 망해버린 제국의 비참한 운명을 두고 절통함을 금치 못해하는 패배자의 절망적인 부르짖음이였다. 눈물은 그냥 하염없이 흘러내리고있었다. 남의 나라에 대한 침략과 략탈을 생명선으로 부둥켜안고있다가 자빠진 일본제국주의의 비참한 몰골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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